(제 1 회)

1

(1)

 

총소리가 울렸다.

첫째는 눈이 둥그래져서 목을 빼들고 한길쪽을 내다보았다.

그때 또 총소리가 울리면서 골짜기를 발칵 뒤흔들어놓았다.

《얘들아, 저게 왜놈들이 아니냐?》

자치기를 하며 놀던 열살되나마나한 아이들 셋이 재빨리 주막집앞마당에 서있는 백양나무꼭대기에 기여올랐다. 맨우에 오른것이 첫째였다.

《철남아, 저기 신작로에두 몰려온다.》

나무에서 황겁히 뛰여내린 첫째는 벗어진 고무신짝을 집어들고 골목길로 냅다 뛰였다. 다른 아이들도 제각기 그 모양으로 달아났다. 련달아 울리는 총소리와 함께 양철지붕에 구멍이 팡팡 뚫어지고 벽에서 먼지가 풀썩풀썩 일었다. 300호 남짓한 큰골마을이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되였고 사방에서 아우성소리가 일어났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요!》

이마가 약간 삐여지고 눈이 큰 첫째는 주먹을 부르쥐고 동뚝으로 넋없이 달리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밭에 나간 아버지 생각이 났던것이다. 갈팡질팡하던 첫째가 야장간모퉁이로 빠져 밭둔덕길을 향해 내닫고있는데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달려내려오면서 갈린 목청으로 크게 고함을 쳤다.

《왜놈들이 〈토벌〉온다. 피하라!》

그것은 방금 같이 놀던 철남이의 맏형 리광이였다. 철남이 항상 유격대중대장이라며 자랑하던 그의 맏형은 이틀전부터 무슨 일때문이였는지 집에 와있었다.

《첫째야, 산으로 뛰여라, 산으로!》

리광은 손짓을 하며 바람처럼 날래게 마을로 뛰여들어가는것이였다.

《왜놈들이 그쪽으로두 와요!》

첫째의 고함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리광은 그냥 팔을 내저으며 집모퉁이로 사라져갔다. 첫째가 신작로를 건느려고 할 때 눈앞에 불쑥 시꺼먼것들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자동차였다. 왜놈군대가 가득 실린 자동차우에서는 기관총이 불을 내뿜고있었다. 자동차는 몇대나 되는지 등너머까지 아득히 잇닿아있었다.

하는수없어 첫째는 뒤골목으로 빠질 생각을 하고 담장을 끼고 달려가는데 철남이네 형이 가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어머니 한분을 안고 마주 뛰여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골목마다에 몰켜선 사람들을 보자 빨리 산으로 오르라고 또 고함을 질렀다.

어쩔줄을 모르고 갈팡질팡하던 마을사람들이 그의 말이 떨어지자 욱 강기슭으로 빠져 산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얼마뒤에 그쪽에서도 총소리가 났다.

갈길이 막힌 첫째는 하는수없이 마을뒤로 빠질 생각으로 골목쪽으로 돌아섰다. 한길로는 자동차가 연방 들이닿았고 총을 든 왜놈군대들이 자동차에서 우르르 쏟아져내려 몇놈씩 패를 지어 거리로 흩어져나가군 하였다. 첫째는 한길을 냉큼 뛰여넘어 다리밑으로 기여들어가 다리기둥을 안고 어데로 빠져야 할지 몰라 올롱해진 눈으로 사방을 살피였다.

마을은 어느덧 불구름에 휩싸이였다. 방금 철남이랑 창순이랑 함께 자치기를 하며 뛰놀던 골목에서 시꺼먼 연기가 솟아올랐다.

봄바람에 잘 마른 초가이영은 우지직우지직 소리를 내며 세차게도 타번졌다. 불붙는 집마당과 골목들에 석유초롱이며 불뭉치를 든 누런 군복들이 주린 짐승같이 왝왝 소리를 지르며 뛰여다니고있다. 불길은 점점 온 마을로 번져나갔다.

이제 겨우 열살을 넘긴 어린 첫째로서는 너무도 엄청난 참경이여서 무슨 영문인지 아직 판단이 가지 않았다. 그는 왜놈을 처음 보았다. 누나도, 철남이네 형님도, 아동단 민선생님도 말하기를 왜놈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악마라고 하였다. 하지만 저놈들이 무엇때문에 갑자기 이곳에 달려들어 불을 지르고 사람을 마구 죽인단 말인가? 첫째는 두손으로 볼을 싸쥐고 눈을 커다랗게 흡뜬채 불타는 마을을 넋없이 바라볼뿐이였다. 그러다가 문득 안마을로 시선이 미치자 집에 있는 누나 생각이 났다. 그는 누나를 찾아 안마을로 들어갈 작정으로 다리밑에서 기여나왔다. 그러다가 흠칫하고 뒤로 물러섰다. 말을 탄 장교놈들이 다리어구에 접어들고있었던것이다. 첫째는 뒤걸음질을 쳐서 다시 물이 질척질척한 다리밑에 몸을 옹송그리고 엎드리였다. 뚜거덕뚜거덕 말발굽소리가 날 때마다 흙이 떨어져 목덜미로 솔솔 들어갔다. 놈들이 긴칼을 철거덕거리며 한축 지나간 다음에야 첫째는 강물을 거슬러 살금살금 길우로 기여올라갔다. 사립학교마당에 거의 다달았을 때 첫째는 웅뎅이진 곳에 다시 엎드리였다. 마을에서 숱한 사람들이 끌려나오고있었다. 얼핏 보건대도 수십명은 될것 같았다.

《아! 철남이가…》

얼굴이 파랗게 질린 철남이가 자기 어머니팔에 매달려 엉엉 울며 따라가고있다.

《엄마, 가지 마. 엄마!》

키가 작달막하고 버덩이가 입술새로 삐여져나온 왜군졸병놈이 철남이를 군화발로 냅다 차 굴린다.

《앗!》

첫째는 입을 벌리며 두주먹을 가슴에 모아붙이고 오돌오돌 몸을 떨었다. 철남이는 땅바닥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움켜잡고 따라간다.

《야! 철남아!》

첫째는 그 왜놈을 돌멩이로 까라고 고함치고싶었지만 목이 잠겨버려 말이 나가지 않았다. 학교마당에 이르자 매부리코왜놈이 사람들을 한줄로 세워놓고 총을 비껴들며 고함을 질렀다.

《공산당 나왓!》

사람들은 끄덕하지 않고 그대로 버티고 서있었다.

《빨리 나왓!》

네댓명의 왜놈들이 달려들어 마을청년 십여명을 군중속에서 끌어내였다. 그중에는 녀자들도 네댓 섞여있었다. 첫째는 그속에 자기 누나도 끼인것만 같아 가슴이 섬찍했지만 누나는 그속에 보이지 않았다. 총소리가 터졌다. 끌려나온 사람들이 푹푹 땅우에 쓰러졌다.

《야, 이놈들아!》

《아이구, 이 악귀들아!》

《저 왜놈들, 저놈들을 쳐죽여라!》

철남이 어머니가 주먹을 내두르며 왜놈들에게 욕을 퍼붓는다.

그때 불쑥 한 청년이 앞으로 나서며 큰소리로 웨치였다.

《여러분! 고개를 드시오. 저 왜놈들은 지금 겁을 먹고 저럽니다. 지난달에 저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가 조직되였습니다. 일제를 타도하고 우리 인민을 해방시킬 무장부대가 나오자 저놈들은 얼이 빠져 저러는것입니다. 굴하지 맙시다. 저놈들이 망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우리 조국을 해방하고 우리들의 원쑤를 갚아주실겁니다.》

두주먹을 흔들며 목이 터지게 웨치고있는것은 이곳 아동단책임자 민선생이였다. 뒤미처 또 두방의 총소리가 나자 팔을 들었던 민선생은 가슴을 부둥키고 모로 천천히 넘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군중들이 한꺼번에 아우성을 쳤다.

《일제놈들을 쳐죽여라!》

《저 원쑤들을 쳐라!》

말탄 놈이 나타났다. 긴칼을 찬 그놈은 말에서 휙 뛰여내리더니 뚜걱뚜걱 장화소리를 울리면서 군중앞으로 걸어나갔다. 걸음을 멈춘 그놈은 허리에 달린 칼을 떼서 두다리사이에 세워짚고 이마살을 잔뜩 찌프리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끝까지 굴하지 않고 반항하는 조선사람들, 그에 비해서는 초라하고 굼뜬 자기네 부하들의 몰골이 어떻게나 불만스러웠던지 파랗고 얇은 입술이 한참동안 파르르 떨더니 드디여 째지는듯 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모조리 죽엿!》

그놈은 제 소리에도 신경이 거슬려서 어깨를 흠칫하고 좌우를 둘러보는것이였다. 고함소리에 질린 부하놈들이 채찍으로 호되게 얻어맞은 돼지새끼들처럼 사방으로 흩어져나갔다.

첫째는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고 왜놈장교를 쏴보고있었다.

《모조리 불질럿!》

인제는 온 마을이 송두리채 불바다속에 잠겼다. 마을유축에 떨어져있는 사립학교에서도 삼단같은 불길이 솟아올랐다. 첫째는 도랑에 납작 엎드린채 연기에 짓물린 눈을 비비며 불타는 학교를 바라보고있었다. 철남이 형님이랑 민선생님이랑 온 마을사람들이 봄내 달라붙어 새로 지은 학교다. 첫째도 철남이랑 함께 산에 가서 서까래며 산자감을 날라왔었다. 첫째는 제 몸에 불이 달린것처럼 몸을 옹송그리고 두주먹을 떨었다. 그때 또 자지러진 총소리가 울렸다. 불길에 휩싸인 마을에서 요행 빠져나와 강변으로 달려나가던 사람들이 풀썩풀썩 모래톱우에 쓰러진다.

《저 인간백정놈들, 저놈들을 쳐죽이지 못해! 저놈들.》

총칼을 꼬나든 놈들에게 둘러싸여있는 학교마당의 사람들속에서 터져나온 철남이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긴칼을 짚고 섰던 놈이 손가락질을 하자 두명의 졸병이 달려들어 철남이 어머니를 끌어내려고 하였다. 철남이 어머니는 팔을 내두르며 왜놈들에게 맞섰다. 두리에 서있던 사람들이 어머니를 둘러싸고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다.

《이 더러운 개들아! 어따대고 손질이냐, 이놈들!》

철남이 어머니는 달려드는 왜놈의 동가슴을 주먹으로 내질렀다.

이번에는 네댓놈이 한꺼번에 우르르 달려들었다. 사람들이 또 둘러싸고 대항을 하자 놈들은 총을 쏘았다. 대번에 두명이 또 꺼꾸러졌다.

《날 놓소. 내가 나가겠소. 나때문에 젊은이들이 죽어서야 되겠소.》

철남이 어머니는 사람들을 헤가르며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철남이는 이때 어데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네 아들이 어데 갔니?》

양복조끼를 입고 안경을 낀 놈이 턱을 들고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왜놈의 앞잡이인 모양이다.

《난 그런걸 모른다.》

《네 아들이 공산당이지?》

어머니는 피가 빨갛게 내밴 입술을 사려물고 적의에 찬 눈길로 그놈을 한참 쏘아보았다.

《공산당을 낳았으니 너도 죽어야 한다.》

그 말에 드디여 어머니는 분노를 터뜨렸다.

《난 공산당을 낳고 죽을지언정 너같은 개는 낳지 않는다.》

칼을 짚고 선 장교놈이 뒤에 대고 뭐라고 한마디 꽥 하자 졸병 두놈이 달려나와 어머니의 팔을 비틀어잡고 불타고있는 집으로 내끌었다.

《야 이놈들아, 놔라!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 엉? 이 악귀같은 놈들아!》

마을청년들이 달려들어 왜놈들의 손에서 어머니를 빼내였다.

그때 사람들 틈을 뚫고 철남이가 총알처럼 뛰쳐나왔다.

《엄마!》

땅에 엎드려 내다보고있던 첫째는 《철남아!》 하고 크게 고함을 칠번 하였다. 그때 철남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매달리는 순간 총소리가 울렸다. 철남이가 가슴을 움켜잡고 땅에 딩굴기 시작하였다. 첫째는 째지는듯 한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싸쥐고 눈을 딱 감았다. 잠시후 사람들의 피타는 고함소리가 터지고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리였다. 첫째가 번쩍 눈을 떠보니 동네사람들이 주먹을 흔들며 앞으로 달려나가고있었는데 왜놈들은 거기다 대고 마구 총질을 하였다. 군중의 한복판에 들었던 철남이 어머니가 쓰러진 철남이를 가슴에 안고 우뚝 사람들앞에 나섰다.

《여러분, 나를 상관하지 마시오. 여러분은 살아남아서 원쑤를 갚아야 합니다. 우리 철남이의 원쑤를 갚아주시오.》

그리고는 철남이를 안은채 왜놈들에게 끌리여 어머니는 불더미속으로 들어갔다.

《철남아! 철남아!》

첫째는 저도 모르게 부르짖으며 화닥닥 뛰여일어섰다. 그 순간 학교는 우지직 무너져내리고 불길은 하늘높이 솟구쳐올랐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1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