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1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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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장한테서 억울한 비판을 받았다고 우영심이 잔뜩 의견이 있어하는 바람에 집단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던 바로 그날 저녁에 있은 일이였다.

김호성이 동무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올라와 자기 방에서 문건 하나를 만들고있는데 딸애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집에 언제 오나요?》

김호성은 집에 내려갔다온지도 두달이 되여오니까 어린것이 아버지가 보고싶어 그러는줄 알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금선이 아버지가 막 보고싶지? 하하, 이 아버지도 금선이 보고싶어 죽을지경인걸.》

《…》

《공부 잘하니? 선생님말씀이랑 할머니말씀이랑 잘 듣구?》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여느때같으면 해해거리며 뭐라고 잘도 조잘댔을 딸애인데 왜서인지 말이 없었다.

딸애는 한참만에야 말했다.

《아버지, 집에 빨리 와!》

김호성은 갑자기 가슴이 짜릿해왔다. 어머니 없이 자라는 애가 아닌가! 이 아버지의 사랑이 오죽 그리웠으면 그러랴싶었다.

《얘 금선아, 이 아버지가 말해주지 않았니. 아버진 우리 나라를 더욱 빛내일 중요한 일을 하느라고 금선이 보고싶어도 집에 자주 내려갈수 없는거라고 말이다. 너도 이제 한살 더 먹으면 중학생이 되겠는데 이 아버지를 리해하렴.》

《…》

얘가 성이 났구나! 눈앞에선 원망이 가득 실린 딸애의 까칠한 얼굴이 얼른거리였다.

《얘 금선아, 성났니?》

《…》

김호성은 마음이 약해지는 자기를 느꼈다.

《이 아버진 정말 바쁘다. 일감은 산같은데 시간은 없구나! 네가 리해 못하겠니? 정 그러면 한번 내려가자꾸나. 그러면 되겠니?》

그래도 기척이 없다. 차츰차츰 속에서 언짢은 감정이 끓어올랐다.

갑자기 딸애의 목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외할머니가… 외할머니가!…》 그리고는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김호성은 와뜰 놀라며 부르짖었다.

《야, 외할머니가 어떻게 됐다는거냐?》

《됐어 아버지, 내려오지 마!》

딸애는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전화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다.

속에서는 불이 일었다. 철없는 딸애를 속으로 안타깨비라고 아무리 욕을 해야 소용이 없었다. 딸애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을것이다. 이런 속상한 일이 어디 또 있을가! 가시어머니가 어떻게 됐다는것인가? 심장발작이라도 일어난게 아닐가? …

그렇다. 그날 저녁 그런 일이 있었다.

김호성은 긴장하게 일하는 동무들 보기가 미안했지만 시간을 내였다.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내려가봐야지.》

부국장은 선선히 승인했다. 무슨 일때문인지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시험연구조일이 바쁜데 오래 지체하지 말아야겠다는 말만 한마디 했다.

(도대체 가시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가?)

뻐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가는 김호성은 머리속에서 그 생각이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초조하고 착잡한 심리에 빠져들었다. 심하게 앓고있는것이나 아닌지? 아니면… 혹시… 점점 불안한 생각들이 떠오르고 거기에 시험연구조일까지 겹쳐들면서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였다. 한창 바쁜 모퉁이에 이게 뭔가!

그러나저러나간에 가시어머니의 일이 제일 걱정되였다.

심장병이 있어 한뉘를 고생하는 로인이 아닌가.

김호성은 일이 바빠 늘 나가 생활하다싶이하면서 가시어머니의 일때문에 마음이 편안치 않았다.

호성은 몇해전에 뜻밖의 일로 사랑하는 안해를 잃었다. 부부가 금슬이 좋아 함께 살아오면서도 두사람은 서로 얼굴 한번 붉힌적이 없었다. 그런데다가 안해 강수련은 다감하고 마음이 비단결처럼 고왔으며 의협심을 천성으로 타고난 녀자였다. 동네에서 그 녀자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한생을 살아가느라면 좋은 일도 있는 반면에 가슴아픈 일도 당하기마련이지만 김호성에게 있어서 안해의 죽음은 참기 어려운것이였다.

그때 김호성은 처음부터 촌에 있는 늙은 가시아버지와 가시어머니를 모셔다 함께 살고있었다. 늙은 량주를 잘 모시자니 모자라는것이 더러 있었다. 안해는 드문히 고맙다는 소리, 미안하다는 소리를 했는데 그럴 때면 김호성이 정말로 성을 냈다.

《여보, 그런 소리 하지 마오. 당신 아버님은 전쟁때 락동강계선까지 나갔다왔고 월비산전투에 참가하여 한쪽다리를 상한 영예군인로병이요. 설사 자기를 낳아준 친부모가 아니라고 해도 우린 잘 모셔야 하오. 그들은 자기들의 피를 바쳐 우리 세대에게 오늘을 넘겨준 혁명선배들이란 말이요. 그리고 말이요, 사람은 정이 없어 못사는것이지 물건이나 쌀이 바르다고 못사는게 아니요. 난 당신 아버님이나 어머님을 내 친아버지, 친어머니가 아니라고 언제한번 생각해본적이 없소.》

안해는 그 말이 고마와 눈물을 흘리였다.

어느해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이였다. 안해는 먼 촌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등에 진 배낭속에는 친척집에서 꾸려준 말린 고추며 올감자며 완두콩이며 하는 농토산물이 들어있었다.

안해는 먼데서부터 타고오던 자동차가 집이 있는 도시근방에 이르러 다른 방향으로 가는 바람에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땡볕에 땀을 흘리며 한참 걸어가다나니 고개 하나를 두고 물을 마시고싶어졌다.

그래서 밭가운데 외따로 떨어져있는 인가를 찾아들어갔다. 복슬강아지 한마리가 낯선 사람이 나타났다고 영악스럽게 짖어대는데 어찌된 일인지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안해가 주인이 있는가고 몇번을 찾아서야 울타리너머 어딘가에서 《들어오세요.》하는 녀자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리였다. 인차 집모퉁이쪽에서 푸성귀를 담은 비닐소랭이를 든 중년녀인이 나타났다.

친절하고 상냥하기 이를데없는 녀주인은 길을 가다가 갈증이 나서 찾아들어온 손님이 먼길에 지친 몸으로 고개를 걸어서 넘어가야 한다는것을 알고 동정이 갔던 모양이였다. 물 한그릇 떠주고는 해가늠을 해보더니 쉬여가라면서 방안으로 이끌었다.

그러지 않아도 배낭까지 지고 걸어오느라 힘들었던 안해는 고마와하며 따라들어갔다. 주인집녀인은 《자동차를 타고 200리도 넘게 왔다니 점심을 못했겠구만요.》했는데 안해는 아닌게아니라 점심을 굶은 상태였다. 그래서 생각없이 《집에 가서 먹지요 뭐.》하고 말했다.

주인집녀인은 부엌으로 내려가 떨거덕거리더니 완두콩이 섞인 잡곡밥 한그릇에 김치종지며 빨갛게 고추물이 오른 무우장절임을 곁들여서 들여왔다.

그 바람에 안해는 바빠맞아 그러지 말라며 급히 일어나려고 했다.

집주인은 시장하겠는데 변변치 않은 잡곡밥이라도 한술 들고가라고 굳이 붙들었다.

집주인은 그러고나서 《손님대접할게 이것밖에 없구만요.》 하며 몹시 미안해했다.

정앞에서 무른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주인녀자의 그 말이 오히려 안해를 감동시켰다.

그 집의 방안이며 부엌이며를 둘러보니 살림은 그닥 넉넉치 못한것 같은데 인정은 넘쳐나는 집이였다.

알고보니 주인녀자 역시 돌격대출신이였다. 산후탈로 몇해째 직장에도 못 나가며 고생하는 녀자였다.

녀인은 남편이 철길순회원이라고 했다.

《철도는 나라의 동맥이라고 하지 않나요. 철길이 안전해야 기차가 무사고운행하여 짐을 많이 실어나를게 아니예요. 안해라는게 제구실을 못하다보니 어떤 날엔 점심밥곽에 변변한 반찬을 싸주지 못해 미안한 때가 있답니다. 그런 날엔 남편을 내보내고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뭐. 호호.》

남편이 하는 일을 긍지로 여기는 소박하고 마음이 깨끗한 녀자였다.

안해는 그 녀자의 말이 리해되였다. 《아주머니, 지금은 좀 힘들더라도 견디여내자요. 이제 잘살게 될 때가 꼭 와요.》하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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