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1 편

20

(2)

 

이때 나들문이 열리면서 무슨 일때문인지 라영국이 들어왔다.

그 바람에 방안에 있던 두사람은 멍해있다가 약속이나 한듯이 웃었다. 과연 속담 그른데가 없구나 하고 두사람은 꼭같은 생각을 하고있었다.

《아니, 왜들 웃습니까?》

라영국이 영문을 몰라 어정쩡해서 물었다.

《어디서 뻐꾸기소리가 나서 그러오.》부국장이 의아해하는 라영국을 바라보며 껄껄거리였다. 《호성조장 만나자고 그러오?》

《시험연구조 책임자를 만나야 할 일이 있다면서 지방에서 웬 녀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라영국이 말하기 바쁘게 열려져있는 문가에 한 녀인이 서있었다.

인생의 한창계절을 맞이한 젊고 아련하게 생긴 녀인, 옷차림은 소박하고 어딘가 모르게 촌티가 나면서도 몸가짐에서는 깊은 지성과 고요한 사색이 느껴지는 녀인이였다. 대뜸 김광우의 얼굴에서 웃음이 버그러졌다. 은률에 나갔다오는 길에 서해갑문에서 만나 차를 태워주었던 그 인상깊은 녀교원이 아닌가!

《허, 이게 누구요?!》 반가운 소리가 광우의 입에서 튀여나왔다.

방안의 주인들을 가려볼사이 없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던 녀교원이 그 소리에 놀라 머리를 들어 광우쪽을 바라보았다.

급기야 그 녀자의 입에서 《어마나!》 하는 소리가 튀여나왔다. 그의 눈이 기쁨으로 반짝이였다.

《선생을 다시 만나고싶었는데 이렇게 제발로 찾아왔구만! 이런 반가울데라구야!》

광우는 그날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 들어가 초고전력전기로를 봤는가? 평양에 들어와 어디어디를 가봤는가를 련거퍼 물어보다가 김호성을 돌아보았다.

《이보오 호성조장, 내가 엊그제 말하던 그 녀선생이요. 수학수재를 데리고 평양에 올라왔다는 지방분교의 녀선생을 동무들이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내가 말했었지.》

광우는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눈이 둥그래지며 입을 벌린채 굳어져버리였다.

녀자손님을 이상하게 바라보며 꿈이 아닌가해서 멍해있던 김호성의 입에서 《아니, 오련희 아니야? !》하는 소리가 급기야 튀여나오는것이였다.

오련희 역시 그를 알아보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어마나! 호연이 오빠!》

두사람은 인차 방안의 년장자이며 상급인 김광우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저들끼리 반갑다고 떠들어댔다.

《허허, 이건 또 무슨 일이요? 견우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난건 아니요?》

어리둥절해진 김광우가 그렇게 말해서야 김호성이 그를 돌아보았다.

《견우직녀는 무슨 견우직녀입니까. 어렸을 때 제 누이동생하구 같이 오빠오빠 하며 따라다니던 고향동무입니다. 부국장동지, 제가 한창 군사복무를 할 때 이 오련희는 대학생이 되였으니 나이는 아래이지만 저보다 퍽 선배인셈입니다. 우리 부국장동지요, 련희동무.》

부국장이라는 소리에 오련희는 놀라서 눈이 둥그래졌다.

《전 그런것도 모르고… 전번에 정말 고마왔습니다. 부국장동지가 차를 태워주지 않았더라면 우린 그날 한지에서 밤을 보냈을지도 모르지요 뭐.》

《고맙기야 무얼. 그런데 련희선생이 우리 호성조장의 선배란 말이지?》

그 소리에 오련희는 얼굴을 붉히며 명랑하게 웃었다.

《아유! 호연이 오빤 중학교때 엉너리치기 잘하더니 그 성미 여전하구만요. 선배는 무슨 선배예요. 촌학교 선생인걸요. 호성동지에 비하면 까마득하게 떨어졌지요 뭐. 부국장동지, 호성동지를 통해서 아시겠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고향은 하늘아래 첫 동네입니다. 머리를 들어야 해를 봅니다. 사방 높은 산으로 둘러막혔으니까요. 호성동지가 리과대학에 갔다는 소리를 듣고 그 산골 림산동네에서 수재가 나왔다고 고향사람들모두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티없이 웃으며 말하는 그 녀인에게서는 향촌의 싱그러운 숲냄새며 찔레꽃향기같은것이 풍겨오는듯 했다.

오련희의 말에 김호성은 얼굴이 뻘개지며 싱글싱글 소리없이 웃기만 했다.

《얼마나 좋소! 고향사람들이 못 잊어하며 긍지로 여긴다면 호성동무는 참 행복한 사람이요. 그런데 련희선생이 시험연구조가 있다는건 어떻게 알고 무슨 일로 여길 찾아왔소?》

《평양에 오면서 기차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일이구만. 시험연구조가 있다는게 아직은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겠는데.》

《부국장동지, 제가 여기 찾아온건 사실 제자때문입니다. 전번에 부국장동지의 차를 함께 타고온 그 중학생말입니다. 여긴 실력있는 수학전문가선생들도 있겠는데 우리 금동학생을 한번 만나게 해주었으면 해서 그럽니다. 그러면 많은 도움이 될거란 말입니다.》

김광우는 대뜸 웃음집이 버그러졌다. 호박이 저절로 떨어지듯 일이 되지 않았는가.

《그렇다? 아주 좋은 일이요. 그러지 않아도 내가 동무들이 들어있는 숙소도 알아보지 않은걸 그날 차를 타고 들어오면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아오? 지향이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다시 만나는걸 가지구. 그 수재학생은 어디에 있소?》

《정문에 떨어져있습니다.》

《원, 선생두! 아예 데리고 들어올것이지. 자, 오래간만에 만났겠는데 회포를 나누오.》

김광우는 그렇게 말하고 흡족해서 자리를 떴다.

김호성은 그제서야 생글거리는 오련희의 변모된 모습을 깊은 감회속에 여겨보았다.

세월은 얼마나 흘렀는가! 노래 잘하고 자그마한 덧이 하나가 웃을 때마다 유표하게 드러나던 소녀, 정갱이가 까맣게 타도록 숲속을 돌아치기 잘하던 옛날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다. 있다면 웃을 때마다 드러나군 하는 자그마한 덧이 하나이다. 오련희의 눈귀에는 때이른 잔주름 몇오리가 생기였다. 그런데 그 녀자에게서 초여름의 숲처럼 생신하고 생활의 만족감에 넘쳐있는 사람들에게서만 찾아볼수 있는 희열이 느껴지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김호성은 그 녀자가 결코 범상하다고 볼수 없는 생활의 곡절을 겪었다는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있다.

《그래, 련희가 도소재지에 배치받았다가 고향의 림산분교로 자진하여 내려갔다는 말은 오래전에 들었는데 이렇게 생각지 않게 만나니 정말 반갑구만! 수재학생을 위해 평양에 일부러 올라왔다는 말은 우리 부국장동지한테서 들었소. 그런데 시험연구조가 여기 있다는건 어떻게 알고 찾아왔소?》

오련희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평양에 왔다가 우연히 교육위원회에 있는 정성금동지를 만났지요뭐.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성금동진 박사원생이였는데 우린 기숙사 한호실에서 생활했거던요.》

《오, 그런 사이였구만.》

《성금동지한테 우수한 실력가선생들이 위원회에 올라와 콤퓨터에 의한 원격시험프로그람개발전투를 벌리고있다는데 그 사람들이 어디에 있는가고 물어봤지요 뭐. 제꺽 말해주더구만요. 그 조장이 내가 아는 고향사람 김호성동지가 아닐가 하는 생각은 하고있었어요. 기차를 타고오다가 그럴만한 일이 있었거던요. 역시 호연이 오빤 고향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큰일을 하는구만요. 대단해요!》

《큰일이라… 허허.》

《아니, 왜 웃어요?》

《다 달라졌는데 두가지는 아이적 그대로구만.》

오련희의 눈에선 호기심이 반짝이였다.

《그게 뭐예요?》

《웃을 때 보이는 그 덧이하고 무엇이나 과장하기 좋아하는 버릇.》

《어마나! 호호호.》

두사람은 아득히 흘러가버린 시절의 일들을 감회깊이 추억하며 즐겁게 웃었다.

《련희동무, 거기서 데리고왔다는 그 제자말이요, 이자 부국장동지가 말하는걸 보면 수학수재라고 하던데 정말 그렇소?》

《사실이예요. 수학두뇌인데 앞으로 잘 키우면 세계적인 유명한 수학자가 될수 있어요.》

《세계적인 수학자라…》

김호성은 또 얼굴에 웃음을 실었다.

오련희는 악의없는 힐난의 눈길로 김호성을 건너다보았다.

《음- 과장이 아니예요. 정말이란 말이예요.》

《허허, 말하오. 그래서 우리가 뭘 도와주어야 한다는거요?》

《어떤 때엔 선생인 내가 지식이 모자라 배워주기 힘들 정도예요. 그래서 수학참고서같은것도 필요하고 더구나 여기엔 실력있는 수학선생들도 있겠지요? 그런 선생님들한테서 좋은 말을 들으면 금동학생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칠게 아니예요.》

《동무 말대로 여긴 수학재사들이 있소. 더구나 다음해부터는 콤퓨터에 의한 대학입학원격시험으로 넘어가는데 우리 사람들이 그 애한테 필요한 학습방조를 줄수 있소. 그리고 말이요, 사실 그 학생을 만나보는건 우리 사람들한테도 필요하오. 지방 분교생들의 중등교육실태도 다 알아야 하니까. 이자 부국장동지도 그래서 그렇게 말한거요.》

《그러고보니 정말 그렇구만요!》

《참고서도 주면 되는거구. 그러니 이젠 동무이야기나 들어보자구.》

《제 이야기라는거야 들어볼것이 뭐가 있겠어요. 촌생활이라는거야 호성동지두 알지 않나요. 눈뜨면 보이는건 산, 나무, 토장, 산판의 기계톱소리… 사람들은 예나지금이나 더없이 좋아요. 그저 아이들하고 어울려서 살지요 뭐.》

《난 그 말 듣자는게 아니요. 동무가 자진해서 고향 분교로 내려간데는 실련을 당한것과 관련된다는 말을 들었소. 도대체 오련희의 인생을 그렇게 만든 그 사람은 어떻게 돼먹은 사내요?》

오련희의 얼굴에 샘물처럼 반짝이던 웃음은 닦아버린듯이 사라졌다.

그 녀자는 심란해졌다.

김호성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픈 추억을 건드려서 안됐소. 동무를 괴롭히자고 그런건 아니고 그저 분해서 그러는거요.》

오련희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며 살며시 웃었다.

《호성동지두 참! 내 인생이 어쨌다고 그래요. 호연이 오빠나 빨리 생활을 찾으라요. 상처를 한지도 몇해 됐다는데… 집에는 안사람이 있어야 해요.》

《동문 마치 가정생활을 해본 경험자처럼 말하는군.》

《호호…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그런데 음― 호성동진 나쁜 사람이예요. 아주 나쁜 사람.》 그렇게 말하는 오련희의 눈에선 웃음이 새물거리였다.

《정직한 사람을 보고 그건 무슨 소리요? 나서 처음 듣는데.》

《강수영이란 이름이 생각나지요?》

김호성은 깜짝 놀랐다. 그는 자기가 잘못 들은게 아닌가해서 귀를 의심하며 오련희의 장난기어린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동무가 그 녀자를 어떻게 아오?》

《세상은 넓고도 좁다는 말이 있지 않나요. 이 오련희하구 죽자살자하는 친구지간인걸요. 죽마고우.》 그 녀자는 그러고나서 김호성의 얼굴표정을 살짝 훔쳐보며 깔깔 웃었다.

김호성은 그 녀자가 계교를 꾸며대고있다는것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었다.

오련희는 그제서야 강수영이와 한렬차를 타고오면서 알게 된 사연을 말했다.

《호성동진 그 녀자를 만나야 해요. 녀자의 마음은 녀자가 알아요. 그 동문 흔치 않은 녀성이예요. 진실하고 시대를 안고 사는 동무란 말이예요.》

김호성은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한순간 그의 얼굴에는 괴로움의 음영이 어려있었다. 눈앞에 안해의 얼굴이 그려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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