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1 편

22

(2)

 

그들은 평양역에 내려 헤여지면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일요일이면 두사람은 드문히 학습당이나 유원지같은데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방학이 되여 고향으로 내려갈 때면 의례히 약속을 하고 같은 기차를 탔다.

한번은 최윤호가 기차에서 내리자 처녀를 자기 집으로 끌었다. 늦었는데 자기 집에서 편히 하루밤을 자고 아침에 고향 림산마을쪽으로 가는 차잡이를 하라는것이였다.

하긴 기차가 저녁무렵에야 역에 이르다나니 어느 려관에라도 찾아가 하루밤 묵어야 할 형편이였다.

최윤호의 집에 가면 려관신세를 지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의 호의를 따를수 없었다. 처녀가 총각네 집에 잠을 자러 간다는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한 일이였다.

마침 철도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도림업관리국에 있다는 최윤호의 형네 집이 있었다.

최윤호가 소개하여 오련희는 그 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내외가 모두 마음들이 무던하고 손님을 친절히 대해주는 집이였다. 오련희는 아무런 불편도 없이 그 집에서 하루밤을 보내며 호텔료리사를 한다는 안주인과 친하였다.

그 집에는 인민학교(당시)에 다니는 오돌차게 생긴 아들이 있었다. 최금동이라는 그 소년은 붙임성이 좋아 처음 보는 오련희를 대뜸 누나라고 불렀는데 알고보니 국제수학올림픽경기에 나가 금메달 따는것을 목표로 하는 소년이였다.

오련희가 그 애의 수학실력을 슬그머니 알아보니 놀라울 정도의 수학두뇌였다.

《금동인 앞으로 유명한 수학가가 될거야. 그러니 공부를 더 열심히 해라. 국제수학올림픽경기에 나가 금메달을 따오는것도 좋지만 그보다도 장차 우리 나라의 과학을 세계에 우뚝 세우는데 기여하는 세계적인 과학자가 돼야 해. 이 누나와 약속을 하자. 그런 과학자가 되겠다는걸 말이다. 누나도 금동이의 수학공부를 도와줄게. 약속하지?》

그들은 그날부터 친한 사이가 되였다.

오련희는 방학이 되여 집에 내려갈 때면 금동이네 집에 들려 그 애의 수학공부를 지도해주군 하였다.

매번 들릴 때마다 금동소년의 수학실력이 놀랍게 올라간것이 알리였다. 그러는 가운데 세월이 흘러갔다.

최윤호가 먼저 대학을 졸업하고 도소재지에 배치받아 내려갔다. 그는 평양을 떠나가면서 오련희를 만나 말했다.

《졸업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도소재지로 내려오오. 거기엔 힘있는 우리 친척들도 있고 가까운 사람들이 많소. 림업관리국에 있는 우리 형님도 인정이 많은데다가 한다하는 일군이니까 교제범위가 넓소. 련희동무 하나 도와 못 주겠소?》

이태가 지났을 때 오련희도 졸업했다. 그는 정말 도소재지에 배치되였다. 그는 향촌의 소녀시절부터 꿈꾸어오던 소원대로 선생님이 되였다.

최윤호는 그가 교원이 되는것을 그닥 달가와하는 기색이 아니였지만 련희는 기쁘기만 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였다.

한해가 지나갔을 때 최윤호네 집에 하나의 일이 있었다. 최윤호가 그렇게도 자랑하던 그의 형이 큰 과오를 범했다. 도림업관리국의 한다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일처리를 잘못하여 산하단위인 한 림산사업소의 림지를 못쓰게 만든것이였다.

사업소는 생산전망이 암담하게 되였으며 그 후과로 큰물때 인명피해까지 났다.

그것이 관리국적인 문제로 제기되여 그는 비판을 받게 되였다.

다행히 일을 잘하려다가 범한 본의아닌 과오로 인정되여 엄한 처벌은 면하였으나 그는 심한 량심의 가책으로 고민하던 끝에 자기 잘못으로 황페화된 림산사업소로 자진하여 내려갔다.

그때로 말하면 최윤호가 인민위원회 학생모집처에서 일하면서 실적을 내여 우의 일군들로부터 평판이 좋던 때였다. 오래지 않아 부서책임자로도 될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있었다.

오련희는 길거리에서 금동소년의 어머니를 만나 그런 일이 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일이 그렇게 되였어요. 촌으로 내려간다고 해서 달리 생각지는 않아요. 생활조건이 여기보다는 못할수 있겠지만 거기라고 뭐 사람못살 고장이겠어요. 하나 속에 걸리는것이 있다면 금동이문제예요. 유명한 수학가가 되겠다는 애인데 동무들과 떨어져 촌에 내려가서 위축되지 않겠는지…》 하고 그 녀자는 말했다.

《위축되기는 왜 위축되겠어요. 거기 가면 또 좋은 동무들을 사귀게 될거구 금동이의 재능을 아껴주는 훌륭한 선생님들도 있을게 아니예요. 그리고 거긴 제가 나서자란 고향인데 물좋고 경치좋고 사람들도 모두 좋은 살기 좋은 고장이랍니다.》

그 녀자를 위안하는 좋은 말을 해주었으나 오련희는 속이 편안치 않았다.

어쩐지 자기가 꼭 위선적인 인간처럼 생각되였다. 자기가 나라의 과학을 떠메고나갈 유명한 수학자가 될거라고 하며 학습방조를 주던 금동이는 아버지를 따라 촌으로 내려가는데 자기는 도시에 남아 편안한 생활만 추구하는 녀자처럼. 네가 금동이를 따라 촌에 내려가면 안된다던 하는 생각이 피뜩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한편 최윤호가 형님의 일로 얼마나 걱정하랴싶었다.

금동이네가 촌으로 내려간지 며칠 지나서였다. 오련희는 최윤호를 만나 《형님의 일이 참 안됐더구만요.》 하고 진심의 말을 했다.

최윤호의 얼굴에는 사랑하는 처녀가 자기네 집안의 창피한 내막을 알고있다는데서 오는 수치의 감정이 진하게 나타났다.

《사실은 말이요, 그 사람은 내 형이 아니요.》 최윤호가 하는 말이였다.

오련희는 깜짝 놀랐다. 한순간 자기 귀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했다. 하지만 그런것이 아니였다.

《우리 집안엔 그런 역적같은 인간이 없소! 그 사람은 원래 고아였는데 오래전에 아버지가 데려온것을 우리 집에서 먹여주고 입혀주면서 대학공부까지 시켰던것이요. 그러니 촌수를 따지면 그 사람은 사실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소.》

형님이 집에서 데려다 키운 자식이라는 말은 최윤호에게서 처음 듣는 말이였다.

《동지는 언젠가 자기한테 훌륭한 형님이 있다고 자랑하지 않았나요. 오래전의 일이여서 다 잊어버렸어요? 이젠 형님이 아니라 〈그 사람〉이 됐나요? 덕을 볼 때엔 자랑스러운 형님이고 과오를 범하여 필요없이 되면 거치장스러운 〈그 사람〉이 되는가요?》

아니, 오련희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온몸이 갑자기 나른해왔다. 세상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것만 같았다. 어쩌면 사람이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최윤호가 이런 비렬한 인간이였단 말인가? 수단좋은 사람, 항상 소탈하게 웃는 낯으로 상대하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만을 주던 인간이 어쩌면! 어쩌면!

《위험해요!》 저도 모르게 그 말이 오련희의 입에서 나갔다.

최윤호가 린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처녀를 마주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하지만 떳떳하게 울려나오는 소리는 아니였다. 조심스러운것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오련희는 주저할 필요가 없게 되였다. 일단 시작을 뗀 말이 아닌가.

《동지야말로 형세가 좋을 때에는 〈충신〉이 되고 어려울 때엔 당도 서슴없이 배반할 인간이예요!》

《동문 아무렇게나 막 말하누만.》

《아니, 생각해보고 하는 말이예요.》

《나의 당성을 그렇게 함부로 평가하지 마오. 우리 아버지는 전쟁시기 인민군대 정치일군으로 락동강을 건너갔다왔고 전후에는 종파놈들과 싸웠소. 사람은 어디까지나 원칙이 있어야 하는거요!》

오련희의 말을 잠자코 듣고있던 정성금의 입에서 《세상에!》하는 한숨같은 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래서 네가 도소재지를 떠나 림산분교로 내려갔단 말이구나. 그 수재소년을 위해서… 우린 그런줄도 모르고… 동문 누구한테도 그 말을 안했지?》

《…》

《동무두 독한 녀자로구나. 그래 촌으로 자진하여 내려간걸 이제와서 후회하지 않니?》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거기 사람들이 얼마나 좋다구요. 그런데 참…》

《왜? 무슨 일이 또 있었니?》

오련희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자진하여 내려간 고향 림산마을에 바로 최윤호가 역적이나 되는듯이 말하던 그의 형이란 사람이 가족과 함께 이미 가있었다. 그 사람은 자기때문에 사업소가 식수계획을 못하여 벌거숭이가 된 산판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일요일이 따로 없었다. 남들이 모두 휴식하는 날이면 안해와 아이까지 데리고 산판으로 올라가 온종일 나무를 심었다.

그러던 어느해 여름, 며칠째 그칠사이없이 폭우가 내리였다. 그는 사람들을 불러내여 토장에 쌓아놓은 나무들과 물동을 지켜내기 위한 전투를 지휘하다가 탕수에 말려들어 위험하게 된 한 로동자를 구원하고 중태에 빠졌다.

그는 의식을 잃은채 병원에 실려갔다. 의사들과 담당간호원이 이틀밤을 꼬박 새우면서 노력하여 간신히 깨여났으나 생명의 초불은 이미 심지의 마지막끝을 태우고있었다.

생의 마감에 이르렀음을 예감하는 순간에 그는 안해의 눈물고인 눈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미… 안… 하… 오.…》 마디마디 동안뜨게 울려나오는 연약한 목소리… 그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안해만이 리해할수 있는 말이였다. 그는 나라에 손해를 끼친 자기의 과오를 두고 괴로와하고있었으며 그때문에 처자앞에 죄를 지었다는 번민에 시달리고있었다. 그는 또 무슨 말인가를 하고있었는데 옆에 있는 어린 아들애조차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였다.

그리하여 안해가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입에서 간신히 흘러나오는 마지막말을 따라가며 《통역》했다.

《여보… 당신은… 이 못난놈을 대신하여… 이 땅에… 나무 한그루라도… 더 심어주오. … 그리고 금동아… 당에서는… 나라에… 손해를 주고 과오를 범한… 이 아버지를 용서해주었다.… 아버지는… 잘못을 저질렀지만… 당원이고 나라를 사랑했다.… 너는… 나라를… 참되게 받들줄… 아는… 좋은… 사람이 되… 거… 라.…》

남편은 알릴듯말듯하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알겠어요, 아버지! 죽지 말아요, 아버지! 눈을 떠요, 아버지!―》

아들애가 처절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남편의 얼굴에는 편안한 미소가 실리였다.

그는 과오를 범했으나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나라의 은덕은 잊지 않았으며 깨끗한 량심을 간직하고 세상을 떠나간것이였다.

지금 림산마을에는 그가 남겨놓고간, 최윤호에게는 이러나저러나간에 형수와 조카가 되는 그 사람의 안해와 아들이 살고있다.

오련희는 금동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자기의 남편을 두고 최윤호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비렬한 말을 내돌렸다는것을 알고있으며 그때문에 시동생을 지금도 용서하지 않고있다는 말도 했다.

《용서를 못하지. 어떻게 용서를 하겠어. 나같아도 용서를 못하겠다. 둘러보면 속에 쉬가 잔뜩 쓸어가지고서도 좋은 사람인체 하는 그런 인간들도 있는거지. 그런데 련희동문 어떻게 할셈이야? 일생 시집을 안 가고 혼자 살 결심이야 아니겠지? 스스로 자기 인생을 고독의 함정속에 처박을수는 없어. 인간은 사랑이 없이는 못산다. 빨리 생활을 찾아.》

《생활?》

오련희는 나직이 받아외우며 새물새물 웃었다.

정성금은 돌아누우며 그 녀자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여겨보았다.

《어쩐지 련희얼굴에서 수심기는 찾아볼수 없고 생활의 만족감이라고 할지 그런게 느껴진다고 했지. 너 사랑이 생겼구나. 그렇지?》

《사랑?》

오련희는 아리숭한 소리를 했다.

불현듯 눈앞에는 눈이 어글어글하고 얼굴이 투덤투덤한 남편의 볕에 탄 검스레한 얼굴이 떠오른다. 위험하게도 바투 다가오는 그 눈, 이글이글 타는것 같은 눈 그리고 《잘 갔다오오.》하던 투박한 목소리… 생긴건 참나무드덜기처럼 투박하고 무섭게 생긴 사람이 마음은 어쩌면 그렇게 찬찬하고 부드럽고… 진정에 차고… 열렬하고…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담!

련희는 갑자기 숯불을 뒤집어쓴듯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문득 그를 처음 알게 되던 그때의 일이 눈앞에 떠올랐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1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