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1 편

35

(2)

 

옆방에서 경쾌한 음악소리가 울려나오고있었다. 딸이 록음기를 켜놓은것이였다.

《여보, 당신 자오?》안해에게 묻는 소리였다.

《여보, 말씀하세요.》 안해 역시 잠들지 못하고있었다.

그 녀자는 남편의 거동을 조심스럽게 살필뿐 무슨 일이 있었는가고 묻지 않았다.

《당신은 나를 원망하지?》

안해는 깜짝 놀랐다.

《갑자기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원망할거요. 당신도 녀성이구 딸애의 어머니가 아니요.》

그제서야 그 녀자는 남편의 말을 리해했다.

《서운한 생각이야 했지요. 당신을 원망도 했어요. 하지만 딸애가 대학추천을 못 받았다고 해서 당신을 탓해서야 안되지요. 저도 교원생활을 한 녀자가 아니예요. 그리고… 저야 한생…》

안해는 더 말하지 않았다.

안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광우는 모르지 않는다. 안해는 마치 한생 남편에게 다 갚을수 없는 빚이라도 지고있는듯이 생각하는것이였다.

그것은 당치 않은것이며 광우를 항상 서운하게 하는것이였다. 사실은 광우가 한생 안해의 존재로 하여 인생을 다그쳐 살수 있는것인데 그 녀자는 그렇게 생각하는것이였다.

《간호원 한정실.》 하는 소리가 부지중 광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안해는 자기의 귀가 잘못된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까마득히 지나가버린 군사복무시절의 한때 그의 상관들이 그렇게 불렀던것이였다.

《여보, 당신 뭐라고 했어요?》

《나에게 당신이란 녀자는 언제나 그 고마운 간호원이란 말이요. 눈보라 사나운 령길… 여보, 오늘은 정말 당신이 불러주던 그때 그 노래를 한번 들어보고싶구만.》

안해는 말이 없었다. 사그라져가는 이 광우의 생명을 놓고 심장이 타버려서 재가 되는것 같던 그날 그밤을 추억하는것인가? 아니면 남편의 신상에서 무슨 운명적인 일이라도 있지 않았는가 해서 불안에 잠겨드는것인가? 운명적이라… 그래, 그게 정말 운명적인 일이 아니란 말인가?

이튿날, 전학선부상이 말하던 건설사업소 지배인이란 사람이 정말로 김광우를 찾아왔다.

옛시절의 갈대처럼 회친하고 키만 크던 소년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는 거방한 장년이였다.

《어찌겠습니까. 좀 도와주십시오. 아들녀석이 머리는 좋은데 제 애비를 믿고 공부를 게을리했단 말입니다.》

체구가 큰것처럼 성격도 오밀조밀하는 사람같지 않았다. 에두르지 않고 직판 솔직한 말을 했다.

광우는 갑자기 공기가 희박해진듯 가슴이 답답해왔다.

한참만에야 그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오.》

그리고는 또 침묵.

지배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그러지 마우! 당신의 자식이라면…》그는 말끝을 마무리지 않은채 고개를 홱 저으며 방에서 나가버렸다.

광우는 석상처럼 한식경을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굳어져있었다. 당신의 자식이라면! 당신의 자식이라면! … 지배인의 그 말이 귀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것만 같았다.

광우는 모질지 못한 사람이다. 건설사업소 지배인은 떠나갔지만 마음속에는 무거운 연덩이 하나가 생겨났다. 지배인의 아들때문에 생겨난 연덩이였다.

딸애가 대학추천을 못 받았던 그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였다. 그때 그는 딸애의 일을 두고 마음은 괴로왔을지언정 그 애의 운명을 두고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학추천을 못 받은 한 청년의 운명이 걱정되는것이였다.

며칠후, 광우는 일부러 시간을 내여 건설사업소 지배인네 아들이 공부했다는 학교를 찾아 출장길에 올랐다. 그가 학생의 대학추천문제때문에 일이 생겨 이 도시에 내려가는것이 벌써 세번째이다.

렬차는 경치좋은 해안가를 에돌며 달리다가 어느 한 간이역에 멎어섰다. 역구내에서 요란한 취주악소리가 울리였다. 렬차안의 손님들이 차창밖을 내다보며 흥성이였다.

하지만 광우는 거기에 신경이 가지 않았다. 그는 이제 만나게 될 한 젊은 청년의 일로 또다시 생각이 많아진것이였다. 누구나 대학입학문제는 국가적으로 보면 나라의 흥망이 걸려있는 문제요 매 개인적으로보면 그 인간의 운명문제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 학생이 그런 좌절을 겪고 앞길을 포기하지나 않을가? 아니, 그럴수는 없어. 그렇게 되면 안되지. 그래… 그래…

《허, 좋은 세월이다!》

앞좌석에 앉아오던 백발의 끼끗한 로인이 차창너머를 내다보며 하는 말이였다.

그 바람에 광우는 번거로운 생각에서 벗어나며 로인을 바라보았다.

《뭘 보고 그러십니까? 로인님.》

로인이 이상한 눈으로 김광우를 돌아보았다. 무슨 고민스러운 일이라도 있는지 지금 렬차안에서 손님들이 흥성이며 하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면서 제 생각에만 빠져버린것이 분명한 길손에게 동정이 가는 모양 로인은 눈에 따뜻한 미소를 실었다.

《허, 무슨 걱정스러운 일이라도 있는지 모르겠소만 이보시우, 점잖은 손님, 저길 좀 내다보시우다.》로인은 차창너머를 가리켰다.

광우가 내다보니 역구내에서는 학생취주악대가 요란한 환영곡을 불어대고 녀학생들이 꽃을 흔들며 꽃보라를 날리는 가운데 방금 렬차에서 내린 한 젊은 군인이 그속을 지나가고있었다. 환영의식의 주인공이였다.

《탄부의 아들이 군대에 나가 영웅이 되여가지고 모교를 찾아온다는가보우다. 허허, 그러니 우리 세상이 얼마나 좋은 세상이요. 그전세월같으면야 저런 일을 꿈이나 꾸어봤겠소. 석탄신세는 누구나 지면서도 탄부라면 막바지취급을 당하기십상이구 그 자식들도 지금 아이들같은 대학이요 희망이요 하는게 다 뭐겠소. 한데 지금은 나라가 힘든 일을 한다고 탄부들을 국가정사를 론하는 대의원으로, 영웅으로 내세워주질 않소. 어디 그뿐이겠소. 그 자식들도 도시나 농촌아이들과 꼭같이 무료로 공부를 해서 박사도 되구 저렇게 세상이 다 아는 영웅으로 되니 노래에도 있는것처럼 정말 좋은 세상이지요. 아이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올여름엔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손녀애가 돈 한푼 안 내고 송도원에 있는 국제소년단야영소엘 갔다와서는 별세상을 보고온것처럼 자랑을 하질 않겠소. 글쎄 그 애가 하는 말이…》

렬차는 어느새 환영의 역구내를 지나왔는데 로인의 이야기는 끝없을상싶게 이어졌다.

광우는 건설사업소 지배인의 아들네 학교를 찾아갔다. 문제의 학생을 담임한 녀선생을 만나 학생의 학업성적을 알아보았다.

소꿉동무가 말한 그대로였다. 학생은 머리가 좋은데 공부를 하지 않아 평상시에도 성적이 시원치 않았다.

《아버지가 수단이 좋은 사업가인 집의 아이들이 그 아버지의 후원을 믿고 머리가 좋아가지고서도 공부를 직심스레 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래서 더우기 아이들의 성장에는 학교교육만이 아니라 가정교육이 또한 중요한것 같습니다.》

중년녀교원의 말이였다.

광우는 지배인의 아들을 만났다.

《군대에 나가거라. 군사복무를 성실하게 하고 돌아와서 대학입학시험을 쳐도 늦지 않는다.》 하고 말해주었다.

군대에 나가 언땅에 배를 붙이고 잠복근무도 서보면 조국을 알고 사랑을 알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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