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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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호는 경솔했던탓에 형님한테 죄를 지었지만 형수가 그 일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가슴속에 얼음버캐가 끼여가지고 길에 나서는데 통나무를 가득 실은 대형화물자동차 한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최윤호는 먼지를 피하려고 길가녁으로 비켜서며 얼결에 손을 들었다.

지나가려던 자동차가 멎어서며 30대초의 체통이 굵직하고 성격이 드세보이는 고수머리운전사가 상반신을 내밀었다.

《어디로 가우?》 하고 운전사가 투박하게 물었다. 자동차신세를 지자고 그러는 길손인줄로 아는 모양이였다.

《말 좀 물읍시다. 도에서 내려와 여기 작업소장을 하다가 얼마전에 잘못된 사람이 있겠는데… 그 사람 산소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그럽니다.》

《우리 문철소장 산소를 찾아온 손님이요? 좋은 사람인데 잘못됐소. 그럴것 있습니까? 문철소장네 집이 요 근방인데요.》

그 사람은 그러고나서 별로 우울한 인상을 한 최윤호를 이상한 눈으로 여겨보다가 거기서 멀지 않은 건너편 산을 가리켰다.

《산소로 직판 가려면 저기로 가오. 조금 올라가면 보일거요.》

자동차는 부릉부릉하더니 매캐한 배기가스 한덩어리를 뱉아놓고 가버렸다.

최윤호는 운전사가 가리켜주던 곳으로 갔다. 맨흙이 벌겋게 드러난 산이였다. 심은지 한두해밖에 안되였을 애어린 이깔나무들이 자라는 거기 산중턱에 잔디를 갓 입힌 봉분 하나가 있었다.

최윤호가 형님의 산소에 홀로 찾아가 술 한잔을 붓고나서 쓸쓸한 심회에 잠겨있을 때 가까이에서 으흠 하는 인기척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머리가 허옇게 센 건장해보이는 한 로인이 먼발치에 서서 최윤호를 유심히 지켜보고있었다. 푸시시하게 일어선 흰 머리칼이 마가을의 새초처럼 바람에 날리였다.

무슨 연고로 땡볕이 내리는 산중의 묘지를 홀로 찾은 사람인가 해서 올라오던 아근의 로인 같았다.

최윤호와 눈길이 마주치자 로인은 스적스적 다가왔다.

《허, 외지손님이로군. 여기 우리네 고장에 처음 오신것 같은데 어디서 오셨소?》

《안녕하십니까? 로인님. 저는 도소재지에 사는 사람입니다. 로인님은 이 근방에서 사십니까?》

로인은 잔디가 엉성하게 자란 묘지옆에 다가와 편안히 퍼더버리고앉으며 말을 시작했다.

《조포수라고 하면 이 고장 사람치고 모르는이가 없소. 하긴 지금은 포수가 아니지. 한창나이때 이 고장 100리아근 산발을 메주밟듯 하며 메돼지며 산짐승잡이를 했소.

한번은 깊은 산에 떨어졌다가 굉장히 큰 범을 만났더랬소. 아이쿠, 저놈의 범때문에 래일 아침해는 다 봤구나 했지.

그런 판에 범굴에 들어가더라도 정신만 잃지 않으면 산다는 말이 생각나더군. 그래서 슬그머니 사냥총에 장탄을 해가지고 산중턱바위우에 버티고 앉아있는 범의 멱통을 면바로 겨누었지.

범이란 놈은 자기의 생사가 결판날 지경에 이르렀다는것도 모르고 그냥 먼산구경만 하더군그래. 그러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쪽을 바라보질 않겠나. 아뿔싸! 내가 무슨 정신에 범을 쏠 생각을 했노. 오늘은 이 조포수가 영낙없이 호환에 죽는 날이로구나! 눈앞이 새까매지면서 숨이 꺽 막히더라니. 산중의 대왕님이 자기를 감히 총으로 겨누고있는 이 령감을 봤은즉 가만있겠나. 따웅소리를 지르며 단숨에 달려들어 간단히 요정낼판이지.

그런데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범이란 놈은 자기를 향해 총을 겨누고있는 이 조포수를 분명 보고있는데 그냥 태연스레 앉아있질 않겠나. 그러다가 다시 먼산구경을 하데. 허어, 저런 놈 봤나. 제죽을줄 모르고 앉아있다니! 그런데 총을 쏘려다가 생각이 달라졌네. 아서라, 저놈두 우리 고장 명물이겠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 놈을 쏴잡을거야 있나.

겨누었던 총을 슬그머니 내리였는데 그놈두 마침 슬금슬금 자리를 뜨더라니. 하, 이런! 저놈이 범으로 둔갑한 귀신이 아니면 령험이란게 깃든 령물이 아니야? 이 조포수가 자기를 쏘지 않으리라는걸 다 알고있은것 같다니!

허, 그 범이란 놈이 참 명물은 명물이여. 한번은 이 고장 젊은 아낙네 둘이서 산나물을 하러 깊은 골안에 들어갔다가 어느 바위아래에서 귀엽게 생긴 고양이새끼들이 노는걸 봤지.

그래서 한참 고와해주다가 한마리씩 가지고 내려가자고 안고 일어나는데 머리우에서 따웅소리가 나겠지.

올려다보니 범이란 놈이 내려다보며 놔둬라, 내 새끼여! 하고 호통치는거요. 그런 판에 아낙네들이 산나물바구니가 다 뭐겠나. 날 살려라 하고 집으로 달려내려와 정신들을 잃었소. 허, 이튿날 아침에 겨우 정신이 들어 밖에 나와보니 산에 버리고 왔던 나물바구니가 토방우에 놓여있지 않겠나그래. 산나물까지 그대로 담겨져있는 바구니가 말이지. 범이란 놈은 그런 명물이여.》

로인은 이야기할 상대자가 없어 속상해하던 참에 말상대를 만난듯 제풀에 흥에 겨워하며 장사설을 늘어놓다가 아무래도 외지손님의 기분상태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모양 그제서야 최윤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런데 외지손님은 우리 문철소장과 어떤 사이요? 먼데서 이렇게 찾아와 술을 붓는걸 보면 연고가 깊은가본데 살밭은 친척이라도 되오?》

《제가 세상떠난 이 사람의 동생입니다.》

최윤호는 그렇게 말해놓고 얼굴이 화끈했다. 누군가 자기의 속을 들여다보며 비난하는듯 했다. 동생이라고? 그런 역적같은 형은 가문에 없다고 말한 당신이 그렇게 태연히 말할수 있소? 하고. 무덤속에서 고인이 벌떡 일어나 그렇게 타매하는듯 한 착각조차 들었다.

최윤호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마주앉아있는 로인은 외지손님의 그런 사정을 전혀 알수 없는 남이였다.

고인의 동생이라는 말에 로인은 당장 희색이 만면했다.

《어, 이런 반가울데라구야. 내 어쩐지 우리 소장한테 와서 술을 붓는 사람이면 보통사이는 아닐거라고 생각되여 올라온거요.

우리 문철소장의 동생이라구? 임잔 좋은 사람이여. 우리 문철소장한테 동생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이렇게 동생이 몇백리밖에서 잊지 않고 찾아왔군. 그래야지, 음, 그래야지. 가슴이 아프겠군. 아프겠지. 동생이 아닌가.》

로인은 갑자기 목소리가 떨리였다. 고인의 흩어진 넋을 찾아보려는듯 흰구름 몇송이가 떠있는 먼 하늘가를 바라보았다. 쪼프린 로인의 눈에 물기가 어리였다. 로인의 눈귀가 이상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거기선 참 좋은 형님을 두었소. 문철소장 그 사람은 흔치 않은 인간이여. 좋은 사람이지. 도회지에서 살던 사람이 이런 궁벽한 고장에 내려와 터를 잡는다는게 어디 간단하오? 더구나 그 사람이야 큰일을 하던 사람이 아니요.

그래도 그 사람은 여기 내려와서 그런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소. 한번은 요 산아래에 있는 우리 집에 들린적이 있었소. 내가 산판에서 내려오는 그 사람을 집으로 잡아끌었던거요. 농마국수를 들고가라구 말이지. 그 사람은 조금도 마다하지 않고 〈그럼 농마국수를 한그릇 얻어먹고 갈가요.〉 하면서 따라 들어오더군. 집에 들어와서는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국수분틀에 달라붙어 우리 로친과 어울려 국수를 누르더라니.

농마국수가 다되자 상에 나앉은 그 사람은 〈꿩고기꾸미를 한 농마국수가 참 별맛인데요.〉 하고 우리 로친을 칭찬하면서도 위병이 있다고 반그릇이나 겨우 들더군. 정말 위때문에 고생하는것 같더군. 그래 내 그 사람과 약속을 했소. 〈이보시우 소장, 저 산속에 들어가면 이 령감이 젊어서 짐승잡이를 할 때 심어놓은 산삼밭이 있소. 누구도 가볼 엄두를 못 낼 깊은 산속이요. 지금은 25년생이 되였을거요. 내 그 산삼을 캐다가 소장의 위병을 뚝 떼주겠소.〉 그랬던것인데… 아!》

로인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갑자기 장탄식을 내뿜었다. 로인의 얼굴에는 쓸쓸한 표정이 살아났다.

《이 령감은 약속을 지킬수 없게 됐소. 좋은 사람이 일찍 갔소. 그사람은 우리 조카녀석을 구하자고 제 생명을 바친거여.》 로인은 꺼이꺼이 울면서 말했다.

창대같은 비줄기가 쏟아져내리던 그밤, 큰물이 토장을 휩쓸던 캄캄한 밤… 로인은 그밤에 자기의 스무살난 조카녀석을 그 문철소장이 구원했노라고 했다.

로인이 각별한 정을 담아 자기 집에 내려가 농마국수라도 한그릇 하고 가라고 부득부득 잡아끌었지만 최윤호는 응할 경황이 못되였다.

로인과 헤여져 내려오는데 동기와를 얹은 림산마을어구에서 총총히 걸어나오던 한 젊은 녀자가 그를 보고 놀라 멈춰섰다.

최윤호 역시 그 녀자 못지 않게 놀랐다. 연한 하늘색바탕에 나리꽃문양이 박힌 달린옷을 간편하게 입어 날아갈듯 가볍고 날씬해보이는 녀자! 그가 도소재지를 떠나 멀리 림산사업소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이런 외진 벽촌에서 만나게 될줄이야 어떻게 알았으랴.

오련희였다.

그러니 오련희가 하늘아래 첫 동네라고 자주 말하던 그의 고향이 형님이 자진해서 내려왔으며 지금도 형수와 조카가 살고있는 이 작업소마을이란 말인가? !

무슨 말을 할게 있으랴. 두사람이 차라리 만나지 말았어야 했을 괴로운 순간이였다. 그러면서도 모른척 하고 랭랭히 헤여질수도 없는 두사람이였다.

오련희는 이곳 림산마을분교에서 교원으로 있었다. 어렸을적에 선생님이 되고싶었던 꿈을 고향마을에서 실현한것이였다.

이 궁벽한 산골에 와서 어떻게 사느냐는 최윤호의 물음에 그 녀자는 말했다.

《산골이 어드래서요? 여긴 제가 태여난 고향이예요. 사람은 어디에서 사는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떤 사람들속에서 사는가 하는것이 더 중요한것 같아요. 전 고향사람들을 잘 알고 그들을 사랑해요. 그들도 나를 사랑하고…》

심심산골의 흘러가는 개울물을 련상케 하는 그 녀자의 천성적인 랑랑한 목소리… 그지없이 순박하고 의협심이 강한 산골사람들의 변함없는 인정의 세계를 말하는 그 녀자의 목소리…

오련희는 이 땅에 자기를 불같이 사랑하는, 자기 역시 진정을 다 바쳐 사랑하는 대형림산차운전사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련희는 그저 생활의 소중함에 대하여, 이 땅에는 장차 조국의 무성한 숲의 풍만함을 더해줄 사랑하는 제자들이 있다는데 대하여 말했다. 그 애들은 자기의 사랑의 전부이며 자기는 그 애들을 위하여 사노라고 했다. 그 애들가운데는 최금동이라는 수재소년도 있다고 했다. 바로 최윤호의 형님이 이 땅에 남겨놓고간 귀중한 살붙이, 최윤호의 조카였다.

최윤호는 그제서야 오련희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 녀자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기만이나 처세의 흔적을 찾아볼수 없었다.

대학때에도 오련희는 천성적이다싶게 자기 속을 감추고 말할줄 모르는 녀자였다.

천진하다고 할 정도의 솔직성, 자기처럼 다른 사람들도 깨끗한 눈으로 보는 그 정결함! 거기에 대고 악한 마음을 먹는다면 죄가 되리라.

최윤호는 그것을 지켜주고싶었다. 그 녀자의 정갈한 눈을 보느라면 자기의 마음도 깨끗이 정화되는것 같았다. 하여 그 녀자를 사랑했다.

그런데… 생활은 때늦은 후회만을 그의 가슴속에 남겨놓고 멀리로 사라져버린것이였다.

별안간 그때의 그 쓰라린 후회의 감정이 다시금 회오리바람처럼 그의 심중의 호수우를 휩쓸었다.

《동무는 여기 온것을 정말로 후회하지 않소?》

오련희는 이상한 눈으로 최윤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묻는 뜻을 깨닫자 련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한점의 차거운 반사광이 오련희의 눈에서 튕기였다.

두사람은 한동안 침묵속에 걸었다. 오련희의 눈빛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안해를 진심으로 사랑하세요. 그리고 동지한테 말하고싶어요. 사람들속에서 살며 사회적인 직책에 있다고 해서 사회의 한 성원이라고 말할수 없어요. 자기가 몸담그고 사는 집단과 동지들과 우리 제도에 대한 열렬하고 진실한 사랑이 있을 때 사람은 사회의 떳떳한 성원으로 될수 있어요.》

목소리는 차분했다. 오련희는 정말로 아무런 악감도 없이 말했다.

하지만 최윤호는 속에서 자존심이 불끈했다.

《나를 가르치자는거요?》

《아니!》 오련희는 오연히 고개를 저었다.

《동지도 나도 그렇게 배웠어요! 그건 우리 사회의 륜리예요!》

오련희는 돌아서서 총총히 걸어가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최윤호는 형님의 묘소를 찾아갔을 때 있은 일들을 안해앞에서 다 말하지 않았다. 그저 무사히 갔다왔으며 일이 다 제대로 되였다고 말했을뿐이였다.

안해도 그의 얼굴에 비껴있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것이 분명한데 구태여 무슨 일이 있었는가고 묻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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