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회)

제 2 편

8

(2)

 

한참후에 두사람은 어둠속을 전지불로 비쳐가며 무엇인가 끌고 올라왔다.

《그게 뭐예요?》

정성금이 호기심이 돋쳐 뻐스안에서 소리쳐물었다.

《얼어죽은 메돼지입니다. 성금동지, 내려오십시오. 불고기나 합시다.》

유선일의 쾌활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정성금이 기연가미연가해서 밖으로 나가보다가 그만에야 까르르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유나! 굉장한 〈메돼지〉로구만요.》

두사람이 역사질해서 끌어온것은 폭풍에 부러져나간것이 분명한 마른 소나무웃수리였다. 눈덩이들이 잔뜩 달라붙어있는것을 보니 반쯤 눈속에 잠겨 얼어붙어있는것을 겨우 뜯어내여 끌어온 모양이였다.

유선일이 불을 피울 마른 나무가지들을 주으려고 어둠속을 헤매다가 찾아냈을것이였다.

조금후에 우등불이 생겨났다.

불은 칠흑같은 어둠속을 밝히며 활활 타올랐다. 바람 한점 없으면서도 맵짠 날씨였다.

사람들은 얼어들던 몸이 훈훈해지자 기분들이 좋아졌다.

《좋구만요!》 평시에 말수더구가 적으면서도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유선일이 손을 썩썩 비벼대며 흡족해서 말했다.

《인류의 조상들이 이 불을 발견하지 못했으면 어쩔번 했어. 오늘같은 문명세계는 고사하고 우리부터가 이 무인도같은 산마루에서 동태귀신이 될거란 말이야.》

정성금의 얼굴에도 생글생글 웃음이 피여올랐다.

《불이 인간의 진화와 문명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것이여서 천상의 폭군 제우스신이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를 벼랑우에 결박해놓아 벌을 주었다는 신화도 생겨난게 아니겠어요. 하지만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주었다는것은 꾸며낸 허황한것이구요 인간이 불을 처음 발견했을 때 저기 남아프리카의 풋슈만이란 종족의 토인들은 나무를 오래 비비면 불이 일어나는 현상을 두고 뭐라 그랬는지 알아요?

나무들은 땀을 흘리다가 연기를 내고 성을 내서 불이라는 무서운것을 내뿜는것이라고 했다는거예요. 그런데 말이예요, 유동문 정말 외로운 섬에 떨어진대도 20년은 살수 있겠어요. 무인도에 떨어졌던 로빈슨 크루소우처럼.》

《그것도 창조하는 인간의 본래의 모습이라고 할수 있지요, 성금동지.》

《그런데 난 그런 생각을 못했거던요.

노력하면 이렇게 불이 생긴다는 생각은 못하고 추위를 피해서 털솜옷안으로 파고들기만 했거던요. 이건 진화를 거부한 원숭이의 본래의 모습인가요?》

《아니지요. 그것도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수 있지요. 그런데 그건 좀 다른 개념이지요. 말하자면…》

《말하자면 인간에게도 개조돼야 할것이 조금씩은 남아있다 그 말이겠지요?》

여태껏 말이 없던 김호성이 두사람의 이야기에 끼여들었다.

《유동무의 인간의 모습에 대한 견해가 참 특이하구만. 그러고보니 유동무는 철학가다운데가 있단 말이요.》

《그건 뭐예요? 호성선생. 오늘 밤 이 불을 가져온데 대한 감사의 표시인가요?》

불이 주는 온기를 즐기며 세사람이 화목한 론쟁을 할 때 다만 한사람 김광우만은 말이 없었다.

그는 시시각각 더해지는 고통을 가까스로 내색하지 않으면서 혼자서만 이겨내고있었다.

그래도 부국장의 오늘 밤 거동에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것을 느꼈는지 김호성이 드문히 말없는 그의 안색에 주의를 돌리였다.

광우는 그때마다 걱정할것이 없다는듯 태연한 미소를 지어보이였다. 그리하여 김호성은 그가 이제 도에 내려가 해야 하는 일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해서 그러거나 아니면 지금 산아래로 내려간 운전사의 일을 놓고 걱정스러워 그러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였다.

《부국장동진》 유선일이 화제에 끼여들 케가 아닌 김광우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왜 말씀이 없습니까? 아무 말씀이나 좀 하십시오.

부국장동지야 군사복무로 반생을 보냈으니 본것도 많고 아는것도 많겠는데요.》

《무슨 이야기를 하라오?》

광우는 기세좋게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였다.

아니,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였을뿐이였다. 그는 육체를 엄습해오는 고통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고있었다.

불시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오려는것을 억지로 참았다. 억울하고 분했다.

그 누구를 원망하는 억울함이나 분함도 아니였다. 쓰러지지 말아야 할 시각에 자기는 어째서 정신이 흐리마리해지는 고통과 싸워야 하는가 하는 불공정한 그 어떤 리치에 대한 억울함과 분함이였다.

《호성동무나 선일동무도 군사복무를 해봤으니 알거요. 군사복무란 참 좋은것이지. 군사복무를 해봐야 동지들이 귀중하다는것을 알게 되고 자기의 고향, 자기 조국이 귀중함을 심장으로 느끼게 되는게 아니겠소.

동무들도 다 알고있겠지만 난 군사복무를 최전연초소에서 했소. 하전사복무도 거기서 했고 군관이 되여서도 거기 있었소.

물론 고생도 했지. 놈들이 코앞에 있었으니까. 그놈들이 언제한번 우리가 편안하게 보내도록 했소? 지금도 우리를 먹어보자고 악을 쓰고 해보는 놈들이 아니요.

나는 그놈들의 꼬락서니가 빤히 보이는 최전연초소에서 잠복근무를 섰소. 눈비에 젖고 언땅에 몸을 얼구면서… 모기에 뜯기우기도 하면서 말이요. 어렸을 때엔 선생님의 말씀과 어머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노래를 통해서 조국이 귀중하다는것을 배웠소.

그건 의무였소. 자기의 고향과 자기의 조국을 사랑해야 하며 자기 수령의 위업에 충실해야 한다는것을 의무로 받아안았던것이요.

그런데 나는 최전연초소에 엎드려있으면서 내가 이 초소를 지켜내지 못하면 조국이 위험에 처하게 되고 결국은 우리를 먹어보려고 날치는 저 원쑤놈들의 노예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소.

나는 그때 조국애란 의무만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였소. 조국애란 이 땅에 생을 둔 우리들 매 인간들에게 있어서 의무이기 전에 생명이요.

때문에 조국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조국에 가장 열렬하고 뜨거운 진심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는게 아니겠소. …》

광우는 사실상 자신과 말하고있었다.

그가 몽롱해지려는 의식을 가다듬기 위해 간고했던 복무와 참다운 조국애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말했다는것을 듣는 사람들은 몰랐다. 다만 한사람, 김호성이만이 부국장의 얼굴에 실리군 하는 심상치 않은 처절한 그 무엇을 느끼고있었다. 그렇다. 부국장의 조국애와 복무에 대한 그 이야기가 바로 자기를 이겨내기 위한 처절한 싸움임을 김호성은 어렴풋이 느끼고있었다.

《부국장동진 총각때 련애를 해보았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유선일이 무료감을 덜어보려고 푸접좋게 물었다.

《그만하오, 유동무.》

김호성이 끝내 참지 못하고 언짢은 눈길로 유선일을 바라보며 버럭 화를 냈다.

유선일이 무슨 일인가 해서 입이 벌어진채 굳어지는데 광우는 아무일도 없는듯 《허허.》 하고 가볍게 웃었다.

《련애 말이요? 언제 그럴새가 없었지. 그래도 마음에 드는 녀자는 있었소. 그걸 련애라고 할수 있을가?

그 처녀는 군대때 우리 부대 간호원이였소. 초소근무를 서다가 심한 동상을 입은 나를 평양으로 후송할 때 그 간호원이 같이 갔더랬소. 우리를 태운 자동차는 평양행렬차가 기다리는 철도역으로 가고있었지. …》

눈앞에는 그밤이 다시금 떠오른다.

《동지, 내가 노래를 불러줄게요. 이건 내가 어렸을적에 우리 할머니가 불러주던 노래랍니다. 그러니 할머니의 노래예요.》

아득한 추억의 언덕너머에서 울려오는 처녀의 처량하고 겁에 질린듯한 목소리… 세찬 눈바람에 위생차의 차창가에 얼음버캐가 끼던 을씨년스러운 밤… 망망천지로 흩어져 날아나려는 광우의 의식을 파고들던 그 이상한 《할머니의 노래》… 어떻게 되여 그 노래가 비상한 힘이 되여 스러져가는 광우의 생명을 지켜주었던가?

그것은 이성의 감정을 초월한 처녀의 사랑이였다. 온몸이 다 타서 재가 된다 해도 안타깝게 광우의 이름을 부르며 생명의 불꽃이 살아나기만을 애오라지 바랐을 처녀의 가슴속에 끓던 한점 티도 없이 깨끗한 사랑이였다. 할머니의 사랑처럼 그 어떤 보수도 바라지 않는 순결무구한 사랑이였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1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