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제 2 편

9

(1)

 

《이보라구, 임자 장가갈 생각은 통 하는것 같지 않으니 어찌된건가?》

오래간만에 집에 찾아온 광우에게 고모가 물었다.

광우는 히죽이 웃었다.

《고모, 장가가는 일이 뭐 그다지 바빠요?》

《야, 네 나이 서른둘이 작아서 그래? 올해는 꼭 색시를 얻어야 해. 너는 량심이 없어.》

《하하, 아니, 총각이 장가 좀 늦게 간다고 량심없다는건 어느 사전에 있어요?》

《사전은 무슨 사전이야? 생각해봐라. 너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다나니 어머니는 너 하나를 키우면서 여직껏 외롭게 살아오시는데 손자라도 하나 안겨줘야 하지 않겠어.》

광우는 그만에야 할소리가 없어졌다. 느닷없이 가슴이 찌릇해왔다. 어언간 세월이 흘러 검고 윤기나던 어머니의 머리에도 이제는 흰서리가 앉고 눈가에는 잔주름이 실리였다.

그래도 군인사택마을을 뜨지 않고있다. 이제는 그 고장이 고향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거기 산기슭에는 어머니가 심어가꾸는 약초밭도 있다.

《네가 색시를 얻어 살림을 편 다음에도 이 엄마는 여기서 살다가 네 아버지곁에 묻히겠다. 네 아버지곁에는 동무해줄 내가 있어야 해. 그대신 색시와 함께 드문히 찾아오려무나. 나도 손자야 안아봐야지.》

어머니가 웃으며 하던 말이다. 군인들과 군인가족들의 건강을 돌봐주는것을 락으로 삼고 여생을 보내는 어머니이다.

《장가를 가겠어? 안 가겠어?》

고모는 소힘줄보다 더 질긴 녀자였다. 조카를 붙들고 락착을 보기 전에는 물러서지 않을 작정을 한듯 따지고들었다.

에이, 벽창호같은 고모!

《아니, 그게 뭐 마음먹는다고 될 일이예요? 고모.》

그 말에 고모는 눈이 둥그래서 어이없어했다.

《아니 야, 너 그럼 그 나이 되도록 처녀 하나 봐둔게 없단 말이냐? 군관별을 달았다고 똑똑한줄 알았는데 어디가 부실한게 아니냐?》

《고모두! 마음드는 처녀가 하나 있기는 있었어요.》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그래 어떤 처녀냐? 집은 어디구? 부모들은 뭘하는 사람이냐?》

성미급한 고모가 다그어대는 숱한 물음에 광우는 한마디도 대답할수가 없었다. 무슨 대답을 한단 말인가? 처녀의 이름 석자나 겨우 알고있을뿐인데야.

사실 김광우가 고모의 묻는 말에 처녀가 하나 있다고 한것은 자기도모르게 얼결에 나간 소리였다. 오래전의 그 간호원처녀가 그 순간에 불쑥 떠올랐던것이였다.

광우는 애당초 간호원처녀와 무슨 언약을 한적이 없었다. 처녀의 부모님들이 무슨 일을 하고있으며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처녀에 대하여 알고있는것이란 군사복무를 마치고 제대될 때 어느 대학에 추천을 받았다는것이 전부였다. 그것은 벌써 오래전의 일이였다.

광우에게 남다른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처녀가 제대되여 가버린 다음에도 그를 잊지 못하는 그것이였다. 그때에 이르러서는 광우 역시 그 처녀야말로 부대안의 군인들모두가 말하듯이 세상에서 용모도 마음도 가장 정결하다고 생각되는것이였다.

그것이 처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라고 그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자기가 처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면 그것이 그 훌륭한 처녀에게는 심한 모욕으로 될것이라는 생각조차 드는것이였다.

《원, 세상에!》 광우의 솔직한 고백을 다 듣고난 고모는 기가 막혀 웃었다. 《군관학교 최우등생이 맞니? 그렇게 잊지 못해하면서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했단 말이냐?》

고모는 수완도 좋고 또 안면도 넓은 녀자였다.

고모는 조카가 천사처럼 말하는 그 처녀의 행처를 어떻게 수소문해서라도 반드시 찾아내리라고 결심했다. 제대된지 몇해 잘 지나갔지만 혹시 알랴. 아직도 시집을 가지 않고 처녀로 남아있을는지?

고모는 결심대로 기어이 처녀의 행처를 알아내고야말았다.

조카를 처녀한테로 떠밀어보내려는데 이번에는 본인이 안 가겠다고 딱 버티였다. 그 녀자가 시집을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처녀로 남아있다고 하여도 가서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처녀에게 그 어떤 약속도 한적이 없는 나이든 군관총각이 나타나서 밑도 끝도 없이 생나무 꺾듯 나와 결혼합시다 하고 말한단 말인가?

《아니, 난 절대로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그건 처녀에게 모욕으로 될거란 말입니다.》

《아유, 기차다! 이 샌님아, 안되겠다. 아무래도 이 〈외교부장〉이 또 수고를 좀 해야겠구나.》

처녀는 그리 먼곳에 있는것도 아니였다. 교외의 한적한 소층주택지구에서 살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곳에서 중학교 교원을 한다고 했다.

처녀를 찾아갔던 고모는 이틀후에 돌아왔다.

《원, 일두 참!》

고모는 한마디 탄식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고모의 얼굴에는 쓸쓸한 기운이 어리였다.

광우는 상서롭지 않은 예감에 가슴이 철렁했다. 처녀의 신상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도대체 무슨 일이? 불안했다.

왜 그러는가고 물어서야 고모는 기막힌 사연을 말했다.

《글쎄 아까운 처녀가 대학을 나오자마자 원인 모를 병으로 하반신마비가 왔댔더구나. 거기에 다른 속탈까지 있어서 병원에 반년동안 입원해있었다더라. 오래전에 랭을 만났던 후과라던지. 치료를 받고 많이 나아져서 학교에 나가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은 깨끗이 가시여지지 않았더라. 조카소리를 했다. 처녀는 펄쩍 뛰더라. 자기같은 녀자는 조카의 짝이 못된다는거야. 일생 짐이 된다는거지. 알고보니 처녀는 일생 혼자 살 독한 결심을 하고있더라. 그의 늙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그런 말을 해주어서 알았지.》

광우는 가슴이 쓰리였다. 세상일에 불공정한것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공정치 못한것이 아닌가. 그토록 사람들에 대한 깨끗한 사랑을 간직한 녀자가 그런 불행을 당하다니! 더 생각해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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