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회)

제 2 편

18

(1)

 

김광우가 동무들이 있는 숙소로 가는데 그쪽에서 유선일이 급히 달려오다가 그를 발견하고 먼발치에서 소리쳤다.

《빨리 와서 전화받으십시오.》

《어디서 온 전화요?》

《평양에서 장연화책임교학이 전화를 바꿔달랍니다.》

《장연화동무가?》

책임교학이 무슨 일로 또 전화를 걸어오는것일가? 조금전에 그와 전화를 하지 않았는가.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시험연구조의 일때문일가?

마감검토단계에 있는 콤퓨터시험프로그람과 관련해서 조금전에 전화하면서 말 못한 문제가 있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광우는 방으로 들어갔다.

전화를 받으면서 광우는 얼굴색이 꺼매졌다.

모두들 불안한 마음으로 부국장을 지켜보았다.

광우는 통화가 끝난 다음에도 잠시 얼나간 사람처럼 덤덤해있다가 김호성에게로 눈길을 돌리였다.

《평양을 떠나오기 전에 집에 들렸을 때 가시어머니한테서 다른 일이 없었소?》

《? …》

얼굴색이 창백해지는 김호성을 바라보며 부국장은 거의 짜증에 가까운 소리로 물었다.

《앓는 로인을 두고 오지 않았는가 묻는거요.》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집을 나서면서 좀 이상한 감촉은 했습니다.》

어정쩡한 소리였다.

《그건 무슨 소리요?》

김호성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광우는 정말 화가 났다.

《동문 왜 그렇소? 무슨 일이 있었으면 있었다고 말을 했어야지. 그랬더라면 동무를 데리고오지 않는건데.》

광우는 무서운 질책과 모진 후회속에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아, 부국장동지, 도대체 우리 가시어머니한테 무슨 일이 있다는겁니까? 이거야 어디!》

얼굴이 꺼매서 입을 꽉 다물어버린 부국장을 초조하게 지켜보며 기다리다못해 김호성이 화를 냈다.

《호성동무의 가시어머니가 병원에 급히 실려갔는데 심장수술을 해야 한다오. 몹시 위급한 모양이요. 그래서 수술립회를 위해 동무를 보내달라는거요.》

김호성은 고개를 푹 숙이고 지겹도록 말이 없었다. 보는 사람들의 가슴이 선뜩하도록 그의 얼굴이 컴컴하게 질리였다.

그는 한참후에야 모두 자기를 지켜보고있다는 생각을 하고 평양을 떠나오기에 앞서 집에 들려 로인을 만나던 사연을 말했다.

그날 김호성은 《어머니, 우리 시험연구조가 집을 떠나 고생하면서 완성한 새로운 시험체계가 드디여 빛을 보게 되였어요. 그동안 어머니가 건강치 못한 몸으로 집안살림을 돌보실래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하고 말했다. 로인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한 말이였다.

《이 늙은이야 집이나 지키는게 무슨 수고이겠나. 큰일을 하느라고 임자네들이 수고했지.》

어설픈 미소를 지어보이며 로인이 말했다.

김호성은 그 말을 들으며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사위네들이 큰일을 해놓았다는것을 알고 기뻐할줄 알았던 로인이 아닌가. 그런데 왜서인지 그 말을 하는 로인의 거동에서 쓸쓸한 기분이 감촉되는것이였다.

전에 없던 이상한것은 그뿐이 아니였다. 로인은 밥상에 마주앉았어도 사위앞에 색다른 찬가지 하나라도 더 놓아주려고 마음을 썼으며 말한마디도 정을 담아 했다. 집안에서 돌아가는 사위에게서 정찬 눈길을 떼지 않았다. 로인의 그 류다른 관심에서 김호성은 눈물겨운 그 무엇을 느끼였다.

김호성이 1차원격시험때문에 한동안 지방에 내려가있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로인은 꼭 거기에 임자가 내려가야 하는가고 물었었다. 그것 또한 전에 없던 일이였다.

사위가 늘 집을 나가 사는데 습관되여있으며 집안의 진일, 마른일을 말없이 다 맡아해온 로인이였다.

김호성이 그때문에 더우기 이상해할 때 로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가야 할 길이면 걱정말고 떠나게나.》 하고 말했다. 마치 헤여지면 다시 못 보게 될 사람과 말하듯.

김호성은 모진 후회와 비감에 빠져들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로인은 그때 벌써 림종이 박두했음을 예감하고 나에게 영원한 작별의 말을 한것입니다. 아! 난 그런줄도 모르고 그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단 말입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이였다. 금시 울음이라도 터져나올것만 같았다. 김호성의 그 모습이 너무도 측은하여 누구도 위안의 말을 하지 못했다.

광우는 후회로 하여 낯색이 어두워졌다.

《내가 평양을 떠나올 때 별로 우울해하는 동무를 보면서 왜 그러는가고 따져물었어야 했는데… 다 내 잘못이요. 아무것도 모르고 떠나왔으니… 동무두 참!》

그때 김호성이 그런 사정이 있다는것을 말했더라면 량원일을 대신 데리고와도 되였을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한들 무슨 소용인가.

어쨌든 일도 참 공교롭게는 되였다. 당장 수험생들이 오겠는데 이런 일이 생길건 뭔가! 광우는 자기도 모르게 또다시 무거운 한숨이 나갔다.

《어찌겠소, 호성동무. 가봐야지. 이제 당장 소형뻐스로 떠나오.》

그는 시계를 보았다. 차가 고장없이 달리면 래일 아침까지 평양에 가닿을수 있을것이다.

그가 시간타산을 해보고있을 때 김호성이 고개를 들었다.

《안됩니다. 수험생들이 오면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어떻게 자리를 뜬단 말입니까? 》

광우는 속상한 나머지 화를 냈다.

《그럼 어찌자는거요?》

《…》

고민에 빠진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사실 김호성의 처지로 말하면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로인을 생각하면 당장 떠나야 할 몸이지만 여기에는 시험프로그람을 만든 당사자인 자기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있는것이다. 수험생들이 오면 콤퓨터에 의한 예비시험을 조직하여 새로운 시험방법을 숙달시키는 사업을 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누구도 그를 대신할수 없는것이였다.

광우는 생각끝에 자기가 가기로 했다.

《아니, 부국장동지가요? !》

광우의 결심을 알고 먼저 정성금이 놀라서 소리지르다싶이 했다.

《안됩니다. 부국장동진 총책임자가 아닙니까. 더구나 그 몸으로 어떻게 간단 말입니까.》

김호성이였다. 여기로 내려올 때 고개마루에서 있었던 그 일을 상기하고 하는 말이였다. 유선일이까지도 안된다고 막아나섰다.

광우는 동지들의 그 마음이 리해되고 또 고맙기도 하여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실으며 말했다.

《너무 그러지들 마오. 이거 소문나겠소. 내 몸이 어쨌다는거요? 내 말을 듣소. 일이란 되도록 해야지. 박두한 시험을 앞두고 동무네 세사람이야말로 꼭 있어야 하는 전문가들이란 말이요. 내가 동무네 세사람이 각각 해야 하는 일들을 말하지 않아도 리해할거요. 그러니 수술립회는 호성동무대신 내가 가야 하는거요. 안 그렇소, 동무들?》

그 론거에는 누구도 할소리가 없었다.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한마디에는 누구든지 나라의 리익앞에 자기를 내세울 권리가 없다는 생활의 철리가 울리는것이였다.

락조의 어설픈 잔광이 눈보라에 싸인 북방도시의 아빠트지붕들마다에 걸려있는 저녁이였다. 모두들 밖으로 따라나와 걱정이 실린 눈으로 길떠나는 김광우를 바래주었다.

《부국장동지, 주의해서 갔다오십시오. 전번에 내려오면서 고개마루에서처럼 일을 치지 마시구요. 에이!》 감정이 헤픈 정성금이 눈에 물기가 그렁해서 걱정을 했다.

《됐소, 됐소. 알겠소. 걱정하지 말라니까그래.》

광우는 소형뻐스에 올라 어서 들어들 가라고 손짓을 했다.

차는 부르릉거리다가 자리를 떴다.

최윤호가 사람들 뒤에 서서 마당을 벗어나는 소형뻐스를 바라보다가 방금 정성금이 걱정하며 하던 말이 이상하게 생각되여 그에게로 다가갔다.

정성금이한테서 원격시험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혹독한 비판과 함께 오련희에 대한 말을 들은 다음부터 그와 마주서는것을 피해오던 최윤호였다.

《정동무, 여기로 내려오다가 고개마루에서 일이 있었다는건 무슨 소리입니까?》

정성금이 별로 우울한 목소리로 묻는 최윤호를 의아해서 바라보았다.

《동문 그날 부국장동지가 여기 내려오자마자 왜 더운 방을 찾았는지 아직도 모르고있었어요?》

《? …》

정성금은 이 사람한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얼굴이 왜 갑자기 그믐밤처럼 새까매졌을가? 꼭 무슨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것 같구나 하고 선뜩한 생각을 하며 여기로 오던 날 고개마루에서 부국장이 의식을 잃던 소리를 했다.

《부국장동지가 건강이 좋아서 여기 내려와서도 발이 닳도록 나다니는게 아니예요. 약을 한꾸레미나 가지고와서 사람들 몰래 들면서 어떻게 하나 이번 원격시험이 잘되게 하자고 애쓰는거예요. 그런데 동문 뭐예요? 동문…》

정성금은 최윤호를 원망하는 말을 하려다가 더 잇지 못했다. 부국장이 원탁우에 펴놓았던 약꾸레미가 떠올라 목이 메여버린것이였다.

최윤호는 묵묵히 듣고있다가 가타부타 아무런 말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그 자리를 떴다. 정성금은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어 사무실쪽으로 걸어가는, 어쩐지 허울만 남은듯 한 그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1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