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 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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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광우가 탄 소형뻐스는 부지런히 달려 새날이 다 밝았을 때에야 김호성의 가시어머니가 입원해있다는 병원앞에 이르렀다.

그는 로인을 만났으나 침상에 누워있는 그에게 몇마디 말을 해볼사이가 없었다. 로인이 당장 수술실로 가야 하는것이였다.

유능한 의사가 집도한다고 하지만 광우는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그는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수술실문이 열리기를 초조해서 기다렸다.

눈앞에는 마취되여 삶과 죽음의 기로우에 자기가 있다는것도 그리고 아무런 고통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누워있는 로인의 측은한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다. 점적대에서 방울방울 떨어져내리는 빨간 피방울…

《얘야, 마음이 나약해서는 안된다. 너는 아직 먼길을 가야 하지 않겠니. 아버지가 다 살지 못한 생까지 네가 다 살아야 하지 않겠니. 그래야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생을 다시 찾는거란다. 너는 살아서 아버지가 남겨놓은 짐까지 지고가야 해. …》

어머니의 목소리가 어딘가 멀리에서 들려왔다.

이상한 일이다. 이제는 추억에서조차 삭막해진 어머니의 그 목소리가 한 로인이 수술실에서 살아나오기를 기다리는 이 시각에 떠오르다니!

오래전 그때, 광우는 생사기로에서 어머니의 그 목소리를 들었다. 수술후에 침상에 누워 깨여나지 못하는 아들을 내려다보며 어머니는 그렇게 속삭였다. 광우는 어머니를 부르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동지, 어머님이 오셨어요! 동지를 제일 사랑하는 어머님이… 동지는 어머님에 대해서 말했지요? 그 어머님이…

애어린 녀자의 목소리! 그것은 간호원처녀의 목소리였다. 눈보라치는 령길의 그밤을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였다. 그가 광우의 몽롱한 의식속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심어주려고 애타게 부르짖고있었다.

어머님이… 말씀하시는데 동진… 왜… 듣지 못해요?》

《듣고있어요, 간호원동무.》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렇다, 어머니는 자기의 목소리가 아들의 의식속에 가닿고있다는것을 느끼고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이란 그런것이였다! …

수술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광우는 수술이 끝난 다음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냥 떠날수가 없었다. 젊은 사람이라면 마음을 놓을수 있을것이다. 수술환자는 80고개를 눈앞에 둔 로인이였다.

로인은 마취상태에서 깨여나자 뿌연 망막에 비쳐드는 장년의 낯설은 사나이를 보았다. 차츰차츰 정신이 들고 시야가 맑아지자 침상옆에 앉아있는 피곤의 기색이 력연하고 얼굴이 동상을 입은 흔적인듯 꺼먼 사나이가 누군지 생각났다.

로인은 수술장으로 들어오기 전에 잠간 만난 김광우를 생각해냈던것이였다. 《로인님, 마음을 푹 놓고 수술을 받으십시오. 유능한 박사선생님이 집도를 하니까요.》 하고 그가 웃으며 말했던것이였다.

하지만 로인은 그때 자기가 살아나리라는 생각을 못하고있었다.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있었다. 로인은 이미 집에 들렸다가 먼 출장길을 떠나는 사위를 자기가 더는 볼수 없으리라는 예감을 하며 그와 마음속으로 마지막작별을 했던것이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던것이였다.

로인은 자기가 살아있다는것을 의식하며 김광우를 알아보자 주름진 눈귀로 눈물이 쭈르르 흘러내리였다.

《어머니, 내가 마음을 놓으셔도 된다고 했지요? 이젠 됐습니다. 수술이 아주 잘됐으니까요.》

사위의 상급이라는 사람, 사위대신에 먼길을 온 그가 벙글벙글 웃으며 말하는것이였다.

로인은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힘들게 말했다.

《내가… 더… 살수 있을가요?》

그것은 뜻밖의 말이였다. 그 무엇이 그 순간 로인으로 하여금 새삼스럽게 삶의 욕구가 북받치게 한것이였다.

광우는 가슴이 쩌릿해왔다. 아니, 눈물이 나왔다.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손녀랑 대학공부해서 박사가 되는것도 보시면서 오래오래 사셔야지요. 그리고 말씀을 하시느라 그러지 마십시오. 수술한 몸에 나쁩니다.》

로인은 알겠다는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분명 미소를 지어보이려고 애쓰는데 미소는 지어지지 않았다. 이윽해서 로인의 입이 다시 열리였다.

《우리 금선이 애비…》

《말씀을 하시면 안된다니까요. 말씀을 하시지 않아도 압니다. 어머니의 수술이 잘됐다는걸 알면 호성동무도 기뻐할겁니다. 마음을 놓고 일을 더 많이 할거구요.》

로인은 또 눈을 감았다가 떴다. 물기에 잠긴 눈에 드디여 편안한 웃음이 피여올랐다.

바로 그때 광우의 뒤에서 흑― 하는 웬 녀자의 흐느낌소리가 들리였다.

광우가 무슨 일인가 해서 돌아다보니 나들문가에 하얀 위생복을 입은 어린 간호원처녀와 함께 그가 데리고 들어왔을 또 한명의 녀인이 서있었다.

녀인은 미처 광우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하긴 자기의 지나온 인생길에서 단 한번을, 그것도 한순간에 만났다 헤여진 사람을 어떻게 선듯 알아보랴.

그의 머리칼은 헝클어져있고 솜옷을 입은 몸에서는 찬기운이 풍기였다. 먼길을 급히 달려온 자세였다. 그 녀자는 눈물을 흘리며 로인이 누워있는 침상곁으로 다가와 어푸러지듯 꿇어앉았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어머니가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알고 급히 온다는것이 그만 제 성의가 부족하다나니 이제야 왔어요. 용서하세요. 제가 바로…》

《아네. 수영이지? 강수영, 우리 수련이의…》 로인은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어머니!》 그 녀자는 목메여 부르며 로인의 손에 얼굴을 묻었다.

한순간이 지났을 때 그 녀인의 뒤에서 껄껄 사나이의 웃음소리가 들리였다. 녀인이 돌아보았다.

《생활이란 달리 될수 없는것이지. 그렇지 않소? 강수영동무, 동문 참 좋은 녀자요.》

《? …》

광우는 의아해하는 녀인에게로 다가가 친근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우린 평양역에서 한번 만났더랬지?》

그제서야 녀인의 눈에서는 반색의 불꽃이 반짝이였다.

광우는 시름이 놓이였다. 이제는 정말 마음을 놓고 떠날수 있다.

거뿐한 마음으로 차에 오르니 시험연구조에 떨어져있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지금 무엇들을 하고있는지? 그는 달리는 차우에서 손전화기로 장연화를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부국장동지, 지금 어디서 전화하십니까?》

《평양에서 하지. 김호성동무의 가시어머니때문에 병원에 왔더랬소.》

《정성금동무한테서 전화로 들었습니다. 여기 우리 동무들이 걱정하는데 수술이 어떻게 되였습니까?》

《다 잘됐소. 동무들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거기서는 다들 무엇을 하고있소?》

《이미 자료기지에 넘긴 시험문제들이지만 각자가 다시 후열해보고있습니다. 하나라도 새로운것을 찾아내자는것입니다.이젠 도에서의 일만 잘되면 됩니다. 부국장동지…》

장연화는 왜서인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즘자리였다.

《왜 그러오? 장동무.》

《집에 들리지 않았겠구만요? 들렸다가십시오, 평양에 들어왔는데…》

불시에 가슴이 쩌릿해왔다. 안해를 생각했다. 집에 잠간이라도 들려볼수 있지 않았는가. 남편을 출장보내놓고 걱정이 많을 안해이다. 한생을 그렇게 걱정하는 안해이다. 간호원시절의 그때처럼 이 광우를 위해 걱정하며 마음쓰는 고마운 사람!

여보, 미안하오. 하지만 당신은 언제나 이 광우와 함께 있는것이지. 왜냐하면 나는 언제나 그 고마운 간호원을 잊지 않고있기때문이지.

그날의 그 간호원의 목소리가 귀전에 다시금 울려왔다.

《렬차를 타면 돼요. … 늦어지면 안돼요. … 그건 급행렬차니까 동지를 평양으로 인차 실어다줄거예요. 그러니 걱정할건 없어요. … 동진 정신을 잃으면 안돼요! …》

어서 자거라 귀여운 우리 아이

창밖에선 우뢰 울고 바람 세차도

고운 네 꿈 지켜주는 해님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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