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 회)

제 2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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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눈이 펑펑 내리는 나지막한 고개마루에서 그들은 헤여졌다.

《련희, 가다가 정 힘들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인가에 들려 도움을 받으라구.》

《그렇게 하겠어요. 그러니 제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련희는 고개마루에 서서 마음을 놓을수 없어 당부하듯 하는 그를 돌아보며 따뜻한 미소를 날려보냈다.

《참, 거기 서오.》

남편이 무엇을 잊은듯이 소리쳤다.

련희에게로 다가온 남편은 자기의 목수건을 풀어 그의 목에 굳이 매주었다.

련희는 더 마다하지 않았다. 그것은 남편의 다심한 념려이고 정이 아닌가! 그 녀자는 자기의 목에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목수건이 감길 때 그저 소리없이 웃기만 했다.

《그렇게 웃으라구. 그렇게 웃으니 얼마나 좋소.》

《당신이 웃는 법을 배워주지 않았어요.》

《겁이 나는걸, 그 웃음에 다른 사내가 또 반할가봐 말이지.》

금동이 곁에서 지켜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눈발속에서 하얀 덧이 하나가 신기하게 반짝이였다.

《넌 왜 웃어?》

남편이 돌아보며 일부러 성난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금동은 그냥 웃었다.

《그저요.》

《야 금동이, 넌 시험에서 떨어지면 우리 림산마을에 들어설 생각 하지 말아! 알겠니?》

《알겠어요.》

《그리구 선생님을 잘 모시고 가야 해! 알겠어?》

《다 알아요.》

그들은 헤여졌다.

련희는 가다가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련인은 뽀얀 눈발속에 그냥 서있었다. 한참후에 다시 보았을 때 고개마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 어딘가에 그 사람은 그냥 서있을지 모른다.

눈은 한대중으로 퍼붓듯이 내리였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푸근한 날씨때문인가?

《금동이, 힘들지 않아?》

《힘들지 않습니다. 힘들기야 뭘.》

《호호, 이젠 어른이 다 됐다는거구나.》

학생은 더 말이 없었다. 앞에서 걸어가던 그가 오련희를 돌아보았다.

오련희는 생글생글 웃고있었다.

《선생님, 왜 웃습니까?》

《금동학생을 생각하면서 웃었어.》

《예? 그건? …》

《내가 금동이를 처음 알게 된게 언제야? 그땐 소학교 학생이였지. 그런데 지금은 어엿한 청년이지. 리수복영웅은 열여덟살에 적의 화구를 막았지.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것보다 더 뜨겁고 진실한 사랑이 어디 있겠어. 이제 금동학생은 그 나이에 대학생이 되여 과학의 령마루를 향해 돌진하겠지? 총창을 비껴들고 고지로 돌진하는 병사처럼, 호호… 그땐 멀리 앞서나가서 나같은건 바라보기도 베찰거야.》

《…》

《왜 말이 없어?》

금동은 앞서가던 걸음을 멈추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싱글싱글 웃으며 오련희를 바라보았다. 오련희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선생님의 손을 꼭 잡았다.

《왜 그래?》

《선생님의 손을 잡고 가고싶습니다.》

따뜻한 정이 오련희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었다.

《선생님, 제가 이자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알고싶은데.》

《제가 소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이 도소재지에 있는 우리 집에 오시여 수학을 배워주시던 일을 생각했습니다. 저녁에는 제옆에 나란히 누워 세계적으로 이름난 수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그런데 이젠 이 선생님이 말도 어렵게 해야 되겠어. 정말 어엿한 청년이 되였으니까, 호호. …》

금동의 눈에는 물기가 돌고있었다.

《선생님두! 난 선생님이 앞으로도 〈금동아.〉 하고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처음 만나 수학의 세계로 이끌어주시던 그때처럼 말입니다.》

남편과 헤여져 걷기 시작한지도 여러 시간이 지났다. 그들은 고개들을 넘고넘으며 농촌마을들을 수없이 지나왔다.

련희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벌써 오후 3시가 지났다. 아침밥을 먹은지도 여덟시간이 지났다. 배가 출출해온다. 내가 허기증을 느끼는데 금동학생이야 오죽하랴. 돌덩이도 소화시킬 때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나이이다. 농가에 찾아들어가 늦은점심이라도 하고 가야 하지 않을가?

가까운 산기슭에 집 한채가 있었다.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지붕우로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른다. 방을 덥히려고 군불을 때는 모양이다. 아니면 늦은점심밥을 짓는것인지? 들릴가? 오련희가 그런 생각을 할 때 길가집의 부엌문이 열리면서 늙은 녀인이 나왔다. 집모퉁이에 가려놓은 땔나무더미에서 나무단 하나를 안고 들어가려다가 오련희네쪽으로 눈길을 돌리였다. 온통 눈을 뒤집어쓴 두사람, 먼길을 걸어오느라 지쳐버린것이 알리는 길손들에게 동정이 갔던 모양이였다.

《어디까지 가시는 길손인지 들려서 몸들이나 녹이고 가시우.》

주인녀인이 물었다. 따뜻한 관심과 산골농촌의 후더분한 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이다.

들어갈가? 그러자면 적어도 30분은 걸릴것이다. 따뜻한 구들에서 몸을 녹이느라면 녹작지근해서 긴장의 탕개가 풀릴수도 있을거야. 어떻게 하나 어둡기 전에 도소재지에 들어서야 해. 그러자면 30분도 아껴야 할 시간이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우린 빨리 가야 한답니다.》

녀인의 사려깊은 인정에 따뜻한 말로 사례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러고나서 금동학생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배고프지 않아?》

금동은 뒤를 돌아다보며 히쭉 웃었다.

《일없습니다, 선생님.》금동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선생님, 이거 잡수십시오.》 하며 손에 쥔것을 내밀었다.

여기로 오면서 련희는 심심치 않게 자주 입에 넣으라고 사탕봉지를 터뜨려 절반도 더 되게 금동학생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금동학생의 손바닥우에 놓여있는것은 그가 먹다남은것이였다.

그것은 두사람이 나누어먹기에는 도저히 균등한 분배를 할수 없는 세알의 사탕이였다. 그런데 사실 오련희의 솜옷주머니안에는 제자를 위해 남겨놓은 사탕이 있었다. 제자에게 덜어주고 나머지를 자기의 솜옷주머니에 넣고오면서 몇알 축내지 않은것이였다. 그것은 정 급할 때 내놓으리라는 생각으로 그냥 둬두고 학생의 손에서 한알만을 쥐였다.

《두알은 금동이 먹어.》

《아닙니다. 선생님이 두알을 잡수십시오. 나야 남자가 아닙니까.》

《호호호, 사내재세를 하는거냐?》

학생은 또 히쭉 웃었다. 눈발속에 드러나는 하얀 이발, 티없는 웃음이 반짝이는 눈… 사람이 행복을 느낀다는건 다른게 아니로구나. 이런 티없는 마음속에 함께 산다는것이로구나.

《뭘 생각해?》

《난 선생님이 이자 왜 리수복영웅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는지 압니다.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것보다 더 뜨겁고 진실한 사랑은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리고 오늘은 왜 이 길을 함께 가주시는지도… 선생님은 내가 고향사람들의 기대를 잊지 않고 조선을 빛내이는 과학자가 되여 원수님께 큰 기쁨을 드리기 바랄것입니다. 맞지요? 선생님.》

《그만해! 금동… 그만…》

오련희는 불시에 부르짖다가 목이 꽉 메여버렸다.

한참만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옳아. 금동학생의 말이 맞았어. 금동인 정말 그런 훌륭한 사람이 꼭 돼야 해. 그러자면 일생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정열가가 돼야 하구 이렇게 힘든 길도 웃으며 헤쳐갈줄 알아야 하는거야.》

눈, 눈, 끝없이 쏟아지는 눈! 이제 얼마나 더 가면 기본도로가 나질가? 련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컴컴해오는 하늘을 메우며 하염없이 내리는 눈! 눈! 해는 어디바루에 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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