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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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가 자리잡은 뒤덕에 등판이 번번한 기다란 바위가 있었다.
최칠성은 벼짚을 한아름 안고 올라서서 두리두리 살피다가 밝게 비치는 달빛을 마주하고 자리를 잡았다. 가까운 곳에 마을과 통하는 길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런대로 조용히 일하기에는 안성맞춤하였다. 짚신을 한 서너컬레 삼자면 삼태성이 저쪽산마루로 꼬리를 늘어뜨릴 때까지는 일을 해야 할것이였다.
자리를 정한 그는 벼짚을 한줌 갈라내서 엉뎅이밑에 깔고 오른쪽에다 그루를 박아 가쯘하게 만든 짚을 당겨놓았다.
두발바닥사이에 짚오리를 끼운 다음 한쪽팔굽을 무릎에 올려놓고 손을 슬쩍 비비자 벌써 새끼가 되기 시작하였다. 네댓번 그렇게 비빔을 준 다음 한뽐이나 되는것을 달빛에 비쳐 가늠을 해보았다. 신총으로 쓰기는 약간 툭한것 같지만 그래도 단단하게 비빔이 가서 콩꼬투리를 만져보는것처럼 손맛이 좋았다.
이전에는 매양 가늘어지게마련이였던것인데 한동안 놓았다가 새로 잡으니 손짐작도 무뎌진것 같았다. 하기는 짚오리를 잡는것이 서툴러진 대신에 총이나 연필을 잡는것에 한결 더 익숙해진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해졌다.
래일이면 부대는 떠나가게 될것이다. 벌써 여기 온지도 한주일이나 되였다. 며칠동안 지날 때에는 그 하루하루가 여느때 한달맞잡이로 길고 복잡한 생활도 차있어서 잠자리에 누워 하루일을 돌이킬 때는 어제 한것인지 오늘 한것인지 날자를 엇갈릴 정도였는데 정작 떠난다고 하니 눈깜짝할사이에 지나친것 같은 아쉬운감이 들기도 하였다.
집에 들렸다는것도 그렇지만 그동안은 실로 그전에 비해 몇갑절에 달하는 대단한 일들이 벌어졌었다. 전투도 하고 회의도 하고 또 여느때보다 못하지 않은 인상깊은 일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서걱서걱 서걱서걱.
벼짚초리가 두갈래로 갈라져서 뱅글뱅글 돌아가고 손이 차츰 앞으로 솟기는데 따라 그뒤로는 매끈하고 날씬한 새끼가 되여 나온다. 손이 머리키만치 떨어나가게 되면 더 빨리 비비면서 쭉 내훑는다. 그리고는 손을 뒤로 가져가 한쪽엉뎅이를 슬쩍 들면서 끄트머리를 당기면 한발이나 되는것이 빠져 사려진다.
서걱서걱 서걱서걱.
몸통을 약간 왼쪽으로 기울일사 하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벼짚에서는 역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그닥 향기롭다고도 할수 없는 콜콜한 냄새가 풍기고 바람이 산들산들 불 때면 요란스러운 풀벌레소리와 함께 한껏 무르익은 풀내가 날아왔다.
일도 일이지만 고요한 분위기와 그윽한 정취에 잠겨들어간 그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알지도 못할 정도로 손을 비비는데 열중하였다.
인적기가 나서 손을 멈추고 뒤로 고개를 돌렸다.
달빛이 어깨우에서 번쩍 반사되는것으로 보아 유격대원들이 틀림없는데 띠염띠염 두세사람이 걸어왔다.
《거기 누가 있소?》
그 순간 최칠성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사령관동지의 음성이였기때문이다.
손에 들었던 새끼오리를 떨구고 삑 돌아서면서 발을 모으며 《최칠성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오, 칠성동무요?》
《네!》
한걸음 앞으로 나서는데 그이께서는 벌써 바위등에 올라서시였다. 그가 경례를 붙이자 그이께서는 손을 내려주며 어두운데 여기서 무엇을 하고있느냐고 물으시였다.
《새끼를 꼽니다.》
《새끼를?…》
벼짚이 널린것을 보시던 그이께서는 벌써 한번 불러서 집소식을 들으려 하였지만 짬이 없었노라고 하시면서 앓고계신다던 아버님이 어떠냐고 물으시였다.
《여기 앉아 이야기합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벼짚우에 앉으며 최칠성의 손을 잡아당기시였다.
《괜찮습니다.》
《괜찮긴, 어서 여기 앉으시오.》
사령관동지께서는 안마을에 있는 백광명을 만나기 위해 내려가시던중이였다.
《아버님께서 천식으로 고생을 하신다면서?》
《요새는 많이 나았다고 합니다.》
《많이 나았다? 천식에는 마가목을 달여먹이면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 지방에는 그런 나무가 없을터이니까…》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신 그이께서는 집형편이 어떤가? 초막에 비가 새지는 않는가, 구들은 잘 들이는가. 친척들은 누가 있으며 그들의 소식은 알고있는가? 산모는 건강이 어떤가를 하나하나 물으시였다.
거침없이 대답을 올리던 최칠성은 산모이야기가 나오자 목을 움츠리고 말을 못하였다.
《어쨌든 한번 가봐야겠는데 안됐습니다. 그런데 최동문 래일 떠난다는걸 알고있습니까?》
《네! 알고있습니다.》
《그러면 집에 가서 떠난다는 말을 해야 할것이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아니요. 그래선 안됩니다. 가면 간다는 말을 하고 떠나야지.》
《어제 집에 갔다 올 때 다시 오지 못하면 간줄 알라고 말해두었습니다.》
《하하, 그런 인사본때가 어데 있습니까. 소식없으면 잘있는줄 알라 하는 뜨내기식이군. 바쁜 일이 없으면 이제 내려가시오.》
《래일 아침 일찍 갔다와도 됩니다.》
《밤중에 새끼는 뭣때문에 꼬고있습니까?》
잠간 망설이다가 그는 짚신을 한컬레 삼겠노라고 말씀드렸다.
《짚신을?》
신이 왜 없느냐는듯이 고개를 기웃하실 때 최칠성은 재빨리 전투하다가 벗어져 달아난걸 몰랐다고 말씀드렸다.
《총을 뺐었다는 그때 벗어졌습니까?》
《그렇습니다.》
《목을 내리눌렀다면서?》
며칠전에 박흥덕이가 마치 자기가 한것처럼 실감있게 최칠성이 무기뺏는 장면을 흉내내여 한참 웃었던 일을 회상하며 그이께서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시였다.
《신을 삼을만 한가 좀 봅시다.》
《보실것이 못됩니다.》
최칠성은 사려진 새끼를 뒤로 돌려놓으며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나도 새끼나 짚신에 대해서 약간은 알고있소.》
그이께서는 할아버님을 도와 어릴 때부터 꼬았고 신도 삼아보시였다. 그때는 노상 짚신을 신고 지내시였던것이다.
하는수없이 최칠성은 새끼를 앞으로 돌려놓았다.
《좀 굵지 않소? 하긴 든든히 만들자면 좀 가는것보다는 낫지만 그대신 비빔을 단단히 주어야지 응, 비빔도 괜찮구만.》
노긋노긋하면서도 단단하게 틀려돌아간 오리를 달빛에 비쳐보면서 그이께서는 한컬레를 삼는데 몇시간이나 걸리는가고 물으시였다.
《이전에 저녁 먹고 새끼를 꼬아서 두컬레를 삼고 자군 했었습니다.》
《그러면 이 한컬레로 몇리나 걸을수 있습니까?》
《하루 행군합니다.》
《하루 행군한다. 그리고나선?》
《또 삼겠습니다.》
《또 해지면?》
《또 해지면 또 삼으면 됩니다.》
《매일 하나씩…》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갈길은 아득히 먼데 발에 신을만 한 신이 없다. 하루동안 걷기 위해 밤이 깊도록 새끼를 꼬고 신을 삼는다. 해지면 또 삼고 또 해지면 또 삼는다. 어제날에 머슴이였던 한 대원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대답을 두고 그이께서는 이때 고도로 승화된 하나의 리념을 엿보게 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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