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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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진세는 한숨을 후- 내쉬고는 쇠스랑을 두엄무지에 쿡 박았다. 그는 모든 시름을 땀으로 씻어버리려는듯 또다시 걸싸게 두엄무지를 번지였다.

이때 안방쪽에서 다듬이질소리가 들려왔다.

김진세는 먼발치에서도 다듬이질소리를 듣고 며느리가 하는것인지, 로친네가 하는것인지를 인차 가려들을수 있었다.

로친네의 다듬이질소리는 기분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면서 그 가락이 고르롭지 못했으나 며느리가 하는 다듬이질소리는 언제봐야 한결같이 고르로왔다.

그는 다듬이질소리를 들으며 그저 제 성미대로라니까 하고 혀를 차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김진세는 지금도 고르롭게 들려오는 다듬이질소리를 듣노라니 다듬이돌에 빨래를 집어놓고 그앞에 꿇어앉아 부지런히 방지를 놀리고있는 며느리의 자태가 눈앞에 그린듯이 떠올라 자주 눈을 슴벅이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일매지게 고르롭던 그 다듬이질소리가 오늘 따라 이전과는 다른 음조를 띠며 들려왔다. 그 소리는 집안사람들을 위로하는듯 부드럽게 잦아내리다가도 애끊는 마음을 하소하는듯 갑자기 구슬픈 음조를 띠면서 가락도 잦아지는것이였다.

쇠스랑을 짚고 서서 다듬이질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그의 눈은 어느덧 우수에 젖어 침울하게 흐려졌다.

아들은 유격대입대가 부결되여 며칠이 지나도록 집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러나 보금이는 변함없이 시부모공대도 잘하고 살림살이도 극성스럽게 해나갔다. 단지 그의 얼굴이 이전보다 파리해졌을뿐이다. 며느리의 얼굴기색을 봐서는 아들과 며느리사이가 버그러졌는지 어떻게 되였는지 가늠할수 없었다.

김진세는 근거지에 지주도 없는 좋은 세상이 왔는데 아들이 유격대에 못 들어가는바치고는 이제는 집에 정을 붙이고 살림살이나 버젓하게 꾸려놓고 남부럽지 않게 살기를 바랐다.

요새 현당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 평정을 내리는것을 보면 혁명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따로있는것인데 우리야 평백성으로서 혁명군의 뒤시중이나 들면서 잘살아볼 생각이나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것이 그의 속심이였다.

그러나 창억이는 아버지의 이런 속심과는 다르게 자격이 없다고 밀어내는데도 유격대에 들어보겠다고 별의별 루추한짓을 다하며 돌아다니는 모양이다.

그의 귀에는 망측한 소문만 들려왔다.

창억이 유격대에 들어보겠다고 어제는 현당조직책의 승마를 끌고가서 편자를 신겨오더니 오늘은 밤중에 쏘베트에 달려들어 화풀이로 소동을 벌리는가 하면 현에서 내려온 강사와도 다투고 지어는 도시에서 온 녀선생에게까지 교섭해달라고 빌붙는다는것이였다.

좌충우돌하며 돌아가는 아들때문에 김진세는 속이 곪아터질 지경에 이르렀으나 며느리가 어려워 한번 큰소리도 치지 못하였다.

그는 집안사람들중에서 며느리를 보기가 제일 딱하였다. 설사 며느리가 속이 못된 녀자여서 집안에서 행패를 부리며 시부모에게 고약하게 군다고 해도 할소리가 없는 처지였다. 그러나 며느리는 자기를 보기 딱해하는 시아버지의 심중을 눈치챈듯 요새와서는 될수록 피하려고 하며 숨어서 살아갔다.

갸륵한 그 마음이 가슴에 젖어들어 김진세는 며느리가 더 측은하게 느껴지면서 갑절로 아껴주고 위로해주고싶어졌다.

그는 얼른 두엄무지를 다 쌓고 흙을 얇게 덮어놓은 다음 마당으로 들어가서 울바자기둥과 벽기둥에 대못을 박고 그사이에 빨래줄을 보기 좋게 늘였다.

빨래줄은 바람을 안고 춤추듯이 흐느적이였다.

김진세는 정지문을 열고 안방쪽에 대고 은근한 목소리로 며느리를 불렀다.

《아가야, 이걸 좀 나와 봐다구!》

다듬이질소리가 그쳤다.

그는 다시 불렀다.

《얘야, 이걸 좀 나와 봐다구!》

그리고는 며느리가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마당에 내려서서 그의 키에 맞겠는가 가늠해보며 빨래줄을 쓰다듬어보았다.

정지문을 나선 보금이는 해빛에 눈이 부신듯 눈살을 곱게 찌프리고 하늘을 흘깃 쳐다보고는 시아버지곁으로 다가왔다.

《빨래줄이 이만하면 키에 맞겠느냐?》 하고 김진세는 며느리에게 물었다.

보금이는 방긋 웃어보이며 한손을 어리광스럽게 들어 빨래줄을 쓰다듬어보았다. 빨래줄은 그의 키에 알맞춤하게 늘여졌다.

빨래줄에서 손을 내린 보금이는 입가에 서글픔이 밴 미소를 간신히 그려보이고는 눈길을 땅에 떨구었다.

어머님키에 맞아야지 저야…》

기뻐할줄 알았던 며느리에게서 이런 기특한 소리를 들은 김진세는 시원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안빨래야 제가 도맡아서 하는건데 제 키에 맡아야지 봉남이 할미는 일없어. 이제는 집안살림살이부터 하나하나 꾸려나가자구. 내 집앞에 우물도 잘 파놓겠다. 우물터에는 수양버들도 한대쯤 심어놓고 떡돌도 번듯한 놈을 업어다놓지.… 아가야, 이제는 제가 집안살림을 해나가겠는데 불편한게나 요구되는게 있으문 어려워말구 나한테 다 얘기해라.…》

아버님…》

보금이는 물기어린 눈으로 시아버지를 흘깃 쳐다보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발등에 비방울같은것이 몇방울 떨어졌다.

《얘야…》

《…》

보금이는 머리를 소곳이 숙인채 정지문으로 황황히 들어가버렸다. 느닷없이 휩쓸어드는 회오리바람이 마당에 널려있는 지푸라기들을 휘말려올렸다.

김진세는 얼굴빛이 컴컴하게 죽어서 며느리가 사라진 정지문쪽을 바라보며 가슴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였다.

(눈에 넣고 다녀도 쓰리지 않을 앤데… 저런것을 외면하구… 녀석이 환장을 했지.)

문득 아들에 대한 노여움이 목구멍에까지 치밀어올랐다.

이날 밤 김진세는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자리에서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면서 앓음소리까지 내였다.

밤중에 며느리가 들어와 머리밑에서 목침을 빼내고 베개를 조용히 들이밀어주고는 머리맡에 숭늉대접을 놓고 나갔다.

김진세는 그때는 자는척 했으나 그가 사라지자 가슴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가 보금이를 며느리로 맞아들인데는 기구한 사연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것이 안해 허씨가 앓아누웠던 사정과 관련되는것 같다. 어느해 장질부사에 걸려 몇번 저세상에 굴러떨어지려다가 겨우 명이 불어난 허씨가 하루는 눈물이 그렁해서 간짐고등어를 구워먹어봤으면 원이 없겠노라고 했다.

김진세는 그 말이 가슴을 쳐서 지게에 귀밀섬을 지고 온성장으로 나갔다. 국경읍의 장날은 떠들썩하였다. 간짐한 고등어를 몇손 사든 김진세는 그냥 돌아서기 섭섭하여 선술집에 들려 탁배기를 두어사발 들이켰다. 그는 얼근해지자 궁색한 마음에도 기름기가 돌아 예전에 길을 가다가 종종 신세를 진 일이 있는 풍인동의 윤치석댁에 들리였다.

그때는 석양녘이였다. 윤치석이네 집은 수라장이 되였다. 윤치석은 마당복판에 쓰러져있고 명주바지저고리를 입은놈이 도끼를 휘두르며 기둥뿌리를 찍겠다고 덤벼치고있었다. 그놈은 포악성으로 하여 간도땅에까지 소문이 난 온성지주 서완오였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매달려 울고 안해는 놈에게로 달려가며 비명을 터뜨렸다.

김진세는 취중이라 담도 커져서 서완오에게 달려들어 도끼를 앗아 울바자밖으로 내던지고 행패질에 펄펄 날뛰는 놈을 닁큼 안아서 달구지길에 내다가 팽개쳤다. 서완오는 순사를 불러올테니 법앞에서 네놈의 완력이 어느만큼 센가 보자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뒤걸음질쳐갔다. 윤치석을 방에 들여다눕힌 다음 그의 안해 조씨는 길손에게 기막힌 사정을 실토하였다. 윤치석이네는 리자까지 겹쳐 엄청나게 불어난 빚값에 맏딸 보금이를 한해전에 지주집부엌데기로 들여보냈었다. 지주의 서자인 서기태란 망종이자식이 보금에게 눈독을 들여오다가 마침내 지분거리기 시작하며 못된짓을 걸어왔다. 보금은 분을 새기며 참고참아오다가 며칠전 밤중에 그 집을 뛰쳐나왔다. 공교롭게도 그밤에 서완오의 방에서 돈궤가 없어졌다.

서완오는 윤치석을 찾아와서 도적년도 내놓고 돈궤도 내놓으라고, 네놈이 딸년에게 도적질을 꼬드겼다고 을러메며 행패질을 했다. 그리하여 란투가 벌어졌던것이다.

조씨는 억이 막히고 겁이 나 와들와들 떨었다.

《저게 벼락을 맞자고 남의 집 돈궤를 넘겨다봤겠소다? 신세를 망칠가봐 뛰쳐나왔는데 도적혐의까지 쓰게 됐으니 아이고, 이 일을 어찌문 좋을지?》

김진세가 딸애는 어디에 감추었느냐고 묻자 조씨는 잠시 망설이다가 뒤울안 감자움속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순사가 달려와서 집을 발칵 뒤지는 날에는 감자움에 눈길이 미치지 않을수 없겠는데 무슨 수가 없겠느냐고 물었다.

김진세는 깊이 생각해보고 자기한데 딸을 맡기라고 했다. 그는 그밤으로 보금이를 데리고 두만강을 건너 량수천자아래쪽 솔골로 들어갔다. 김진세는 뒤에서 추적의 그림자가 언뜻거리는것 같아 자주 뒤를 돌아보며 걸음을 다그쳤다. 보금은 그것이 어떤 운명의 길인지도 모르고 오돌오돌 떨면서 따라왔다. 김진세는 서초평으로 넘어와 셋째섬을 거쳐 십리평쪽으로 빠져 친척집에 숨었다가 이튿날 밤중에 마촌에 들어섰다.

석유등잔불밑에서 소심하게 숟가락을 돌리며 강냉이죽을 먹는 보금의 수수하고 마음씨 곱게 생긴 얼굴을 뜯어보며 김진세내외는 그저 측은하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창억은 웃방으로 올라가는 문턱에 걸터앉아 지난겨울 아버지가 산에 올라갔다가 눈속에서 새끼사슴을 안아왔을 때처럼 놀아댔다. 그는 처녀애를 툭툭 건드려도 보고 와락 놀래워도 주고싶은 충동에 가슴이 근질거려하는것 같았다. 녀석은 처녀애가 숟가락끝에 죽을 조금씩 묻혀 입에 가져가는것을 보며 시물시물 웃기도 하고 가슴이 섬찍하도록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줴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처녀애는 울먹울먹해졌다. 허씨는 보금이 몰래 녀석에게 눈을 흘기였다.

보금이는 그의 집에 반년나마 있었다. 그사이 온성과도 몇번 래왕이 있었다.

어느날 김진세로인이 산에서 나무를 한지게 잔뜩해지고 집으로 돌아오니 굴뚝옆에서 보금이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섧디섧게 울고있었다. 웬일이냐고 아무리 따져물어야 대답을 못했다.

안해 허씨가 나와 그를 정지간으로 끌고들어가 눈이 화등잔처럼 되여 이런 망신이 어디 있느냐고 하며 창억이녀석의 소행을 귀뜀해주었다. 그녀석이 무슨 도깨비 마음을 먹었던지 우격다짐으로 저 애 머리태를 감아쥐고 목을 꽉 끌어안아보고는 어디론가 내뛰였다는것이다.

《사람을 얕잡아보고 업수이여겨도 분수가 있지, 저녀석이 글쎄…》 하고 허씨는 자기 말에 꼬리를 달았다.

김진세는 물푸레몽둥이를 들 대신 허씨에게 역증을 버럭 내며 오늘밤중으로 흰 두루마기를 다려놓으라고 이르면서 여느때없이 모질게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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