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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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는 고요가 흘렀다. 수저가 그릇들에 조용조용히 닿는 소리가 이따금 울리였는데 그것은 고요를 더 짙게 하는듯싶었다.

아래벽에 걸린 장군님의 털외투며 그옆에 묵직이 드리운 목갑총도 원정 수만리길에서 전진의 회오리속만 헤쳐오다가 오래간만에 누려보는 단란한 가정의 이 아침을 한껏 음미하는듯 하였다.

장군님께서 수저를 놓으시자 리재명은 주인늙은이가 아래목에 떠놓은 숭늉사발을 얼른 들어 그이께 올리였다.

장군님께서는 숭늉을 소리없이 마시고는 바지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여 이마의 땀을 찍어내시며 몸을 약간 뒤로 젖히시였다.

《오래간만에 토장국에 밥을 말아먹으니 정신이 번쩍 드는것 같습니다. 아-참, 잠도 푹 잤고 아침도 잘 먹었습니다!》

찬거리가 없어 너무나도 간소하게 차린 아침상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있자니 명색이 쏘베트회장인 리재명으로서는 등골에서 식은땀이 다 흘러내렸다. 그런데 장군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듯싶었다.

왜적을 달고다니며 내내 산에서 싸우신 장군님께서 이런 아침상에 마주앉으시는 일도 드물것이라는 엄혹한 진실이 뇌리에 와닿은것은 그 다음순간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리재명을 건너다보시며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다.

《요새는 흔하던 노루고기도 손에 넣기 힘듭니다.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울리고 화약내가 풍기니 그것들도 어디로 다 도망간 모양입니다.》

리재명은 이렇게 말하며 무릎밑의 목책을 다시 만지작거렸다. 거기에는 장군님께서 물으시면 답변할 여러가지 자료들과 수자들이 가득 적혀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여전히 눈에 미소를 빛내이며 말씀하시였다.

《전쟁이니까요.… 전쟁도 큰 전쟁이 시작되였으니까 산짐승들도 피난을 하겠지요. 허허허…》

강철의 떨림소리가 배여있는듯 한 그 힘찬 웃음소리는 리재명의 가슴을 흔들어놓았다. 그래서 그의 목구멍에서도 저절로 대가 실한 소리가 튀여나왔다.

《글쎄말입니다. 그놈들이 피난가는통에 손님대접도 이렇게 됐습니다.》

《제가 무슨 손님이겠습니까? 아주 살려고 왔는데요.》

《아니, 그게 정말이십니까?》

《여기에 아주 자리를 잡을 작정입니다. 사령부를 여기에 두겠습니다.》

《예?…》

리재명은 무릎을 탁 쳤다.

《됐습니다! 장군님, 말씀올리고싶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정말 기다렸습니다. 장군님께서 파견하신 김중권동지도 만나봤습니다.》

《김중권동무를 만났댔습니까? 우리가 량강구에서 파견한 동무인데…》

《예… 몇번 만나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줄창 온성쪽에 나가있었는데 요새는 도무지 소식을 알길없습니다.》

《온성쪽에… 그쪽에… 음…》

장군님께서는 의미심장하게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문득 물려놓은 밥상의 찬그릇에 눈길을 떨구시였다. 웬일인지 그이의 안색이 흐려지시였다.

《회장동무, 여기서는 소금값이 얼마입니까?》

《예?… 장군님… 이 집 로인들이 싱겁게 먹는데 버릇이 돼서 그만 오늘 아침에두…》

장군님께서는 의아하신 눈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시였다. 무엇인가 혼란이 생겼으며 상대가 말을 잘못 들었다는것을 깨닫고 다시 풀어서 말씀하시였다.

《나도 짠것을 즐기지는 않습니다. 짠 음식은 사람에게 해롭다고 합니다. 그런게 아니라… 여기서 소금 한말에 값이 얼마입니까?》

리재명은 그이께서 아침찬을 념두에 두신것이 아니라 바로 소금값에 대하여 관심을 두고계신다는것을 그제야 깨닫고 놀랐다. 그것은 그가 밤새워 답변을 준비했던 이곳 혁명정세며 쏘베트정부의 사업정형도 아니고 에스빠냐혁명도 아니였다.

너무나도 범상하고 세속적인것 같은 질문에 리재명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소금값 말입니까?》

《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시는 젊으신 장군님의 안광에서는 알고싶은 열망인듯 섬광같은것이 타고있었다.

리재명은 손에 쥐였던 목책을 무릎옆에 맥없이 놓아버렸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근년에 와서는 보름이 멀다하게 껑충 뛰여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니 도무지 그 값을 짐작할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두만강물이 언 다음 밀수입장사들이 소금섬을 지고 들어와 값이 좀 낮아지면 숨이 나갔습니다. 왜놈들이 9. 18사변후에는… 국경경계를 삼엄하게 펴고 도강지점마다에 세관을 내오고 도처에 염치관이란것을 두어 사염을 엄중단속하고는 제놈들이 소금을 전매하는 법을 만들어놓았습니다. 사염값에 비하여 관염값은 열배나 됩니다. 그뿐아니라 놈들은 심사가 뒤틀리면 제멋대로 소금값을 바싹 올리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며 사람들의 숨통을 비틀었다 풀었다 롱간질입니다.》

장군님께서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통분한 일입니다! 가슴이 터지는노릇입니다! 세상에는 나라를 빼앗기고 망국노가 된 민족이 한둘이 아니지만 우리 조선사람들과 같은 그런 망국노가 어디 있겠습니까. 조선은 세면이 바다여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어떤 학정밑에서도 소금 그리운줄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오늘은 나라를 빼앗기고 간도땅에 건너와서 사는것만도 분한 일인데 그 흔하던 소금까지 왜놈들한테 빼앗겨 제마음대로 쓰지 못하니 이런 망국노의 처지를 어느 누가 상상이나 할수 있겠습니까!》

장군님,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있겠습니까?》

《염치관… 염치관이라!… 왜놈들이 아니고는 그런걸 생각해낼수 있겠습니까? 좀스럽고 악착한 놈들!… 소금을 먹지 못하면 사람은 죽고 맙니다. 놈들은 소금을 다스리는 염치관이란 기구까지 내와서 생명보존의 기본요소까지 틀어쥐고 우리 겨레의 명줄을 마음내키는대로 흔들어대려고 합니다. 왜놈들 식민지통치가 어느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까!》

리재명은 장군님께서 소금에 대하여 물으신 까닭을 비로소 깨닫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는 가슴이 떨렸다. 목구멍으로 설음같기도 하고 울분같기도 한것이 터져오르며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래 쏘베트에서는 소금을 어떻게 구입해들이고있습니까?》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물으시였다.

리재명은 여태까지 많은 사회운동자들과 혁명가들을 만났으나 인민들의 식생활에 절실히 필요한 소금에 대하여 관심을 두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유격근거지가 생긴 다음에도 이 문제에 대하여 마음을 써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혁명과 정치밖에 있는 문제였다.

장군님! 적통치구역과의 련계가 끊어진 뒤로는 소금을 구해들일 길이 없었습니다.》

《련계가 끊어지다니요?》

《거기는 백색구역이 아닙니까? 현당에서는 주구촌과 련계를 맺는다는것은 이렇게나 저렇게나 적의 침습을 용이케 하는 틈을 주는것이므로 엄중히 단속했습니다.》

《백색구역… 주구촌이라니요? 거기에는 우리 인민들이 살고있지 않습니까! 그럼 유격구안에서는 무엇을 하고있었습니까?》

《예?… 사회주의혁명을 진척시키고있었습니다.》

《어떻게요?》

리재명은 목책을 펼쳐들었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물으시였다.

《당장 먹을 소금도 없는데 사회주의혁명이라니요? 현당조직책이 마을에 와있다지요?》

《예… 엠엘파의 중심인물로서 오랜 공산주의자입니다.》

장군님께서는 해빛이 비쳐드는 문쪽에 눈길을 주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밖에서 전령병의 말소리와 누군가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전령병 리성림이 들어왔다.

《박훈중대장이 오늘일과를 지시받으러 왔습니다. 들여보내도 좋습니까?》

《들여보내오!》

방에 들어선 박훈은 경계의 눈빛으로 리재명을 흘깃 돌아보고는 키를 낮추며 장군님께 공손하게 말씀올렸다.

《오늘 하루일과는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습니까?》

《모두 식사는 끝났소?》

《예.》

《오늘 하루는 푹 쉬도록 하오. 나도 나가보겠소.》

장군님의 말씀은 매우 부드러우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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