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군국기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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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비앞에서 아정은 인물심사를 받고있었다. 오랜 세월 온 나라를 한손아귀에 틀어쥐고 뒤흔든 무서운 녀인이란 생각에 아정은 민비를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였다.

아정의 뒤에 앉아있는 자심한 조상궁은 그에게서 념려스러운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그동안 아정은 조상궁의 훈시밑에 정수리에 물담은 사발을 이고 얌전히 걷는 법을 비롯하여 궁녀로서, 상궁으로서 지켜야 할 여러가지 법도들에 대해 많은 수련을 받았다. 조상궁은 아정이에게 엄하게 훈시하군 하였다.

《…걷거나 앉거나 일체 발끝을 보여선 안된다. 그리구 빨리 궁어를 익혀야 하느니라. 음식은 수라를 진어하신다, 잠은 침수를 드신다, 의복은 의대를 잡수신다.…》

자기를 세심히 뜯어보는 민비의 날카로운 시선앞에서 아정은 송구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은옥색저고리에 갈매빛치마를 받쳐입고 얌전히 앉아있는 아정은 궁녀라기보다 고명한 집의 규수같았다.

《고개를 들어라.》

낮으나 엄한 민비의 지적에 아정은 가까스로 고개를 쳐들었다. 도화빛이 어린 예쁘장한 얼굴, 건강미 흐르는 몸매, 그 얼굴, 몸매는 젊음이 넘치는 활력으로 하여 더욱 생신한 생명력을 내뿜고있었다. 선량하면서도 령리해보이는 표정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민비의 얼굴에 사뭇 만족스러워하는 기색이 어렸다.

《눈이 양의 눈처럼 어질고 착해보이누나.》

조상궁이 아정이에게 어서 대답해올리라고 나직하게 귀띔했다.

《황공하여이다, 마마… 어서!》

민비가 그러는 조상궁을 가볍게 나무람했다.

《그만두게. 차차 배우지 않으리.》

조상궁이 민비에게 아정이가 리화학당을 다녔다는거며 여러가지 자랑거리를 이야기하였다.

《오, 그래… 그럼 외국말도 아느냐?》

감탄기어린 어조로 묻는 민비의 물음에 아정은 수집은듯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대꾸했다.

《영어를 조금…》

《그래?》 민비가 감탄조로 독촉했다.

《어디 영국말을 좀 해보거라.》

아정이 수집어 볼웃음을 지으며 얼른 대답을 못하자 조상궁이 뒤에서 또 독촉했다.

《어서 사뢰게.》

마음을 다잡은 아정이 류창하고도 정확하게 영어를 발음했다.

《굳 모닝, 하우아유, 크와이트 월 쌩큐…》

민비가 사뭇 감탄하며 두손을 맞잡았다.

《아유, 훌륭해! 영국사람 한가지로구나. 용타, 녀아가 벌써 그렇게 공부하다니?!…》

민비는 조상궁에게도 꼭 마음에 드는 애를 골랐다고 칭찬하고나서 황송스러워하는 그에게 아정이를 오늘부터 특별상궁으로 봉하고 늘 자기곁에 있도록 조처하라고 분부했다.

이때 합문밖에서 진령군대감이 대령하였다고 하는 소리가 울렸다.

《들라 해라.》

민비의 말을 들은 조상궁과 아정은 자리를 뜰 때가 되였음을 깨달았다.

편전에 들어선 진령군은 아정이를 퍼그나 쌀쌀한 눈찌로 쏘아보고나서 민비앞에 부복했다.

민비앞에 부복한 진령군은 고개를 들지 않고 한동안 씩씩거리기만 했다.

분독이 올라 볼에 퍼릿퍼릿한 반점이 있는 진령군의 낯을 여겨보던 민비가 좀 신경질적으로 독촉했다.

《무슨 일이냐? 어서 말을 해라.》

《중전마마…》

진령군은 가장 분하고 원통스러운 일을 당하기라도 한듯이 두눈에 눈물까지 글썽해졌다.

《왜 그러느냐, 말을 해야 알지?》

그제야 진령군은 울음섞인 소리로 아뢰였다.

《마마, 대원위대감이 입궐한다 하옵니다.》

《…》

깊은 생각에 잠기면 늘 그렇듯이 민비는 두눈을 쪼프리고 아무 대척도 하지 않았다.

한참후에야 민비는 얇은 입술을 벌린듯만듯 쌀쌀하게 물었다.

《적실하냐?》

《딱실하오이다. 온 궁안이 다 알고있소옵니다.》

민비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또 침묵을 지켰다. 청나라와 가까운 자기를 견제하기 위해 왜인들이 대원군을 입궐시킬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였다. 여기에 무슨 새삼스러운것이 있는가. 하지만 대원군이 이전에 외척 안동김가들을 조정에서 다 내쫓아버렸듯이 이번에도 자기네 민씨척족들을 전부 제거해버린다면 결국 자기의 수족이 다 떨어져나갈것이 아닌가. 이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임오군란때 입궐한 대원군은 민비, 자기마저 없애치우려 하지 않았던가.

민비의 침묵에 초조감을 느낀 진령군이 자못 안타까운듯 분함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하지만 예상외로 민비의 거동은 태연하고 침착하였다.

《모두 대원위대감을 잘 받들어섬기라고 이르시오. 대감께서는 이젠 춘추가 많으십니다.》

《예?!…》

진령군은 아연한 기색으로 민비를 쳐다볼뿐이다.

민비는 대원군을 왜인들이 강제로 입궐시켰으리라는것과 워낙 왜인들을 좋지 않게 보는 그가 그들의 손탁에 호락호락 놀아나지 않으리란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내심 민비는 대원군의 호랑이발통같은 무서운 힘이 두려웠고 불안스러운 기우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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