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군국기무처
2
(1)
사린교에 앉아 운현궁의 대원군을 찾아가는 판중추부사 김홍집의 생각은 깊었다. 일본인들이 비법적으로 남의 나라 궁성을 습격점령하고 국왕 고종과 왕후 민비를 감금하다싶이 유페시키고 저들의 친일정부를 세워 일청전쟁과 조선강점의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려고 날뛰고있는 형편에서 김홍집을 비롯한 혁신관료들은 민비세력을 청산하고 자기 권력을 다시 세우려는 대원군의 기도와 친일괴뢰정권을 꾸며내여 침략의 지반을 닦으려는 일본인들의 기도를 유리하게 리용하면서 혁신정권을 세우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리였다.
여기에서 중요한것은 일본인들이 최고집정의 자리에 내세우려는 대원군을 쟁취하는 문제였다.
혁신관료들은 협의제립법기관을 창설하며 그것이 중앙행정부의 기능까지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강력한 권력기관을 창설할 방침을 취하였다. 이렇게 상층개혁을 단행한 후 자수자강하여 우리 나라를 부국강병한 자주독립국가로, 근대화된 발전된 국가로 되게 하자는것이였다.
물론 이러한 의도는 김옥균을 령수로 하는 개화파들이 10년전에 갑신정변으로 단행하려다가 실패한것이였다. 하기에 김홍집이나 어윤중이와 같은 개화파의 지지자, 동정자들은 자기들의 개혁을 무혈적인 상층개혁으로, 점진적으로 진행하려고 하였다. 바로 여기에 김홍집을 비롯한 혁신관료들과 혁파개명을 구테타의 방법으로, 급진적으로 추진시키려고 한 김옥균개화파와의 차이가 있었다.
김홍집은 군국기무처와 같은 강력한 권력기관을 창설할 계획을 세웠다. 이것은 바로 앞으로 수립될 정권에서 섭정의 자리에 올라앉을 대원군이나 정치에 대한 부단한 간섭으로 오래동안 국가정치의 암으로 되여온 민비와 척신들의 간섭을 배제하며 부단히 강화될 일본침략자들의 압력과 간섭에 대처하여 혁신세력들의 단합을 보장하려는것이였다.
김홍집은 자기 구상의 첫공정으로 집정관 대원군을 쟁취하기 위해 그를 찾아가기로 하였던것이다. 매사에 호락호락 움직이는 성미가 아닌 대원군은 아직도 입궐하지 않고있었다.
사린교가 땅에 내려지는가싶더니 구종군이 조심스럽게 아뢰는 소리가났다.
《판부사대감, 구름재에 다 왔소이다.》
자기 생각에 잠겨있던 김홍집은 어느새 운현궁에 당도하였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사린교에서 내린 김홍집은 소슬대문앞으로 다가갔다.
《이리 오너라.》
안에 대고 소리친 김홍집은 운현궁의 소슬대문이며 담장이며를 둘러보았다.
나라의 권세를 한손에 틀어쥐고 흔들던 섭정국태공시절만 해도 문무백관들을 설설 기게 만들던 흥선대원군 리하응의 집치고는 너무도 어수선하고 황페해보였다. 길에 깐 돌틈에 풀이 무성한것을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모양이다. 대감 말 죽은데는 가도 대감 죽은데는 안간다는것이 세상인심이고보니 실각하여 20여년세월 권세도 재물도 없는 대원군을 찾을 사람이 별로 없는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청지기 정운봉이가 대문을 열고 내다보더니 반색했다.
《판부사대감께서 오셨소이까? 자, 어서!》
정운봉은 사랑채앞으로 뛰여가 김홍집이 왔음을 알리였다.
그러자 방안에서 《드시라 해라.》하는 대원군의 석쉼한 소리가 위엄기있게 울렸다.
김홍집이 방안에 들어서니 75살의 로인답지 않게 정정한 대원군이 붓장난하던 종이들을 한쪽으로 밀어붙이고있었다.
흰오리가 섞인 수북한 눈섭, 치째진 눈꼬리, 꾹 다물린 입, 이제는 어금이 없는 사자라 할수 있는 고령의 대원군이지만 상기도 그의 몸에서는 호령 한마디에 나는 새도 떨군다던 왕년의 그 헌앙한 기상이 넘치고있었다. 아니, 사람들이 말하듯이 그에게서는 아직 호랑이의 발통과 같은 드센 힘이 느껴졌다. 뭇짐승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도 호랑이의 발통에는 꿈쩍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김홍집이 대원군에게 허리굽혀 인사하고 그의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화려하게 차림을 한 민부대부인이 방에 들어왔다.
김홍집은 정식으로 꿇어앉아 문안인사를 드렸다.
대원군 리하응과 부대부인 민씨, 이들은 임금 고종의 생부, 생모이니 지체로 보면 국부요, 국모라고도 할수 있으나 지금은 며느리 민비와 척족민씨들에게 밀려 고적하게 지내고있었다.
늙었어도 아직 젊은 시절의 아련함이 엿보이는 민부대부인이 만족함과 거북함을 느끼며 답변했다.
《주상께 옥체보존에 각별히 마음 쓰시라고 전해주시오.》
《알겠소이다.》
김홍집이 다시금 머리를 숙이였다.
《판부사대감두 편안하시길 바라오.》
인사가 끝나자 김홍집은 옹색스럽던 마음이 풀려 책상다리를 하고나서 방안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문밖으로 눈길을 주기도 하였다.
그의 거동을 찌프린 눈길로 지켜보던 대원군이 꿰진 소리를 했다.
《마, 집안이 고적해보여 그러시오? 나무도 늙으면 새들이 앉지 않는다질 않소. 하지만 이 석파(대원군의 호)는 적적하질 않소. 문방사우만 있으면 심심할수가 없지. 종이와 붓, 먹과 벼루, 이 네 벗을 어찌 술친구에 비기겠소?》
김홍집은 대원군이 그리던 그림들을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거의 모두가 란초화들이였다.
《란초를 그리댔습니까?》
《이 석파는 주먹으로 땅을 치고싶으면 먹을 갈아 란초를 그리외다.》
대원군의 말투, 그 거동에서는 세상을 체념했다기보다 세상을 호령호령하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와 지금의 처지에 대한 울분이 다분히 풍기였다.
김홍집은 그의 심중이 충분히 리해되였다. 왕년의 대원군, 그는 어떤 사람이였던가. 온 나라의 권세를 한손에 틀어쥐고 세상을 쥐락펴락하던 호걸남아가 아니였던가. 10년동안 호랑이와 같은 기상과 담력으로 이 땅의 정치풍토를 쇄신시켰었다. 그런 과단성이 있었기에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후 수백년동안 페허로 있던 경복궁을 몇년사이에 번듯하게 일떠세우고 량반들과 유생들의 악페의 소굴이던 서원을 쓸어버리고 군함과 대포로 강화도에 기여든 프랑스나 미국과 같은 서양오랑캐들을 쳐물리칠수 있었던것이다. 그런 대원군이 지금은 빈방에서 식객노릇이나 하고있으려니 어찌 속에서 불이 일고 피가 끓지 않을수 있겠는가. 정말 하루에도 골백번 주먹으로 땅을 치고싶을것이다.
《판부사대감, 모처럼 오셨는데 우리 한잔 나눕시다.》
자기 말에 김홍집이 쾌히 응하자 대원군이 또 빈정거렸다.
《헌데 나허구 술자셨다구 중전한테 꾸중 듣질 않겠소?》
《원, 대감마님두… 그는 지금 왜인들의 감시속에 문밖출입두 못합니다.》
《…》
대원군은 아무 말도 없었다. 다만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이 비꼈을뿐이였다. 그는 며느리 민비를 곱게 여기진 않았어도 아무튼 그는 국모요, 왕비가 아닌가. 그런 지엄한 녀인을 왜놈들이 아무 리유와 구실도 없이 죄인처럼 가두었다니 이게 어디 될말인가. 나라꼴이 왜 점점 이 모양이 되여가는지 모르겠다.
두 하녀가 커다란 교자상을 맞들어다 놓는 사품에 대원군은 상념에서 깨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