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군국기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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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술이 몇순배 돈 사랑방의 분위기는 자못 화기로왔다.

김홍집이 대원군의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대원위대감, 금년 운수는 어떨것 같습니까?》

대원군은 웃몸을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마, 금년은 갑오년, 말의 해인즉 세상이 편안치 않을게요. 말처럼 계속 뛰여다녀야 할테니까, 허허.》

《그런것 같습니다. 정초부터 민란이 터지지, 청군과 왜군이 출병하지, 왜군이 궁성까지 습격점령하지…》

《말세지 말세야.》

대원군이 한탄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종묘사직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김홍집이 한숨쉬듯 중얼거렸다.

대원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홍집을 이마너머로 바라보았다. 호인형의 둥그런 얼굴에 영채가 도는 눈빛, 나는듯 한 눈섭이며 리지가 깃든 넓은 이마, 김홍집은 생김새부터가 뭇사람들과 달리 출중해보였다.

《참, 도원(김홍집의 호)의 금년 춘추가 어찌 되시오?》

《벌써 쉰둘입니다.》

《공자가 이르길 50에 지천명이라 했으니 한창 일할 나이지. 난 벌써 고래희, 70도 훨씬 지났소. 남의 나이로 살고있는셈이지.》

이렇게 말한 대원군은 웃몸을 흔들며 시조를 읊조렸다.

 

가는 세월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김홍집이 웃음을 피우며 머리를 흔들었다.

《하오나 대감마님은 로당익장이십니다.》

《늙어두 정정허다? 허허… 동선하로지요. 겨울부채나 여름화로처럼 쓸모없다 그 말이요.》

《원, 가당치 않은 말씀.》

문득 대원군이 눈굽이 불그레해지더니 진정어린 어조로 말했다.

《내 다 알고있소. 도원 김홍집이, 일재 어윤중이, 운양 김윤식이 혁신관료라 불리우는 그대들이 그래두 종묘사직을 붙안고 모지름쓰는 사람들이지.》

그의 말에 김홍집은 불시에 눈굽이 뜨끔했다. 그는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대원위대감, 지금 나라의 형세는 참으로 루란지위요 고성락일(쌓아놓은 계란처럼 위태롭고 옛성에 해가 지는 형세)입니다.》

《왜국때문이지.》

《일본의 정략은 원교근공책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먼 서양나라들과는 껄렁껄렁 교제를 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우리 나라나 청국은 쳐 먹자는것이 그네들의 속심입니다.》

《그러게 애시당초 왜놈들에게 문을 열어준것이 잘못이란 말이요.》

《대원위대감, 아직도 늦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빨리 경장(개혁)을 단행하여 부국강병하면 일본도 어쩌지 못합니다.》

《고칠거야 고쳐야지.》

김홍집이 한무릎 다가앉았다.

《대원위대감, 지금 친청파인 민비가 갇혀있고 그에게 붙어살던 민씨척족세력들이 기가 죽어있을 때에 수구파인 그들을 누르고 우리도 경장을 단행합시다.》

김홍집의 목소리는 사뭇 절절했고 눈빛도 빛발쳤다.

《엉?!》

그 말에 대원군이 두눈을 흡떴으나 김홍집은 흥분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지금 조정엔 주인이 없습니다. 한집안에도 가장이 있어야 하거늘 하물며 수천년력사국에 주인이 없다는것이 말이 되옵니까? 대감, 래일이라도 당장 입궐하시여 군국의 정무를 맡아주십시오. 이미 상감께서도 어지를 내리셨습니다.》

《글쎄 왜인들도 매일같이 찾아와 집정관노릇을 해달라고 하오만 난 도대체 그 왜인들밑에선 일하고싶지 않소.》

김홍집은 다시 한무릎 나앉으며 절절하게 말했다.

《대원위대감, 지금 왜인들은 청나라와의 전쟁준비에 몰두하고있기에 우리 내정에까지 깊이 침투할 형편이 못됩니다.》

《…》

대원군이 말없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김홍집은 더욱 적극적으로 대원군을 납득시키였다. 그는 일본이 우리 나라에 주둔할 구실로 《내정개혁안》을 들고나오는데 이럴 때 우리가 군국기무처와 같은 립법기관을 만들어 자체로 내정개혁을 단행하면 일본도 어쩌지 못한다고 력설했다.

대원군은 눈을 꾹 감고 중얼거렸다.

《석파는 이젠 너무도 늙었소. 세상사 일장춘몽이지.》

김홍집이 안타까움으로 몸을 떨며 손바닥으로 무릎을 꾹 눌렀다.

《대감!》

눈을 감은 대원군은 묵묵부답이였다.

이윽고 눈을 뜬 대원군이 무게있는 소리로 말했다.

《이보시게 도원, 아무려나 좋두룩 허시오. 나는 일체 오불관언할테니… 아무튼 입궐은 하겠소. 하지만 일은 도원과 같은 혁신관료들이 내밀어주시오. 일본의 간섭과 방해가 이만저만 아닐게요. 나는 애당초 왜인들과 상대하지 않겠소. 나는 그들과 빙탄처럼 불상용이니까. 암, 얼음덩이와 석탄불이지.》

김홍집은 자기의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된듯싶어 마음이 놓여 술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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