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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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리재명을 비롯한 쏘베트 일군들은 매일아침 비자루와 가래를 들고 나와 유격대원들과 한데 어울려서 마을길을 쓸고 우물터의 얼음을 까내고 재를 뿌리였으며 낮에는 산에 올라가 화목을 찍어내려 렬사가족들과 유격대후방가족들의 집에부터 나누어줬다.

부녀회장 림성실은 부녀회원들을 이끌고 유격대원들의 빨래를 삶아 먼 원정의 길에서 오른 먼지와 땀때를 깨끗이 씻었다. 집집에 늘인 바줄에서 하얀 빨래가 바람을 안고 펄럭이여 사람사는 마을같이 화기가 돌았다.

현당이 마련한 원호물자가 여러대의 말파리에 실려 마촌에 도착하였다.

원호물자운송대를 인솔하여온 홍병일은 장군님께 앓는 몸이라 만나뵙지 못해 미안하다는 권일균의 의사를 전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괜찮다고 하시고는 그의 독감은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홍병일은 좀 나아간다고 대답하였다.

이 고요의 나날에 장군님 자신께서도 분과 초를 쪼개여쓰시며 매우 긴장하게 일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선 라자구일대의 구국군부대에 공작나가있는 리광에게 편지를 쓰시였다. 그이께서는 편지에서 쏘베트의 시책들에 대한 구국군 상층부와 하층병사들의 반향을 구체적으로 알아서 보고할것이며 그들이 우리 혁명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가지도록 꾸준히 정치적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구국군들과 협동하여 왜놈들의 창고나 수송대를 치는 습격전투를 진행함으로써 그들에게 무기획득과 식량해결의 방법을 가르쳐주라고 지시하시였다. 그 편지는 중국말을 잘하는 박훈이 가슴에 품고 라자구로 떠나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느날 아침일찌기 한흥권이와 장룡산을 거느리시고 큰배나무골에 올라가 막치기까지 들어갔다가 나오며 유격대병실이며 무기수리소와 병원, 인쇄소들을 지을 자리들을 잡아주시였다. 그리고 짬이 생기는대로 흰종이를 펴놓고 새로 지을 유격대병실설계도 초안을 작성하시였다.

어느날 밤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 김진세네 집앞을 걸어 지나가시다가 방문에 불빛이 불그레하게 어려있는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시였다.

끝없이 깊어가는 밤과 함께 마을은 고요히 잠들고있었다. 뒤산의 앙상한 나무가지들에서 바람이 들릴듯말듯 휘파람을 불고 먼 개울쪽에서 얼음판이 갈라터지는 소리가 둔중하게 울렸다.

불빛이 불그레한 방문에는 머리를 떨구고 앉아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비껴있었다. 김진세로인이 분명하였다.

왜놈들에게 학살된 두 아들 생각에 가슴이 터져올라 잠 못 드는것인가, 집을 나간 후로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조차 모르는 며느리를 그리며 저렇듯 밤새워 속을 썩이는것인가.…

장군님께서는 한숨을 후 내쉬시였다. 윤보금이라는 그 며느리는 온성의 친정집에 가있기나 한지, 정이 깊으면서도 남편이 잘되기를 바라서 집을 나가자니 얼마나 괴롭고 억울했으랴. 친정에 가있다고 해도 집난이가 친정집에 돌아와 눈치밥을 먹으며 지내자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괴로우랴.…

방안에서 로인의 기침소리가 났다.

장군님께서는 들어가서 로인과 괴로움을 나누며 위로의 말도 해주고싶은 심정이시였으나 밤이 너무 깊어 걸음을 돌리시였다.

삼태성옆에서 별찌가 떨어져 현란한 포물선으로 하늘을 누비였다.

마을길을 걸어가시는 그이의 눈앞에는 김창억의 억대우같은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그런 청년을 유격대에 받지 않으면 누구를 받겠는가. 한때는 조혼했다고 받지 않았다가 그다음에는 안해가 근거지에서 도망쳤다고 떠밀어버렸다. 마동호에 대하여도 그렇게 취급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마종삼이라는 그 농민은 어디로 갔을가. 살길을 찾아 류랑의 길을 헤매는가, 《토벌대》놈들에게 사살되였는가.…

그이께서는 쏘베트로선을 주장한 사람들이 하나하나의 인간들은 전혀 소홀히 여기고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무책임하게 대한것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시였다. 그들은 한사람은 열사람, 백사람과 련결되여있으며 따라서 그 한사람을 잃으면 천사람, 만사람도 잃을수 있다는 리치를 모르고있다. 그이께서는 윤보금이나 마종삼의 운명이 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근거지 밖에 있는 인민들에게 줄 영향이 몹시 우려되시였다.

뒤에서 문득 인기척이 났다.

그이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뒤를 돌아보시였다.

길가를 따라 웬 그림자가 엉거주춤하고 걸어오다가 멎어섰다.

김진세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시였다. 로인의 몸에서는 부엌재냄새같은것이 풍겼다.

《로인님, 이 밤중에 웬일이십니까?》

장군님!》 그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나직이 부르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로인의 눈확에서는 번쩍거리는것이 보였다.

《전날에는… 무슨 정신에… 그런 쓸소리, 몹쓸소리를 다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며늘아이는 제 친정에 가있을게고… 아들녀석은 적위대원이면… 그쯤하면 무슨 더 바랄게 있겠습니까.…》

장군님께서는 그의 마음이 가늠이 되시였다.

《봉남이는 잘 놉니까?》

그이께서는 말머리를 돌리려고 미소를 지으며 물으시였다.

그러나 로인은 그 물음에는 대답을 안했다.

장군님! 저희들의 이 소소한 일에 마음을 쓰지 말아주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장군님께서 저희 집앞을 사흘밤이나 지나가고 지나오는걸 봤습니다!》

《아, 저는 딴일이 있어서 다녔습니다.》

《아닙니다! 장군님, 싹 잊으시고 편히 주무셔주십시오. 그래야 저희네도 맘이 편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로인의 손을 뜨겁게 잡아쥐시였다.

《자겠습니다. 로인님, 어서 집으로 들어가십시오.》

장군님께서는 한팔로 그의 허리를 붙안고 걸음을 내디디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김진세를 끼고 김진세는 그이의 손을 붙잡고 뜨거운 정에 휩싸여 집쪽으로 걸음을 옮겨가는데 로인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허- 내 이거 큰 랑패를 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장군님께서 일전에 꼬신 새끼를 잘 사려서 벽에 걸어놨는데 십리평에 있는 팔촌동생이 와서 보고 가져갔습니다.

못 가져간다고 했는데도 그 사람이 나중에는 우격다짐으로 빼앗아가다싶이 했습니다. 십리평에 가서 사람들한테 보이면서 우리 장군님이 어떤 장군인가 자랑하겠다는게 아닙니까. 그러느라면 이제 그 새끼가 온 근거지안을 다 돌아가다가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판인데 아무래도 잃어버린것 같습니다. 가보로 깊이 감추어두자던노릇이 이제는 아주 잃어버린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허허… 그까짓 새끼야 잃어지면 뭐랍니까.》

갈림길에서 로인과 헤여진 장군님께서는 숙소로 향하시였다.

그이께서 숙소의 울바자옆을 돌아가시는데 마당에서 농민복차림을 한 중키의 남자가 달려나왔다. 김중권이였다.

그이께서는 팔을 벌리며 마주 달려가시였다.

《이게 누구요?》

사령관동지!》

장군님께서는 그를 포옹하시고 잔등을 쓸어만지시였다.

《수고했소!… 수고했소!》

량강구에서 헤여진 후로 처음 만나는 그였다.

그이께서는 김중권을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가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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