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군국기무처

3

 

《조선궁성을 점령하고 한성시내의 조선군대들을 완전무장해제시킨 현상황에서 더는 우리에게 저항할 세력은 없소.》

키 꺽두룩한 오또리공사는 자기 집무실에 앉아있는 오오시마려단장, 스기무라서기관 그리고 오까모도앞에서 일장 훈시를 하고있었다.

그는 오오시마려단장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이제 우리가 할바는 정부의 지령대로 일청전쟁을 일으키는것이요. 이를 위해 오오시마소장, 당신은 곧 정부의 지령대로 아산의 청군을 소멸하기 위해 진출하시오. 당신의 진출구실은 내가 조선왕으로부터 받아내겠소. 그리고 스기무라군과 오까모도군!》

스기무라와 오까모도는 자못 엄숙한 자세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들은 시급히 우리가 신임할수 있는 친일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들을 선발하시오. 이제는 조선에 일청전쟁을 뒤받침해줄수 있고 내정개혁을 단행할수 있는 친일정부를 내오는것이 급선무요.》

《하!》

오까모도와 스기무라가 무어라고 수군거리더니 곧 방에서 나갔다. 잠시후에 다시 방에 들어온 그들은 오또리공사의 집무탁에 문건철을 펼쳐놓았다.

《이것이 우리가 리용할수 있는 친일계인물들입니다.》

오또리는 그들의 일솜씨가 마음에 드는듯 잠시 두사람의 얼굴을 일별하고나서 문건철에 눈길을 주었다.

사진 한장을 집어드는 오또리에게 오까모도가 설명했다.

《김가진입니다. 세도가인 안동 김씨출신으로 몇해동안 일본주재 조선공사관원으로 근무하면서 친일적인 경향을 띠게 되였습니다.》

《음.》

오또리는 다른 사진을 집어들었다.

《이자는?》

《군부출신으로 안경수란자입니다.》

이번에는 스기무라가 설명했다.

오또리는 또 다른 사진을 집어들었다.

《조희연입니다.》

오까모도가 조희연은 고종 11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지금까지 군직에 적을 두고있는자라고 설명했다. 오까모도와 스기무라는 마치도 자기들의 활동성과를 승벽내기로 자랑하는듯싶었다.

오또리는 흥미를 잃은듯 머리를 흔들었다.

《이런자들뿐인가?》

스기무라가 다른 사진 한장을 집어 오또리에게 넘겨주었다.

《유길준이라고 조선에서는 그중 유식한자입니다.》

오또리는 유길준의 사진을 유심히 보며 물었다.

《어데서 공부했는가?》

《23살때 우리 일본에 건너가 후꾸자와 유기찌가 운영한 게이오의숙에서 몇해 공부를 하고 이어 미국에 가서 워싱톤대학과 보스톤대학을 졸업한 후 유럽각국을 돌아다니다가 귀국한자입니다.》

《학력이 대단하구만.》

《인권옹호론자로서 〈사람우에 사람이 없고 사람밑에 사람이 없다〉는 말로 유명해진 대표적인 지식분자입니다.》

《사람우에 사람이 없다. … 평등주의자구만.》

《국권론에서도 유길준은 〈나라우에 나라 없고 나라밑에 나라 없다〉는 신념을 전면에 내세우고있습니다.》

《나라우에 나라 없다.》 오또리는 가소롭다는듯 웃음을 지었다.

《유길준이란자는 천하에 어리석은 작자로군. 식자우환이라고 사람이 지내 공부를 많이 해도 바보가 된단 말이요. 그러기에 예적 진시황이 분서갱유(책들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생매장)했던거요. 세상이란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이 있기마련으로 국가간에도 지배하는 나라와 지배받는 나라가 있는 법이요.》

《아무튼 대원군정권에 친일파로 입각시킬 사람들은 이러루합니다.》

스기무라의 말에 오또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런 송사리들밖에 없는가?》

스기무라가 오또리의 낯색을 살피며 한마디 했다.

《올챙이가 자라서 개구리가 되는것이 아닙니까?》

《정치는 약육강식이므로 기다려주질 않아. 좀더 굵직한 인물이 있어야겠는데…》

《참, 박영효같은 인물을 불러들이면 어떨가요?》

오까모도의 말에 오또리공사가 대뜸 물었다.

《박영효? 어떤자요?》

《도꾜에 있는 이전 조선 철종왕의 사위인 금릉위 말입니다.》

《오, 갑신정변망명객?》

《예.》

《좋아, 외무성에 의뢰하라구. 그리고 당장은 이 사람들을 대원군에게 천거하게, 꿩대신에 닭이라도 써야 할 판이니…》

오까모도와 스기무라는 목례를 하고 방에서 나갔다.

이튿날, 오까모도는 경회루의 련못가에서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대원군을 찾아갔다.

집정을 하자니 어떤가고 묻는 오까모도의 인사말에 대원군은 쓴외를 맛본 인상으로 얼굴을 찌프리며 퉁명스럽게 내쏘았다.

《집정? … 골치거리외다.》

강제로 끌려나온 대원군이라 인상이 좋을리 없다고 생각한 오까모도는 표정을 부드럽게 가지며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빨리 새 정부를 조각하셔야지요.》

《새 정부? …》

대원군은 여전히 시답지 않아하는 표정이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오까모도는 품속에서 종이장을 꺼내여 대원군에게 주었다.

《새 정부에 이 사람들을 꼭 기용하십시오. 대세에 밝고 지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일본당의 사람들인가요?》

대원군이 오까모도를 치떠보았다.

《개혁인사들이지요.》

《개혁인사라, 개혁인사… 마, 어디 봅시다.》

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여 귀에 건 대원군은 종이장을 쳐들고 그 무슨 소학교 생도들 이름을 부르듯 소리내여 읽었다.

《안경수라, 김가진이, 마, 유길준이, 김학우, 조희연이라… 알만 하외다. 일본공사관에 나드는 사람들이구료.》

빈정거리기만 하는 대원군을 쏘아보는 오까모도의 눈초리는 무척 날카로왔다. 그 눈초리를 마주 쏘아보는 대원군의 길게 째진 엄한 눈, 눈싸움에서 오까모도는 지고말았다.

대원군은 본의아니게 왜놈들에 의해 집정의 자리에 끌려나오긴 했으나 결코 허송세월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라의 병페로 되고있는 문제, 특히 민씨일족의 전횡을 없애려고 결심하였다.

며칠후 자기 처소의 팔걸이의자에 위엄기있게 앉은 대원군은 눈살을 찌프리고 자기앞을 쏘아보고있었다.

그의 앞에는 민씨일족의 우두머리라고 할수 있는 전좌찬성 민영준, 전통제사 민응식, 전통제사 민형식 그리고 전경주부윤 민치헌이가 부복하고있었다.

두터운 구름장이 해빛을 가리우고있어 방안은 어둑침침했고 한여름철인데도 음랭한 기운이 풍겼다. 드디여 대원군이 노성을 터뜨렸다.

《백성을 학대하는것은 곧 나라를 배반하는것이다. 한세상 떠들썩하게 소문난 민영준이, 너의 죄상을 무엇으로 가리우겠느냐! 너는 걸터듬질만 일삼아서 자기 배를 채운다는 원망을 샀으니 저 멀리 령광군 임자도에 귀양보냄이 마땅할지어다.》

대원군은 민영준이가 조정을 가로타고앉아 온갖 전횡을 다 부렸으며 더우기 자기네 민씨척족의 권세를 부지하기 위해 청나라를 대국으로 섬기면서 아부아첨을 일삼았을뿐만아니라 동학란을 계기로 청국에 청병하는데 앞장서날뜀으로써 청국군대는 물론 일본군대까지 이 땅에 쓸어들게 만든 죄행을 더 꾸짖고싶었으나 꾹 참고 그 다음에 꿇어앉아있는 민응식이한테로 눈길을 돌렸다. 민응식은 임오군란때 민비를 충주 장호원에 있는 자기 집에 피신시켜준 공로로 일약 출세한자였다.

《민응식이, 너는 통제사로서 군영을 내오자 뜯어고친것이 많고 무명잡세를 함부로 거두어 물의를 일으켰으니 외진 섬인 강진현 고금도에 귀양보낼지어다.》

할 소리가 없는 민씨들은 고개를 푹 떨구고 대원군의 방을 나서자바람으로 민비를 찾아갔다. 그들은 다 앙앙불락한 표정들이였다.

건청궁의 곤녕합에서 그들은 민비앞에 엎드려 자기들의 억울한 처지를 하소연하였다.

민비는 말없이 입술을 옥물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루종일 하늘을 메우고있던 두터운 회색구름장이 드티면서 그 짬으로 노란 여우볕이 야즐거렸다.

이윽고 민비는 자기네 민씨일족들을 밉광스럽게 흘겨보며 쌀쌀하게 내뱉았다.

《민씨세도재상들이라고 온 세상의 원망을 샀으니 마땅하지요. 내 얼굴에 먹칠을 적게 하였소?》

할 소리가 없는 민씨들은 그저 머리를 조아릴뿐이였다.

《황송하여이다, 마마…》

민응식이가 간절한 눈길로 민비를 쳐다보며 얼굴을 애소로 일그러뜨렸다.

《마마, 제발 소신들을 저버리지 말아주옵소서.》

민비가 앉음새를 고쳐앉으며 내쏘았다.

《내 처지도 경들과 다를바 없소.》

《하, 앉은벼락이라더니…》

민영준이 한탄조로 뇌까리자 민형식이도 한마디 내뱉았다.

《중전마마, 저 흉악한 대원군이 마마도 가만두지 않을가싶어 실로 걱정스럽소이다.》

그러자 민비가 오연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대원위도 이제는 어금이 없는 사자요.》

《하오나 늙어두 호랑이라구 저 대원군의 발통은 아직 여간 드세지 않소이다.》

민응식이가 자못 걱정스러운듯이 이런 소리를 하자 민비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경들은 뒤일을 기약하고 귀양살이를 잘 견디여내시오.》

《중전마마, 소신들은 그저 마마만 믿겠소옵니다.》

《마마! …》

눈물을 흘리며 애소하는 민씨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민비의 눈가에는 심각한 기색이 어렸다.

그렇다, 자기가 기우했던바대로 대원군은 호랑이발통같은 무서운 힘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무슨 일을 더 칠지 어찌 알겠는가.

민비는 심경이 초조하고 불안스러웠다.

민씨들과 엇바뀌여 김병시, 조병세, 정범조가 들어와 민비앞에 부복했다.

《아니, 경들은 웬일입니까?》

민비가 놀란 표정을 짓자 김병시가 전하께 하직인사를 고하고저 입궐하였다고 입을 열었다.

민비는 더욱 놀라와했다. 하직인사라니? …

또다시 김병시가 말했다.

《우리 세 정승은 한날한시에 파직이 되였소옵니다.》

《정승대감들까지?! …》 민비는 혼자소리로 야멸차게 뇌였다. 《승해! 과히 승해!》

정범조가 대원위대감은 정말 너무하다고 얼른 민비의 말을 받았다.

그러자 민비는 벽의 한점을 응시하며 분연히 내뱉았다.

《내가 말하는건 대원위대감이 아닙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였다. 대원군이 무엇때문에 세 정승까지 내쫓겠는가. 이것은 친청적인 경향을 가진 조선정부를 뒤집고 친일정부를 세우려는 일본의 간책임을 민비는 파악할수 있었다.

세 정승이 사뭇 놀라마지않자 민비는 여전히 벽을 바라보며 격분을 터뜨렸다.

《나는 왜인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대원군은 왜인들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인들이 장차 이 나라를 어느 지경으로 만들것인가 생각하면 잠자리도 섶단같고 수라도 쓰디쓴 열물같습니다.》

고뇌에 잠긴 민비를 보며 김병시가 소신들의 생각이 짧았다고 자책에 잠겨 중얼거렸다.

《화는 복의 씨, 복은 화의 씨, 전화위복이라고 이제 화가 복될 날이 꼭 있을겁니다.》

여전히 벽의 한점을 응시하며 민비가 나직이 그러나 또박또박 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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