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군국기무처

4

 

마루에 놓인 화로에서 모기쑥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 열어놓은 문에 발을 드리운 방안에 주인 김홍집과 함께 어윤중, 김윤식이들이 술상두리에 앉아있었다.

김홍집이 부채질을 하며 탄식하듯 말하였다.

《갑신년이래로 10년간 우리는 개화파로 몰려 빛을 보지 못하였소. 나는 그나마 판부사라는 한직에 있었지만 운양(김윤식의 호)과 일재(어윤중의 호)는 참으로 다난다사하게 세월을 보냈지요.》

어윤중이 침울한 표정이 어린 얼굴을 쳐들었다.

《이제 지나간 일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김윤식은 장죽만 뻐금뻐금 빨뿐 말이 없었다. 그중 년장자로 가슴우에 흰수염이 드리운 그는 평소에도 말이 적었다.

김홍집이 고개를 돌려 어둠에 묻힌 문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비감과 울분의 괴로운 표정이 어려있었다.

《10년에 걸치는 대원위대감의 완고한 쇄국정치로 나라의 발전이 크게 저애되였는데 또 20년에 이르는 민중전의 마련없는 개국정사로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닙니다.》

《이대로 가다간 몇년을 부지할것 같지 못하외다.》

김윤식이가 개탄하듯 뜨직뜨직 입을 놀렸다.

《일찌기 김옥균이도 자수자강을 개화파의 기본정치강령으로 내세웠지만 실로 자강하지 않고서는 오늘의 정국을 타개할수 없습니다.》

김홍집의 말에 어윤중이가 제꺽 호응해나섰다.

《옳습니다. 지금의 정세로 보건대 자강하지 않고서는 나라를 보존할수 없습니다. 일본이 우리를 침략할 뜻이 있는가 없는가는 그들에게 달린것이 아니라 우리자체에 있으며 우리가 부강할수 있는 길을 찾아 그를 수행한다면 그가 어찌 감히 침략할 의사를 품을수 있겠소이까!》

갑자기 김홍집이가 부채를 탁 접으며 결기있게 말했다.

《허나 이제는 우리의 소신을 펼칠 때가 되였소이다.》

어윤중의 눈빛이 긴장해지고 김윤식이도 장죽의 꼭지를 입에서 떼였다.

《궁성을 타고앉은 일본이 상감과 중전을 유페시키고 내정개혁을 강요하고있는데두요?》 어윤중이가 의문스러운듯 고개를 기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완고한 대원군이 집정의 자리에 다시 올라앉지 않았습니까?》

《그러기에 기회가 좋다는겁니다.》

어윤중과 김윤식은 김홍집의 말뜻을 모르겠다는듯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김홍집이가 그러는 두사람의 무릎을 두드리며 절절하게 말했다.

《이것 보시오. 일본군대의 왕궁습격으로 수구파인 민씨척족세력이 다 밀려나고 또 그들을 뒤받침해주던 청나라세력도 일본에게 몰리고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우리 조선의 내정개혁을 표방하는지라 우리 자체의 개혁사업을 공공연히 반대하지는 못합니다.》

그제야 깨도가 되는지 어윤중이 술상을 두드렸다.

《옳습니다, 그렇군요.》

김홍집이가 신심에 넘쳐 두사람을 갈마보며 지금 민씨척족세력을 내쫓고 자기의 권력을 다시 세우려는 대원위대감의 의도와 친일정권을 꾸미려는 일본의 기도를 유리하게 리용하면서 혁신정부를 세워 페정쇄신을 과단성있게 내밀어보자고 열띤 소리로 말했다.

김윤식이가 문득 장죽의 대통으로 놋재털이를 두들겼다.

《그럼즉하오. 더구나 도원이 조정의 수반인 령의정이 되였은즉 일이야 떼논 당상이지.》

《그러니 대감들도 마음을 든든히 가지시오.》

김홍집이가 다시금 두사람을 갈마보며 힘있게 말했다.

《일재는 탁지대신, 운양은 외무대신으로 발탁이 될거외다. 내 성상전하와 대원위대감께 품하였더니 쾌히 응하더이다. 대감들에 대한 그분들의 인상이 아주 좋습니다.》

《그렇소이까?》

김윤식이와 어윤중의 얼굴에는 환희와 결의의 파문이 일었다.

눈굽을 슴뻑이는 김윤식에게 김홍집이 부드럽게 일렀다.

《류수대감은 곧 강화부로 내려가 짐을 꾸리도록 하시오.》

《고맙소이다, 도원.》

김윤식은 끝내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김홍집은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웃몸을 가볍게 흔들며 사색에 잠겨 혼자소리하듯 말을 뇌였다.

《10년전 갑신에 김옥균이네들은 성급하고 무모하게 정변을 일으켜 실패하였지. 허나 우리는 원만하고 점차적인 방법으로 경장을 밀고 나갑시다.》

어윤중이가 군국기무처개청식을 곧 연다고 하던데 그 일은 어찌 되는가고 성급히 물었다.

김홍집은 군국기무처는 이미 개혁사업을 맡아하던 교정청을 발전시킨 협의제립법기구인데 재목이 못되는 자기가 그 총재직을 맡았다고 설명해주었다.

김윤식이가 의당 그래야 한다고 얼른 긍정해나섰다.

김홍집은 의연 생각깊은 표정이였다. 그는 이 시각도 군국기무처를 운영하려면 일본사람들의 압력과 집정관인 대원위대감의 간섭이 조련치 않을것이라는 우려를 하고있었다. 그러던 그는 문득 음식상을 훑어보더니 낯에 웃음을 띠웠다.

《가만, 이거 내가 말만 하다보니 음식이 다 식었구려. 자, 어서 듭시다.》

그러나 김윤식과 어윤중은 음식에는 관심이 없는듯 생각에만 집념하고있었다.

 

경복궁의 근정전에서 군국기무처 개청식이 진행되고있었다.

대원군과 김홍집 그리고 박정양, 김윤식 등 17명의 기무처회의원 성원들이 좌우로 자리잡고 다른 한쪽에 오또리공사, 스기무라서기관이 근엄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김홍집이 좌석에서 일어나 발언하고있었다.

《금일 군국기무처개청식에는 생광스럽게도 오또리공사각하와 스기무라서기관께서 립석하시였음을 제 의원들에게 먼저 말씀드립니다.》

김홍집이 오또리와 스기무라쪽에 대고 가볍게 눈인사를 보냈다. 그는 발언을 계속했다.

《또한 년로하신 몸임에도 불구하고 군국의 장래를 위해 진력하시는 국태공께서 기무처를 보살피시려 친히 이 자리에 참석하신데 대해 본처를 대표하여 감사를 드리는바입니다.》

김홍집은 대원군을 향해 경건히 고개를 숙였다.

위엄있게 틀고앉은 대원군은 김홍집에게 가볍게 답례를 표시했다.

장내를 일별한 김홍집은 군국기무처의 관제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내정개혁을 단행하기 위하여 조직되였던 교정청의 새로운 발전기관으로서 군국기무처는 군국의 기무 및 일체 사무의 개혁을 담당하며 군국의 기무는 본처에서 토의결정한 후 국왕전하의 조칙을 받아 시행된다고 말하고나서 군국기무처에서 문제토의와 가결은 17명회의원의 다수결로 진행되며 군국기무처회의는 모두 공개적으로 진행되므로 누구나 방청할수 있다는데 대해 특별히 강조하였다.

장내에서 웅성거리는 파문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홍집은 저윽 흥분한 기색으로 발언을 계속하였다.

《제위들, 목하정세는 참으로 복잡다단하며 군국의 앞에는 실로 험산준령이 놓여있습니다. 본 총재관은 이 엄숙한 자리를 빌어 우로는 국왕전하를 충성으로 받들고 아래로는 억조창생을 위해 한몸바치겠다는것을 맹약하면서 제위들도 우리 해동성국의 무궁번영을 위해 일심전력하리라는것을 바라마지않는바입니다.》

마차를 타고 공사관으로 돌아가는 오또리와 스기무라의 기색은 마뜩지 않았다.

오또리가 심각한 기색으로 스기무라에게 물었다.

《어떤가?》

스기무라도 신중한 표정이였다.

《어쩐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군국기무처가 우리의 의도대로 내정개혁을 벌리겠는가 하는 의심이 드는군요.》

그들의 우려도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조선의 군국기무처가 유럽의 도이췰란드나 자기네 일본의 립헌군주제보다 더 발전된 정치체제라는것을 그들이 간파했던것이다. 군국기무처는 군주의 절대권을 인정한것과는 다른 성격의 정치형태였던것이다.

조선의 혁신세력이 독자적으로 수립한 군국기무처는 종래의 낡은 군주전제제도를 배제한 근대적인 정치체제가 분명했다. 섭정의 자리에 들어앉은 대원군이나 국왕의 권한은 형편없이 약화될것이였다.

오또리공사가 말머리를 돌렸다.

《좌우간 두고보기요. 아직 시작이니까. 참, 민비는 요즘 어떻게 지내오?》

《대원군에게 몰려 숨도 크게 못 쉬는 모양입니다.》

《그럴테지, 허허…》

《우리 첩자 진령군이 민비의 곁에 늘 붙어있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어쨌든 민비의 손발을 묶어놔야 해.》 오또리가 흡족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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