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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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빛으로 뿌옇게 흐려진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두만강반의 산과 들에 하얀 은세계를 펼치였다. 만주대륙과 조선을 갈라놓은 강의 얼음판에도 눈이 덮였다.

하염없이 흩날리는 눈발이 희뿌연 안개처럼 사람들의 시야를 덮어버리는 이런 궂은날에는 누구나 길에 나서기를 저어하건만 두만강기슭의 경비도로로는 한 기마종대가 달려가고있었다.

짤막한 대오였다.

눈발속을 헤쳐가는 기마종대는 제국군가의 단조로운 가락과도 같이 일매진 습보로 달려나가면서 군마들의 투레질소리로 국경의 고요를 흔들었다.

유표하게 몸매가 늘씬한 두번째 군마에 타고있는 사또 요시나리소좌는 들썩이는 안장우에서 궁둥이를 가볍게 오르내리며 앞에 거칠것이 무엇이냐는 기세로 달리였다.

귀전에서 바람이 울부짖고 눈송이들이 얼굴을 때렸다.

그는 때로는 얼굴을 도고하게 들어 탄상의 실눈으로 국경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사또는 새 부임지에 도착한지 열흘째 되는 날인 오늘 비로소 국경시찰을 떠난것이다.

앞에서는 기마척후병이 달리고 뒤에서는 다섯명의 기마순찰병들이 소좌에게 민감하게 보조를 맞추며 따라갔다. 그들은 두만강기슭의 구배가 심한 경비도로를 따라 계속 달리였다.

사또소좌는 정갈하게 흰 숫눈길에 찍힌 척후의 말발굽자리를 보자 앞에 대고 쾌활하게 소리쳤다.

《오-이, 척후! 내 뒤롯!》

근무의 첫길에 깔린 숫눈을 앞장에서 밟고싶었던것이다.

저 앞쪽에서 눈발에 가리워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던 기마척후병은 무슨 뜻인지 몰라 말을 세우고 머뭇거리는것 같더니 재차 소리치자 눈송이들을 날리며 뛰여왔다.

그는 말을 돌려 기마종대의 옆에 서며 옹위의 태세를 취하였다.

사또소좌는 흐뭇한 마음으로 말을 습보로 달리였다. 마주 날아드는 눈발이 선뜩선뜩 얼굴을 스치고 바람을 안은 만또자락이 환상의 날개처럼 펄럭이였다.

사또는 턱을 쳐들고 실눈을 지어 아득한 만주쪽하늘을 바라보았다.

(저 하늘밑에 공산구역이 있다지.… 그뒤에는 쏘베트로씨야라.… 호, 이것이 국경인가!)

기마종대는 한 산굽이를 돌다가 길가에 눈을 맞으며 서있는 5~6명의 촌유지풍의 사람들을 만났다.

기마척후병이 너희들은 누구냐고 소리치자 수염이 위엄스럽고 회색두루마기를 입은 키가 후리후리한자가 머리를 깊이 숙여 절하며 나리들은 면경계를 넘어 풍인면에 들어섰소이다라고 하며 자기를 면장이라고 아뢰였다. 그러자 곁에 서있던 대머리에 몸이 옆으로 퍼지고 검정외투를 입은자가 손에 벗어쥔 털벙거지를 주무르며 날씨도 찬데 저희들이 약소한 자리를 마련하였으니 잠간 몸이나 덥히고가면 어떻소이까라고 했다.

너는 누구냐고 묻자 그자는 이 고장의 지주인데 서완오라고 한다고 하며 얼굴에 비위좋은 웃음을 가득 담았다.

말우에서 그자들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던 사또소좌는 역겨운것을 보기라도 한듯 머리를 외로 돌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배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벽지의 길에서 우연히 만난 식민지유지들의 촌스러운 알현에 배속이 흔들거리기도 했지만 가슴에 갈마드는 의혹이 더 컸다.

(저 촌뜨기들이 내가 통과한다는걸 어디서… 어떻게 알았을가?)

이 길에 좌관이 나타난 일이 처음일수는 없겠는데 저들이 길가까지 나와서 마중하는것을 보면 어느 누가 자기의 신분이며 배경을 알아내여 소문을 퍼뜨린것이 아닐가 하는 의혹이 들었다.

사또 요시나리는 직계장관인 쯔루하라대좌에게까지 자신의 정치적배경을 감추었다.

사또는 파쑈적인 청년장교들의 비밀단체인 《사꾸라까이》(앵회)의 중심인물들중의 하나였다. 그는 정치적민감성과 군사적음모에서의 타산깊은 과단성으로 하여 일찌기 동료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들, 청년장교들은 전향한 사회민주주의자 가메이의 리론적인 뒤받침으로 정당내각으로는 《데모크라씨》라는 혐오스러운 허울의 거치장스러움과 그 우유부단성때문에 대륙제패를 단행할수 없다는 확고한 론거를 세우고 거사를 은밀히 준비하였었다. 그들은 지난해 3월, 일거에 정당내각을 박멸하고 륙군대신 우가끼대장을 두목으로 하는 군부독재정권을 세우려는 목표밑에 쿠데타를 단행하였다가 준비미숙으로 실패하였다.

법정은 그들을 엄벌에 처한다고 소리쳤으나 군부의 유력자들은 뒤로 빼돌려 관동군사령부로 보냈다.

사또는 이때 능숙하게 몸을 빼여 대본영참모부서의 말석에 숨어있다가 올해 봄의 5월15일사건때 또 두각을 나타내였다. 해군장교들과 륙군사관학교 학생들로 무어진 파쑈일당이 대낮에 수상관저를 기습하여 수상 이누가이를 사살할 때 그는 경시청과 정우회본부로 밀려가는 륙군사관생들의 앞장에서 일본도를 휘두르며 그자들을 파괴와 살륙에로 불렀다.

도륙을 각오한 파쑈의 열광밑에 정당내각은 박멸되고 해군대장 사이또를 두목으로 하는 파쑈내각이 세워졌다. 그후 사또는 그자신의 청원과 륙군수뇌부의 밝히지 않는 의도에 따라 조선주둔군에 파견되였다.

서울 룡산은 조선주둔군의 본거지였다. 사또는 조선주둔군사령부에서 석달동안 미배치로 빈둥거렸다. 의아함을 금치 못한 그는 인사계의 장교들에게 미배치로 두는 원인을 밝히라고 소리쳤으나 그들은 한결같이 벙글거리며 조선을 한껏 맛보라는 애매몽롱한 암시만을 던졌다. 리웅준이라는 조선인소좌가 접근해왔다.

자기를 도꾜 륙군사관학교 6기졸업생이라고 소개한 그는 십여년전에 대정대장의 예하에서 씨비리출정에 참가하여 무공을 떨치던 이야기를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리웅준 외에도 도꾜출신의 쟁쟁한 청년장교들이 그의 둘레에 모여들었다.

새 동료들은 식민지주둔군의 거드름 피우는 생활에 만족하고있었다. 그자들중에는 주색에 빠진자들도 있어 신정으로 유혹하며 화류계의 전성기라느니 지금 신정의 창기들중에는 백인창기들도 있다느니 하며 지껄여댔다. 사또는 자신의 황도정신에 대한 우롱으로 받아들여 하마트면 새 동료들에게 검을 뽑아들번 했다.

사또는 리웅준의 안내로 유람의 길을 떠났다. 경주와 동래와 진해, 금강산, 묘향산, 주을온포… 조선의 청신한 공기를 한껏 들여마시고 서울로 돌아온 그는 뜻밖에도 총독 우가끼대장의 부름을 받았다.

서울의 하늘에 장미빛저녁노을이 비낀 9월의 서늘한 저녁녘이였다.

총독은 저택정원에서 그를 맞아주었다. 정원수의 그늘밑에 놓인 참대의자에 두사람은 오래동안 마주앉아있었다.

한때 베를린주재 제국대사관 무관으로 활약한 시절도 있었으며 도꾜의 청년장교들속에 파시즘을 고취하면서 군부내 신사조의 선각자로 자처하던 우가끼대장은 이미 로인이 되였다.

로대장은 희끗희끗하게 숱진 눈섭밑에서 번쩍이는 눈에 물기를 머금고 쓸쓸한 회억의 미소를 지었다.

《자네들까지 대륙과 반도로 나오고보니 도꾜는 텅 비였어.》

《지난해 봄 저희들의 경거망동이 각하의 립장을 난처하게 했으리라고 믿습니다.》

《오, 사꾸라까이 말인가?… 자네들이 나를 정부수반으로 내세웠다거나… 내가 그 덕에 반도로 나오게 된것과는 관계없이 나는 군인의 량심으로 그 의거를 찬미하고있네.》

《각하!…》

《슬픔은 페하의 측근에 정치적감상주의자들이 있다는거네.… 아시아인들이 아시아적사고방법과 정서의 테두리안에 갇혀있으니 저 아리아인들처럼 랭철한 리성으로 대세를 보지 못하지. 파쑈체제를 세우지 않고는 공산주의침습을 막아내지 못해.… 군수뇌부가 자네를 여기로 파견한것은… 이제는 터놓고 말할수 있네만… 나와 가와시마사령관이 협의하고 요청한데 따른 조치야.》

사또는 머리를 깊이 숙여 사의를 표했다.

《지금 북부국경지대와 간도일대는 적색불온지대로서 그 소란이 극도에 이르고있네. 말하자면 공산주의자들의 세상이야. 로씨야를 모방한 쏘베트정부까지 섰네.… 부임지로 가면 관동군사령부에서 모 요원이 적절한 기회에 자네와 련계를 맺으려고 할거네. 차후지시는 그에게서 받게나.》

면담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순간 사또는 벌떡 일어나 기착을 했다.

로대장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얼굴을 들여다보며 가볍게 한숨을 지었다.

《75련대주둔지인 회령이라고 하는데는 인구가 1만 7천을 좀 넘는 소도시라는데 우리 야마도사람들에게는 의미깊은 고장일세. 그 옛날 가또 기요마사가 거기까지 북상하여갔댔으니까.… 회령이 부대주둔지로 된것은 그런 연고에도 관계되네.

그 혈기에 벽지생활이 갑갑하겠지만 젊음을 탕진말고 심신을 단련하여 무공을 떨치라구.》

사또가 인사를 차려 서둘러 돌아서려고 하자 로대장은 정원을 좀 거닐자고 했다.

말없이 정원을 한바퀴 돌고나서 총독은 무공을 세우게 한 다음 그를 도이췰란드에 파견할것이라는 군부의 계획을 넌지시 암시해주었다.

쯔루하라대좌는 신임관이 좌관으로서는 너무나도 젊은데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면서도 그를 애숭이취급은 하지 않고 관례에 따라 장교식당에서 간소한 주연을 베풀어 환영하였다. 그리고 군마보충부 웅기(당시)지부산하의 경흥, 경원양마장들을 돌아보고 마음에 드는 군마를 고르라고 했다.

경원양마장에서는 일로전쟁에 참전했다는 말라꽹이 늙다리군조가 크레졸냄새같은것을 풍기며 사또일행을 안내하였다.

그는 이 양마장이 방목지 1만헥터에 군마보관마리수 500마리, 년생산마리수 100마리라고 자랑하며 양마장시설을 참관시켰다. 그리고 조교사들이 말을 타고 달리게 하여 여러종의 말들의 체질, 질주능력, 대담성과 영민성, 몸맵시 등을 보여주면서 마음에 드는 놈을 손수 골라 애마로 삼으라고 권했다.

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땅에 붙어 달리던 말들이 장애물차단봉우를 맵시있게 날아넘을 때마다 늙다리군조는 환희에 넘쳐 《저건 미찌꼬! 저건 하나꼬! 오- 에이꼬!》 하고 웨치면서 녀자이름으로 붙인 군마들의 별명까지 높은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사또는 일본도를 무릎사이에 짚고 앉아서 유쾌하게 웃어댔다.

그때의 만족스럽던 기분은 평생을 두고 잊을것 같지 않다.… 거기에서 끌어온 군마 《하나꼬》는 눈이 하얗게 깔린 경비도로를 경쾌하게 달리였다.

참모인 다나까중위가 말에 박차를 가하여 사또와 가지런히 서며 국경의 인상을 물었다.

《대체로 좋아, 한가지 불만은… 경비도로가 왜 이 모양인가? 기복이 심한데다가 필요이상 에돌았구만. 이따위 길은 한가한 유람객들에게나 좋겠다. 군들은 이 시골에서 전시체제에 맞게 도로 하나 닦아놓지 못했는가?… 이런 길로는 공산군과 못 싸워. 보라구, 여기서도 필요이상으로 저렇게 산을 에돌았거던.》

《농지때문입니다. 도청과 총독부의 유력자들을 낀 지주들의 매수공작에 이 모양이 된것 같습니다.》

《바보들… 군도를 뽑아 지도에 대고 직선을 그어버릴만 한 용사는 없었는가? 사단이상의 병력도 신속히 기동할수 있게 도로부터 고쳐야겠다. 그래야 저 공산구역도 일거에 공격소탕할수 있다. 미구에 저 강건너는 큰 전장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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