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장

군국기무처

10

 

담배를 피워물고 전신기앞에서 수신을 하고있던 일본공사관의 젊은 전신수가 문득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급히 담배불을 비벼 꺼버렸다. 레시바에 귀를 강구며 수신내용을 부지런히 종이에 적어나가던 그는 이윽고 전보장을 들고 성급히 전신실을 나섰다.

두세계단씩 훌쩍훌쩍 뛰여내려간 그는 서기관 스기무라의 방에 뛰여들어가 전보장을 내밀었다.

《지급전보입니다.》

전보장을 들고 읽어보던 스기무라의 낯에 대뜸 희색이 만면해졌다.

《요로시!(좋아!)》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이번에는 전신수에게서 계주봉을 이어받듯 전보장을 넘겨받은 스기무라가 방에서 급히 뛰여나갔다.

전신수가 그의 등뒤에 대고 황급히 소리쳤다.

《서기관님, 회신은?》

스기무라는 걸음도 멈추지 않고 지시했다.

《기다리라.》

문을 열어젖히며 오또리공사의 방에 뛰여든 스기무라는 환희에 차서 부르짖었다.

《각하, 드디여 터졌습니다!》

집무탁앞에 앉아있던 오또리가 돋보기너머로 스기무라를 언짢게 보았다.

《각하, 됐습니다. 아주 잘됐습니다.》

스기무라는 저도 모르게 오또리의 말버릇을 흉내냈다. 오또리는 여전히 안경너머로 스기무라를 흘겨보았다.

《나니? (뭐야?)》

《자!》

스기무라는 마치도 주패장을 내대듯 오또리의 책상우에 전보장을 내놓았다.

안경을 고쳐끼고 전보장을 들여다보던 오또리가 불시에 의자에서 뛰쳐일어나며 웨쳤다.

《반자이!(만세!)》

그는 늙데기같지 않게 광기가 뻗쳐 날뛰였다.

《스기무라, 뭘하는가? 빨리 공사관원들을 전원 모이도록 하라!》

방에서 뛰여나가는 스기무라를 보던 오또리가 하녀를 소리쳐불렀다.

《가네꼬!》

하녀가 황급히 공사의 방으로 들어서며 머리를 숙였다.

《가네꼬, 건배!》

《하이.》

가네꼬는 머리를 숙이고 뒤걸음질로 방에서 나갔다.

허리에 두손을 짚고 범잡은 포수마냥 기고만장하여 방안을 오락가락하던 오또리는 공사관전원이 집합했다는 스기무라의 보고를 받고 방에서 나갔다.

넓은 홀에 병사들마냥 정렬한 관원들앞에 두다리를 벌리고 선 오또리는 그들을 일별하고나서 한쪽구석에 다반을 들고 서있는 하녀에게 눈짓했다.

하녀가 돌아가며 공사관원들에게 다반의 술잔을 하나씩 안겨주었다.

오또리가 술잔을 높이 들고 기염을 토했다.

《제군들, 중대소식을 알려주기 위해 모이라고 했소. 지난 7월 25일 대본영의 출동명령을 받고 사세보군항으로부터 인천으로 항행중이던 이또오중장의 련합함대소속 쓰보이소장휘하의 제1대는 풍도앞바다에서 청국함대와 조우하여 교전하였소. 우리의 영용한 해군은 한시간반에 걸치는 격전에서 다대한 승리를 거두었는바 1 200명의 증파병력과 14문의 대포, 다량의 군수품을 싣고오던 청국수송선 〈고쇼〉호를 수장시켜버렸소. 이로써 제국해군은 개전벽두에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였소.》

감격으로 눈물이 글썽해진 오까모도가 술잔을 높이 쳐들고 환희에 넘쳐 웨쳤다. 다른 관원들도 웨쳤다.

《반자이!》

술잔이 흔들리고 술이 쏟아졌다.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시킨 오또리가 륙전에서도 제국황군은 혁혁한 승리를 거두었는바 7월 29일 밤 여기 서울을 출발한 오오시마소장의 혼성려단은 성환에서 청국군에 대한 포위공격을 진행하여 한시간반만에 청나라군대를 패주케 하였다고 했다.

또다시 술잔을 쳐들고 부르짖는 오까모도와 스기무라를 비롯한 관원들, 술잔이 흔들리고 술이 쏟아졌다.

《반자이!》

다시금 그들을 제지시킨 오또리공사는 자못 근엄한 표정으로 뇌까렸다.

《제군들, 오늘 8월 1일 제국정부는 천황페하의 어지를 받아 청국에 정식 선전포고를 하였소. 우리 야마도족이 일일천추로 고대하던 대륙진출의 위대한 시대가 막을 올렸단 말이요! 갑신으로부터 10년, 제국은 와신상담하여 군력을 키웠소. 이 군력으로 우리는 조선에서 청국세력을 몰아내고 장차는 조선을 교두보로 하여 저기 만주와 중원, 나아가서 시베리아까지 타고앉게 될것이요. 아시아의 맹주로 팔굉일우를 실현할 날이 멀지 않았단 말이요!》

오또리는 술잔을 높이 쳐들고 고함을 지르듯 웨쳤다.

《제군들, 그날을 위하여 건배!》

공사관원들이 술잔을 쳐들고 소리높이 호응하였다.

《건배!》

흥분과 감동, 감격과 충격으로 그들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호전적인 족속들에게 있어서 전승의 기쁨보다 더 환희로운 일이 또 어데 있겠는가. 그들은 거의나 다 쏟아져버린 빈 잔을 입에 기울였다.

 

더위를 먹거나 열병을 일으키는 한여름의 염장철이라 밤인데도 날씨는 못견디게 무덥고 답답했다. 하지만 전승을 경축하여 오또리공사가 성대하게 차린 연회가 벌어지고있는 남산기슭의 일본인려관 파성관은 모든 창문들이 꼭꼭 닫겨져있었다.

명색은 경축연회라고 하지만 실은 청나라와의 전쟁에 조선의 인적 및 물적력량을 일본이 깡그리 리용하기 위한 조일공수동맹을 조선과 체결하려는데 있었다. 하기에 오늘 연회에 초빙된 사람들은 전부 조선정계의 거물들이거나 친일파의 거두들이였다. 놈들은 자기들의 의도가 밖에 새여나가지 않게 하려고 창문들을 닫아맸을뿐아니라 불량배들로 안팎에 경비를 세웠다. 군대나 경찰들을 동원하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수 있기때문이였다.

귀빈실에는 오또리공사가 조선의정부의 령의정이요, 군국기무처 총재관인 김홍집이와 커다란 각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있었다.

오또리는 김홍집의 술잔에 데운 술이 담긴 주전자를 기울이며 은근스럽게 말했다.

《저쪽방에는 군국기무처의 소장파의원들이 모여앉았습니다. 각하야 조정의 수반인데 어떻게 그들과 섞여앉히겠습니까. 그래 따로 모시도록 했습니다.》

김홍집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의에 감사를 드립니다.》

《자, 어서…》

술잔을 기울인 오또리가 다시 김홍집의 빈 잔에 술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대감께서두 성환과 풍도해전에 대한 소식을 들었겠습니다만 우리 일본군은 무적황군입니다. 이제 평양성전투에서도 반드시 승리하고 조선의 자주독립을 확고히 보장할것입니다.》

《…》

김홍집은 덤덤히 아무 대꾸도 표정도 짓지 않았다.

술주전자를 든 게이샤가 교태를 부리며 들어왔다.

《각하, 덥힌 술입니다.》

오또리가 눈을 부라렸다.

《찾기 전에는 들어오지 말어.》

《하이.》

게이샤는 술주전자를 상우에 놓고 얼른 나가버렸다.

얼굴에 술꽃이 핀 오또리가 김홍집이를 구슬렸다.

《우리 일본군이 전승하고있는 기세를 타서 조선의 새 정부를 빨리 발표해야겠습니다.》

난처한 기색을 지은 김홍집이 딴전을 부렸다.

《그런데 대원위대감께서…》

《그건 걱정마시오. 대원군은 우리가 주물러놓겠습니다. 기름먹인 가죽은 부드러워지는 법이니까, 허허…》

김홍집은 말머리를 돌리며 오또리를 주시했다.

《그런데 공사, 궁성파수를 언제까지 일본군이 설 작정입니까?》

《내정개혁의 기틀이 잡힐 때까지는 일본군이 떠날수 없지요.》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오또리를 쳐다보며 김홍집은 허거픈 웃음을 웃었다.

《허, 지엄한 궁성을 타국군대가 파수를 선다는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기에 빨리 내정개혁을 해서 기틀이 서면 조선수비군에게 왕궁호위권을 넘겨주겠단 말입니다.》

《허허…》

김홍집은 여전히 허거픈 웃음만 웃었다.

한편 파성관의 다른 방에서는 오까모도와 스기무라 그리고 군국기무처 의원들인 친일파 김가진, 김학우, 유길준, 조희연, 안경수들이 각상을 하나씩 앞에 놓고 앉아있었다. 이 방에도 여느때 달리 게이샤가 하나도 없었다. 술이 몇순배 돌아 벌써 모두 거나해진 상태였다.

술을 마시면 눈알부터 빨개지는 오까모도가 좌중을 둘러보며 호기를 부렸다.

《제군들, 일청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학우가 웃음을 띠운 낯으로 오까모도를 건너다보며 아첨기 흐르는 소리를 했다.

《시작이 좋으면 끝도 좋다는 일본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옳소, 개전벽두부터 청국군은 수세에 몰려 퇴각하고있소.》

얼굴이 넙적한 유길준이 식자연하며 한마디했다.

《하지만 퇴각은 아직 패배가 아니지요.》

오까모도가 그를 쏘아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유상,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황군의 승리는 불보듯 명백하오.》

오까모도와는 달리 낯에 웃음을 띠운 스기무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예, 대일본국과 대조선국은 이제는 한배를 탔습니다. 한배를 탄 사람들은 서로 도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과 공수동맹을 맺을 생각입니다. 조약체결에서 여기에 오신 귀관들이 앞장서주길 바랍니다.》

조선관리들의 표정이 긴장해졌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 마주쳐다보기만 하였다. 그들은 이제야 오늘 연회에 자기들을 초청한 까닭을 알아차렸던것이다.

불시에 긴장하고 엄숙해진 좌중을 일별하며 오까모도가 날카로운 표정으로 내뱉았다.

《제군들, 이제는 립장이 명백해야 합니다. 일본의 벗이 되느냐, 원쑤가 되느냐. 전쟁마당에서는 중립이 허용되지 않소.》

오까모도의 말을 긍정하며 스기무라가 역시 부드럽게 뇌였다.

《오까모도상의 말이 옳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 일본에 보다 협력적인 립장에 서주기를 바랍니다.》

《한가지 비밀을 말해주겠소. 이제 며칠후에 김홍집을 총리대신으로 하는 새 내각을 조직하게 되는데 당신들은 정부의 요로직을 차지하게 되오.》

오까모도의 이런 소리를 스기무라가 얼른 충고했다.

《아아, 오까모도상. 창문에도 눈이 있고 벽에도 귀가 있다는 말 모르시오.》

《지금같은 전승의 시각에 시골아낙네같은 궁상은 떨지 맙시다. 차라리 이런 경우엔 기쁨을 함께 나누면 그것이 배로 커진다는 말이 더 합당할거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은근히 뒤가 켕긴 오까모도는 혹시 자기들의 말을 렴탐하는자가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번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미닫이를 열고 복도에 나선 그는 신발을 신었다. 제일 끝에 있는 구석방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며 시시덕거리며 웃는 소리가 났다. 경비를 교대하고 휴식하는 놈들이 거기서 먹자판을 벌린 모양이였다.

그런데 아양을 떠는 계집들의 목소리가 그의 귀전을 간지럽혔다. 그는 자기의 녀편네 야에와 무쯔와의 관계를 안 다음부터 왜선지 계집들에 대한 혐오감과 함께 일종의 증오심도 품게 되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불도 없는 컴컴한 복도를 걸어 구석방쪽으로 슬슬 다가갔다. 미닫이앞에까지 가니 방안에서 롱탕질을 치고있는 오사리잡년놈들의 소리가 확연히 들렸다.

《어서, 어서 더 마시라는데…》하고 강요하는것은 미야께의 목소리였고 《아, 됐어요. 당신도 이젠 그만두세요. 너무 취하면 재미를 못 봐요.》하는것은 파성관의 게이샤 하나쯔의 음성이였다. 누군가 하나쯔의 말을 긍정해나섰다.

《여 미야께, 하나쯔의 말을 들으라구. 지내 취하면 성성이생활을 못해.》

이 소리를 들은 오까모도의 낯에는 쓰거운 웃음이 떠올랐다. 이 방안에 있는 미야께를 비롯한 놈팽이들은 한방안에서 벌거벗고 엇바꾸어가며 이 계집, 저 계집을 다루는 성성이패의 불량배들이였고 갈보들이였다. 자칭 성성이패란 그들이 성성이같은 자기들의 란잡한 군혼적인 성생활을 특징지어 붙인 이름이였다.

《계집이란 다 같고같은데 난 하나쯔 하나면 돼.》

미야께의 혀꼬부라진 말에 또 어느 녀석이 시까스르는 소리를 했다.

《그러니 자넨 오늘부터 성성이로부터 사람이 되겠다는건가, 하하…》

《다윈의 진화론이군그래, 하하…》

또 어느 놈팽이가 제법 유식한 소리를 했다.

《흥, 누가 저 하나를 믿고 살겠대. 빈털터리주제에…》

하나쯔가 미야께를 빈정대는 소리였다.

《나도 이제 부자가 된단 말이야. 다까하시보다 더 큰 부자가 된단 말이야. 다까하시도 처음 조선에 올 땐 그것 하나밖에 차고 온것이 없었단 말이야.》

미야께가 화가 나서 내뱉는 소리였다.

《부자도 내막은 성성이야. 자, 이젠 술상을 치우고 성성이가 되자구. 게이샤, 너희들도 어서 옷을 벗어.》

《그래그래, 좋아. 선택권은 장겐뽀이(돌가위보)로 결정하자구.》

방안에서는 술상을 치우는 소리, 옷을 벗는 소리로 부산스러웠다. 뒤일은 더 들어봐야 뻔하기에 오까모도는 자리를 뜨고말았다. 그래 모두 성성이들이다.

그는 자기 방으로 돌아오면서 수치심 비슷한 불쾌감을 느꼈다. 세상사람들로부터 일본인들이 원숭이족속이라고 지탄받는 까닭은 야마도족이 문화가 뒤떨어지고 남의 흉내를 내기 좋아한다는데도 원인이 있지만 보다는 란잡하고 비인륜적인 성생활을 두고 말한다는것을 오까모도는 알고있었다. 하기에 맨처음으로 일본땅에 발을 들여놓은 서양인들인 네데를란드인도 일본은 성생활이 자유로와 좋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실 일본만큼 기생집과 유곽이 많은 나라가 또 어데 있겠는가. 그건 로출된것들이고 로출되지 않은 사창굴과 뚜쟁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 우리 일본인들은 전부 성성이들이다. 저 구석방에서 지금 짐승같이 는실난실 뒤섞여 성교를 하고있는 성성이패 년놈들도 그렇고 이밤에도 재미를 보고있을 자기 녀편네 야에며 무쯔외상 지어 정부수반이라고 하는 이또 히로부미는 은닉된 자식이 6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일본인들중에 눈이 안경쟁이가 특별히 많은것도 근친결혼의 후과이며 지어 신격화된 존재로 우상화되고있는 명치천황조차 근친간의 후과로 한쪽귀가 없는 병신이라고 하니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교자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김홍집의 표정은 시름겨웠다. 밤거리처럼 어쩐지 앞길이 캄캄하기만 하였다.

축등을 매단 일본인가게앞을 지나가던 그는 한 왜녀인의 거동에 눈길을 주었다.

중년의 왜녀인이 게다짝을 벗어놓고 맨땅에 꿇어앉아 두손을 합장하고 밤하늘을 우러러 열렬히 소원하고있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황페하께옵서 만년장수하옵시고 황군장병들 무운장구하옵시오.》

괴로운듯 김홍집은 눈을 감고말았다.

(점점 일본천지가 되여가는구나, 일본천지가…)

다시 눈을 뜨는 김홍집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아니다, 지금의 정세가 우리의 개혁에 도리여 유리할수가 있다. 일본이 전쟁에 몰두하고있는 이 기회에 개혁을 빨리 추진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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