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2 장

1

 

도꾜만의 아나미해변가는 여름철마다 피서를 위해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찬 바다물결이며 시원한 해풍은 더위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몸을 식혀주고 안정시켜주는것이다. 더우기 따끈한 모래불에 잔등이며 배를 대고 누워 해바라기를 하는 쾌감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일반해수욕장에서 도래굽이를 하나 돌면 귀족이나 정부요인 그리고 대기업가와 같은 지체높은 사람들이 리용하는 특별해수욕장이 있었다. 여기에는 일반시민이나 군인과 같은 하층인간들은 물론 중류층의 사람들도 출입이 엄금되여있었다.

커다란 양산밑의 맥주병과 고뿌가 놓인 둥그런 탁자주위에 총리 이또 히로부미, 내무대신 이노우에 가오루, 외무대신 무쯔 무네미쯔, 대장대신 와다나베 구니다께가 앉아있었다. 수영빤쯔만 입고 벌거벗고 앉은 그들은 다 늙은이들이거나 중로배의 나배기들이지만 불룩하게 나온 배며 주름살없이 윤택스러운 피부로 하여 영양상태가 아주 좋다는것이 대뜸 알렸다.

제일 몸이 뚱뚱한 대장대신 와다나베가 맥주를 마시고있는 이또총리를 건너다보며 어리손치는 아이들마냥 우는소리를 했다.

《이거 야단났습니다. 우리도 빨리 금본위제로 이행해야지 일청전쟁으로 인한 대량의 무기, 군수품, 기계류를 금본위국으로부터 수입해야 하는 조건에서 우리의 은본위제유지로써는 막대한 손실을 면할수 없습니다. 정말 재정위기가 초래될 형편입니다.》

번들거리는 대머리밑의 눈이 작을사 한 이또총리는 맥주맛이 없는지 맥주고뿌를 탁자에 놓으며 눈살을 찌프렸다.

《해수욕장에까지 와서 정치를 론하자는거요?》

《사정이 하 딱해서 그럽니다. 지금 오사까조페국에서는 불환지페를 발행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입니다.》

대장대신의 심정이 리해된다는듯 그를 바라보는 이또의 낯에는 측은해하는 기색이 어렸다.

《하긴 지금형편에서 장소를 따져가며 국사를 운운할 때가 아니지. 그래 금과 은의 비률은 어떻소?》

대장대신 먼저 맥주조끼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고있던 내무대신 이노우에 가오루가 입을 열었다.

《세계적으로 금과 은의 비률은 평균 1 대 16인데 최저시에는 1 대 40까지 내려가오.》

칼자리가 험상궂은 이노우에의 낯을 건너다보는 이또의 눈에는 야릇한 웃음기가 어렸다.

《당신은 미쯔이재벌의 최고고문이 되더니 돈벌이만 생각하는게 아니요? 이건 롱담이고 정말 시급히 금본위제로 이행해야겠구만. 그런데 화페제도조사회는 뭘하고있소?》

이렇게 말한 이또는 외무대신 무쯔에게 눈길을 주었다. 무쯔는 그런 정치담은 자기와 상관이 없다는듯 맥주를 마시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혼자 귤즙물을 찔금찔금 마시며 한여름철의 눈부신 해빛아래 흰 물갈기를 떠이고 밀려오는 푸른 파도만 바라보고있었다.

이또가 무쯔에게 묻는 눈길을 준것은 그가 화페조사회의 중요성원이기때문이였다. 작년 10월에 설치된 이 조사회에는 외무, 대장, 농상공성의 고급관료, 제국대학 교수, 시부자와 에이이찌를 비롯한 재계거두들이 모여 금본위제로 이행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있었다.

도이췰란드가 금본위제로 이행한 후 렬강들에서 금본위제가 확립되는 추세여서 일본도 그것을 따르지 않을수 없었다.

오불관언하고있는 무쯔를 안타깝게 쳐다보던 대장대신이 참지 못하고 또 입을 열었다.

《금본위제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화준비가 필요한바 우리 일본은 금산출량이 결정적으로 부족한데다가 항상 수입초과로 시달리고있습니다. 우리의 년평균 산금량은 226키로그람밖에 안됩니다.》

그의 말에 이또가 신경질을 부렸다.

《그래서 조선산금을 흡수하는것으로 우리의 빈약한 금보유를 충당하자는게 아니요!》

일본이 조선의 금에 대하여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것은 《강화도조약》직후부터였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본화페로 조선산금을 대량적으로 수탈함으로써 금보위제를 실현하며 일본자본주의시초축성을 하자는것이 일본정부의 의도였다.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격으로 이번에도 재정을 맡은 대장대신이 답변했다.

《〈강화도조약〉체결이후로부터 최근까지 조선에서 가져온 금가격은 1 080만여엔으로서 수입산금가격의 거의 100프로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작년까지 우리 일본이 국내에서 산출한 금총량은 210만 4천여엔인데 같은 기간에 무려 자국산금의 4. 5배에 달하는 금을 조선에서 수탈하였습니다.》

《대단하구만.》

이또가 제꺽 작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흡족하여 입까지 벌어졌다.

《그것으로는 우리 중앙은행의 금준비에 어방도 없습니다.》

와다나베는 떼를 쓰는 아이처럼 여전히 낯색이 찌뿌둥해있었다.

《그럼 어쩐다?》

무쯔는 여전히 명상에 잠겨있었다. 그는 자기가 즐겨외우군 하는 쟝쟈크 루쏘의 말을 되새기고있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자연은 참으로 얼마나 좋은가. 이 해빛, 이 대기, 이 평화로운 분위기, 이 화락한 자리, 이 안온한 즐거움, 자연속에 잠겨있으면 자기의 병도 그리고 처참한 전쟁이며 곁의 사람들이 열을 올려 론하고있는 정치란것도 다 잊을것이 아닌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자기의 병은 이제는 너무도 깊었고 자기는 정치라는것에 이미 너무도 깊숙이 발이 빠져있었다.

자연을 즐기며 안온하게 몇해를 더 사느니 차라리 정치라는 풍진속에서 영용하게 살다가 여생을 마치자.

이렇게 생각한 무쯔의 우묵한 눈확속의 뿌옇던 안청이 망막을 걷어낸듯 강철송곳처럼 예리해졌다. 그는 곁의 사람들에게 차례로 눈길을 주고나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몇해어간에 일본의 금생산량은 년간 900키로그람에 달합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조선의 금생산은 적어도 2 250~3 200키로그람이라는 막대한 량에 달합니다. 이것을 전부 우리 일본이 장악하면 금보충문제는 걱정없습니다. 조선은 금구뎅이나라입니다. 어디서나 금이 나니깐요.》

모두의 얼굴에 은연중 희색이 떠올랐다. 이또가 벙글거리며 뇌까렸다.

《그저 면도칼대신이 입을 열어야 가슴후련한 소리를 한단 말이요. 조선의 금이 년산 3톤을 넘는단 말이지, 그리고 조선의 금생산량이 일본의 근 4배란 말이지. 음. …》

《그건 조선의 광주들이 캐는 금입니다. 이제 조선의 금광을 우리가 전부 타고앉으면 그때의 금량은 아마…》

그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늙은 벌거숭이들은 만세라도 부를듯이 두팔을 쳐들었고 지어 자리에서 우뚝 일어서기까지 했다.

《옳소, 외무대신의 말이 옳소. 조선의 금광을 우리가 몽땅 타고앉읍시다.》

그러자 무쯔가 자못 신중한 표정으로 한손을 쳐들었다.

《그건 시기상조가 아닐가요? 적어도 일청전쟁이나 끝난 다음에…》

《일없소, 전쟁때문에 금이 필요하다고 방금도 대장대신이 말하지 않았소?》

표정이 근엄해진 이또가 대머리를 쓸어만지며 뇌까렸다.

《조선을 우리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전에 절실히 필요한것은 쌀과 금이요. 조선의 모든 금붙이, 조선의 모든 사금, 조선의 모든 금광, 한마디로 조선의 전체 금을 깡그리 긁어오면 지금의 재정난국을 극복할뿐만아니라 우리의 자본축적도 실현할수가 있소.》

이노우에가 느닷없이 화를 냈다.

《그런데 조선에 가있는 오또리공사는 도대체 무얼 하고있는가 말이요. 무능해, 무능하단 말이요.》

시급한 대책을 취하도록 오또리공사에게 통보하겠다고 무쯔가 말하자 이또가 그렇게 하라고, 우리 일본군대가 조선전토는 물론 왕궁까지 점령하고있는데 주저할것이 없다고 그루를 박았다.

해빛을 즐기며 바다를 즐기며 해풍을 즐기는 평화로운 사람들이야 늙다리 네 벌거숭이가 한 나라를 강탈할 이런 흉책을 꾸미고있는줄 어찌 알겠는가.

 

본국정부로부터 금광석을 비롯한 조선의 금자원을 깡그리 강탈할 대책을 시급히 세우라는 지령을 받은 오또리공사는 우선 집정관인 대원군부터 구슬려야겠다는 타산으로 급급히 그의 처소를 찾아갔다.

대원군은 경복궁 자기 처소의 창가에 놓인 란초화분에 물을 주고있었다.

승지가 그에게 일본공사가 찾아왔다고 알려주었다.

키가 큰 오또리공사가 가방을 휘저으며 방에 들어서더니 허리를 굽석거리며 인사를 했다. 대원군은 하던 일을 천천히 계속하며 인사를 건숭받았다.

오또리가 대원군의 곁에 다가서며 친근하게 말했다.

《대원군께서는 참대나 소나무 같은 굳센것을 좋아하실듯 한데 도리여 란초를 애용하십니다.》

《모르는 말씀. 마, 사람이란 저와 반대되는것을 좋아하는 법이지요. 그건 그렇구 자, 앉으시우.》

오또리에게 팔걸이의자를 권한 대원군은 저도 곁의 의자에 무겁게 앉았다.

《어떻게 오셨소?》

대원군은 길게 째진 눈초리로 오또리를 주시하며 물었다.

《팔순이 불원한 대원군각하의 입궐로 조정의 기강도 잡히고 민심도 안착되니 본 사신으로서는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오또리는 그 무슨 대원군의 치적을 축하하러 온듯이 말하였지만 본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그는 어제 무쯔외무대신의 전보를 받았는데 거기에서 무쯔는 박영효를 조선정부의 중요직책에 등용하며 당면하여 오사까조페국에 조선의 금이 들어오지 않아 불환지페를 발행하지 않으면 안될 형편에 처해있음을 알리면서 이미 지시한대로 금원천을 적극 탐색하여 시급히 보내도록 하라는 지시와 함께 대원군을 장악하기 위해 그의 신변을 보호할 병사들을 파견하며 경제적지원을 할 필요가 있으면 인천금고에 있는 8만엔을 그에게 주되 리자없이 조선정부에 차관으로 돌리게 하라고 하였다.

오또리는 바로 정부의 이 지시를 집행하기 위해 대원군을 찾아온것이다.

그는 년로하신 대원위대감께서 정무에 너무 무리하시지 말기를 바란다고 침발린 소리를 하고나서 자기의 속심을 은근슬쩍 비쳐보았다.

《그런데 현조정의 신하들이 대세에 어두워 정사에 페단이 없지 않으므로 우리가 추천하는 고문을 채용하심이 어떠한지 합하의 고견을 듣고저 합니다.》

로회한 대원군이 그의 이런 수에 걸려들리 만무했다.

《하마, 우리 백관들이 실무엔 좀 밝지 못할순 있어도 제 나라 사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있으니 구태여 귀국에 수고를 끼칠 필요야 있겠소이까?》

웃는 얼굴로 거절하는 대원군에게 성을 낼수도 없고 해서 오또리는 대원군을 매수하기 위한 다음문제로 넘어갔다.

《하여튼 그 문제는 더 생각해주시기로 하고 다음, 합하의 강녕장수는 조선의 명운이오니 합하의 신변호위를 우리 일본군대가 맡을가 합니다.》

대원군은 소리없는 웃음을 웃고나서 입을 열었다.

《마, 궁궐파수를 일본군이 도맡고있는데 내 호위까지? … 이 로구의 걱정까지 안하셔도 됩니다.》

이 안까지 거절당한 오또리는 심사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대원군의 말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은 오또리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주패장을 내대기로 결심했다. 이번에야…

그는 가방을 열고 그속에서 두툼한 돈봉투를 꺼내 대원군앞의 탁자우에 슬쩍 밀어놓았다.

대원군이 의아쩍어하며 오또리의 얼굴과 두툼한 돈봉투를 갈마보더니 물었다.

《이게 뭡니까?》

《많지 못하지만 사사용무로 써주시기 바랍니다. 8만엔입니다.》

오또리는 정중하면서도 다정한 투로 말하였다.

대원군은 능청스럽게 한눈을 끔쩍하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은근스럽게 물었다.

《마, 뢰물인가요?》

《누구도 모르는 돈이니 마음놓고 쓰셔도 됩니다.》

대원군은 이렇게 말하는 오또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시까스르듯이 말했다.

《공사는 〈18사략〉을 읽으셨소?》

《18사략》이 중국의 고서라는 정도로 알고있는 오또리는 대원군의 이 느닷없는 물음에 어정쩡해졌다.

《〈18사략〉 말입니까?》

대원군은 의연 오또리의 낯을 빤히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기에 이런 글이 있소이다. 양운이 일찌기 군수가 되여 부임하자 그곳 읍령이 황금을 싸가지고 와 바치면서 말하기를 〈어두운 밤이라 아무도 모르니 어서 받으십시오.〉했다나요. 이에 양운이 대답하기를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무도 모른다고 하느뇨〉!》

《…》

오또리는 무안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다.

그러는 오또리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쏘아보며 대원군은 돈봉투를 그의 앞으로 쑥 밀어치웠다.

오또리는 허거프게 웃기도 하고 제풀에 성이 나서 씩씩거리기도 하더니 돈봉투를 가방속에 밀어넣고 훌떡 자리를 일었다.

쫓기듯 인사도 없이 나가버리는 오또리의 등뒤에서 대원군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렸다.

《하하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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