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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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렁 벗어진 대머리에 몸집이 똥똥한 다까하시가 자개박이상우에 수북이 쌓여있는 조선의 엽전 《상평통보》를 부지런히 세고 옆에서 그의 처 나쯔미가 그것을 자루속에 넣고있었다.

그만 엽전 하나가 상우에서 떨어져 구석으로 굴러갔다.

다까하시가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며 안해에게 얼른 주어오라고 일렀다. 그러나 나쯔미가 움직이려 하지 않자 다까하시는 울컥 성을 냈다.

《주어오지 못하겠소?》

《그까짓 엽전 하나가 뭐라구.》

나쯔미는 여전히 그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다까하시는 애무하듯 안해의 잔등을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쨩, 일전을 웃다가 일전에 울게 된다는 속담을 생각하라구.》

이렇게 말한 다까하시는 정겨운 눈길로 안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일전을 가지고 옥신각신하는것은 나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요. 내가 돈을 많이 벌어 땅속에 지고 가겠소. 난 오직 당신을 잘 입히고 잘 먹이고 누구보다 호강시키자는거요. 나쨩두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나쯔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까하시의 말이 사실이기때문이였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린색하고 지어 포악하기도 한 다까하시이지만 자기 안해 나쯔미한테는 더없이 너그럽고 부드럽고 따뜻하였다. 나쯔미는 장가든 사람치고 다까하시만큼 자기 처를 사랑하는 사람은 쉽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군 하였다.

《여보.》

남편이 찾는 소리에 나쯔미는 상념에서 깨여났다.

《이 조선의 〈상평통보〉를 깡그리 긁어가야 이제 조선에서 우리 일본화페가 통용된단 말이요.》

다까하시가 엽전 하나를 안해의 손바닥에 놓아보였다.

《그래야 휴지장같은 우리 일본의 종이돈으로 조선의 모든 부원, 자원을 다 빼앗아갈수 있거던.》

다까하시의 말을 듣는 나쯔미의 얼굴은 기쁨보다 수심이 짙었다. 이렇게 다 빼앗아가면 장차 조선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가뜩이나 가난한 그들이… 나쯔미는 조상의 나라인 조선에 대한 동정과 련민의 심정에 잠겨 중얼거렸다.

《조선사람들이 불쌍하군요.》

나쯔미를 의혹에 차서 바라보던 다까하시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 당신 참 인정도 많구만. 그래 양이 불쌍하다고 잡아먹지 않으면 승냥이가 어떻게 될것 같소. 죽고말지. 승냥이가 죽지 않으려면 불쌍해두 양을 잡아먹지 않을수 없단 말이요. 이런걸 약육강식이라구 하던가. 어쨌든 우리 일본은 작은 섬나라인데 인구는 많고 물산은 적소. 그러니 우리 일본이 살려면 조선을 먹어야 하는거요. 그래서 예적부터 대두한 〈정한론〉의 대망이 지금 실현단계에 들어서고있소.》

다까하시가 안해에게 웃음 띠운 낯을 쳐들었다.

《여보, 우리가 처음 조선에 왔을 땐 수백엔정도의 잔돈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수만엔을 헤아리는 부자가 됐거던. 이게 다 우리 정부, 더우기 일본제1은행의 덕이란 말이요.》

일본은 제1은행지점을 부산과 인천에 두고 자기네 령세업자들에게 대금을 대여해주면서 조선의 자원을 깡그리 략탈하도록 하였던것이다.

나쯔미가 말머리를 돌렸다.

《여보, 어제 인천에서 가져온 남방과일을 조선 왕비전하께 진상하면 어떨가요?》

《민비한테…》 잠시 생각에 잠기던 다까하시는 기꺼이 응했다. 《생각 잘했소. 로마에서 살려면 로마법왕과 친해야 한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가 조선에서 계속 영업하려면 민비와 가까와야 하오. 설에 미깡(귤)이 례물이듯이 지금같은 한여름엔 류꾸의 과일 같은 례물이 없지. 그래서 나도 비싼 그것을 일본에서 인천으로 실어오도록 한게요.》

《그럼 오늘로 가져가도록 하겠어요.》

《그렇게 하오. 좋은 일은 빠를수록 좋지.》

이때 밖에서 인기척소리가 났다.

나쯔미가 불안스럽게 문쪽을 바라보았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울렸다.

《젠장, 나가서 날 찾으면 없다고 하오.》 하고 두덜거린 다까하시는 처가 밖으로 나간 사이에도 계속 엽전을 세였다.

나쯔미가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오까모도란분이 또 한사람을 데리고 왔어요.》

《오까모도상이? …》

다까하시는 급히 자리를 일어 밖으로 나가더니 오까모도와 미야께를 데리고 들어왔다.

오까모도는 제집처럼 허물없이 자리에 앉아 방안을 둘러보는것이였다. 나쯔미가 얼른 벽장에서 방석을 꺼내여 수정재털이가 놓여있는 고급흑단탁자옆에 놓아주었다.

《저, 자부동우에 앉으십시오.》

오까모도는 해반주그레한 나쯔미의 얼굴에 눈길을 주며 사의를 표시했다.

《고맙습니다, 옥상.》

나쯔미는 오까모도를 몇번 상면하지 않았지만 머리를 짧게 깎은 푸독사같은 그의 잔인한 모색에서 늘 불길한 예감을 느끼군 하였다.

방바닥에는 파란 풀색이 도는 새 누비돗자리가 깔렸는데 구석의 장식장인 도꼬노마는 다까하시가문의 문장을 표시하는 족자와 함께 생화로 장식되여있고 벽밑의 차단스(차장)에는 은주전자를 비롯하여 크고작은 옥상이며 칼을 찬 사무라이, 금부처를 비롯한 많은 조각과 인형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쪽구석에는 고급바둑판우에 바둑알단지가 놓여있었다. 더우기 이채로운것은 고급원형탁자우에 나팔통이 커다란 미국제 《콜롬브스》축음기가 놓여있는것이였다. 아마도 기본재산은 여닫는 문우에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있는 문발이 드리운 웃방에 있을것이라고 오까모도는 생각하였다.

《다까하시상은 소문그대로 부잡니다그려.》

이렇게 말한 오까모도는 권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흑단탁자우에 있는 담배함에서 고급담배 한가치를 꺼내여 입에 물고 성냥을 그어댔다. 그는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자개박이상우에 수북이 쌓여있는 조선엽전에 눈길을 주었다.

《허, 조선엽전을 꽤나 긁어모았군.》

다까하시는 주인으로서 체모를 잃지 않으려는듯 대머리를 쓸어만지며 입을 열었다.

《말마오, 장거리에서 이 〈상평통보〉가 바닥이 나서 물물교환으로 넘어가는 판이요. 한데 무슨 일로 갑자기? …》

오까모도는 아래입술을 삐주름히 내민채 몇번 빨지도 않은 담배를 수정재털이에 비벼꺼버렸다.

《엽전따위나 본국에 보내서는 안되게 되였소.》

《아니, 무슨 소리요? 이것두 얼마나 힘들게 구해들인것이라구.》

항의하듯 두덜거리는 다까하시의 대머리가 뻘겋게 물들었다.

《금전판을 아예 큼직하게 벌리라는 본국의 지시요.》

《어떻게?》

다까하시의 귀에 대고 오까모도가 수군거렸다.

《엉, 금덩이를?!》

흠칫 놀라며 고개를 쳐드는 다까하시를 보고 오까모도가 이죽거렸다.

《놀라긴… 금덩이가 아니라 조선의 금 전부를 본국으로 빼돌리라는거요.》

《민비가 용납할가요?》

다까하시가 념려어린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여우가 계속 엇서면 죽여버려야지. 이건 내 소리가 아니라 이또총리가 이미 한 소리요.》

이렇게 뇌까리는 오까모도의 낯짝은 흉악하게 이그러지고 눈에는 살기가 번쩍거렸다.

《에그머니나!》

뒤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남편의 분부를 기다리고있던 나쯔미가 저도몰래 기급한 소리를 했다.

다까하시는 아까부터 자기 처 나쯔미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미욱하게 생긴 미야께를 마뜩잖게 흘겨보고나서 안해에게 분부했다.

《여보, 당신은 주안상이나 차려오우.》

나쯔미는 대답없이 자리를 일어 부엌으로 나갔다.

오까모도가 인형이며 조각품들을 진렬해놓은 장식장에 눈길을 주며 좀 무거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다까하시상, 당장 공사관으로 가야겠소.》

이윽고 다까하시의 집을 나선 그들은 남산기슭의 일본공사관으로 향했다. 오까모도의 거절로 술은 입에 대보지도 못한 그들은 정신이 말짱했다.

거리를 메울듯 한 조선사람들, 흰 모시나 누런 베천으로 시원하게 여름옷을 지어입은 서울사람들은 이색적인 왜인들을 슬슬 피해다녔다. 흰양복에 헬메트모를 쓰고 흑단목개화장을 짚은 오까모도, 작고 똥똥한 몸에 흰 와이샤쯔를 입고 나비넥타이를 맨 다까하시, 바지가랭이가 넓은 하까마허리에 칼을 차고 우에 하오리를 걸친 험상궂게 생긴 미야께를 쳐다보는 조선사람들의 눈길은 더러 호기심도 없지 않았지만 거의가 적의를 품었거나 적의에 가까운 멸시를 띠고있었다.

약간 앞서걷는 오까모도의 넙적한 잔등에 눈길을 주며 걷는 다까하시는 궁금증과 의혹의 심경을 누를수 없었다. 그렇다고 건방진 오까모도에게 자기를 공사관으로 데리고가는 까닭이 무엇인가고 묻기도 싫었다. 그러니 눈먼 망아지가 워낭소리를 따라가듯 다까하시는 그저 오까모도를 따르지 않을수 없었다.

남산기슭의 일본공사관에 당도한 오까모도는 미야께를 응접실에 남겨둔채 다까하시만 데리고 오또리공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스기무라서기관과 무슨 이야긴가 하고있던 오또리는 큰 키를 일으켜 문께로 마주오더니 그들을 특히 다까하시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키가 크고 훌쭉한 오또리와 작고 뚱뚱한 다까하시가 마주선 모양은 마치도 돈끼호테와 싼쵸 판사가 마주선것 같았다.

《다까하시군, 기다리던중이요.》

《그런데 무슨 일로? …》

다까하시는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안심하오. 다까하시군, 지금의 영업에 대비도 할수 없는 돈구멍수를 당신에게 안겨주려고 하오.》

영문을 알수 없는 다까하시는 여전히 오또리의 얼굴만 쳐다볼뿐이였다.

오또리는 다까하시한테서 오까모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껏 금붙이따위를 긁어들이던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본국의 금보유량을 충당시킬수가 없소.》

《그럼?》

오까모도도 의아한 표정으로 오또리를 쳐다보았다.

오또리는 자기 자리에 가앉으며 스기무라에게 일렀다.

《서기관이 설명하오.》

《하.》 스기무라는 오또리공사에게 고개를 까닥하고나서 말을 시작했다. 《군들도 아다싶이 명치3년에 국교사신으로 조선에 왔던 사다소이찌로께서는 조선은 금구뎅이, 이를테면 어데서나 금이 나온다고 했소. 예적은 물론 가까이는 조선 영종왕때에 관아에서만도 91개의 금광을 가지고있었소. 그러니만치 소소하게 금부스레기를 긁어갈것이 아니라 금광을 통채로 타고앉자는거요.》

《금광이요?!》

오까모도도 자못 놀라는 기색이였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 오또리는 자기의 집무탁으로 다가갔다.

그를 따라 일어선 스기무라, 오까모도, 다까하시도 그의 뒤를 따랐다.

오또리는 집무탁우에 펼쳐진 조선지도를 짚어가며 설명했다.

《여기 단천 그리고 안쪽의 운산, 그아래 은산의 금광들은 조선광주들이 파먹고있소. 하지만 그아래 송화, 장연, 안산 그리고 이쪽의 창원 특히는 직산군의 보덕리는 온산이 그대로 금덩이요.》

지도에 눈길을 박고 오또리의 말을 듣고있는 왜놈들의 얼굴에 놀라움과 기쁨의 표정이 피여났다.

《그래서 당면하게는 이 직산의 보덕리를 타고앉자는건데 밤도적식으로 할게 아니라 당당하게 허가신청을 내자는거요.》

《허가요?》

오까모도가 의문스러워하는 말에 다까하시 역시 의혹을 표시했다.

《해줄가요?》

오또리가 긴 허리를 쭉 펴고 방안을 거닐면서 신심에 넘쳐 말하였다.

《군국기무처에 압력을 가합시다. 기무처의 친일세력을 동원하여 조선정부가 우리의 요구에 응하도록 해야겠소. 오까모도군이 한번 솜씨를 보이오. 그리고 다까하시군.》 오또리는 다까하시쪽으로 돌아섰다.

《광산개발이 시작되면 당신은 총관리로서 활약해야겠소. 당신은 조선에 여러해째 살면서 조선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뿐아니라 상업적재능도 상당하기에 이런 신임이 차례지는거요.》

다까하시는 너무도 기쁘고 감격하여 거의나 없는 허리를 직각으로 꺾으며 사의를 표시했다.

《공사각하, 감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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