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2 장

4

 

파성관의 밀실에서 새로 법무협판으로 등용된 김학우와 마주앉은 오까모도는 그의 앞에 담배곽과 성냥곽을 밀어주었다.

권연 한가치를 입에 물고 성냥을 그어댄 김학우는 후―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두덜거렸다.

《이거 대원군의 등살에 어디 살겠습니까?》

개구리눈처럼 좀 삐여져 나올사 한 김학우의 눈알이 벌겋게 울기가 뻗쳐있었다.

오까모도는 삐주름히 웃었다.

《법무협판이 우는 소리를 하다니…》

《흥, 법무협판? … 이름 좋은 하늘타리지요.》

《그래 요새 대원군의 동향은 어떻소?》

걸맞지 않은 웃음을 띄우며 묻는 오까모도의 말에 김학우는 담배불을 비벼껐다.

《양대가리를 걸고 개고기를 판다구 대원군은 요즘 뒤에서 별 음흉한짓을 다하는것 같습니다.》

오까모도의 낯색이 긴장해졌다.

《좀 구체적으로 말하시오.》

《그는 지금 평양에 주둔한 청국측과 내통하고있다고 합니다. 또 들리는 소리에 로씨야공사에게 일청전쟁을 중지시키고 일본군을 조선에서 철수시키도록 힘써달라고 청원하려고 그를 만나려 한다나 봅니다.》

《대원군이 그런짓을 한다? …》

오까모도는 손으로 턱을 쓸어만지며 심중한 표정을 지었다. 김학우가 오까모도를 쳐다보며 붙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한마디 더 했다.

《이거야 자기를 집정의 자리에 내세워준 일본에 대한 배신이 아닙니까.》

《알겠소, 그리고 민비의 동태는?》

《굴에 박힌 생쥐처럼 찍소리도 없지요.》

《음, 어쨌든 그 녀인에 대해서 소홀히 하지 마시오. 워낙 권모술수에 능한 녀인이니 언제 무슨 사단을 일으킬지 모르오.》

《알겠습니다, 한데…》

김학우는 말하다말고 쭈밋거렸다.

《왜, 무슨 할말이 있소?》

《법무협판이란게 대감소리두 못 듣는 자리가 돼놔서…》

《여보, 협판이면 장관아래 차관인데 협판이 된지 며칠이 됐다구 벌써 벼슬타발이요.》

김학우는 개구리눈알을 꿈벅이며 비위살스럽게 굴었다.

《헤헤, 오까모도상이 좀 힘써주시우.》

《알겠소, 내 오또리공사에게 말하겠으니 어쨌든 실적을 올리시오.》

《예, 그저 오까모도상만 믿겠습니다.》

《가만, 협판의 월급이 얼마요?》

월급소리에 김학우는 개구리눈에 좀 얼떨떨한 빛을 띠였다가 이어 게정스럽게 두덜거렸다.

《120원이지요.》

《왜, 150원이 아닌가?》

《그건 정2품협판인 경우고 난 종2품이니 30원이 떨어집니다.》

《좀 어렵겠구만.》

오까모도는 낯에 동정의 빛을 띠우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동정에 더 승기가 난 김학우는 입술을 내밀며 불평을 부렸다.

《그나마 다달이 주기나 합니까?》

오까모도는 품에서 돈봉투를 꺼내 김학우의 무릎앞에 밀어주었다.

《1 000원이요. 살림에 보태쓰시오.》

감격한 김학우는 고맙다고 거듭거듭 고개를 숙였다.

오까모도는 문득 신중한 눈길로 김학우를 바라보았다.

《여보 협판, 당신이 일을 한가지 해주어야겠소.》

《무슨 일인데? …》

오까모도를 쳐다보는 김학우의 개구리눈에는 겁기도 없지 않았다. 쓴웃음을 짓고 김학우의 표정을 살피던 오까모도는 이제 일본공사관에서 군국기무처에 광산채굴허가신청을 내려고 하는데 그것이 통과되도록 김학우가 노력을 하라고 훈시를 하였다.

김학우는 난색을 지으며 바지무르팍에 손바닥을 문대는것이였다.

《왜, 어려울것 같소?》

오까모도의 날카로운 물음에 김학우는 개구리눈알을 굴렸다.

《글쎄, 나는 찬성할테지만 공무아문대신 서정순대감이나 외무, 탁지대신들, 총리가 어떻게 나오겠는지… 더우기 집정인 대원군대감이야…》

《여보, 대원군이야 노닥다리인데 두려울게 있소?》

《그래두…》

낯에 친근한 빛을 띠운 오까모도가 은근스럽게 말했다.

《법무협판, 사실말이지 오또리공사는 김가진이나 조희연을 믿지만 그래두 나는 당신을 제일 믿소. 한번 힘있게 내밀어보오. 당신뒤에는 우리 일본이 있으니까 두려워할것이 없소.》

《예.》

김학우는 또 바지무릎에 손바닥을 문대며 아까보다는 힘있는 소리로 대꾸했다.

다음날 오까모도는 군국기무처의 친일파들인 김가진이와 조희연에게도 돈봉투를 안겨주며 구슬렸다.

 

민비는 자기와 고종앞에 부복한 공무아문대신 서정순에게 노기를 띠운 어조로 힐문했다.

《무어라? 금광채굴을 허가해달라?》

고종이 입이 쓰거운듯 아무 대척도 하지 않자 민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직산의 금광을 어떻게 하겠다구?》

서정순이 다시한번 머리를 조아리고나서 입을 열었다.

《직산의 보덕은 중부이남에서 매장량이 제일 많은 금광인데 그걸 일본의 화족(귀족)인 시부자와자작의 명의로 채굴신청을 제기해왔소이다.》

《자작?》

고종이 한마디 했다. 그러자 서정순이가 인차 대답했다.

《일본 제1은행의 회장인데 대갑부라고 하오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민비는 눈길을 쪼프리고 생각에 잠겼다. 나쯔미의 말이 맞았구나. 정말 왜놈들이 우리 나라의 금을 깡그리 빼앗아갈 잡도리를 하는구나. 하지만 자작이 아니라 공작 아니, 총리를 한다는 이등박문이 신청을 해도 허할수 없다.

민비는 표표한 기색으로 쏘아보듯 서정순을 바라보았다.

《공무대신, 직산금광은 이미 서울의 도고 최일이란 사람에게 윤허하지 않았는가요?》

《그렇소이다, 마마.》

서정순은 황송스럽게 머리를 수그렸다.

《그런데 어떻게 또 왜인들에게 개발을 허가한단 말입니까? 그러면 한 광산에 개발주가 둘이 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어불성설이요.》

민비는 어처구니없는듯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기무처에서 누구누구가 왜인들의 앞잡이노릇을 하는가를 알기 위해 기무처에서 다수결로 토의하라고 해야겠다, 이렇게 작정한 민비는 서정순에게 담담한 어조로 일렀다.

《총리대감에게 새 법대로 일을 처리하라고 이르세요. 군국기무처에서 다수결로 결정한것을 상감마마께서는 의결하시게 되여있지 않습니까?》

고종과 서정순은 민비의 태도를 의아하게 여겼으나 입을 벌리지는 못했다.

이튿날 군국기무처에서 회의가 열렸다. 상좌에 대원군이 앉아있고 긴탁자주위에 17명 회의원전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자, 말씀들 하시오.》

회의를 집행하는 총재 김홍집이 이렇게 언명했으나 누구도 먼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드디여 짜증이 난듯 대원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토의구 뭐구 할게 있소? 나는 불가요!》

그러자 법무협판 김학우가 반발하였다.

《아니 대원위대감, 그렇게 단마디로 처리할 문제가 아닙니다.》

대원군이 그를 노려보며 힐문하듯 따졌다.

《그럼 법무협판은 어쩌자는거요?》

《금광채굴을 허가하지 않았다가 후환이 있을가봐 그럽니다.》

김학우가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하자 대원군은 개탄하듯, 탄식하듯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바늘도적이 소도적이 된다구 우리가 한번 허하면 저 왜나라것들은 어벌이 커져 우리의 모든 광산을 다 허하라고 할게요.》

《어쨌든 이것은 일본과의 외교상문제이기때문에 후환이 없도록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법 현명한듯이 외무협판 김가진이가 이런 소리를 하자 외무대신 김윤식이가 흰수염을 쓸어내리며 반드러운 가진이가 아니꼽살스러운듯 비양스럽게 말했다.

《협판, 그것은 당신이 아니라 대신인 내가 할 소리요.》

탁지(재정)대신 어윤중이도 화가 난듯 가뜩이나 검스레한 얼굴이 검붉어지더니 성난 어조로 김가진이에게 쏘아붙였다.

《이제 일본이 우리 나라의 금을 다 가져가면 우린 알거지가 되겠는데 그 이상 무슨 후환이 있단 말이요.》

대원군이 또 소래기를 질렀다.

《어쨌든 왜놈들의 요구에 나는 절대불가요, 대불가란 말이요!》

그러자 김학우가 개구리눈을 부릅뜨며 대원군의 말마디를 걸고들었다.

《대원위대감, 중대회의장에서 우방을 왜나라요, 왜놈들이요 하고 욕하면 됩니까?》

《뭣이라구?!》

얼굴이 대뜸 벌겋게 상기된 대원군이 김학우에게 버럭 고함을 질렀다.

《왜나라를 왜나라라 하지 않고 뭐라고 해, 이건 내 말이 아니야. 저 옛적 고구려장수왕때에 세워진 〈광개토왕릉비〉에도 섬나랄 난쟁이 왜라고 했고,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에도 몽매하고 뒤떨어진 야만의 나라라는 의미에서 왜나라라고 표기되여있다. 어디 우리뿐인줄 아느냐. 청국의 고문서들인 지리책 〈산해경〉이나 〈한서〉에도 네가 일본이라고 하는 섬나라를 왜라고 뚜렷이 밝히였다. 불학무식한 놈같으니라구!》

대원군의 모욕적인 소리에 김학우도 울뚝해서 마주 소리쳤다.

《대원위대감이 섭정을 하며 독판치기를 하던 옛적과는 세월이 달라졌수다.》

격분한 대원군이 채머리를 떨었다.

《뭐뭐, 뭣이라구?! 야, 이 노옴!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구… 어이구…》

극도로 흥분한 대원군은 기절하듯 의자에 쓰러졌다.

오늘은 여기서 휴회하고 래일 다시 회의를 열겠다고 선언한 김홍집은 그길로 건청궁의 고종과 민비를 찾아갔다.

아정이에게서 미국의 남북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있던 고종과 민비는 김홍집에게 어서 편히 앉으라고 권하였다. 그들앞에 앉은 김홍집은 한숨부터 내쉬였다.

그사이 책을 들고 밖으로 나온 아정이를 대견스러운듯 조상궁이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잔등도 두드려주었다.

아정은 수집은듯 눈을 곱게 빨았다.

《아이참, 상궁님도… 제가 뭐 어린앤가요?》

조상궁의 늙은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기특해서 그런다.》

편전에서는 고종과 민비 그리고 김홍집사이에 이야기가 부절히 오갔다.

기무처회의진행과정에 대한 김홍집의 이야기를 들은 민비는 혼자소리처럼 뇌였다.

《그랬을테지요, 호랑이같은 대원위대감이 역적놈들의 도발에 왜 기가 막히고 억이 막히지 않겠소.》

김홍집은 래일회의에선 가부간 결정을 지어야겠는데 고종과 민비의 의향은 어떤가고 물었다. 민비 역시 신중한 어조로 일본이 오늘은 직산을 요구하지만 래일은 송화, 장연, 창원 아니, 조선의 모든 금광을 다 가지려고 할것이므로 절대로 허가해서는 안된다고 찍어 말했다.

대원위대감은 뭘하고계시는가고 민비가 물으니 김홍집은 군국기무처에서 처리하라 하시고는 운현궁으로 가버리였다고 대답했다.

《흥, 상감께서 모든 국사를 대원위대감께 일임하셨는데…》

낯색이 새파래서 이렇게 뇌인 민비는 김홍집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래 총리대신은 어찌하면 좋겠소?》

김홍집이 입을 열기 전에 고종이 사정하듯 말했다.

《곤전, 아무래도 허가함이 어떨가 하오. 그까짓 금광 하나 떼준다고 큰일 나겠소?》

《예?! … 상감마마, 무슨 말씀을, 깊이, 더 깊이 국운을 심중에 두시기 바랍니다.》 민비는 탄식하듯 뇌였다. 《일본에 개국을 허한 내 죄 실로 막중합니다. 수호통상이 세계대세고 일본도 우리와 통상만을 하자기에, 그리고 대포를 꽝꽝 쏘아대며 당장 전쟁을 하겠다고 을러메기에 개국을 하였더니 결국 오늘의 이 지경이 되였소옵니다. 통상만을 하자던 일본이 우리를 이렇게 강탈할줄이야 어찌 알았겠소이까!》

민비의 눈빛이 날카로와지고 목소리도 거칠어졌다. 민비의 얼굴에 단호하고도 결연한 표정이 비꼈다.

《총리대신.》

《예이.》

《일본공사에게 똑똑히 전하시오. 이 중전이, 내가 절대로 불허한다고 말이요. 나는 일본이 두렵지 않소. 도적을 두려워해서야 그게 무슨 사람이겠소.》

민비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거린 김홍집은 드디여 입을 열었다.

그는 이미전부터 생각한바를 토설하듯 침착하고도 여유있는 어조로 말했다.

《중전마마, 이번 기회에 일본뿐아니라 모든 외국인들에게 우리 나라 국내의 토지, 산림, 광산 등 부동산은 조선국적이 아닌 외국인이 점유하거나 매매하는것을 일체 금지한다는것을 법으로 공포하는것이 어떻소이까?》

《예, 그런 조치가 취해져야 할가 봅니다.》 민비는 탄복하는 기색으로 대뜸 호응했다. 《일본뿐아니라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 나라의 리권을 빼앗기 위해 날뛰는 조건에서 나라의 자원을 보호하고 부국강병을 이룩하려면 반드시 그런 법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 래일 회의에선 가타부타 할것없이 총리대감이 아예 복안을 발표하고 다수결로 결정해치우세요.》

《그리하도록 하겠소이다.》

이렇게 말하는 김홍집의 얼굴에 여느때와 다른 결의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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