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2 장

7

 

모기쑥내가 꽉 들어찬 방안에 온종일과 마주앉아있는 엄병무의 가슴은 방안의 공기처럼 답답하기만 하였다. 오늘 왜놈들이 금광개발식까지 벌려놓았는데 이에 어떻게 대처했으면 좋을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앞에 앉은 온종일도 담배만 곰방대에 담아 피울뿐 말 한마디 없었다. 나이지숙한 그는 인품이 온후하고 강단있는 사람으로서 최도고의 대리인 역할을 착실히 하고있었다. 하지만 그도 왜놈들이 조선군국기무처의 승인을 받았다고 하면서 많은 저희네 경찰들과 불량배들까지 끌고와서 광산을 가로타고앉는 바람에 어쩔수없이 지금껏 속수무책으로 시간을 보내고있었다. 그는 읍의 전보국을 통해 서울의 최일이한테 이곳의 사태에 대해 전보를 쳤는데 지금 그 회신을 기다리고있었다. 전보를 치러 오늘 낮에 군에 갔던 길에 관가에 들려 이미전부터 낯익은 사람을 만나 이 사실에 대해 의논해보았다. 그 사람은 토지, 광산과 같은 부동산을 외국인이 점유매매하지 못한다는 군국기무처의 최근법령까지 내보이며 왜놈들이 하는짓이 아무래도 거짓수작같다고 하였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베돌찌를 입은 덕대가 방안에 성큼 들어섰다.

《마침 다들 계셨구려.》 온종일이와 엄병무에게 이렇게 말한 그는 밖에 대고 소리쳤다. 《얘, 들어오너라.》

데꺼머리소년이 방안에 들어오더니 선채로 모두절을 하였다.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온종일에게 덕대가 자리에 앉는 소년을 가리켜보이며 울기가 오른 소리로 말했다.

《온선생, 우리 짐작이 틀리지 않았수다. 이 애는 탁과부네 집에서 심부름군노릇을 하는 애인데 오늘 초저녁에 왜놈들의 통변질하는 기생오래비같은 자식이 술에 잔뜩 취해 탁과부에게 하는 말이 글쎄 우리 금광을 왜놈들이 강짜로 빼앗았다고 하더라는거요. 탁과부가 그럼 되는가고 핀잔을 주니 그 자식이 하는 말이 글쎄 또 기가 막히우다.

〈야, 서방두 없구 돈두 없는 너를 어느 녀석이 맘먹은대로 한들 네가 어데 가서 하소할데가 있니? 우리 조선두 마찬가지야. 변변한 군대두 없으니 타국놈들한테 업심을 받는거야 당연하지. 난 뭐 조선놈이 아니가?〉이러더라지 않소. 그녀석이 왜놈들한테 붙어먹어두 상기 배달의 얼이 다 빠지진 않은 모양이웨다. 그건 그렇구 일이 이렇게 됐으니 이젠 어쩌자우?》

매사에 신중한 온종일은 얼른 대꾸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이 순간 병무는 또 저대로 무거운 생각에 빠졌다. 변변한 군대두 없으니 우리 조선이 업심을 받는다는 말이 머리를 때리고 명치끝에 매달려 내려가지 않았다. 자기도 군정이 되려고 집을 떠나 십여년간 산속에서 무예를 닦지 않았던가. 그런데…

문밖에 돌연 나타난 한 젊은이가 두손으로 문틀을 짚은채 숨을 헐떡거렸다. 숨가삐 뛰여온 모양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인 얼굴이며 온몸에서 줄땀이 흐르고 도랑이며 진창길을 마구 뛰여온듯 바지가랭이는 화락하니 젖어있었다.

《영석이, 웬 일인가?》

온종일이 이렇게 깨우쳐주었어야 가까스로 숨을 돌린 영석은 성급히 말했다.

《야, 야단났어요. 우리가 온종일(본의아니게 온종일의 이름을 부른 영석은 눈에 미안스러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광산기계들을 지키고있었는데 아, 글쎄 날이 어두워오자 숱한 왜놈경찰들과 망나니놈들이 몰려오더니 다짜고짜로 그 설비들은 자기들의것이니 물러가라고 하질 않겠어요. 그래서 아웅다웅하다가 싸움이 붙었는데 그놈들이 원체 우리보다 수가 많은데다 또 칼이며 총까지 가지고있어 끝내 기계들을 떼우고말았어요.》

이놈들이 광산을 강짜로 빼앗더니 이제는 설비까지 공짜로 빼앗으려들어?! 병무는 욱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난 온종일은 엄병무와 덕대를 불이 이는 눈으로 갈마보았다.

《자네들은 곧 그곳으로 가게. 나는 마을에 있는 우리 금전군들을 다 데리고 뒤따라 가겠네.》

문밖으로 뛰쳐나온 병무는 줄달음쳤다. 그뒤로 영석이와 덕대도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병무도 덕대도 영석이와 마찬가지로 온몸에 줄땀이 흘렀고 바지가랭이가 흠뻑 젖어버렸다.

사건현장은 홰불로 하여 환하였다. 광산설비들을 차지한 왜놈들도, 변두리로 쫓겨난 우리 파수군들도 모두가 기계기름에 적신 헝겊뭉치에 불을 단 홰불을 들고있었다. 그 불빛에 왜놈들이 들고있는 칼이며 총창들이 번쩍거렸다. 분위기가 자못 험악했다.

현장에 당도한 병무는 눈에 띄우는 지레대 하나를 손에 추켜들고 놈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쇠장대를 량손에 틀어쥐고 놈들의 앞에 떡 버티고선 병무의 눈에서는 불길이 뿜어나오는듯싶었다.

《이놈들! 썩 물러가라!》

이렇게 웨치는 병무의 거벽스러운 태도에 왜놈들도 위압을 느꼈던지 아무 대척도 안했다.

왜놈경찰들이 총을 꼬나들었다.

《총소리를 내지 말라.》

오까모도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총소리를 내면 자기들에게 불리하다는것을 깨달은 모양이였다.

《물러서지 못할테냐? 이 도적놈들!》

병무가 재차 경고했다. 그는 자기앞에 마주선 놈들을 왜놈이라는 족속이 다른 무리로가 아니라 말그대로 남의 물건을 빼앗는 도적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적놈을 보고 무심할수 있는가.

왜놈들 무리에서 회색하오리를 입은 한놈이 칼을 쳐들고 슬슬 걸어나오더니 별안간 《얏.》하는 짐승의 울부짖음같은 괴성을 지르며 병무에게 달려들었다. 병무는 날래게 몸을 피하며 쇠장대로 그놈의 잔등을 후려쳤다. 놈은 칼을 손에서 떨구며 앞으로 쭉 뻗었다. 그러자 다른 왜놈들이 일시에 왁 달려들었다. 언제 쇠장대를 버렸는지 맨손으로 놈들속에 뛰여든 병무는 주먹을 내지르고 발길을 날리고 이마로 받으면서 펄펄 날아돌아갔다. 병무의 타격을 받은 왜놈들이 순식간에 네댓놈이나 총이며 칼을 든채 땅바닥에 쭉 뻗어버렸다.

덕대며 파수군청년들은 병무를 도와 왜놈들과 싸울 생각도 못하고 비호같은 그를 희한해서 바라보았다.

《잘한다, 병무!》,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라!》

그들은 무슨 구경군들처럼 뒤전에서 승기가 나서 고함을 지르고 주먹을 휘둘렀다. 하기는 자기들이 아니더라도 병무 혼자서 왜놈들을 다 처리할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들속에, 조선사람들속에 병무와 같은 용력군이, 무술가가 있다는것이 너무도 기쁘고 감격스러워 눈들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이때 백여명의 왜놈들이 흉기를 들고 이곳으로 달려왔으며 거의 동시에 온종일이 이끈 수백을 헤아리는 금전군들과 마을사람들이 곡괭이며 삽, 쇠스랑이 같은것을 가지고 뛰여왔다.

그들속에는 수염 허연 늙은이도, 코밑에 검댕이가 묻어있는 어린것들도 있었다.

장바 한기장 사이를 두고 왜놈들과 조선사람들이 서로 노려보며 마주 섰다. 불안한 긴장이 팽배한 속에 조선사람들속에서는 도가니와 같은 뜨거운 기백과 파도의 메아리와 같은 거센 숨결이 높아갔다.

문득 한발자욱앞에 나선 온종일이가 동포들쪽으로 몸을 돌리고 웅근 목소리로 피타게 웨쳤다.

《여러분! 이 날강도 왜놈들이 조선의 금덩어리를 빼앗으려고 여기 직산으로 기여들었습니다. 천만에, 왜놈들에게 직산의 막돌 한개도 주지 맙시다.》

사람들이 일시에 호응해나섰다.

《옳소!》

《날강도 왜적들을 물리치자!》

증오와 분노로 치를 떠는 조선사람들과 마주선 왜놈들의 눈길이 갈팡거리고 흉기를 든 손들이 떨렸다.

《와!》

갑자기 벽력이 치고 우뢰가 울듯이 홰불을, 곡괭이를, 삽자루를, 쇠스랑을 든 조선사람들이 왜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드높이 솟아 밀려드는 해일같은 조선사람들의 기세에 왜놈들은 혼겁하여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금전군들과 보덕리사람들은 왜놈들에게 자기들의 광산설비를 빼앗기지 않았다는 가슴뿌듯한 긍지와 놈들이 또 달려들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 놈들과 끝까지 해보겠다는 배심든든한 각오로 밤을 지새웠다. 새벽에 밥이며 떡을 담은 함지며 도시락, 국이며 김치를 담은 동이며 항아리, 지어 술이나 탁배기를 담은 방구리를 이고 든 아낙네들이며 처녀들이 이곳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내남이 없이 음식들을 담아 금전군들과 보덕리사람들에게 안겨주었다.

낯선 아주머니에게서 보리밥도시락과 콩나물국, 김치보시기를 받아안은 병무는 눈굽이 찌르르 젖어들었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뜨겁고 원쑤 왜놈들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가슴 사무치면 녀인들까지 다 떨쳐나섰겠는가 하는 생각이 뇌리속에 파고들었다. 더우기 방금 자리를 뜬 그 아주머니가 다시 자기앞에 나타나더니 《도련님이 혼자서 왜놈들을 수태 때려눕힌 무사장사라지요. 에그, 그런것도 모르고…》하며 보리밥도시락을 빼앗고 대신 떡을 함지채로 안겨주었을 때는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그 아주머니뿐이 아니였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병무를 귀인처럼 우러르고 존대하였다. 그럴수록 그의 가슴속에는 자기가 설 자리는 아버지가 늘 말씀하신 나라를 지키는 군정이 되는 길이라는 자각이 깊이 뿌리를 내리는것이였다.

금전군들과 보덕리사람들이 아침밥을 먹고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고있을 때였다.

다박솔이 모록모록 돋아난 저쪽 야산기슭으로 또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지척지척 걸어오고있었다. 그들은 괴나리보짐을 등에 지거나 허리에 띠였으며 보따리를 든 사람들도 있었다. 가까이 온것을 보니 왜놈들이 개발하는 《시부자와구미》의 일군들이였다. 그들은 여기 사람들앞에서 주춤 걸음을 멈추었다.

《네놈들은 또 웬일이냐?》

덕대가 입에 문 곰방대를 뽑으며 그들을 쏘아보았다.

그들은 죄지은 사람 모양새로 고개를 떨구고 서있었는데 그들속에서 앞의 사람들을 헤가르며 구레나룻이 꺼밋한 텁석부리가 피가 내배인 헝겊을 머리에 동여맨 로인을 부축하고 앞에 나섰다. 그는 앞의 사람들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물기어린 걸그렁한 목소리로 띠염띠염 입을 벌렸다.

《여러분,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워 왜놈들에게 속아 돈 몇푼을 벌려고 여기로 온 우리들을 용서해주시우.》

사람들이 동정어린 측은해하는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것을 느낀 텁석부리는 별안간 갈범의 울음소리같은 목소리를 터치였다.

《여러분, 저 불악귀같은 왜놈들을 어쩌면 좋습니까?》

《왜, 무슨 일이 생겼소?》

덕대가 의혹의 표정을 띄우고 물었다.

그러자 텁석부리는 고개를 푹 떨구고 선 곁의 로인을 가리켰다.

《이분은 우리 마을 좌상어른인데 딸의 례장감이나 마련해볼가 해서 앓는 몸으로 예까지 왔지요. 그런데 이것을 안 딸이 아버지를 데리러 여기로 또 왔는데 글쎄 저 원쑤 왜놈들이 그 애를 잡아 개발식날 제물로 산에 생매장하질 않았겠소.》

사람들은 경악으로 눈들이 커지고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서기도 하였다.

《아니, 그게 정말이요?!》

자리에서 일어난 덕대가 텁석부리와 봉칠로인의 앞으로 다가왔다.

《너무도 원한이 사무쳐 그 애는 흙속에 묻혀서도 눈을 감지 못했수다.》

병무는 물론 텁석부리의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주먹을 틀어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문득 얼나간 사람모양새로 멍청히 서있던 봉칠로인이 쓰러질듯이 비칠거렸다. 눈물을 흘리던 텁석부리가 그를 제꺽 부축해주었다.

사람들은 도가니속의 쇠물처럼 왜놈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부글부글 끓어번졌다.

자리에서 움쭉 일어선 병무가 제잡담 왜놈들이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제방을 터뜨리고 내닫는 홍수마냥 《와! ―》 함성을 지르며 그의 뒤를 따라 내달렸다. 그들속에서 《왜놈들을 모조리 때려죽이자!》는 격분에 넘친 소리며 고함소리들이 연방 터져나왔다.

그들이 나지막한 산굽이를 돌아 보덕산기슭에 다달으니 예기치 않았던 뜻밖의 사태에 혼겁한 왜놈들이 모든것을 다 집어던지고 꽁무니를 뺐다. 왜놈들에 대한 격분과 증오를 묵새길수 없는 병무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시부자와구미》란 현수막이 드리워져있는 왜놈들의 천막주변을 맴돌더니 주변에 널린 물건들을 천막안으로 던져넣었다. 그의 뜻을 알아차린 덕대가 주머니에서 성냥을 꺼내여 천막에 불을 싸질렀다. 천막은 조선사람들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마냥 삽시에 화염에 싸여 활활 불탔다.

발이 없는 소문이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 이날 낮에는 보덕리에서 저지른 왜놈들의 죄행에 대한 소식이 널리 퍼져 직산읍은 물론 린근의 여러군들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그 수는 천으로 만으로 헤아리기 어려웠다.

멀찌감치 물러나서 사태의 진상을 지켜보던 왜놈들은 급급히 서울로 돌아오고말았다. 부하들로부터 직산금광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 보고받은 오또리 게이스께공사는 당황하여 어쩔바를 모르더니 즉시로 이 일에 대해 본국정부에 보고하면서 시급히 군대를 파견하여 사건을 수습해줄것을 요청하였다. 서울공사관이 단 가마에 든 개미처럼 바글바글 끓는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정부도 곡경을 겪었다. 그중에서도 조선의 금을 강탈하여 자기들의 재정난국을 타개하려고 획책하던 이또총리는 노발대발하여 오또리공사에 대해 줄욕을 퍼부었다. 그가 직산금광에서 벌어진 사태를 두고 무엇보다 우려한것은 그것이 백성들의 일본에 대한 분노를 야기시켰을뿐만아니라 자기들이 조작한 조선정부 각료들에게까지 반일감정을 야기시켰다는 사실이였다. 생각같아서는 오또리가 요청한대로 군대를 파견하여 조선놈들을 《응징》하고싶었으나 일청전쟁중이여서 단 한명의 병사도 전장에서 떼여낼수 없을뿐더러 설사 군대를 들이미는 경우에는 그것을 빌미로 동학란과 같은 전조선적인 반일운동을 유발시킬수도 있었다. 이래저래 속이 뒤틀려 진정하지 못하는 이또총리에게 무쯔 외무상이 《그래서 직산금광문제는 시기상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하고 조소어린 눈길을 던지는것이였다. 이또는 당장 무능한 오또리를 조선공사직에서 철직시키고 신임공사를 파견하라고 호통쳤다. 무쯔는 난색을 지으며 외무성에는 민비를 견제할만 한 인물이 없다고 하소했다. 이또는 조선정복은 일본의 최대급선무로서 국사중의 국사이므로 내각요인들뿐만아니라 군부에서라도 조선공사에 합당한 인물을 물색하라고 지시했다. 이리하여 오또리는 공사직에 잠시 류임시키기로 하였다. 동시에 직산금광수탈문제도 당분간 보류시키기로 하였다. 일본은 여러해후인 1900년에 가서야 비로소 직산금광을 빼앗을수 있었다.

이또는 《민비, 이 암여우, 네가 나와 겨루잔 말이지.》 하고 이발을 으드득 갈았다.

이때 건청궁의 향원못가를 거닐던 민비는 희색이 만면하여 중얼거렸다.

《왜놈들이 코가 납작하게 됐지.》

그리고는 아정의 잔등을 다심하게 다독이며 다정하게 말했다.

《네 말대로 백성들의 힘이 참말 크고 무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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