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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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도 사람도 봄을 꿈꾸는 3월초였다. 대륙을 휩쓰는 눈보라의 갈기처럼 위장포를 날리며 두만강을 뛰여건너간 유격대의 무장소조들은 경원과 종성과 회령의 적기관들을 기습하였다. 국경의 밤을 뒤흔드는 총성과 폭음, 하늘을 시뻘겋게 불사르는 불기둥, 왜놈의 국경수비무력들은 모두 그쪽으로 몰려가 수색을 벌리며 왁작 끓어번졌다.
그 틈에
소나무숲이 우거진 골짜기를 따라내려가니 두만강기슭에 잇닿아진 골짜기어귀에 자그마한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새벽어스름속에서 그 마을의 집들은 홍수에 밀려내려오다가 한데 몰켜서 되는대로 구겨박힌 희끗희끗한 바위돌처럼 보였다.
3월 11일 16시경
《동무들, 조국땅이요! 조국이요!》
감격의 선풍이 대오를 휩쓸었다.
《야- 조선이다-》
《여기부터 조선땅인가!》
어느덧 대원들의 눈에는 뜨거운것이 번쩍거렸다.
우중충한 산기슭의 나무숲도 그들을 반겨 솨- 솨- 부드럽게 설레였다.
대오의 선두에 서신
박달나무의 잔가지에서 작은 새 한마리가 포로록 날아올랐다. 나무가지는 회오리처럼 휘청거리고 이름모를 그 새는 파란 하늘에 높이 날아올라 은방울을 굴리는듯 한 소리를 내질렀다. 하늘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구슬알들이 줄줄이 떨어져 가슴을 야릇하게 두드리는듯 하였다.
리성림이를 비롯한 어린 대원들도 신기하고 아름다운 그 소리에 넋이 빠져 입을 하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미소가 가득가득 담겼다. 한 대원은 벌써 어디서 주은것인지 장끼꼬리털 한개를 모자에 꽂았다.
대오는 울창한 숲에 덮인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골짜기와 그 량쪽산기슭에는 참나무, 박달나무, 물푸레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섰고 드문드문 피나무도 보였다. 락엽이 폭신폭신하게 깔린 시꺼먼 땅으로부터 어마어마한 기운이 뻗어오른듯 나무그루들은 굵직굵직하게 곧추 자라올랐는가 하면 힘이 꿈틀거리는 근육처럼 탈리기도 하고 우둘투둘한 매듭을 지으며 구불게 자라오르기도 하였다.
그 나무들의 잔가지들은 그루를 타고 올라온 기운을 하늘에 활짝 펼친듯 사방으로 뻗어올라 얼기설기 뒤엉켜 골짜기를 지붕처럼 덮었다.
나무가지들사이로 비쳐드는 오후의 따스한 해볕에 나무줄기들이 거뭇거뭇 젖어보이고 눈밑에서는 락엽 썩은 냄새가 풍겨올라 숲속에 진동하였다.
이역의 황막한 대륙에서와는 달리 보는것마다에서, 만져보는것마다에서 부드럽고 아늑한 그 무엇이 와락 매달리는듯 하였다. 그것은 피부로만 느껴지는것이 아니라 가슴속깊이에까지 뭉클하게 젖어들며 온 심혼을 뒤흔드는 힘차고 따뜻한 기운이였다.
까마득히 잊어버린 어머니의 젖비린내와 고향집의 흙벽냄새까지 목구멍에서 풍겨오르게 하는 이 거창한 감격은 대오의 전위에서부터 후위에 이르기까지 전대오에 굽이쳐흘렀다.
말없는 말, 소리없는 탄성이 대원들의 상기된 얼굴, 물기어린 눈, 격동에 벌려진 입에서 터져나와 골짜기에 서린 고요를 화락화락 휘저어놓는듯 했다.
이 골짜기에는 예로부터 숯구이막이 있었다. 숯구이막 즉 목탄을 구워내는 막이 있다고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탄막골이라고 불렀는데 내가의 막돌이 오랜 세월 물결에 다스러져 매끈한 조약돌로 되듯이 그 이름도 장구한 세월의 흐름속에서 준말로 다듬어져 타막골로 되였다.
문득 웃쪽에서 산토끼가 버스럭거리며 달아나는 소리가 나더니 인기척이 들려왔다.
나무가지들사이로 의아해하는듯이 이쪽을 내려다보는 김중권과 박태화의 얼굴들이 보였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나무군차림에 꼴망태까지 멘 그들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여 숨을 헐떡거리였다.
《다 모였소?》
《예, 다 모였습니다. 왕재산마루에 회의터도 잡아놓았습니다.》
《수고했소!》
《원호물자는 말씀대로 타막골어귀로 날라가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올리는 김중권은 조국땅에
그는 물기가 번쩍거리는 눈으로 대원들을 둘러보며 반갑게 웃어보였다.
활기에 넘친 대오는 골짜기바닥으로부터 오른쪽산경사면에 붙어 엇비스듬히 치달아올랐다.
김중권은 앞을 가로막는 마른나무가지들을 꺾어버리는가 하면 눈이 미끄러운데서는 발로 다져
대오가 아까 지나온 골짜기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 소나무와 참나무가 듬성듬성하게 선 민틋한 릉선을 옆에 끼고 서남방향으로 한동안 전진해나가니 시야가 시원히 틔였다.
이때 땅밑에서 솟아오른듯 저 앞쪽에서 여러명의 사람들이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들은 모두 로동복차림, 농민복차림의 청년들이다. 그들은 달려오다 말고 뚝 멈춰선다.
(저들이… 저 동무들이 그들인가! 아, 1년 남짓한 기간에 저리도 달라졌는가!)
《동무들! 왜 그러고 섰소?》
《
그들은 목청을 합쳐 부르짖으며
울음판이 터졌다. 얼마나 그립던
《
《이게 꿈이 아닙니까?》
로동복차림의 키작은 공작원은
어딘가 가까이에서 새들이 야단스럽게 우짖어대고 숲이 설레였다.
전장원이였다.
그의 보일듯말듯 이그러진 부석한 얼굴에는 참혹한 재난과 심각한 번뇌의 흔적이 어려있었다.
전장원은 안겨드는 감격을 감당하기 어려운듯 주춤 반걸음 물러섰다.
《
《전장원동무!》
감격이
《보고싶었소!》
《
《다 들었소. 동무가 겪은 일을 다 들었소.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소? 게다가 상처까지 하고…》
전장원은 머리를 떨구고 어깨를 떨며 흐느껴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