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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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도 사람도 봄을 꿈꾸는 3월초였다. 대륙을 휩쓰는 눈보라의 갈기처럼 위장포를 날리며 두만강을 뛰여건너간 유격대의 무장소조들은 경원과 종성과 회령의 적기관들을 기습하였다. 국경의 밤을 뒤흔드는 총성과 폭음, 하늘을 시뻘겋게 불사르는 불기둥, 왜놈의 국경수비무력들은 모두 그쪽으로 몰려가 수색을 벌리며 왁작 끓어번졌다.

그 틈에 김일성동지께서 친솔하시는 소부대는 고려령산줄기의 지맥들을 강행군으로 넘어 솔골에 떨어졌다.

소나무숲이 우거진 골짜기를 따라내려가니 두만강기슭에 잇닿아진 골짜기어귀에 자그마한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새벽어스름속에서 그 마을의 집들은 홍수에 밀려내려오다가 한데 몰켜서 되는대로 구겨박힌 희끗희끗한 바위돌처럼 보였다.

장군님께서는 부대와 함께 솔골마을에 묵으면서 박태화소대장을 책임자로 하는 선발대를 파견하시고 김중권을 여러번 온성으로 비밀리에 건너보내시여 온성지구의 지하조직책임자들과 정치공작원들의 활동정형을 료해하시고 그들을 왕재산에 모이도록 하시였다.

3월 11일 16시경 장군님께서 친솔하시는 부대는 적의 삼엄한 국경경비망을 뚫고 얼어붙은 두만강을 순식간에 건너 조국땅의 기슭에 올랐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대원들을 돌아보시며 격정에 넘친 음성으로 나직이 웨치시였다.

《동무들, 조국땅이요! 조국이요!》

감격의 선풍이 대오를 휩쓸었다.

《야- 조선이다-》

《여기부터 조선땅인가!》

어느덧 대원들의 눈에는 뜨거운것이 번쩍거렸다.

우중충한 산기슭의 나무숲도 그들을 반겨 솨- 솨- 부드럽게 설레였다.

대오의 선두에 서신 장군님께서는 감개무량하시여 산골짜기를 둘러보시였다. 조국광복의 큰뜻을 다지며 중강의 포평나루에서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이국황야의 기슭에 올라서신 때로부터 어언 8~9년세월이 흘러갔다. 그사이 가슴아픈 상실은 얼마나 당했으며 삶과 죽음이 판가리되는 시련의 준령들은 얼마나 넘었던가! 무송과 화전, 그다음에는 길림의 투쟁과 간고한 옥중생활 그리고 할빈을 거쳐 돈화와 간도와 온성, 카륜, 오가자일대에서의 공작에 이어 안도에서의 반일인민유격대창건, 무송으로 줄달음쳤던 남만진출의 험난한 길, 로흑산에서의 시련, 유격근거지에서의 변혁… 피와 땀으로 얼룩진 머나먼 장정의 그 길을 거쳐 오늘 비로소 무장대오를 이끄시고 조국의 북변에 올라서신 그이이시였다.

그이께서는 뭉클하게 안겨드는 조국땅의 그윽한 냄새를 한껏 들이키며 하늘을 쳐다보시였다.

박달나무의 잔가지에서 작은 새 한마리가 포로록 날아올랐다. 나무가지는 회오리처럼 휘청거리고 이름모를 그 새는 파란 하늘에 높이 날아올라 은방울을 굴리는듯 한 소리를 내질렀다. 하늘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구슬알들이 줄줄이 떨어져 가슴을 야릇하게 두드리는듯 하였다.

리성림이를 비롯한 어린 대원들도 신기하고 아름다운 그 소리에 넋이 빠져 입을 하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미소가 가득가득 담겼다. 한 대원은 벌써 어디서 주은것인지 장끼꼬리털 한개를 모자에 꽂았다.

대오는 울창한 숲에 덮인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골짜기와 그 량쪽산기슭에는 참나무, 박달나무, 물푸레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섰고 드문드문 피나무도 보였다. 락엽이 폭신폭신하게 깔린 시꺼먼 땅으로부터 어마어마한 기운이 뻗어오른듯 나무그루들은 굵직굵직하게 곧추 자라올랐는가 하면 힘이 꿈틀거리는 근육처럼 탈리기도 하고 우둘투둘한 매듭을 지으며 구불게 자라오르기도 하였다.

그 나무들의 잔가지들은 그루를 타고 올라온 기운을 하늘에 활짝 펼친듯 사방으로 뻗어올라 얼기설기 뒤엉켜 골짜기를 지붕처럼 덮었다.

나무가지들사이로 비쳐드는 오후의 따스한 해볕에 나무줄기들이 거뭇거뭇 젖어보이고 눈밑에서는 락엽 썩은 냄새가 풍겨올라 숲속에 진동하였다.

이역의 황막한 대륙에서와는 달리 보는것마다에서, 만져보는것마다에서 부드럽고 아늑한 그 무엇이 와락 매달리는듯 하였다. 그것은 피부로만 느껴지는것이 아니라 가슴속깊이에까지 뭉클하게 젖어들며 온 심혼을 뒤흔드는 힘차고 따뜻한 기운이였다.

까마득히 잊어버린 어머니의 젖비린내와 고향집의 흙벽냄새까지 목구멍에서 풍겨오르게 하는 이 거창한 감격은 대오의 전위에서부터 후위에 이르기까지 전대오에 굽이쳐흘렀다.

말없는 말, 소리없는 탄성이 대원들의 상기된 얼굴, 물기어린 눈, 격동에 벌려진 입에서 터져나와 골짜기에 서린 고요를 화락화락 휘저어놓는듯 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항일유격대의 조국진출로로 선택된 이 골짜기의 유래에 대하여 잘 알고계시였다.

이 골짜기에는 예로부터 숯구이막이 있었다. 숯구이막 즉 목탄을 구워내는 막이 있다고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탄막골이라고 불렀는데 내가의 막돌이 오랜 세월 물결에 다스러져 매끈한 조약돌로 되듯이 그 이름도 장구한 세월의 흐름속에서 준말로 다듬어져 타막골로 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인민들이 날라오는 원호물자를 받기 위하여 대원 몇을 타막골어귀에 떨구시고는 골짜기를 따라 계속 치달아오르시였다.

문득 웃쪽에서 산토끼가 버스럭거리며 달아나는 소리가 나더니 인기척이 들려왔다.

나무가지들사이로 의아해하는듯이 이쪽을 내려다보는 김중권과 박태화의 얼굴들이 보였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그이께서 손을 번쩍 쳐드시자 김중권은 입을 크게 벌리는것 같더니 마구 달려내려왔다.

나무군차림에 꼴망태까지 멘 그들은 얼굴이 붉게 상기되여 숨을 헐떡거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중권을 보며 조용히 물으시였다.

《다 모였소?》

《예, 다 모였습니다. 왕재산마루에 회의터도 잡아놓았습니다.》

《수고했소!》

《원호물자는 말씀대로 타막골어귀로 날라가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올리는 김중권은 조국땅에 그이를 모시게 된 감격으로 하여 눈에 뜨거운것이 차올랐다.

그는 물기가 번쩍거리는 눈으로 대원들을 둘러보며 반갑게 웃어보였다.

활기에 넘친 대오는 골짜기바닥으로부터 오른쪽산경사면에 붙어 엇비스듬히 치달아올랐다.

김중권은 앞을 가로막는 마른나무가지들을 꺾어버리는가 하면 눈이 미끄러운데서는 발로 다져 장군님께서 밟으실 턱을 만들어놓으며 산마루쪽으로 날렵하게 걸어올라갔다.

장군님께서는 최춘국의 등을 떠밀어주시는가 하면 뒤따르는 전령병의 손을 잡아 끌어올려주시면서 걸음을 다그치시였다. 대오에는 열화와도 같은 흥분이 굽이쳤다. 대원들은 엎어지고 기여오르고 나무가 빽빽이 선데를 날래게 빠져나갔다. 군복이 나무그루에 스치는 소리, 삭정이가 부러지는 소리, 미끄러지는 소리, 다급한 숨소리… 숲은 와스스 와스스 설레였다.

대오가 아까 지나온 골짜기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 소나무와 참나무가 듬성듬성하게 선 민틋한 릉선을 옆에 끼고 서남방향으로 한동안 전진해나가니 시야가 시원히 틔였다.

이때 땅밑에서 솟아오른듯 저 앞쪽에서 여러명의 사람들이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들은 모두 로동복차림, 농민복차림의 청년들이다. 그들은 달려오다 말고 뚝 멈춰선다.

장군님께서도 걸음을 멈추시였다. 그들은 명월구회의를 전후한 시기에 그이께서 오늘을 내다보시고 국내지구에 파견하시였던 공작원들중의 몇사람이다.

장군님의 안광에 감격의 빛이 차넘치였다.

(저들이… 저 동무들이 그들인가! 아, 1년 남짓한 기간에 저리도 달라졌는가!)

《동무들! 왜 그러고 섰소?》

장군님께서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웨치며 달려나가시였다.

사령관동지!》

그들은 목청을 합쳐 부르짖으며 장군님께로 와락 달려들었다. 장군님께서는 두팔을 활짝 벌려 그들을 한아름에 안고 돌아가시였다. 그이의 품에 안겨 한덩어리가 된 공작원들, 사람들이 돌아가는지 산이 돌아가고 하늘이 돌아가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울음판이 터졌다. 얼마나 그립던 장군님이신가. 얼마나 보고싶으시던 대원들인가!

사령관동지!》

《이게 꿈이 아닙니까?》

로동복차림의 키작은 공작원은 장군님을 뒤로 그러안고 그이의 잔등에 얼굴을 묻는다.

어딘가 가까이에서 새들이 야단스럽게 우짖어대고 숲이 설레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품에 안긴 공작원들의 머리너머로 열댓걸음앞에 홀로 엉거주춤 서있는 청년을 보게 되시였다. 조선바지저고리우에 검은색덧저고리를 단정히 입은 그 청년은 얼이 나간듯 한 눈으로 이쪽을 빤히 쳐다보며 손을 어디에다 건사했으면 좋을지 몰라 동정도 만지고 덧저고리앞섶도 쓰다듬었다.

전장원이였다.

그의 보일듯말듯 이그러진 부석한 얼굴에는 참혹한 재난과 심각한 번뇌의 흔적이 어려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품에서 물러선 공작원들의 옆을 지나 그에게로 천천히 걸어나가시였다.

전장원은 안겨드는 감격을 감당하기 어려운듯 주춤 반걸음 물러섰다.

장군님!》 하고 전장원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으며 앞으로 달려나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였다가 한팔로 그를 품에 안으시였다.

《전장원동무!》

감격이 그이의 가슴에 휩쓸어들었다.

《보고싶었소!》

장군님, 그리웠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다 들었소. 동무가 겪은 일을 다 들었소.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소? 게다가 상처까지 하고…》

전장원은 머리를 떨구고 어깨를 떨며 흐느껴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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