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3 장

민비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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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원사의 아미타부처앞에 두손을 합장하고앉은 오까모도의 곁에서 늙은 주지가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읽고있었다.

《…지심 귀경례 보문사현 원심흥력 대자대비 관세음보살…》

오까모도가 직산광산에서 일을 망치고 서울로 되돌아온 참으로 계원사를 찾은것은 진령군 박소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뭐니뭐니해도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민비였는데 그의 동태는 진령군을 통해서만 알수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오래동안 직산금광일로 타곳에 가있다보니 진령군을 만나보지 못해 그간 교활한 민비가 무슨 계교를 꾸미고있지 않는지 무척 궁금스러웠다.

제사에는 관심없고 제상에만 관심높다는 격으로 진령군을 만날 생각에 골몰해있는 그에게는 주지의 경읽는 소리가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했다.

이윽고 주지는 오까모도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밖으로 나오면서 오까모도를 치하했다.

《참, 당신은 착실한 불도이시오.》

《세존의 가르치심은 제 필생의 좌우명입니다.》

점잖게 대척한 오까모도는 읍을 하고 주지와 헤여졌다.

주지가 승방으로 들어가자 젊은 중이 다가와 오까모도에게 눈짓하고는 앞서 걸었다. 오까모도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그들은 승방에서 주지가 문틈으로 자기들을 엿보고있는줄은 전혀 모르고있었다.

오까모도를 암자로 안내한 젊은 중이 읍을 하고 물러가자 그는 암자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둑시그레한 암자안에서 진령군이 오까모도를 맞아주었다.

오까모도는 반기는 기색으로 물었다.

《온지 오래 되였소?》

《온몸에 쥐똥내가 배도록 기다렸어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뾰로통해진 진령군은 또 지청구를 했다.

《한데 무슨 일로 어데 가서 그리 오래 있었어요?》

《후에 얘기해주지.》

《흥, 나는 중요기밀을 일일이 고해바치는데 당신은 나한테 모든걸 숨기기만 하는구만요.》

진령군이 앵돌아진 소리를 하자 오까모도는 허거프게 웃었다.

《이거 오늘은 진령군이 지내 비싸게 군다. 당신의 공로에 대해 제국정부에 보고했으니 이제 무슨 상이 내려올거요. 그건 그렇구, 그간 민비의 동태는 어떻소?》

진령군은 오연한 태도로 오까모도를 건너다보며 그러나 말소리를 죽여 긴장하게 말했다.

《당신들, 일본인들속에 중전의 내간, 다시 말해 민비의 렴탐군이 있어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오까모도는 흠칫 놀라며 진령군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진령군이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왜? 내가 거짓말을 하는것 같아 그래요?》

《아니, 너무 뜻밖이여서 그러오. 그래, 그게 누구요?》

《민중전과 자주 접촉하는 일본인이 누군가 알아보면 되잖아요.》

이마살을 찌프리고 생각에 잠기던 오까모도는 이윽고 고개를 들어 진령군을 쳐다보았다.

《조선왕비와 접촉하는건 오또리공사와 스기무라서기관뿐인데 설마 그들이…》 이렇게 말한 오까모도는 애소가 비낀 웃음을 띄웠다.

《이거야 속이 근질거려 어디 견디겠소.》

《종내 알지 못하는군.》

혼자소리하듯 중얼거린 진령군은 눈을 쪼프리고 오까모도를 건너다보았다.

《다까하시 부인이지 누군 누구겠어요.》

《엉?! 나쯔미가? …》

오까모도는 이어 긴장한 낯색을 풀며 웃었다.

《나쯔미는 스기무라서기관의 내간이야. 스기무라가 민비의 동태를 알기 위해 나쯔미를 우정 민비와 접촉하도록 한단 말이요. 에, 나도 중요비밀을 당신에게 말해주었으니 목숨처럼 지켜야 하오.》

오까모도의 말에 진령군은 어처구니없는듯 소리내여 웃었다.

《하하… 오까모도상, 내가 그렇게 어리석어 보여요? 오까모도상이 서울을 떠나기에 앞서 나쯔미가 남방과일을 가지고 민중전을 찾아왔댔는데 그가 떠나간 후 민중전이 나한테 왜인들이 우리 나라의 금을 빼앗아가려 하니 야단났다고 하더군요. 그후 군국기무처에 지시하여 외국인이 조선의 토지, 산림, 광산 등 부동산을 점유, 매매하지 못한다는 법을 내오도록 한거예요. 그리구 민중전은 이제 왜인들이 빼앗으려고 하는 직산금광에서 무슨 일이 터지는가 두고보라고 벼르더군요.》

오까모도의 낯에 살기가 뻗쳤다.

《그게 정말인가?!》

《상기두 내 말을 믿지 못하겠어요. 다까하시 부인인지 하는 그년은 임진란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사람의 후예예요, 이젠 알겠어요?》

《요시!(좋다!)》

잔인한 표정을 띄운 오까모도가 이새로 내뱉듯 악에 받쳐 뇌까렸다. 직산금광일로 가뜩이나 속이 뒤틀려있던 오까모도는 그 장본인이 바로 민비이며 그에게 미리 선통한것이 나쯔미란것을 알자 그를 갈기갈기 찢어죽이고싶었다.

그의 표정을 겁에 질린 눈길로 바라보던 진령군이 겁기어린 어조로 사정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이 아니, 일본공사관에서 나를 보호해주어야 해요. 조선사람들은 나를 다 미워하니까요.》

오까모도는 진령군낯짝에 퍼릿퍼릿하게 내밴 분독에 눈길을 주며 조소하듯 뇌까렸다.

《동족에게 꽤 미움을 샀군그래. 좋소, 오늘은 이만합시다.》

진령군과 헤여진 오까모도는 곧바로 공사관의 스기무라서기관을 찾아갔다.

 

자기 집을 찾아온 공사관서기관 스기무라와 마주앉은 다까하시는 여간 초조하고 불안하지 않았다. 공직인물인 서기관은 개인들의 사택을 찾는 일이 별로 없는데다 스기무라의 낯색이 여느때없이 컴컴하게 죽어있었던것이다.

웃방에서 다까하시의 처 나쯔미의 인기척소리가 났다. 스기무라는 고개짓으로 나쯔미를 밖에 내보내라고 했다.

그의 뜻을 알아차린 다까하시가 웃방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당신 밖에 나가 사시미(회)나 이꾸라(은어알) 같은 안주감이나 좀 사오지 그래.》

《알겠어요.》

나쯔미의 대답소리에 뒤이어 웃방문이 여닫기는 소리가 났다.

《나갔소.》

다까하시는 긴장된 눈길을 스기무라한테서 떼지 않고 말했다.

그제야 스기무라는 다까하시에게 독기서린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여보 다까하시, 이거 큰일났소.》

《큰일이라니요?》

다까하시는 스기무라의 느닷없는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신의 처 나쯔미가 조선왕비에게 우리 사정을 일일이 고해바쳤단 말이요. 그의 간첩노릇을 했단 말이요.》

다까하시가 펄쩍 뛰였다.

《원 그럴리가…》

《나쯔미는 조선사람의 후예란 말이요. 그러니 우리와는 피줄이 달라.》

스기무라가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소리에 다까하시는 또다시 머리를 저었다.

다까하시가 그러거나말거나 스기무라는 절반은 공박, 절반은 사정하는 투로 말했다.

《천황페하를 배반하면 어떻게 된다는걸 당신도 알지 않소. 그깐년은 이젠 죽은 목숨이고 당신과 내가 문제란 말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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