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3 장

민비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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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색이 된 다까하시는 입도 벌리지 못했다. 앉은벼락이라더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듯 한 환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얼친 놈처럼 되여버린 다까하시의 번대머리를 쏘아보며 스기무라가 반말투로 말했다.

《다까하시, 어쨌으면 좋겠나?》

《한데… 이건 어데서 들은 소리요?》

다까하시가 용기를 내여 한마디 물었다.

《이런걸 알아내는 녀석이야 오까모도밖에 더 있는가.》

오까모도란 소리에 다까하시는 골살을 찌프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교활하고 잔인하고 살인적기질을 가진 오까모도의 낯이 눈앞에 떠오른 다까하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던 다까하시는 별안간 낯색이 벌겋게 상기되더니 스기무라에게 대들었다. 절망끝에 부리는 반발이고 객기였으며 광기였다.

《다 서기관 당신때문이요!》

《그건 무슨 소리야?》

스기무라도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쯔미를 조선왕비와 접촉하도록 만든게 당신이 아닌가 말이요?》

스기무라가 쪼프린 눈에 비웃음을 띠우며 빈정거렸다.

《민비의 간을 뽑아오라고 보냈지 우리 간을 뽑아주라고 보냈나?》

《어쨌든 그를 민비와 접촉시키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게 아닌가 말이요?》

돌연 스기무라가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다까하시상, 우리가 이러고있을 때가 아니요. 이렇게 언쟁이나 하면 우리 처지가 더 불리해질뿐이요. 빨리 무슨 묘술을 찾아야지.》

다까하시도 낯색을 풀며 스기무라에게 매달렸다.

《스기무라상, 어쨌으면 좋겠소?》

스기무라가 웃방쪽에 눈길을 주고나서 목소리를 죽여 뇌까렸다.

《당신 처가 이제 오까모도의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된다는걸 알지?》

다까하시는 몸을 덜덜 떨었다. 스기무라가 목소리를 더욱 죽여 수군거리였다.

《그러니 나쯔미를 당신손으로 없애버리는게 상책이요. 당신이야 약국상이니 비상과 같은 극약이 얼마든지 있을게 아니요.》

《그래서 그년이 씨도 안 받고… 하지만 내 손으로야 어떻게?》

다까하시가 울상이 되여 중얼거렸다.

《그런 동정이 무슨 소용이 있소? 자칫하면 당신도 나도 무사치 못하다는걸 명심하오. 자, 그럼 가겠소.》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문쪽으로 몇걸음 옮기던 스기무라가 문득 멈추어서더니 다까하시를 내려다보았다.

《다까하시, 오늘 밤중으로 처리해야지 래일 아침은 벌써 늦소.》

다까하시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스기무라가 떠나가자 다까하시는 웃방으로 올라가 약장을 뒤져 제일 구석에 세워둔 자그마한 비상약병을 집어들었다. 그것을 차에 풀어먹이면 나쯔미는 이미 이 세상사람이 아닐것이다. 그러나 내 손으로 나쯔미를 죽이다니… 아, 세상살이란 왜 이다지도 고달프기만 한가. 괴로움에 잠긴 다까하시는 비상약병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불현듯 그년을 다른 사람의 손으로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돈이나 몇푼 쥐여주면 사람잡이를 파리잡듯 하는 무직건달놈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쨌든 빨리 손을 써야 한다. 나쯔미가 오까모도의 손에 들어가는 날엔 야단이다. 오까모도의 무리한 고문에 견디지 못한 나쯔미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더 나올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니 오늘 밤중으로 나쯔미를 처리해야 한다. 래일 아침은 벌써 늦는다고 스기무라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때 저자바구니를 든 나쯔미가 방에 들어서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스기무라서기관님은 왜 보이지 않아요?》

《갔소.》

다까하시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가다니요? … 제일 고급술인 산란슈(찬란주)도 사오고 안주감도 많이 샀는데…》

나쯔미는 사뭇 서운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다까하시가 긴장하고도 침중한 표정으로 안해에게 방바닥을 가리켰다.

《나쨩, 앉소.》

나쯔미는 여느때와 다른 남편의 기색에 저으기 놀라움을 느끼며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나쨩, 내 말을 명심해듣소. 당신은 이제부터 어데 움쩍하지 말구 집에 배겨있소.》

나쯔미는 불시에 가슴이 후두둑 떨려 불안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길게 말할 시간도 없소. 내가 어데 잠간 나갔다 올테니 내가 올 때까지 절대로 밖에 나가지 마오.》

이렇게 강조한 다까하시는 훌쩍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총총히 나가버렸다.

무슨 영문인지 까닭을 알지 못하는 나쯔미는 남편의 거동이 의아스럽고 불안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가슴속 한구석에 이것이 조선왕비와 관계된 문제일것이라는 느낌이 어렴풋이 그러나 또아리 튼 배암처럼 자리잡는것이였다.

갑자기 문밖에서 손기척소리가 울리더니 남편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줄가말가하고 망설이던 나쯔미는 밖에서 재차 찾는 소리에 어쩔수없이 몸을 일으켜 문고리를 벗겼다.

뜻밖에도 어색한 웃음을 띠운 오까모도가 미야께와 함께 서있었다.

나쯔미는 까닭모를 불안을 느끼며 떠듬떠듬 말했다.

《저 주인은… 계시지 않는데요.》

《상관없습니다. 옥상이 계시니 다행입니다.》

오까모도는 주변을 둘러보고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옥상, 우리와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어데로?》

《스기무라서기관이 옥상을 기다리고있습니다.》

《스기무라서기관님이? …》

스기무라가 찾는다는 소리에 나쯔미는 얼마간 마음이 놓였다.

《그럼 옷을 갈아입고…》

《아, 그 차림으로 가도 됩니다.》

《그래두…》

《좋도록 하십시오.》

얼마후 부풀어올린 다까시마다머리에 알락달락한 기모노를 입고 허리에 분홍색오비를 띠고 흰 짜개버선인 다비에 조리를 신은 나쯔미가 오까모도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얼마쯤 뒤에서 좌우로 약간씩 움직이는 나쯔미의 덜퍽진 엉뎅이에서 음탕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미야께가 따르고있었다.

오까모도는 나쯔미를 파성관으로 데리고 갔다.

나쯔미가 다시금 불안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공사관으로 간다더니 여기야 려관이 아닌가요?》

오까모도는 그 말엔 대척도 하지 않고 나쯔미를 파성관의 현관안으로 우악스러운 손길로 떠밀어넣었다.

잔등을 떠밀리워 넘어질번 한 나쯔미는 홱 고개를 돌려 오까모도를 쏘아보았다.

《이게 무슨짓이예요?》

《잔말말고 어서 걸어!》

반말로 뇌까린 오까모도는 또다시 복도쪽으로 나쯔미의 잔등을 떠밀었다. 오까모도는 나쯔미를 제일 구석진 방쪽으로 끌고갔다.

방문을 닫고 의자에 걸터앉은 오까모도가 서있는 나쯔미에게 푸독사처럼 턱을 쳐들었다.

《왜 여기로 끌려왔는지 알겠느냐?》

《…》

영문도 알수 없고 대답하고도싶지 않은 나쯔미는 잠자코 서있기만 했다. 창문으로 흘러든 락조가 그 녀자의 희고 예쁘장한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있었다.

《민비에게 어떤 일들을 고해바쳤느냐?》

오까모도가 이새로 내뱉듯 따졌다.

역시 그것때문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쯔미는 이제는 끝장이란것을 깨달았다.

《천황페하를 배신하면 어떻게 된다는걸 알지.》

오까모도는 눈을 부릅뜨고 나쯔미를 위협공갈했다. 나쯔미는 눈을 꾹 감았다. 자기와 같은 경우를 당하면 사내들은 흔히 할복자살하기마련이였다. 그러나 자기는 녀자가 아닌가.

《…》

《지독한년, 입을 열지 않겠다는거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오까모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문가에 서있는 미야께에게 고개를 돌렸다.

《미야께, 저쪽 방에 성성이패들이 그대로 있는가?》

《하, 있습니다.》

《그들모두를 여기로 데려오라.》

문을 열고 나간 미야께는 잠시후 7~8명의 성성이패당들을 데려왔다.

볼이며 턱에 수염이 더부룩하거나 헤쳐진 하오리짬으로 부시시한 검은 털이 덮인 가슴이 들여다보이는 짐승같은 놈들과 마주선 나쯔미의 눈길은 불안과 공포로 허둥거렸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오까모도는 사색이 된 나쯔미를 턱으로 가리키며 큰 혜택이라도 베푼듯이 뇌까렸다.

《저년을 오늘 밤 너희, 성성이패들의 먹이감으로, 놀이감으로 던져주겠으니 실컷 재미를 보라.》

너무 좋아 만세라도 부르듯 팔을 쳐들고 벙글거리는 놈들은 참말 성성이들 같았다.

자기 신상에 닥친 엄청난 불행을 직감한 나쯔미는 《으악!》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미야께에게 일이 끝나면 나쯔미를 흔적도 없이 땅에 묻어버리라고 지시한 오까모도는 파성관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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