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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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권은 최춘국이 옆구리를 건드리는 바람에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다.
최춘국은 회의터아래의 소나무숲쪽을 눈길로 가리켰다. 그 소나무숲속에서 키가 작달막한 유격대원이 달려나오고있었다. 오판단이였다.
그는 뒤에서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듯 자주 뒤를 돌아보며 이쪽으로 뛰여올라왔다.
김중권은 슬그머니 회의장에서 물러나 그를 향하여 마주 달려내려갔다.
오판단이는 눈이 동그래져서 숨을 헐떡거리였다.
《이거 야단났습니다. 》
《무슨 일이요?》 하고 김중권은 다급하게 물었다.
《원호물자를 지고왔던 사람들이 생떼를 씁니다.
《동무는 좌우간, 이게 비밀회의인줄 모르오? 왜 접근시켰소, 적에게 발견되면 어떻게 하오?》
《젠들 어떻게 합니까? 막무가낸데…》
《동무는 언제봐야 인정에 너무 무르단 말이요.》
김중권은 엄한 표정을 지으며 소나무숲속으로 내려갔다. 오판단은 뿌루퉁한 얼굴로 그의 뒤를 따랐다.
소나무숲속에서는 숱한 사람들이 서로 밀고닥치며 옥신각신하고있었다.
등짐을 지고왔던 바줄을 어깨에 걸친 검정로동복차림의 장정이 세사람만 옆에 골라내세우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돌아가라고 요구하고있었다.
구레나릇이 시꺼먼 그 장정은 밀려나서 눈에 불이 이는 사람들에게 엄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이러지들 마시오, 대표로 뵙고 가서 잘 이야기하면 되지 않소. 모두 하나같이 이러다간 다 밀려나고마오.》
그러자 지게를 지고 목에 수건을 동인 얼굴이 동그스름한 애된 청년이 울상이 되여 대들었다.
《전… 전… 못 가요. 마을에서
그의 뒤에서 털벙거지를 쓴 수염발이 허연 로인이 그를 뒤로 잡아끌었다.
《아니, 젊은이야 앞길이 구만리같지 않나. 이 늙은것을 앞에 내세워주면 못쓰나. 나는
로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끓었다.
김중권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눈을 슴벅이며 어찌할바를 몰라하다가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자기앞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에게 모진 소리 한마디 못하고 그들을 모두 솔밭가장자리까지 데리고나가서 밑에서 보이지 않도록 앉혔다.
그 사람들은 잡관목덤불속에 자리를 잡고는 회의터를 우러러 쳐다보았다.
때마침
《동무들!
조국땅에서 이처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과 정치공작원들이 모여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을 하루빨리 앞당기기 위한 대책을 토의하는것은 매우 의의깊은 일입니다!》
해빛이 찬란한 푸른 하늘밑에 거연히 서시여 백포자락을 날리며 만리대공을 향하여 팔을 내뻗치시는
대기속에서 보이지 않는 파도가 일며 소나무숲이 솨- 솨- 설레였다.
털벙거지를 쓴 수염발이 허연 로인이 벌떡 일어나 김중권의 두손을 덥석 잡았다.
《젊은이, 저분이
얼굴을 덜덜 떨며 이렇게 부르짖는 로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끓었다.
김중권도 가슴을 치는 감격에 눈앞이 흐려지고 목이 메였다.
《할아버지, 진정을 하십시오, 진정을… 앉으십시오!》
그는 로인을 가까스로 주저앉혔다.
로인은 앉아서도 손등으로 눈을 자꾸 비비며
김중권은 오판단에게 그 사람들을 잘 지키고있도록 이르고는 다른데서 또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는가 하여 회의터둘레의 숲속을 돌아보았다.
그는 앞을 막는 나무가지들을 조용조용히 헤치기도 하고 다리에 걸리는 삭정이들이나 마른 넝쿨들을 치워놓기도 하며 천천히 걸어나가면서 숲속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김중권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숲속에 숨어서
하늘에서는 해빛이 눈부시게 쏟아져내려 숲속이며 온 대지가 환해졌다. 어디선가 새들이 벌써 봄기운이 젖어든 고운 목청으로 짝자그르르 지저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