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3 장

민비의 고민

2

 

《중전마마,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시나이까?》

생각에 골똘해있는 민비를 곁에서 유심히 지켜보고있던 홍아정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민비가 상념에서 깨여나며 아정이쪽에 고개를 돌렸다.

《응? … 아무것도 아니다.》

이때 진령군이 활기있게 들어오더니 민비에게 건숭 절하고는 앞에 앉았다. 그는 아정이를 밉살스러운 눈길로 찔 흘겨보았다. 진령군을 마주보는 아정이의 눈길도 온곱지 않았다.

진령군이 민비쪽에 고개를 수그리고 긴장된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중전마마, 소신이 방금 들었사온데 다까하시부인이 실종되였다든지 죽었다든지 아무튼 없어졌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냐?》

민비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소신도 자세한건 모르오나 일본사람들이 한짓같다 하오이다.》

《일본사람들이? …》

혼자소리로 되뇌인 민비는 문쪽을 응시하며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왜인들이 그를 처리했다면 그건 자기와 관계되는 일때문이 아니겠는가. 그가 나한테 왜인들의 동태를 알려준다는것을 그들이 어떻게 알았을가. 나쯔미가 제입으로 그런 소리를 했을리는 없는게고… 문득 진령군쪽으로 얼굴을 돌리던 민비는 깨고소해서 샐쭉샐쭉 웃고있는 그를 보고 아연해졌다.

《진령군은 무엇이 좋아 그렇게 웃고있나?》

진령군은 당황하여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 아니오이다. 그럼 소신은…》

진령군이 급급히 자리를 떴다.

그의 뒤를 유심히 바라보던 민비는 그가 문밖으로 사라지자 아정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 저 진령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정은 대답을 망설였다.

《일없으니 서슴지 말고 말하거라.》

아정은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좋지 않게 생각하나이다.》

《왜?》

《항간에서 저 진령군이 중전마마를 꼬드겨 궁궐에서 밤새워 굿놀이를 한다, 명산대찰에 제를 지낸다 하며 미신행위를 랑자하게 벌린다고 하옵니다. 그래서 진령군 박소사를 요녀라고들 욕하나이다.》

《그렇단 말이지. 박소사는 참말 대패질에 기름칠을 한듯 반들반들한 계집이지…》

민비는 회의감에 잠겼다. 이윽하여 민비가 다시금 아정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정아, 어찌하여 일본공사관에서 내 일수족일투족에 대해 낱낱이 알고있을가?》

《예에?!》

사뭇 놀라는 아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중전마마의 측근에 일본공사관과 통하는자가 있음을 의미하지 않겠나이까?》

《그렇지?》 민비가 또다시 생각에 잠겨 혼자소리처럼 뇌였다.

《그자가 도대체 누굴가? …》

민비앞을 물러난 홍아정은 궁녀방에 있는 조상궁에게 진령군이 계원사에 자주 다니는가고 은근스럽게 물었다. 아정의 물음에 조상궁은 진령군이 불공드리러 계원사에 가군 한다고 별생각없이 대답했다.

조상궁이 문득 눈을 쪼프리며 혼자소리하듯 뇌였다.

《참, 언젠가 보니 진령군이 암자에서 일본사람과 함께 나오더군.》

《예?!》

아정의 표정이 긴장해지고 눈빛이 번뜩였다.

《그게 언제예요?》

《청명때던것 같애. 그래, 내가 청명 시주하러 갔던 때였으니까. 그런데 왜 그러나?》

조상궁이 의아쩍게 물었다.

아정은 살짝 웃으며 깜찍하게 돌려댔다.

《계원사는 우리 어머니 단골절이니까요.》

《그래그래, 거기서 내가 정초에 아정이를 보았구 그래서 오늘은 함께 중전마마를 모시게 되였지.》

조상궁은 흐뭇해서 웃었다.

아정은 그길로 향원못가에서 시녀들을 거느리고 산책하고있는 왕비의 정장을 한 민비한테로 종종 걸음쳐갔다. 자신의 존엄과 위엄에 대해 언제나 신경을 쓰는 민비는 늘 정장을 하고있었다.

민비가 손을 내밀자 궁녀 하나가 얼른 그의 손에 모이봉지를 놓아주었다. 민비가 못에 모이를 뿌리니 금붕어들이 그것을 받아먹느라 와글거렸다. 미소를 띠운 민비가 그것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그의 곁으로 총총히 다가온 아정이가 얼굴에 신중한 표정을 짓고 민비에게 낮은 소리로 여쭈었다.

《중전마마, 긴히 여쭐 말씀이…》

그의 표정을 본 민비가 손짓으로 시녀들을 물리쳤다. 궁녀들이 조심스럽게 자리를 뜨자 아정이와 함께 돌의자에 앉은 민비는 그에게 정찬 눈길을 보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아정의 낯색은 여전히 심각했다.

《중전마마, 소녀 방금전에 조상궁을 만나보았나이다.》

《그런데는?》

《조상궁의 말이 청명때 계원사의 암자에서 진령군이 왜인과 함께 나오는것을 보았다 하나이다.》

《무어라?!》

흠칫 놀라던 민비의 표정이 다음순간 표표해졌다.

《마마께서 조상궁을 직접 만나보심이? …》

아정의 말에 대답없이 신중한 낯색으로 돌의자에서 일어선 민비가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럴수가 있나?》

무거운 생각에 잠겨 거니는 민비의 뒤를 아정이가 조용히 따라섰다.

돌의자에 다시 앉은 민비가 아정이에게 곁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아정이가 곁에 조심스럽게 앉자 민비가 낮은 소리로 지시했다.

《아정아, 너 이제 곧 계원사로 가거라. 가서 주지를 만나보거라.》

나이지숙한 계원사주지는 자기앞에 단정히 앉아있는 아정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소저가 중전마마를 섬기는 특별상궁이 되다니, 참 경하를 드리오이다.》

아정은 주지에게 다정하면서도 침착한 태도로 말하였다.

《주지스님, 한가지 알고싶은것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예, 말씀하시오.》

주지가 념주알을 주무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불도가 아니지만 어머님이 독실한 불도니만치 어머님의 이름으로 세존께 맹세컨대 진실만을 말하겠으니 주지스님께서도 그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말씀하시오.》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하는 아정의 말을 주지는 주의깊이 들었다.

주지는 신중한 기색으로 좌우를 둘러보더니 아정이에게 나직한 소리로 이야기했다.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아정은 입술을 옥물었다.

대궐의 건청궁으로 돌아온 아정은 힘꼴이나 쓰게 생긴 무예별감 두명을 불러 지시를 주었다.

평복차림으로 계원사에 당도한 무예별감들은 길가의 덤불숲에 몸을 숨기고있었다. 한참이나 걸려서야 기다리던 젊은 중놈이 몸을 흔들거리며 그들의 앞을 지나갔다. 무예별감들은 별안간 그에게 달려들어 입에 자갈을 물리고 숲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무예별감들이 젊은 중놈의 턱밑에 번뜩이는 칼을 들이대고 따지니 중놈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면서 진령군과 오까모도의 관계를 다 불고 자기는 그들의 심부름을 해주고 잔돈푼을 얻어쓴다는것까지 토설했다.

건청궁 옥호루에서 민비를 만난 아정은 그간 자기가 알아본 진령군의 정체에 대하여 자상히 아뢰였다.

그의 말을 들은 민비는 덴겁하듯 놀랐다.

《무어라?! … 그게 적실하냐?》

《중전마마, 소녀의 말은 죄다 사실이오이다. 조상궁과 무예별감들을 만나 사실여부를 확인하시기 바라나이다.》

《알겠다.》

민비의 얼굴에는 착잡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건청궁 옥호루 옥좌에 앉은 민비가 접이부채로 신경질을 부리듯 활활 부채질을 하고있었다. 두 궁녀가 뒤에 시중하고있다.

민비는 앞에 부복한 조상궁에게 날카롭게 일렀다.

《북묘에 가서 진령군을 불러오라!》

《알아모셨소옵니다.》

조상궁이 자리를 뜨려고 하자 민비가 다시 분부했다.

《가만, 무예별감들을 데리고 가거라.》

《그리하겠소옵니다.》

얼마뒤 조상궁이 진령군을 데리고 건청궁의 뜨락으로 걸어오는 뒤로 두 무예별감이 멀찍이 따르고있었다.

진령군은 어딘가 겁에 질린 표정이였다.

《조상궁, 중전께서 왜 갑자기 부르시오?》

《글쎄 낸들 알겠소.》

조상궁의 태도는 쌀쌀했다.

옥호루에 이른 진령군은 여느때처럼 한들거리며 민비앞에 걸어가 건숭 부복하고는 무슨 일로 부르셨는가고 입을 나불거렸다.

부채질을 하고있는 민비의 태도는 자못 엄격하였다. 그는 애써 노기를 누르고 말하였다.

《진령군, 듣거라. 네가 지은 죄 이앞에서 이실직고하거라.》

처음 흠칫 놀라던 진령군은 다음순간 태연한 기색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온지? …》

민비가 노성을 터뜨렸다.

《이실직고하지 않을테냐?!》

《마마, 소신은 죄가 없나이다.》

뻔뻔스러운 진령군의 태도에 참을수 없어 민비는 바락 고함을 질렀다.

《이년 상기도!》

부채를 탁 접으며 옥좌에서 벌떡 일어선 민비는 진령군에게로 다가가 접은 부채로 그의 량뺨을 련속 찰싹찰싹 때렸다.

《이년, 무엇이 부족해서, 무엇이 탐나서 왜놈들의 개질을 하느냐?! 역적질은 릉지처참형에 처한다는걸 모르느냐?!》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온 민비는 옥좌에 풀썩 주저앉으며 너무도 분하고 원통하여 치를 떨었다.

《내가 청맹과니였구나. 아니, 당달봉사였지. 저년이 내 간을 뽑는줄도 모르고 저년의 롱간질에 놀아댔으니 아! ―》

진령군은 겁기에 질려 연송 장판바닥에 이마를 조아렸다.

《중전마마, 용서해주옵시오. 용서해주옵시오.》

진령군은 진한 화장을 한 낯짝에 얼룩을 지으며 눈물을 흘렸다. 퍼릿퍼릿한 분독이 오른 볼에 반점들이 얼룩처럼 드러났다.

《보기도 역겹다!》

옥좌에서 훌 몸을 일으킨 민비는 무예별감들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저년을 옥에 가두고 물 한모금 주지 말거라.》

랭랭한 표정으로 이렇게 지시한 민비는 편전으로 들어가버리고말았다.

무예별감들에게 끌려가면서 애달프게 하소하는 진령군의 울부짖음이 울렸다.

《중전마마! 중전마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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