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3 장

민비의 고민

3

 

일본공사관에서는 오또리공사, 스기무라서기관, 오까모도가 진령군문제를 놓고 구수모의를 하는데 모두 난색을 짓고있었다.

오또리가 오까모도와 스기무라를 갈마보며 중얼거렸다.

《어쨌으면 좋겠소? 바보같은년, 어데서 덜미를 잡혔는지…》

《신경쓸것 있습니까? 우리야 그년과 상관이 없다고 뻗대면 되는게지.》

스기무라가 시답잖게 하는 말을 오또리가 제꺽 긍정했다.

《그렇지?》

팔짱을 끼고앉은 오까모도는 조소를 띠운 눈으로 스기무라를 흘겨보았다.

민비의 렴탐군노릇을 한 나쯔미건으로 하여 그의 남편인 다까하시는 직산금광 총관리직에서 떨어져 다시금 평범한 약국상이 되였으며 스기무라는 조선에서 오래 복무한 공적이 크다고 하여 서기관직은 유지하였지만 심히 위축되여있었다. 그런데 오까모도의 렴탐군인 진령군의 정체가 드러나 그의 목숨이 경각에 이르게 되자 오까모도를 복수할 좋은 기회가 왔다고 여긴 스기무라는 다시금 어깨를 펴게 되였고 오까모도를 공박할 기회만 노리고있었다. 그러나 평소에 오만하고 건방진 오까모도는 위축될 대신 더 기가 살아 날뛰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까모도가 랭랭한 표정으로 내뱉았다.

《그렇지 않다니?》

오또리의 말에 오까모도는 여전히 침착하고 차거운 빛으로 말했다.

《이건 진령군 그 하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게 있소? 그까짓 렴탐군 하나가 뭐라고…》

스기무라가 여전히 진령군문제를 시답잖게 여기자 오까모도가 가시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스기무라상, 우리가 진령군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전체 친일세력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것을 왜 생각 못하오?》

《음, 간단치 않은 문제군. 오까모도군, 생각되는바를 말해보오.》

오또리는 이번엔 오까모도의 견해를 지지해나섰다. 오까모도는 팔짱을 풀고 의자등받이에 몸을 제쳤다.

《우리가 그의 운명을 전적으로 지켜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친일세력들이 우리를 믿고 지지하지 그렇지 않으면 다 떨어져나갑니다. 가뜩이나 세력이 약한 친일파들이 말입니다.》

긴 목을 뽑아든 오또리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옳소, 그럴수 있소.》

《그리고 중요하게는 이번 기회에 우리에게 계속 엇서는 민비의 기를 결정적으로 꺾어놓아야 합니다. 그가 제 마음대로 진령군을 처형하지 못하게 해야 우리를 무서워하게 될것입니다.》

배심이 생긴 오또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주머니에 두손을 지르고 방안을 걷기 시작했다.

《좋소. 오까모도군의 말대로 합시다. 그럼 스기무라군이…》

스기무라는 대뜸 한손을 내저으며 민비가 자기 말을 들을게 뭐냐면서 자신이 없다고 뒤로 물러났다.

오까모도가 오또리에게 정중하면서도 침착하게 공사각하께서 직접 나서야 제국정부를 대표하는것으로 되며 민비도 굴복시킬수 있다고 권고하였다.

《그렇게 합시다. 내가 나서지요.》

두다리를 떡 버티고 선 오또리의 낯에 그 어떤 결연한 표정이 어렸다. 이어 공사관을 떠난 오또리는 조선의 총리대신 김홍집을 만났다. 그는 김홍집에게 조선정부나 혹은 개인이 진령군의 머리칼 하나라도 건드리면 일본정부가 가만있지 않을것이며 강력한 대응책을 취할것이라고 위협공갈하였다.

김홍집은 곧 이 사실을 민비에게 전달하였다. 그의 말을 들은 민비는 성이 독같이 나서 일국의 공사가 무엇이기에 남의 나라 내정에 그렇게도 우심하게 간섭하느냐고 힐난하더니 진령군을 당장 릉지처참, 오마분시(다섯대의 마차로 죄인을 찢어죽이는 형벌)에 처하라고 바락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는 분심을 참을길 없어 록원으로 씽 나가버리였다.

진귀한 나무들이 솟거나 누워있으며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다투어 피여난 록원에서 얼마간 마음을 진정한 민비가 산책하고있었다.

화려한 주위와는 어울리지 않게 민비의 표정은 침울했고 걸음은 무거웠다.

(내가 박소사, 그년을 알게 된게 12년전인 임오년에 군란을 피해 충주 장호원에 가서 숨어있을 때였지. … 그때 그 요사스러운년에게 홀려버린 내가 대궐로 돌아올 때 그년을 데리고와서 령험있는 무당이라 하여 전속 무당으로 삼고 그년이 시키는대로, 하라는대로 하였지.)

그때의 광경이 너무도 눈앞에 삼삼하여 민비는 눈을 꾹 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박소사가 놀아나던 장면이 머리속에 떠올랐다.

밤이건만 전각에는 불빛이 휘황한데 상감마마와 함께 자기 민비는 전각의 단우에 높이 앉아있고 세자 동궁은 모를 꺾어 서쪽을 향해 앉아있었다.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굿풀이를 하느라고 진령군 박소사가 신장대를 흔들어대고있었다.

 

    룡왕님이 승천하신다

    신령님이 하강하신다

    엇쇠―

    병귀신아 물러가라

    인제 가면 언제 올고

    불에 타서 오지 말아

    춘삼월에 다시 올가

    물에 빠져 오지 말아

    엇쇠

    병귀신아 썩썩 물러가라

    엣퉤…

 

거의 매일 밤마다 벌어지는 진령군의 굿풀이에 모두가 지루하고 졸리는 기색이다.

고종이 고개를 들어 벽우를 쳐다본다. 태엽 감은 사슬을 길게 늘어뜨린 큼직한 괘종이 10분전 3시를 가리키고있다.

진령군의 기괴하고 지루한 굿풀이가 끝나면 주립을 쓰고 남천닉을 입은 무녀들이 량손에 칼을 들고 나와 경쾌하고도 우아한 칼춤을 춘다. 절칵절칵… 풍악에 맞추어 률동적으로 나가고 들어가고 원을 짓고 행렬을 짓는 그들의 춤은 과시 경관이요 미관이다.

졸음기 어렸던 고종도 세자도 무녀들의 칼춤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

여기까지 회고한 민비는 괴로운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왕실의 안녕과 세자의 무병을 빈다는 진령군에게 미혹되여 얼마나 많은 밤과 밤을 이처럼 질탕하게 보냈던가. 그바람에 국고는 고갈되고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가고… 아, 내가 암둔하여 당달봉사, 청맹과니가 되고보니 진령군같은 요귀, 요물한테 속아 나라의 정사를 망쳤구나, 망쳤어! …)

민비의 입에서는 불같은 탄식이 새여나오고 눈에서는 고뇌와 오뇌, 회오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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