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3 장

민비의 고민

7

 

오까모도의 집에 들린 외무대신 무쯔는 오까모도의 처 야에가 깔아주는 방석우에 스스럼없이 앉아 담배에 불을 붙여물었다.

야에는 무쯔의 앞에 오도카니 서서 고개를 떨군채 손만 주무르고있었다.

그를 쳐다보는 무쯔의 눈이 음탕한 빛으로 번들거렸다.

《이리 와!》

하건만 야에는 움직일념을 안했다.

《어서!》

야에가 구원이라도 청하듯 애절한 빛이 어린 눈으로 무쯔를 바라보며 심란하게 말했다.

《각하, 제 몸에 이상이 생긴것 같아요.》

《이상?》

《매달 있어야 할 그것이 이달엔 없어요.》

그제야 야에가 안절부절못하는 까닭을 알아차린 무쯔도 표정이 심각해졌다.

《바보같이…》

《바보? 누가 할 소리…》

《그런거야 녀자가 조절해야 하지 않는가!》

《어디 조절하게나 했어요?》

량순하기만 하던 야에가 뜻밖에도 사무러운 표정으로 대들었다.

《음.》

신중한 표정을 띠운 무쯔도 생각이 깊어졌다. 시급히 손쓰지 않았다간 장차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로 가슴이 은근히 옥죄는감을 느끼였다. 야에의 임신, 그것이 곧 자신의 추문으로 이어지리라는것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였다. 하지만 무쯔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이런 경우에조차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죽을 구멍수에서도 살구멍을 찾는데 이골이 난 그는 이 일도 무난히 처리될것이라는 예감을 느끼고있었던것이다.

무쯔가 잠자코 있자 안달이 난 야에가 또 걱정스러운 소리를 했다.

《저, 그런데 서울에서 집을 장만했으니 빨리 오라는 전보가 왔어요.》

《오까모도한테서?》

《네.》

《마디에 옹이라더니…》

《요즘은 정말 속상해죽겠어요.》

고개를 수굿하고 생각을 굴리는 무쯔의 눈빛이 날카로와졌다. 이윽고 야에를 쳐다보는 무쯔의 얼굴에는 평시와 다름없는 그런 태연한 빛이 흐르고있었다.

《이렇게 하라구. 우선 오까모도한텐 병이 나서 당장 가지 못한다구 전보를 치고 그리고…》

무쯔가 말꼬리를 흐리자 야에가 한발 다가서며 간절한 눈길과 어조로 빌듯이 말했다.

《대책을 취해주세요.》

《내가, 이 외무대신이? …》

자기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듯 무쯔는 뻔뻔스럽게 고개를 쳐들었다.

야에는 아는 의사가 없다고 울상이 되여 가련하게 중얼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무쯔가 야에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찾아보라구, 돈을 줄테니.》

누비돗자리우에 풀썩 주저앉은 야에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서울의 진고개에 새로 구한 자기 집에서 오까모도는 책상앞에 이마를 고이고 앉아있었다. 책상우에는 도꾜에 있는 안해 야에에게서 온 전보장이 놓여있었는데 거기에는 신병으로 당장은 도꾜를 떠날수 없다는 사정이 간단히 적혀있었다.

(신병이라, 신병이란 말이지. 지금껏 언제한번 앓은적 없는 건강한 야에가 갑자기 신병이라니? …)

오까모도는 신병이란 글귀에 자꾸 왼심이 씌여짐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전보를 받은 첫 순간부터 신병이란 한갖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문제는 야에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도꾜를 떠나려 하지 않는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데 있었다. 무쯔가 붙잡기때문인가. 하지만 무쯔도 이제는 야에한테서 싫증을 느낄 때가 되였다고 오까모도는 생각했다. 그는 치정관계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는것을 자신의 체험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뒤생활을 통해서도 잘 알고있었다. 그렇다면 야에에게 다른 군서방이 또 생겼단 말인가. 하긴 한번 정조를 잃은 계집이란 이 사내, 저 사내에게 들어붙기마련이다.

(에익 더러운 년, 맘대로 하라지.)

모든것을 체념해버린듯 오까모도가 고개를 번쩍 쳐드는데 때마침 밖에서 주인을 찾는 소리가 울렸다.

미야께가 희색이 만면하여 방에 들어서는것이였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취한 모양이였다. 가뜩이나 거머무트름한 그의 낯이 술기로 하여 청동상처럼 검붉었다.

《대위님, 아니 오까모도상, 지나가다 보니 불이 켜져있기에…》

《미야께, 기분이 좋았구만.》

심사가 울적하던차에 미야께라도 찾아온것이 반가와 오까모도도 낯에 웃음을 담았다.

《남대문약국상 다까하시, 잡화상 나까무라들과 한잔 했습니다.》

오까모도는 웃기만 했다.

《내가 오까모도상의 말을 듣고 조선으로 오길 정말 잘했습니다. 내가 아직 도꾜에 있다면 감옥귀신이 됐거나 거렁뱅이가 됐을겁니다. 오까모도상, 감사, 감사합니다.》

미야께는 취해 비틀거리며 오까모도에게 절하였다.

《넘어지겠네, 앉으라구.》

그러나 제 기분에 떠있는 미야께는 여전히 지껄여댔다.

《돈도 있겠다. 온 세상 계집이 다 내것이겠다, 하하…》

혼자 웃고 떠들던 미야께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두눈이 어웅해서 오까모도를 바라보았다.

《오까모도상, 매일밤 적적해서 어떻게 보내십니까? 내가 게이샤라도 하나 불러올가요?》

《그만두게, 미야께.》

《아참, 우리 오까모도상은 애처가이시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던 미야께가 문득 정색하여 물었다.

《그런데 부인께선 왜 오시지 않습니까?》

《미야께!》

오까모도의 표정이 불시에 날카로와졌다. 그랬어도 그냥 제 기분에 떠있는 미야께는 오까모도의 기색에는 개의치 않고 그냥 떠들어댔다.

《우리 녀편네를 봐두 에에, 계집의 마음이란 모릅니다. 거 요즘 불리우는 노래에도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한 미야께는 서양가극 《리고레뜨》의 노래를 신이 나서 불러댔다.

 

    가제니 흐까레 도비와 마루

    하네노 요나 온나노 고꼬로

    …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녀자의 마음

    …)

 

《고노야로! (개자식!)》

가뜩이나 심사가 편치 않던 오까모도는 자기를 조롱하는듯 한 미야께의 노래에 속이 울컥 괴여올라 벌떡 뛰쳐일어나 미야께의 귀쌈을 불이 번쩍 나게 후려갈겼다.

불의의 타격을 받은 미야께는 한손으로 볼을 싸쥔채 눈을 껌벅거렸다.

《오까모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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