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3 장

민비의 고민

8

(1)

 

미야께가 벙글거리며 《다까하시약국》으로 들어갔다. 매대에 앉아있던 다까하시가 벙글서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안해 나쯔미를 잃고 홀아비생활을 하고있는 그는 이전보다 퍽 겉늙어보였고 궁색스러워보였다.

《미야께군이 기분이 좋았구만.》

《좋다마다, 자네를 내 결혼식에 초청하려고 왔네.》

《그런가? …》

다까하시의 말은 풀이 죽었고 가늘게 한숨조차 내쉬는듯싶었다. 그를 보며 미야께는 묘한 웃음을 지었는데 그것은 다까하시의 처를 자기가 강간하고 죽여버렸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있는 그가 재미있기도 하고 가엾기도 했으며 또 부자라고 으시대면서 직산금광 총관리직까지 타고앉았던 그가 졸지에 약장사군으로 전락된것이 여간 깨고소하지 않았기때문이다. 하기에 깍듯이 존대하던 다까하시를 이제는 너나들이로 막 대하는 형편이였다.

심통이 바르지 않은 미야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데서 쾌감을 맛보는 작자였다. 어려서도 그는 새끼 밴 염소의 배를 걷어차거나 남의 집 담장밑의 호박뿌리를 슬쩍 뽑아놓는가 하면 남의 우물에 침을 퉤 뱉아넣기가 일쑤였다.

《다까하시, 나도 안착된 생활을 해야겠네. 그리구 조선에 영주하려네. 언젠가 오까모도상이 말한대로 이제 조선이 우리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 나도 군수 아니, 도지사 한자리할지 알겠나. 하하…》

《할수도 있지… 건 그렇구 난 자네에게 중요한 부탁을 한가지 하려고 했는데…》

《무슨 부탁?》

《지금 수확철이라 자네를 개성에 인삼사러 보내려 했는데 안되겠구만.》

벌쭉거리던 미야께는 대뜸 표정이 정색해졌다.

《인삼, 인삼이 비싸겠지?》

《말할게 있나? 미국의 마사쯔세츠주의 야생삼이 지금 청국의 북평시장에서 금과 일 대 일로 교역되고있다고 천진주재 우리 령사관에서 지급전문이 왔네. 빨리 조선의 개성인삼을 보내면 폭리를 얻을수 있다고 말이네.》

《그런가?》

미야께의 눈빛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다까하시, 내가 개성으로 가겠네.》

《화촉지연을 올린다면서?》

《일없네, 아직 날자가 있으니까.》

다까하시는 미야께가 자기 말에 선뜻 응해나서는것이 흡족하여 번들거리는 대머리를 손바닥으로 슬슬 문다졌다.

《미야께, 개성해평리인삼포전은 조선적으로도 유명한 포전이네. 마침 가을철이여서 거기서도 인삼을 거두어들인단 말이야. 조선은 거두어들이는 가을이지만 우리는 거두어가는 가을로 하잔 말이다, 흐흐…》

개성해평리강기슭에 거루배가 와닿았다. 배에는 조선옷차림을 한 다까하시와 미야께를 비롯한 여섯명의 왜놈들이 타고있었다.

한놈이 배를 지키기 위해 남고 나머지 다섯놈이 뭍에 뛰여내리여 해평리인삼포전을 향해 도적고양이마냥 살금살금 다가갔다. 인삼포전에는 밭을 지키는 모양, 두 처녀총각이 이야기를 나누고있을뿐 사위는 한적하였다. 인삼밭변두리에 몸을 숨긴 일본불량배들은 그들의 동정을 잠시 지켜보았다.

이윽고 미야께가 나직이 지껄였다.

《도제 두놈이 지키고있군. 게다가 하나는 계집이고…》

약국상 다까하시가 미야께에게 그래도 밤에 하는것이 안전하지 않는가고 의논조로 말했다.

《무슨 소리, 밤에야 인삼인지 무운지, 10년생인지 5년생인지 어떻게 알아?》

다까하시는 우직스러운 놈이라고만 여겼던 미야께도 꽤 의뭉스럽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군.》

구름 한점 없이 맑고 푸른 하늘아래 누렇게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고 해평리인삼포전에는 붉은 열매가 일매지게 달렸다.

포전을 지키는 바우와 삼재아기는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삼재아기가 좀 토라진 소리를 했다.

《말도 없이 며칠씩이나…》

바우가 그를 달래듯이 부드럽게 대척했다.

《급히 떠나느라고 미처 알리지 못했어. 한양 갔다 오는 길이야.》

《거긴 왜?》

《탁지아문에 주인님의 서간을 전하느라. 그런데 삼재아기는 어딜 가던 길이야?》

《래일부터 삼을 캐겠다고 일군들에게 알리러…》

바우가 인삼포전을 흐뭇이 바라보며 감회롭게 말했다.

《우리가 주인을 도와 10년 고생한 보람이 어느덧 저렇게… 가을이라, 가을도 추석을 며칠 앞두었으니 이제 인삼을 거두어들이는 기쁨이 얼마나 크겠어.》

삼재아기의 눈에서도 기쁨의 물결이 찰랑거렸다.

《우리 이 10년삼을 저 건너편 김서방네의 6년생에 비하겠어? 약효로나 값으로나 세곱은 되고도 남지.》

바우는 신중한 눈길로 처녀를 건너다보며 말을 이었다.

《삼재아기, 우리 해평삼포는 중전마마께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시는 궁실소유의 포전이기에 잔뿌리 하나 다치지 않게 잘 캐라는거요, 그리구 절반은 홍삼을 만들라는거야.》

삼재아기가 곱게 웃으며 기쁨에 겨운 눈길로 바우를 쳐다보았다.

바우가 다정하게 마주웃으며 삼재아기의 어깨에 한손을 올려놓았다.

인삼밭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은 바우와 삼재아기는 다정하게 이야기를 계속하고있었다.

바우를 정찬 눈길로 바라보던 삼재아기가 속삭이듯 불렀다.

《바우오빠.》

《또 오빠야?》

《그럼?》

《그저 바우라고 하든지 아니면 여보라고 부르지 뭐 허허…》

바우는 제 말이 제 듣기에도 거북스러웠던지 헤식은 웃음을 웃었다.

《그렇게야 어떻게? …》

삼재아기는 붉어지는 낯을 숙였다.

바우는 고개를 들고 하늘에 눈길을 주었다.

《이제는 우리도 속량이 되였는데 사람다운 이름을 가져야겠어. 바우가 뭐야, 바우가… 이름도 아니고 별명도 아니고.》

《그래두 난 바우가 좋아. 크고 든든한…》

삼재아기는 바우를 정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때 길가쪽에서 난데없는 노래소리가 울려왔다. 지게를 메고 길가던 초부(나무군)녀석들이 인삼밭머리에 다정히 앉아있는 바우와 삼재아기를 띄여보고 놀려주는 노래였다.

 

    꽃같은 처녀가 꽃밭을 매는데

    달같은 총각이 내 손목 잡네

 

    야 이 총각아 내 손목 놓아라

    범같은 우리 오빠 망보고있다

 

    야 이 처녀야 그 말 말아

    범같은 네 오빠 내 처남이다

 

《아이, 저것들이…》

삼재아기는 부끄러워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는데 바우는 도리여 헌헌한 기색이였다.

《뭐래, 듣기 좋구만.》

《별것들이 다 사람을 놀리네…》 하고 말하던 삼재아기가 별안간 흠칫 놀라 소리쳤다.

《저기 웬 사람들이?! …》

바우도 삼재아기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섯명의 수상쩍은 사내들이 밭으로 다가오고있었다.

바우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누구요?》

사내들은 거침없이 걸어왔다.

《서시오.》

그랬어도 미야께일당은 그냥 다가왔다.

바우가 움쭉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따라 삼재아기도 몸을 일으켰다. 형세를 보고 바우가 삼재아기에게 재빨리 일렀다.

《도적놈들이다. 빨리 사람들에게 알리라!》

《알겠어요.》

삼재아기가 입술을 옥물더니 홱 몸을 돌려 달렸다.

《야!》

미야께의 신호에 따라 왜놈불량배들이 바우에게 욱 달려들었다. 바우는 놈들과 힘겨운 격투를 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야께가 칼을 뽑아들더니 야생적으로 소리쳤다.

《비키라!》

미야께의 일본도에 푹 찔리운 바우의 가슴팍에서 붉은 피가 콸콸 쏟아져나왔다.

《아! ―》

비명과 함께 바우는 땅우에 쓰러지고말았다.

다까하시가 눈알을 번뜩이며 부랑배들에게 소리쳤다.

《자, 빨리! 하지만 인삼뿌리를 상해선 안돼!》

세놈의 일본불량배들은 인삼을 마구 캐고 나머지 두놈은 캐놓은 인삼을 마대에 쓸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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