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3 장
민비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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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사각하, 륙군중좌 구스세 사찌히꼬 조선주재 일본공사관 무관으로 임명되였음을 보고하는바입니다.》
장화뒤축을 딱 붙이고 군복바지혼솔에 두주먹을 붙인 40대의 키가 크고 어깨가 쩍 버그러진 사나이가 오또리공사앞에 서있었다.
오또리는 겉보기에도 군인다와보이는 구스세에게 애써 얼굴의 침울한 기색을 지우며 반기는 표정을 띠였다.
이즈음 초조하고 불안한 심경에 잠겨있는 오또리는 얼굴표정도 늘 침울하였다. 그것은 직산금광과 관련하여 자기가 큰 실책을 범하였다는 인식으로부터 오는 자격지심이였다.
직산금광사태에 대해 그리고 그 수습책에 대해 여러차례 본국정부에 송신했으나 어쩐셈인지 정부는 함구무언이였다. 조선의 금수탈에 대해 그렇게도 독촉하던 정부의 이런 태도를 두고 오또리는 처음엔 의아하게 여겼으며 다음엔 초조감을 금할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그렇게도 애를 태우며 기다리던 정부의 회신이 날아왔는데 그것은 극히 실무적이고 딱딱하고 짧은것이였다.
《직산금광에서 손을 뗄것.》
정부의 이 지령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리해하여야 하는가.
오또리는 미련하기는 해도 아둔때기는 아니여서 정부의 태도를 간파 못할 위인이 아니였다. 이 랭랭한 지령을 통해 오또리는 자신에 대한 정부의 불신임, 나아가서 정계에서의 매장이라는 참혹한 운명을 예감하였다.
어찌하여 자신의 운명이 이렇게 끝장나게 되였는가. 자기를 조선에 파견한 몇달전만해도 정부의 신임과 기대가 얼마나 컸던가. 그런데 조선인들의 강력한 반일감정, 더우기 배일적인 왕후 민비의 리면공작에 대처하기에는 오또리 자기의 힘이 부친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제는 본국의 소환명령, 나아가서 철직이라는 처분을 기다리는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자기의 적수 아니,일본정부의 적수라고 할수 있는 민비의 태도는 어떤가. 자기가 왕궁을 점령하고 연금상태에 몰아넣은 민비가, 그리하여 자기 오또리에 대해 앙앙불락하던 민비가 요즘은 늘 명랑하고 유쾌한 기분에 싸여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웃음은 아마도 최후에 웃는자가 승리자라는 의미의 웃음일것이다.
오또리는 괴롭고 슬프더라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구스세에게 안락의자를 권한 오또리는 자기도 그의 곁의자에 앉으며 실무적으로 물었다.
《가족은?》
《혼자 왔습니다. 》
《아,그래요. 집을 잡고 가족도 차차 데려옵시다.》
오또리의 호의에 저으기 감동된 구스세가 그에게 동정을 표시했다.
《타국에서 고생이 많겠습니다. 》
《고생이랄것까지는 없지만 아무튼 간단치 않습니다. 정말 간단치 않습니다.》
오또리는 말끝에 탄식과도 같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의 태도를 보고 구스세는 오또리의 고심을 리해한다는투로 말하였다.
《조선은 일본의 최대작전지역인데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오또리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본국에서 조선을 중시하여 똑똑한 군인을 무관으로 파견하였다고 내심으로 생각했다.
오또리는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또 제 생각에 빠져들어갔다.
자기는 결국 실패한 인생이지만 이제 40대인 구스세는 인생을 성공할것이라는 질투심과 같은 확신이 가슴속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체면을 잃지 말아야 하겠기에 또다시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띠웠다.
《역시 군인은 군사적관점에서 정확히 분석하는군요. 구스세중좌, 여기 공사관에도 일본인들이 많고 또 거류민들도 많지만 당신은 재조일본인들중에서 가장 수고해야 할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에 가서 조선지배는 군사적강점에 있지 않겠습니까?》
《각오하고있습니다.》
《그렇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조선의 군사형편을 놓고보면 우리가 왕궁을 점령하고 각 영을 무장해제시켰기때문에 사실상 조선군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낯짝이 넙적하고 낯색이 검누런 구스세의 얼굴에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면 조선이란 나라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가요?》
《글쎄… 하지만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할수는 없습니다. 렬강들이 주시하고있는 조건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조선군대를 재건해야 합니다.》
《…》
구스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오또리가 길다란 허리를 휘친거리며 방안을 거닐었다.
오또리는 지금 교도중대를 조직하고있는데 구스세중좌가 이 일을 주관해주어야겠다고 동의를 구하고나서 교도중대를 모체로 하여 장차 조직되는 조선군대는 철저히 일본처럼 되여야 할것이라고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
《자, 오늘은 피곤할텐데 려관에 가서 일찍 쉬시오. 파성관이라고 괜찮은 일본인려관이 있습니다.》
구스세에게 이렇게 말한 오또리는 밖에 대고 소리쳤다.
《스기무라서기관!》
스기무라가 방에 들어섰다.
《서기관, 인사하시오. 우리 공사관무관으로 임명된 구스세중좌요.》
스기무라는 히죽이 웃었다.
《우린 벌써 구면입니다. 》
《아 그런가, 어쨌든 구스세중좌를 파성관으로 안내하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