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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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러기들의 구성진 울음소리가 하늘에 가득차넘치였다. 허씨는 일손을 놓고 장작가리옆에 우두커니 서서 이마에 손채양을 붙이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새파랗게 물이 들어가는 하늘로 솔잎처럼 앞머리는 맞붙고 뒤꼬리는 벌어지게 두줄을 지은 기러기떼가 유유히 날아들어오고있다.
허씨의 눈에는 눈물이 괴여오르고 입에서는 노래가락 비슷한 구슬픈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아바이도 돌아오고… 너희들도 날아드는데…》
외따로 떨어진 기러기 한마리가 성급히 날개를 저으며 무리속에 끼여들자 기러기때의 날음은 더욱 활기에 넘치고 울음소리 또한 더 구성지게 울린다.
허씨는 치마자락으로 눈굽을 찍어내고 코물을 풀었다.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쳐다보노라니 저 봄하늘에 가득 며느리의 고운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젠장, 기러기를 봐두 줴짠다니까.…》
뒤에서 령감의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허씨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봄바람에 얼굴이 검붉게 탄 김진세가 노상 쥐고다니는 목책을 덧저고리주머니에 넣으며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오늘같은 날에 그 애가 있으문…》
그러자 령감은 꽥 소리를 질렀다.
《그만두라는데… 패말감은 골라봤소?》
《예… 꼭 박달나무래야 되우?》
《든든한걸루 세우자니 그러지.…》
《참나무는 안되우?》
《참나무는 자꾸 터서 틀린다니까.》
《에이구 원, 아무거문… 땅이… 도망칠가봐?》
이렇게 말하는 허씨는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그린다.
김진세는 장작가리밑에서 굵은 박달나무토막을 끌어냈다. 그는 그놈을 안고 바람을 일으키며 마당을 나서 활개를 훨훨 저으며 마을길을 걸어갔다.
하늘에는 해빛이 눈부시였다.
아동단학교쪽에서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토지개혁날에 연예대공연을 한다더니 그 련습이 한창인 모양이다.
앞에서 부녀회장 림성실이와 《새별눈》이 마주 달려오다가 걸음을 멈추며 인사를 했다. 림성실의 손에는 꽹매기가 들려있고 《새별눈》은 상모를 안았다.
《어이구, 선생님들! 어디로 이렇게…》
김진세도 반겨 인사를 하였다.
《김위원아바이, 래일 모레면 정말 토지개혁이 발표되나요?》
《새별눈》 박현숙이 봄바람에 저고리고름을 날리며 밝게 웃는 얼굴로 묻는다.
《예-
김진세는 그들의 손에 들린것들을 보며 놀랐다.
《아니, 그건 뭐요? 상모에 꽹매기라… 어디서 그런게 다 났소?》
《사람들이 들썩들썩해지니 안 나오는게 없어요.》 하고 림성실이 시원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 그럴테지. 그런데 아니, 상모꼬리를 돌릴줄 아는 사람이 마을에 있겠나?》
《자위대에 한 동무가 있대요!》
《원, 저런!》
그들과 헤여져 오풍헌이네 집쪽으로 걸음을 다그치는 김진세는 발이 길바닥에 닿는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냥 훨훨 날아가는것 같았다.
오풍헌이네 집마당에는 농민들이 가득 모여들어 왁작 떠들며 웃어대고있었다.
《그래그래, 썩썩 문대게!》
《과시 그 손이 보배로다!》
《풍헌이 허풍은 쳐도 오늘은 새색시처럼 곱구나!》
《하하하!》
《챠, 이거 일을 해먹겠는가. 썩 물러가라구! 수염이 석자인게 애들같이 군다니까, 넨장…》
담장처럼 빙 둘러선 사람들속에서 오풍헌이 땀을 뻘뻘 흘리며 대패질을 하고있다. 그가 어찌나 걸싸게 대패를 미는지 돌돌 말린 대패밥이 어깨우로 휙휙 날아넘는다. 분여받을 땅에 박을 패말들을 밀어주고있는것이다.
김진세는 큰기침을 떼며 마당에 들어섰다.
김진세가 내놓는 박달나무를 본 오풍헌은 웃음 절반, 짜증 절반으로 소리쳤다.
《또 박달이요? 모두 쇠기둥을 박을셈인가. 이런것만 들구오니 대패날이 견디겠소?》
《이 사람아, 나무람 말라구… 머리털이 허옇게 세서 첨 제땅을 가져보는건데 든든한걸루 패말을 쳐야 할게 아닌가!》 하고 김진세는 얼굴이 벌겋게 되여 벙글거렸다.
《모두들 하나같이 박달이나 물푸레를 들구오니 하는 소리요.》
이때 퇴마루에서 오돌차게 생기고 흰수염발을 가슴우에까지 드리운 로인이 장죽으로 오풍헌에게 삿대질을 하며 챙챙한 소리를 내질렀다.
《풍헌이, 이 사람아! 왜 좋은 일을 하면서 그렇게 좀상스럽게 노는가, 엉? 아니, 대패날이야 저 대장간에 가서두 얼마든지 벼려올수 있지 않나!》
《그럼 성님이 어디 좀 해보슈-》
그러자 로인은 발을 탁 구르며 호령했다.
《에익, 고약한 사람!》
오풍헌이는 허리를 굽석거리며 껄껄 웃어대다가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허허허, 성님- 나두 속이 들썩해서 흰소리를 한번 해봤수다. 흐흐흐…》
로인은 얼굴이 대뜸 밝아지며 채머리를 떨었다.
《암, 우리 대목이 그럼 그렇지… 한데 속에 담긴 심보는 좀 묘하거던, 묘해. 하하하…》
그리고 로인은 퇴마루에서 내려 김진세앞으로 다가왔다.
《여보게 김위원, 내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 패말들에 어느 다른 사람의 글씨를 써넣는다는게 말이 아니거던… 말이 안돼.
《성님 말을 들으니… 과연 그렇습니다. 한데
《그러게 자네가 청을 올려달라는게 아닌가… 자네야 우리 위원인데 이 백성들 맘을 대표해서 한번 청을 올려주게나.
김진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곧 도움을 받으려고 리재명을 찾아갔다.
리재명은 그가 위원으로서 인민들의 청원을 접수한것이니 직접
김진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