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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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날 오후부터
그리 넓지 않은 토지개혁준비위원회의 방안에는 새로 깎아온 패말들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나무진내와 참먹냄새가 가득차서 흘렀다.
근거지에서 명필로 이름난 림성실이도 이런 힘찬 글씨체는 처음 보는것이였다.
리재명이 토지분여대장에 표식을 해가며 토지를 분여받을 농민들의 이름과 평수를 불러올리면
림성실이 이름자를 써넣은 패말들을 아래벽에 줄지어 세워놓고 새 패말감들을 소리없이 가져다 상우에 놓군 하였다. 리재명의 옆에서는 전령병 리성림이 꿇어앉아 조용조용 먹을 갈았다.
리재명이와 림성실은 황홀경에 빠진듯 패말에 뚜렷하게 그려지는 붓글씨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붓끝에서는 먹물이 아니라
《허, 이것도 헐한 일은 아니요…》
리재명은 아래벽에 줄지어 세워놓은 패말들앞에 엉거주춤 웅크리고 돌아앉아 흥겨운 노래가락을 넘기듯이 이름자들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장대로요, 김창순이라… 엄장수에… 김진세, 허일녀, 오풍헌이라… 에- 이거는 또 누구냐?… 마증손에 주쌍가매요, 마영삼에 이게 누구냐… 머슴살이 한생에 장가두 못들구, 에- 이름도 변변한게 없는 장꺽대 장깡대에 리후남이라, 조돌쇠요, 하- 이거는 불쌍한 눈물녀구나.…》
림성실은 그의 노래가락을 무심히 들을수 없어 귀를 기울이다가 눈을 슴벅이였다. 그러나
그리고 토지가 로력자당, 매 농호당 세칙에 어긋남이 없이 분배되였는가를 다시 또다시 확인해보시는것이였다.
패말을 벽에 정돈하여 세워놓던 리재명은
이때 방문이 열리며 장룡산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땀이 철철 흐르고 바지가랭이에는 엉겅퀴의 가시털이 성글게 붙어있었다.
그는 웃음이 넘친 얼굴로
《알아봤는데 틀림이 없습니다. 상경리에 마동호동무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와있습니다.》
《동무가 상경리에까지 갔다왔소?》 하고
《예.…》 장룡산은 군모를 벗어 얼굴의 땀을 훔치고는 벙글거렸다.
《다른 누구를 보내놓고 속이 클클해서 어떻게 기다립니까. 동호동무는 아침에 밥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그럴테지… 아버지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한 동무요.》
《마아바이 말을 들어봐두 그렇구 동호 어머니나 누이동생 말을 들어봐도 그렇구 의심스러운데는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에 수상하다면 제가 그쯤한 냄새를 못 맡겠습니까.》
리재명의 귀에 꽂힌 꽁다리연필이 저절로 굴러떨어져 방바닥에 딩굴었다. 그는 그것을 쥐여올릴념도 못하고 난감해진 눈으로
그도
《재명동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예?》
《좌경바람에 화를 입은 사람이 도로 찾아온건 좋은 일인데 우리가 모른다고 할수 있습니까?》
《하긴 그렇습니다만. 에- 참, 찾아오겠으면 한꺼번에 찾아들든지, 이거야 쭐끔쭐끔… 열백번 허물었다가 겨우 맞춰 다시 세운 토지분여안을 이제
어떻게 또 허뭅니까. 토지분여를 당장 시작해야겠는데… 그 령감은 떠나갈 때도 그렇구 찾아와도 그렇구 언제나 골치거리라니까. 곁의 사람들을 들볶구
못살게 굴면서 무슨 성미가 그따
놀라시는 눈길로 리재명의 얼굴을 바라보시던
《하하하… 속이 떡반죽같던 리재명선생도 신경질이라… 신경질이라니…》
리재명이도 덩덩한김에 턱을 쳐들사 하며 허구픈 웃음을 소리없이 웃었다.
그는 얼굴이 벌개져서 토지분여대장을 끌어다가 무릎우에 펼치고 몇장 번지였다.
《이렇게 합시다. 생산돌격대에서 경작하기로 한 중간지대 밭들에서 좀 떼내지요.》
《거기 밭들은 몇등전입니까?》
《모두 3등전들입니다. 마로인한테는 그게면 과남합니다. 그 로인도 과남하게 여길겝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사실 그렇지요. 여기서 도망쳤던 일만 생각해도 땅을 달라고 손을 내밀 처지가 됐습니까? 3등전이면 과남하지요.》
《과남하다구요? 그 로인이 여기서 떠나게 된 직접적인 동기야 쏘베트의 그릇된 시책때문이 아닙니까. 이런 농민에게 토지가 공정하게 분여되면 우리 로선의 승리를 확증하는 또 하나의 좋은 례로 될것입니다. 이런 대상자일수록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마로인의 아들은 유격대원입니다. 다른 유격대 후방가족들과 차이를 두어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토지분여안을 크게 허물지 않고 하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준비위원들이 잘 토론해보십시오.》
장룡산이 무릎걸음으로 리재명의 앞으로 다가와 열기를 띤 눈을 번쩍이였다.
《준비
그는 리재명의 무릎을 주먹으로 툭 건드리고는 넌지시 눈을 흘기기까지 하였다. 그 바람에 리성림과 림성실이도 그의 호의를 바라며 빙긋이 웃었다.
그러나
《동무는 돌아가오. 이게 어디 누가 선심을 쓰고 안 쓰고 할 문제요?》
장룡산은 여전히 반죽이 좋게 벙글거리며 목갑총을 잡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럼 믿겠습니다!》
그가 나간 다음
리재명은 머리를 숙이고 한손으로 이마를 괴였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