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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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배나무골어귀에 있는 사령부귀틀집에는 기쁨에 넘친 이야기소리들이 그칠사이 없었다. 토지개혁때문에 화룡, 연길, 훈춘을 비롯한 여러 지방들에 나갔던 공작원들과 군사적임무를 띠고 여러 유격근거지를 돌아본 지휘관들이 즐거운 이야기판을 벌렸던것이다.

각 유격근거지들에서는 거의 같은 시기에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연길현의 유격근거지들에서는 농호당 평균 5천평으로부터 6천평까지의 토지를 분여받았다. 화룡현 어랑촌유격근거지에서는 한 유격대원가족이 천평이나 되는 옥답을 받았다. 삼도만에서는 농민들이 평균 3천 6백평의 땅을 가지게 되였다. 어랑촌에서는 6천평의 땅을 받은 농민에게 마을사람들이 이 넓은 땅을 어떻게 다루겠는가고 물으니 그 농민은 걱정이 있는가, 이제 일본《천황》놈이나 조선총독놈도 다 머슴으로 끌어다가 보습을 끌게 하고 코로 밭이랑을 째게 하겠노라고 하여 온 동네를 웃겼다고 한다. 어떤 농민들은 너무도 꿈만같고 기뻐서 분여받은 밭머리의 패말옆에 요를 쓰고 화로를 끼고앉아 밭흙을 쓸어보고 만져보며 며칠밤을 새웠다고 한다.

기쁜 소식들이 련일 날아드는 사령부는 기쁨의 집, 웃음의 집으로 변한듯싶었다.

사령부지붕우에 높이 올린 붉은기발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선홍색을 자랑하며 봄바람에 기운차게 나붓겼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부모들이 토지를 분여받은 유격대원들을 집에 보내여 첫 밭갈이에 참가시켜 가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자신께서도 농민들의 첫 밭갈이를 돌아보기 위해 사령부를 나서시였다.

전령병 리성림이와 한흥권, 장룡산이 그이의 뒤를 따랐다. 마을길에서 리재명이와 림성실이 따라나섰다.

길바닥에는 보습날을 끌고간 자리들이 여기저기에 패여있었다. 어떤 집에서는 벌써 점심차비를 하는지 굴뚝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여오르고 얼굴이 환한 아낙네들이 함지나 장작단을 안고 들락날락하였다.

물동이를 이고 밭으로 나가는 젊은 녀인들과 처녀들도 한둘씩 보였다. 그런 처녀들의 치렁치렁한 머리태에는 어느새 빨갛고 파란 댕기가 드리워져 명절색을 돋구었다. 마을뒤의 소나무들이며 개천가의 버드나무줄기들에는 봄물이 거멓게 오르고 잔가지들의 끝에서는 연두빛이 느껴졌다. 대지와 공간에 가득차서 태동하는 막을수 없는 봄기운에 마을의 동기와지붕들마저도 눅눅하게 젖어보였다.

밭들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널렸다. 여기저기에서 소들의 영각소리가 울리고 《이랴- 이랴-》 하는 농부들의 건드러진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장군님께서는 여러 밭들에 들려 농민들과 담화하시고는 마종삼이네 밭으로 가시였다.

삼태기로 밭에 퇴비를 주던 마동호가 장군님을 보더니 아버지한테로 달려갔다.

마종삼은 손에 든 쇠스랑을 땅에 떨구고는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그의 얼굴은 흙빛으로 굳어지고 눈에는 후더운것이 번쩍거렸다. 그러다가 무슨 힘에 이끌렸던지 장군님앞으로 허둥지둥 달려나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로인의 팔을 잡아 일으켜세우시였다.

《이러지 마십시오. 로인님, 가족은 다 데려왔습니까?》

마종삼은 목이 꺽 메여 대답을 못하였다. 그는 턱을 덜덜 떨며 눈물이 끓는 눈을 슴벅거릴뿐이였다. 아들이 안타까운 눈으로 아버지를 돌아보며 마른침을 삼키였다.

곁에 선 리재명이 마을에서 도와 부엌을 고치고 굴뚝을 새것으로 세우니 불도 잘 들고 솥도 잘 끓는다고 말씀올렸다.

《됐습니다. 지난날에는 쏘베트바람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이제는 마음을 푹 놓고 이 밭에 정을 붙이고 잘 살아보십시오. 보란듯이 말입니다.》

마종삼은 막혔던 목이 확 열리는듯 갑자기 《장군님!》 하고 부르짖으며 그이의 손을 덥석 싸쥐였다.

《차라리 비탈밭귀퉁이나 떼주십시오. 금이야 옥이야 다루겠습니다. 주신다고 받아놓고보니 남보기 더 부끄럽습니다. 저녀석을 유격대에 붙여주신것만도 고맙기 그지없는데 제 무슨 면목으루 이런 밭을…》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떨구었다.

《로인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로인님은 땅때문에 고생도 제일 많이 했고 또 아들도 유격대원이기때문에 응당 이런 밭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이건 제 혼자 생각도 아니고 마을에서 다 의논이 있고 찬동한겁니다. 이제부터 이 밭임자는 로인님입니다. 지난 일은 다 잊고 활개를 훨훨 저으며 사십시오.》

마종삼은 흑흑 느껴울었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져 그이의 손등이며 군복저고리자락을 적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의 앙상한 어깨를 쓸어만지시였다.

《그치십시오. 기쁜날에 이러면 됩니까. 저는 땅을 받은분들을 축하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자고 나왔습니다.》

《아버지!》 하고 부르며 동호가 그의 팔을 잡아흔들었다.

장군님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따뜻한 눈길로 동호를 돌아보시였다.

그이의 눈길은 아버지가 이런 1등전에서 농사를 짓기 떳떳하게 훌륭한 유격대원이 되라고 고무해주시는듯 하였다.

《동호동무, 오늘은 어디도 가지 말고 내내 아버지곁에 있으면서 밭갈이도 하고 집안일도 돕소. 밤에는 어머니, 동생들이랑 함께 자고 래일 아침 병실로 돌아오오.》

《옛!》

마동호는 감격과 행복에 겨워 얼굴이 붉게 상기되여 물기가 번쩍이는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동행한 사람들속에서 장룡산이 물기가 어린 시꺼먼 눈을 슴벅거리다가 머리를 외로 돌리고 주먹을 입에 가져가며 《어험… 어험…》 하고 헛기침을 깇었다.

장군님께서는 이어 웃쪽에 있는 김진세네 밭으로 올라가시였다. 그 밭에서는 이미 밭갈이가 시작되여 대여섯고랑을 갈아엎었다.

밭가운데서 김진세와 창억이 소에 쟁기를 다시 메우며 짐승에게 욕설을 퍼붓는듯 꿱꿱 소리치고있었다.

밭머리에 물동이를 내려놓던 허씨가 장군님을 먼저 알아보고 허리를 굽혀 인사하였다.

그이께서는 반겨 인사를 받으시였다.

밭가운데서는 털빛이 거밋거밋한 황소가 주둥이를 하늘에 쳐들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르는가 하면 뒤발질로 흙을 뿌려올렸다.

창억이 고삐를 머리우에 높이 쳐들어올리며 소주둥이를 후려치려고 하였다.

그이께서는 손을 쳐드시며 유쾌한 음성으로 웨치시였다.

《어- 어- 가만있소!》

김진세와 창억이는 비로소 그이쪽을 돌아보고 눈이 커졌다.

장군님께서는 갈개는 소곁으로 주저없이 다가가시여 땀이 내밴 잔등이며 척 드리워 쭈글쭈글한 멱살을 쓸어만져보시였다.

《이게 어디서 온 소입니까?》

김진세는 두손을 앞에 모아쥐고 눈가에 잔주름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구에서 보내준겝니다.》

《소가 힘은 쓰겠습니다. 어디 제가 좀 보탑을 잡아볼가요?》

장군님께서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시며 목갑총을 벗어 전령병에게 주고 군복저고리단추를 벗기시였다. 동행한 사람들은 얼굴들에 웃음을 띠우며 흥성거렸다. 그러나 김진세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말씀드렸다.

《안됩니다. 소가 몹시 갈갭니다.》

《그렇습니까?》

창억이 성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소눈을 쏘아보았다.

《성미가 고약합니다. 떡 버티고 안 나가다가도 보습을 끌고 냅다 달아납니다. 밭갈이만 아니면 그저…》

황소는 자기 흉을 보는 소리를 죄다 알아듣고있는듯 시커먼 눈을 슴벅거리며 코김을 거칠게 내불었다. 시큼한 냄새가 풍겼다.

《황소가 창억이를 얕본게 아니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롱말을 던지시며 군복저고리를 벗어 전령병에게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소의 코등이며 귀밑을 슬슬 긁어주신 다음 뒤로 가서 보탑을 잡으시였다.

김진세가 소의 목에 붙어서서 함부로 갈개지 못하도록 고삐를 바싹 바투 잡았다.

장군님께서는 한손으로 보탑을 움켜잡고 다른 손에 든 회초리를 높이 들어 휘- 휘두르며 《이랴-》 하고 힘차게 소리치시였다.

황소는 주둥이를 쳐들고 무서운 함성을 내지르며 발을 육중하게 옮겨디디다가 쟁기를 왈칵 끌며 앞으로 내뛰였다.

김진세는 얼굴이 흙빛이 되여 발을 벋딛고 고삐를 잡아채다가 소목에 데룽데룽 매달려 끌려가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와- 와-》

장군님께서도 몸을 한껏 젖히고 보탑을 뒤로 끌어당기며 끌려가시였다.

한흥권, 장룡산을 비롯한 동행한 사람들이 앞으로 달려나오며 벅적 떠들어대였다. 림성실은 손에 흙덩어리까지 들고 소앞으로 달려나갔다.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소리치시였다.

《동무들, 모여들지 마오. 소를 놀래우겠소. 이놈이 경사날에 나하고 씨름을 해보자는 속심이요. 하하하…》

허궁 들려 끌려가던 보습날이 어느 순간엔가 땅에 쿡 박히고 장군님께서는 몸의 무게를 보탑우에 실으시였다. 그이의 팔뚝이 부르르 떨고 쟁기가 부서져나갈듯이 우지직거렸다.

억척같은 힘에 붙잡혀 떡 멎어서게 된 황소는 주둥이를 하늘에 쳐들고 내흔들며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르면서 거품을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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