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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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궁둥이우에서 회초리끝이 휙 날아돌고 《이- 랴-》하는 흥겨운 목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그이께서는 땅에 깊이 박힌 보습날을 약간 들어주는듯 하시였다. 보습날은 처음에는 돌부리같은것에 부딪쳐 탁탁 소리를 내며 뛰여오르다가 땅에 푹 먹어들었다. 보습날옆으로 누기를 머금은 시꺼멓고 부들부들한 흙발이 물결처럼 갈라져오르며 척척 번져졌다.

손에 땀을 쥐고 뒤따르던 사람들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이께서는 회초리로 소궁둥이를 치지는 않고 이따금 휙- 휘둘러만 보이시였다.

《이랴- 그렇지- 좋다- 이랴-》

소를 몰아가는 부드러운 그 소리는 건드러진 노래가락처럼 하늘에 울려퍼졌다.

어느덧 그이의 이마며 목에 땀물이 번들거렸다.

갈개던 황소는 보탑을 잡은분의 손아귀맛에 주눅이 든듯 머리를 가락맞게 내흔들며 느릿느릿 발을 옮겨갔다.

그이께서는 밭지경에까지 다 갈아나가서는 보습날을 번쩍 들어올리고 고삐를 옆으로 툭툭 채며 《돌아서-》 하고 엄하게 소리치시였다. 그러시고 보탑을 들고 반원을 그리며 돌아가자 황소는 제자리걸음으로 고분고분 돌아섰다.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한이랑 두이랑 계속 갈아나가시였다.

그이께서 깊이 갈아엎어놓은 시꺼멓고 부들부들한 긴 밭이랑에서는 허연 김이 문문 피여올랐다.

동행한 사람들이 그 밭이랑을 따라 걸어나갔다.

장군님의 뒤모습을 얼이 빠진 눈으로 내내 지켜보던 리재명이 갈아엎은 밭흙을 한줌 쥐여 쓰다듬어보다가 전령병을 돌아보았다.

《회초리를 놀리시는 품이 다르다 했더니 이걸 보오. 이건 그냥 떡가루라니까!》

봄볕에 감스럼하게 탄 얼굴에 웃음이 넘친 리성림은 장군님쪽에 눈길을 돌렸다가 좀 우쭐해져서 귀뜀해주듯이 속삭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안해보신 일이 없어요.… 머슴살이까지 하셨는데요.》

《머슴살이?》

리재명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푸르허라는데서 머슴을 살았댔어요.》

《안도 푸르허말이요?》

《네… 농촌을 혁명화하시느라고…》

《하, 그러니 내가 들은 얘기가 풍설이 아니였댔구만.…》

어느사이에 근처의 밭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밭지경에 담장을 이루고 서서 장군님께서 밭갈이하시는것을 바라보았다.

갈아엎어놓은 사래긴 밭이랑을 따라 땅김이 엇비스듬히 날아오르는 광경은 장관이 아닐수 없었다.

경탄의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사람들속에는 하늘을 흘깃흘깃 치떠보는 로인들도 있었다. 모든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하늘에서 복이 내려주기를 대대로 빌며 살아온 옛시절이 문득 비쳐들었는지도 모른다.

옛시절에는 하늘에는 복이 있고 땅에는 재난만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장군님께서 땅을 주시여 모두가 땅임자가 되니 하늘이 우러러보이지 않는다. 땅이 하늘로 된듯 하다. 그러니 저 하늘따위가 무엇이란 말인가.… 밭이 점점 넓게 갈려질수록 하늘까지도 더 시원히 트이며 푸르러지는것 같다.

창억이는 보탑을 잡으신 장군님의 뒤를 따라 걸어나가며 보습날에서 흙발이 뒤번져지는것을 지켜보는가 하면 갈아엎어놓은 밭이랑을 굽어보았다. 김이 문문 피여오르는 시꺼멓고 부들부들한 밭흙이 발밑으로 물결쳐 흘러나가는듯 하였다. 구수한 흙냄새가 섞인 눅눅한 김이 얼굴을 스쳐 날아오른다. 가슴이 찌르르 저려나며 눈앞이 흐려진다.

갈아엎은 흙속에서 발이 빠져 비칠거리군 하면서 걸어나가는 그는 자기 눈물이 밭이랑에 흩날려떨어지는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저앞에서 번쩍이는 보습날에서는 흙발이 계속 사품쳐오르며 뒤번져진다. 장군님께서는 밭이 아니라 자기네 처지와 이 세상을 몽땅 뒤번져놓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그래서 자기는 유격대원이 되고 아버지는 땅임자로, 토지개혁준비위원으로 된것이 아닌가! 문득 발밑으로 물결쳐 지나가는 밭이랑이 흙의 이랑이 아니라 기쁨의 이랑, 행복의 이랑으로 느껴진다. 희뜩희뜩 번져지고 뒤채기며 희롱질을 하는듯 한 그 이랑들에 몸을 던지고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누르며 창억이 허리를 굽혀 흙을 두손에 가득 담아올리는데 누구인가 그의 옆으로 달려왔다. 마동호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넘쳤다. 그는 사래긴 밭 저쪽에서 밭갈이를 하시는 장군님을 바라보다가 갈아엎은 흙을 쥐여 만져보고 부스러뜨려보더니 《좋구나!》 하는 환성과 함께 이랑우에 척 누워버렸다.

《야, 창억이, 이렇게 누워봐라. 하늘을 다 안을것 같다. 하하하.》

창억이도 몸을 날려 그의 옆에 누웠다. 과연 높고 푸른 하늘이 한가슴에 안겨드는듯 하였다. 그들은 제김에 웃어대며 다시 일어나앉아 두손에 밭흙을 퍼담아올렸다가 쏟아보았다. 부들부들한 흙은 해빛에 번쩍거리며 주르르 흘러내렸다.

《하하하…》

《허허허…》

언제 나타났는지 장룡산이 한손으로 목갑총을 잡고 그들의 둘레를 돌아가며 껄껄 웃어대다가 밭지경의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이 친구들을 보시오. 좋아서 송아지처럼 딩구오, 하하하…》

밭지경의 사람들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어대였다. 장룡산은 두 대원을 일으켜세우고 잔등의 흙을 털어주며 껄껄거렸다.

이때 밭지경의 사람들속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올랐다.

《히야- 저걸… 저걸 보우-》

창억이는 장룡산이와 동호와 함께 의아해서 두리번거렸다.

이쪽에서 갈아엎은 밭이랑들과 저아래 밋밋하게 기복이 진 버덩의 밭들에서 문문 피여오르는 땅김이 잔잔한 바람결에 한데 어울려지며 대하처럼 흐르다가 안개바다를 이룬다. 그 안개바다는 어느덧 밭들이며 사람들의 아래도리를 뿌옇게 묻어버린다.

굼실거리는 그 젖빛안개바다속에서 기쁨에 넘친 탄성이 들려왔다.

《여- 땅이 숨을 쉰다-》

밭지경의 사람들이 벅적 떠들었다.

《저거… 저거… 저거 보게…》

《허… 정말 땅이 숨을 쉬는데.》

《이런 일은… 이렇게 이르게 땅김이 오른적은 일찌기 없었네.》

《허, 이게 천지개벽이란게 아닌가!》

《글쎄말이요. 하하하…》

《허허허…》

창억이와 동호가 그 어떤 신비감 비슷한 감격에 휩싸여 눈을 빛내며 안개바다를 둘러보는데 보탑을 놓으신 장군님께서 곁으로 다가오시였다.

그이의 붉게 상기된 존안에서는 땀이 번들거렸다.

저쪽 뒤에서는 창억의 아버지가 보탑을 잡고 밭을 계속 갈고있었다.

수건으로 목을 훔치며 다가오신 장군님께서는 볼이며 가슴팍에 흙이 묻은 장룡산을 보시며 넌지시 웃으시였다.

《여기 밭은 중대장동무가 다 받은것 같소. 허허허…》

장룡산은 볼의 흙을 손바닥으로 씻으며 벙글벙글 웃었다.

《이 동무네가 받은게야 다 제가 받은게지요.》

《허, 하긴 그렇소!》

사령관동지, 밭갈이솜씨가 정말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말이요? 허허허…》

《하, 오늘은 별스럽게 고향생각이 납니다. 고향에서 땅이 없어 고생하는 친척들이 여기서처럼 토지를 분여받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도 밭갈이를 하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소. 우리 나라 전체 농민들에게 이렇게 토지를 나누어줬으면 얼마나 좋겠소. 그날은 꼭 올게요! 우리가 잘 싸우면…》

창억이는 그 말씀에 가슴이 뭉클해져 저도모르게 곁에 선 동호의 손을 찾아 꽉 움켜쥐였다. 동호도 손아귀에 힘을 넣으며 그의 손바닥을 뜨겁게 잡았다. 손과 손이 하나의 주먹으로 엉켜진 거기에 불같은 결의가 묵직이 뭉쳐지는것 같았다.

이때 창억이 어머니 허씨가 바가지에 물을 철철 넘치게 떠가지고 달려오고 동행한 사람들이 모여왔다.

장군님께서는 창억이 어머니에게서 바가지를 받아 물을 마시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무슨 소리엔가 귀를 기울이시였다. 그러시다가 기쁨에 넘친 시선으로 사람들을 돌아보며 속삭이는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들리오?… 들리지 않소?》

한흥권, 장룡산, 리재명, 림성실… 모두가 두리번거리며 귀를 강구었다. 들리는듯 마는듯 한 그 소리는 뻐꾸기의 울음소리였다. 마반산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파란 하늘에 보이지 않는 파문을 그리며 울려퍼지는듯 하였다. 바가지의 물에도 보일듯말듯 파문이 일어 해빛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그 반사광이 그이의 존안에 어른거렸다.

이때 총성이 메아리쳤다.

마촌쪽에서 울린것이다.

이윽고 안개바다속에서 재빛말 한필이 뛰여나와 개울을 건너 저쪽언덕으로 날아오르는것이 보였다. 말에 탄 사람은 언덕 건너편에 대고 무엇이라고 꿱꿱 소리치다가 말을 홱 돌려세웠다.

말은 어느사이에 개울물을 튕겨올리며 이쪽으로 달려오더니 달구지길에 들어섰다.

말에 탄 사람은 권일균이였다.

그는 말안장우에서 허리를 꿋꿋이 펴며 이쪽에 대고 큰소리로 물었다.

김일성동지가 어디에 계시오?》

《여기 계시우다!》 하고 누구인가 대답했다.

권일균은 말을 밭머리에 세우고 밭가운데로 달려왔다.

그의 얼굴에서는 비지땀이 번들거렸다. 흥분에 볼이 부들부들 떨고 크게 뜬 눈이 이름할수 없는 기쁨을 감추며 불덩이처럼 이글거렸다.

장군님앞에 다가온 그는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며 말했다.

《저, 동만특위동지가 국제당파견원과 함께 왔습니다!》

《국제당파견원?… 무슨 일로 왔소?》

장군님의 음성은 침착하시였다.

《글쎄요. 우선 제방에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마촌쪽에서는 웬 총소리요?》

《제가 그만… 저놈 말이 갈개는 바람에 오발을 했습니다.》

《오발이요? 상한 사람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저놈 말이 어찌나 갈개는지…》

이때 저 아래쪽 밭머리에서 다부산자차림의 키가 후리후리한 사람이 동만특위 동장영과 함께 밭가운데로 걸어들어왔다. 그 사람은 모자를 벗으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에서 해빛이 번쩍 빛났다.

전령병이 어느새 밭지경에서 군복저고리와 목갑총을 안고 뛰여와 그이께 드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전령병에게 도로 밀어주시였다. 그리고는 흙이 묻은 손만 툭툭 털며 갈아엎은 밭이랑들을 가로질러 손님에게로 마주 걸어나가시였다. 밭이랑들에서 피여오르는 허연 김이 그이의 발에 휘감겨들며 고즈넉이 굼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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