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제 4 장

신임공사 이노우에 가오루

3

(1)

 

군국기무처회의실에 들어서며 법무협판 김학우가 희떱게 뇌까렸다.

《대감, 령감들, 들으셨소? 일본군이 평양성에서 대첩(승리)을 거두었다오. 지금 패주하는 청나라군대를 쫓아 일본군이 압록강으로 밀고 올라간답니다.》

하지만 좌중에서는 별로 반응이 없었다.

김학우는 김홍집에게 말을 던졌다.

《총리대감, 일본공사관에 경하를 드리러 사람을 보내야 하지 않을가요?》

김홍집이 아무런 대척도 하지 않자 김학우는 대원군을 바라보았다.

《참, 최고집정이신 대원위합하께서 이럴 때 움직이시면 우리 조정의 낯이 설텐데…》

《마! …》

대원군은 어이없어했다.

《합하, 그렇지 않습니까?》

대원군은 참다못해 노성을 터뜨렸다.

《야, 이 쓸개빠진놈아!》

《예? !》

경악한 김학우도 어성을 높였다.

《합하, 쩍하면 이놈, 저놈 하는데 왜 내가 나지래기벼슬자리에 있다고 그러시오? 내뒤에는 일본이 있단 말이요, 일본이!》

기고만장하여 소리치는 김학우를 대원군이 랭소를 띠우고 바라보며 야유하듯 나직이 시까슬렀다.

《장허다, 장해.》

그러나 이날 한낮이 좀 기울무렵 대원군은 손자 리준용을 데리고 일본공사관에 나타났다. 그를 본 오까모도가 좀 당황한 기색으로 현관안으로 들어갔다.

《각하, 대원군이 손자 리준용을 데리고 예고도 없이…》

오까모도의 말을 들은 이노우에는 낯에 묘한 웃음을 띠웠다.

《그런가? 불러들이라.》

오까모도가 나가자 제자리에 가앉아 위엄을 돋군 이노우에는 볼따귀의 칼자욱을 손으로 어루쓸며 문쪽을 주시했다.

(내 웅지를 실현하는데 방해군이 누군가? 당장은 대원군이다. 친청파인 민비척족을 제거하는데 대원군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그가 거치장스러운 존재일뿐이다. 그러니…)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오까모도의 안내로 대원군과 그의 손자가 방에 들어섰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노우에가 낯에 웃음을 띠우고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대원군각하께서 이렇게 오시리라군… 뜻밖입니다. 아니, 반갑습니다.》

하지만 대원군은 심드렁하게 대척했다.

《마, 내무대신의 중임까지 미루어놓고 공사로 오셨다는데…》

이노우에의 말은 동문서답격이였다.

《그렇지 않아 근일 찾아뵈려던중입니다. 어서들…》

이노우에가 친절하게 그들에게 의자를 권했다. 대원군이 방안을 잠시 일별하고나서 의자에 앉자 준용이도 곁의 의자에 앉았다.

대원군이 먼저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 불청객이 아닌바치고… 당부하고저 하는것은…》

《어서 기탄없이 말씀하십시오.》

《마, 신임공사는 조선에 대한 방략을 전공사처럼 하지 말라는것이외다.》

《구체적으로는?》

《전공사 오또리 그 사람은 평화적인 수단을 써도 될 일을 병력을 사용하여 민심을 들끓게 하였소. 게다가 내정개혁이라고 여러가지 법안을 내려먹이니 조정이 번거로와 견딜수가 없었소. 그러니 신임공사는 그리하지 말기를 바라는바요.》

이노우에는 대원군을 마뜩잖게 흘겨보았다.

《그건 무엇을 념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성현이 이르기를 한고조시기에 약법 3장으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려 평안을 유지했다 했거늘…》

이노우에가 낯색이 랭랭하여 대원군의 말을 가로챘다.

《말씀중 안되였습니다만 한고조때와 지금이 같습니까? 그리고 내정개혁의 법안이 많아 번거롭다 하심은 부당한 말씀입니다. 지금 시대는 옛날과 다릅니다. 한가지 물읍시다. 2천년전의 한고조시기에 그래 외국과의 수호통상이라는 일이 있었습니까? 또 국민의 권리며 의무라는것이 있었습니까? 하지만 현시대는 복잡다단하여 법의 4장, 5장이 문제가 아니라 천의 법과 만의 규률도 오히려 부족한 형편입니다. 이처럼 국사가 다난다사한 때에 도대체 2천년전의 옛법을 운운하다니요.》

이노우에의 얼굴에 야유하는 빛이 력력했다. 모욕을 느낀 대원군이 어성을 높였다.

《백법, 천장을 운운한들 자강이 없는 내정, 자주가 없는 독립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이것이 어찌 귀측에서 말하는 독립국이라 할수 있겠소!》

대원군이 엄한 기색으로 이노우에를 쏘아보았다.

칼자욱이 험한 이노우에의 볼이 씰룩거렸다.

《이건 신임공사에 대한 항변입니까?》

《항변이건 아니고간에 난 할 말을 다 했소.》

분연히 일어선 대원군은 인사도 없이 수염을 내리쓸며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어정쩡하여 마주 일어선 이노우에는 면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쓸고나서 별안간 집무탁을 쾅 내리쳤다.

《흥, 대원군, 어디 두고보자!》

이때 문을 열고 들어선 스기무라가 이노우에의 집무탁앞으로 다가왔다.

스기무라는 이노우에에게 공사각하의 지시를 미국 알렌서기관에게 전달했는데 알렌은 일본의 대정치가이신 이노우에각하가 자기에게 그런 부탁을 한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면서 공사각하의 의사가 실현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고 보고했다.

이노우에는 자기의 요구가 너무도 쉽사리 해결된것이 만족스러워 스기무라에게 수고했다고 치하했다. 아시아침략을 위해 아시아인들끼리 싸우게 하라는 전략을 내세운 음흉한 미국은 그 돌격대로 야수화된 일본을 리용하려고 했으며 아시아의 맹주가 되여 전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품은 간활한 일본은 탈아주의(아시아에서 리탈하자는 사상)를 고창하면서 서방의 미국과 같은 큰 나라를 등에 업고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책동하였다. 그러므로 미국과 일본은 강도적인 공모결탁이 쉽게 이루어질수 있었다.

《그건 그렇고, 대원군이 문제요. 그 늙데기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스기무라도 난색을 지었다.

《골치거리입니다. 우리 일본덕에 집정의 자리에 올라앉아서도 계속 청국에 추파를 보내지요.》

《그건 무슨 소린가?》

이노우에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평양을 점령했을 때 제1군사령관 야마가다 아리도모 륙군대장한테서 전신이 왔는데 대원군이 평안도관찰사에게 청군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하달한 편지를 입수했다지 않습니까. 하긴 대원군뿐이 아닙니다. 조선국왕부부도 같은 뜻의 지시를 평안도관찰사에게 보냈습니다.》

이노우에가 벌컥 화를 내며 노성을 터뜨렸다.

《빠가! 그런 중요정보를 왜 이제야 말하는가!》

스기무라가 황급히 고개를 꺾었다.

《각하, 죄송합니다.》

《오까모도를 부르라!》

《하!》

스기무라가 급히 방에서 나간 후 이노우에는 뒤짐진 주먹을 폈다쥐였다하며 방안을 성급히 거닐기 시작했다. 그는 악의에 차서 뇌까렸다.

《어리석은 대원군. 내가, 이 이노우에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하는가. 이제 오까모도가 평양에서 그 편지를 가지고오는 날에 당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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