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4 장

신임공사 이노우에 가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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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복궁 함화당은 국왕 고종이 외국사신들을 접견하는 장소인데 그 앞길에는 가로수로 심은 소나무들이 줄느런히 서있었다.

그 소나무들사이길로 외무아문대신 김윤식의 안내를 받으며 이노우에와 스기무라서기관이 궁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오고있었다. 이노우에가 문득 소나무들사이에 가냘프게 서있는 사꾸라나무모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불쾌해하는 기색이 력력했다. 그의 곁으로 다가온 스기무라가 영문을 알아차리고 한마디 하였다.

《민비의 착상일겁니다.》

그들이 함화당안으로 들어가니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은 고종이 옥좌에 앉아있고 옆의 발뒤에는 큰머리를 얹고 왕비정장을 한 민비가 앉아있었는데 이노우에는 조선왕비의 얼굴이 류달리 희고 아름답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모로 꺾어 병색이 짙어보이는 세자 척이 앉아있었다.

이노우에는 자기의 의도대로 민비가 이 자리에 참석한것이 무엇보다도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자기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해낸다는 자긍심을 느낀 그는 고종과 인사를 마치기 바쁘게 교만하고 자고자대하는 태도로 선자리에서 일장 연설을 하였다.

이노우에는 첫째로, 조선의 내정개혁을 성공시켜 독립의 실적을 나타낼것이며 둘째로, 이를 위해 조선왕실이 공고히 되도록 진력할것이며 셋째로, 본사신이 성심성의 조선왕국을 위해 노력할것이니 국왕전하께서도 본관을 지난날의 여느 공사들처럼 생각하시지 말고 하나의 고문관으로 십분 신임하여 언제든지 의논해주시기 바라는바라고 국회에서 연설하듯이 정중한 태도로 달변을 늘어놓았다.

고종이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노우에는 그보다도 발뒤의 민비에게 줄곧 시선을 주고있었다. 이노우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군국기무처의 경장개시이후 사실상 왕권이 무시당한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하였다.

민비의 눈이 긴장한 표정을 띠고 번쩍였다.

이어 최고집정인 대원군은 완명고루하여 절대로 정국을 수습할수 없다고 단언하는 이노우에의 말에 민비의 눈이 놀란 빛을 띠고 커졌다.

계속하여 이노우에는 군국기무처는 그 의사소통이 신속하기도 하고 또 그 의논은 매우 다변한것 같기도 하지만 3개월이 넘도록 어느 한가지도 실행하지 못하고 외형에만 그쳐버렸으니 그 론의가 아무리 유익하고 그 방안이 아무리 고상하다고 하더라도 이를 실행하지 못한다면 군국기무처는 차라리 없는것만 같지 못하다고 걸고들었다.

민비의 눈이 의혹을 담고 쪼프려졌다.

《끝으로 말씀드릴것은》하며 고종앞에 마주선 이노우에는 《미구하여 본사신이 새로운 내정개혁안을 제시할 생각이므로 어전회의에서 의논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을 맺았다.

방자스런 이노우에는 고종의 답변도 듣지 않고 목례를 하였다.

며칠후 이노우에는 《20개조개혁안》이란것을 고종에게 제출하였다. 이날의 국왕알현때에는 이노우에의 요구에 의해 조선정부의 중신들이 다 참석하였다. 례의 옥좌에는 고종이, 발뒤에는 민비가 앉아있었고 고종의 앞으로 오른쪽에 대원군이 거룩하게 앉아있었다. 그리고 긴 탁자 가운데로 왼쪽에는 조선정부의 각 대신들이, 오른쪽에는 이노우에와 스기무라가 자리잡고있었다.

이노우에는 탁우에 놓고 읽던 《20개조개혁안》을 간추려 고종앞으로 제출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눈길은 발뒤의 민비에게 쏠리고있었다.

대원군이 꼬리가 째진 눈으로 이노우에를 찌글서 흘겨보며 뜨직뜨직 말을 꺼냈다.

대원군은 신임공사가 제시한 《20개조개혁안》이 오또리공사가 내놓은 개혁안과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인가고 힐문했다.

이노우에는 낯에 랭소를 띠우며 우선 국왕의 친재권을 복귀시키는것이라고 말하였다.

대원군이 그러니 이 리하응은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겠구려 하고 언짢게 내쏘았다.

이노우에는 쓰겁게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고종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치려는듯 입을 열었다.

그는 국왕의 친재권을 복귀한다 함은 어떻게 한다는것인가고 이노우에에게 물었다.

이노우에는 또다시 발뒤의 민비쪽에 고개를 돌리고 말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허수아비같은 조선국왕보다는 실제적권력자인 민비와 직접 상대하겠다는 로골적인 태도였다.

이노우에는 국왕의 친재권을 복귀한다 함은 관리의 진퇴 등을 일원적으로 국왕전하께 귀속시킨다는것이니 이것이 바로 오또리공사가 내정개혁을 한이래 군국기무처에 박탈당한 관리의 임명권을 국왕전하께 복귀시키는것이라고 자못 아량을 보였다.

긍정이 되는듯 고종은 입을 꾹 다물었고 발뒤의 민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별안간 이노우에가 랭혹한 표정을 띠우더니 고종을 향해 이제는 청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내정을 개혁하여 독립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한 결심을 새로이 하시기 위해 종묘에 서고하시고 그것을 전국민에게 선포하셔야 한다고 단언하고나서 서고하게 될 홍범 14조를 곧 제안하여 올리겠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날 함화당에서 나오던 이노우에는 소나무사이의 사꾸라나무앞에서 다시금 걸음을 멈추고 표독스럽게 뇌까렸다.

《우리 사꾸라는 소나무에 짓눌리지 않을것이다.》

《그래 어떻소, 곤전의 생각은?》

건청궁의 편전에 민비와 함께 돌아온 고종은 자못 진지한 기색으로 그에게 물었다. 민비 역시 생각깊은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일본의 정략은 조변석개라 가늠하기 무상하오나 아무튼 오또리공사때와는 달라진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렇소. 이노우에가 일본정계의 2인자라고 하니 오또리처럼 경거망동은 하지 않을듯싶소.》

민비가 생각깊은 눈길로 고종을 건너다보며 말을 계속했다.

《그가 대원군과 군국기무처를 배제하고 왕권을 부흥시키려는 의도인것 같으니 우리도 이 기회를 잘 리용해야 할것 같소옵니다.》

고종이 민비를 주시하며 얼른 물었다.

《어떻게?》

민비는 합문쪽을 응시하며 침착하게 자기 생각을 터놓았다.

《김홍집의 군국기무처가 오또리의 내정개혁안을 우리 나라의 실정에 유리하게 리용한것처럼 이노우에의 내정개혁안을 우리 왕실의 강화에 유리하게 리용해야지요. 어쨌든 일본은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는 기세이니 그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우리 리속을 차립시다.》
《곤전의 뜻을 알겠소.》하고 말한 고종은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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