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4 장

신임공사 이노우에 가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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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관 1층의 검도실에서 검도복에 검도모를 쓴 이노우에가 스기무라와 함께 훈련에 열중해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오까모도가 그의 곁으로 급히 다가왔다.

이노우에는 검도모를 벗었다.

《무슨 일인가?》

자기곁에 바투 다가선 오까모도가 수군거리는 말을 들은 이노우에의 얼굴이 대뜸 이그러지고 험상궂은 칼자욱이 씰룩거렸다.

《칙쇼!》 한마디 뇌까린 이노우에가 오까모도에게 따져물었다. 《사실인가?》

오까모도는 확신성있게 고개를 숙였다.

《방금 조희연에게서 들은 통보입니다.》

이노우에는 오까모도로부터 스기무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서기관, 당장 조선국왕에게 내 알현을 요구하라!》

《하.》

스기무라는 급히 검도복과 검도모를 벗어놓고 공사관을 떠났다.

세면을 하고 얼굴이며 손의 물기를 닦은 이노우에도 천천히 검도장을 나갔다.

(민비가 지내 날쌘걸. 하지만 그것이 제 무덤을 파는짓인줄이야 모를테지. 대원군을 제꼈으니 이번엔 민비, 너의 차례다. 이렇게 조선정계의 수룡과 암룡을 없애버리면 조선이라는 땅덩이를 밀가루반죽처럼 주물수가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며 2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걸어가는 이노우에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이노우에는 약속된 시간에 스기무라서기관, 구스세무관을 대동하고 경복궁의 함화당으로 갔다.

함화당에는 이미 김홍집총리이하 조선정부의 대신들은 물론 국왕 고종과 왕후 민비까지 자기 자리에 앉아있었다. 낯색이 시퍼래서 면담장에 들어선 이노우에는 의자에 제빠듬히 앉아 뚝 부릅뜬 눈으로 조선정부의 중신들을 훑어보았다. 그는 처음부터 고자세, 강경, 압력자세를 취하였다. 그의 량옆에는 스기무라와 구스세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이노우에는 고종에게 가시눈길을 던지며 맹렬하게 공박하기 시작했다.

《전하, 관리의 임명을 신중히 할것이라고 진언하여 전하께서도 동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4명의 협판을 왕개인의 의사로 임명한것은 국법에 대한 무시이며 월권행위입니다.》

이노우에의 독기서린 눈길이 이번에는 발뒤에 앉아있는 민비에게 가 박히였다. 민비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이노우에는 날을 세운 목소리로 계속 뇌까렸다.

《지금까지 이러한 방법으로 내정개혁을 방해한 실례가 수없이 많았습니다. 왕은 개혁조항을 준수한다고 하였으나 왕비의 리면공작으로 말미암아 자주 그것이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는데 이 격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득 발뒤에서 비명에 가까운 놀란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이노우에의 너무도 로골적인 모욕에 민비의 두눈은 경악으로 커지고 낯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발쪽을 흘끔 돌아본 고종이 짐짓 엄하게 질책했다.

《공사, 발언을 삼가하시오. 여긴 어전이요!》

이노우에도 뻣뻣하게 맞섰다.

《어전이기에 본사신도 내심을 토로하는겁니다.》

민비는 치욕감으로 눈을 꾹 감았다. 난생 이런 모욕을 받은적이 있었던가.

다시 눈을 뜬 민비의 두눈귀에서 분노의 눈물이 끓었다. 그는 항거하듯 부르짖었다.

《왕실과 세자에 대한 우려만 없다면 부녀자인 내가 왜 정치에 관여하겠습니까! 나의 참정은 명실공히 왕실과 국가의 륭성을 바랄뿐이라는것을 공사는 명심하길 바랍니다.》

랭소를 띠운 이노우에가 민비는 무시하고 고종하고만 상대했다.

《전하께서는 내정개혁을 단행한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방해당하고 말것입니다. 우리와 공수동맹을 맺고도 민왕후는 우리와 교전중인 적국 청나라의 서태후의 생일에 많은 뢰물과 함께 서태후생일축하사절단까지 파견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방에 대한 너무도 로골적인 배신행위입니다. 뒤에서 음흉하게 모략책동을 벌릴바에는 차라리 청국과 공수동맹을 맺고 우리 일본과 전쟁을 하는것이 더 떳떳하고 당당하지 않습니까. 수백년에 걸치는 청국 또는 중원(중국)에 대한 사대의존사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우리의 벗이 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본사신은 결코 귀국의 내정개혁에 관여하지 않을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중전이든 대원군이든 그 어느 인물과도 마음대로 결탁하여 국정을 단행해도 본사신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군이 농민군에게 살해당하든지 혹은 우리 일본의 리익이 침해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면 귀국정부가 존재하는 한 담판을 전개할것이요 최악의 경우 우리 일본은 병력으로써 문죄하는 수단을 취하되 추호도 고려하거나 기피하지 않을것이니 미리부터 량해를 바라는바입니다.》

이렇게 고종을 위협공갈한 이노우에의 눈길이 다시 민비쪽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만일 본사신에게 그 어떤 피해를 입히는 날에는 그것이 곧 조선의 망국을 의미한다는것을 기억해두기 바랍니다.》

말을 마친 이노우에는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퇴장해버렸다. 스기무라와 구스세도 표표한 기색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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