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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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위는 고뿌를 받아 물을 마시였다. 그는 정신이 쩡 저려드는듯 눈을 빛내이며 입을 벌렸다.
《하, 샘물이 이렇게 시원합니까?》
《예, 여기 물맛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신변보호라니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우리가 어느 누구의 생명이라도 함부로 위협했단 말인가요?》
《아니, 그런게아니라 그건 어디까지나 여기 실태를 모르는 몇사람의 추측이지요.》
《우리는 쏘베트의 좌경로선을 비판할 때에도, 토지의 공동소유, 공동경작을 비판할 때에도 최대한의 민주주의를 발휘하도록 애써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할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왕청에서만도 전체 인민대중의 저주를 받는 단 한사람의 일군만이 해임되고 과오를 범한 다른 모든 사람들은 아직도 제자리에서 공작하고있습니다. 혁명실천을 통하여 깨닫게 하여 의사일치를 도모하자는것이 우리의 일관한 방침입니다. 그런데 추측이나마 그런 생각을 하다니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반성위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꾹 다문 입가장자리에 깊은 주름살이 잡혔다.
《있을수도 있는 인식부족이겠지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필자가 무기명으로 서한을 쓴데 무엇인가 흐린 구석이 있지 않는가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장난으로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킬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속이 설익은 사람인것 같습니다.
좀 생각해보십시오. 쏘베트형태의 정권을 세우고 좌경적시책을 실시한것을 비판한것이 어째서 로씨야혁명의 경험을 비판하거나 부정하는것으로 됩니까? 어째서 우리 유격대가 조국에로 진출한것이 민족주의적편견에 사로잡힌 행동으로서 혁명의 국제주의적의무를 저버린것으로 됩니까?》
《혁명은 수출할수도 수입할수도 없는것입니다. 혁명은 민족국가의 구체적인 력사적, 사회적모순을 반영하여 폭발되여오르는것입니다. 우리는 조선혁명을 세계혁명의 한 고리로 보고있으며 자기 나라 혁명을 잘하는것이 곧 세계혁명에 이바지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타협할수 없는 우리의 신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두만강을 건너 조국으로 진출했습니다. 왕재산이라는 산에서 회의를 열고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할 방침을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조선혁명가들이기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조선혁명을 생각해야 하며 조선혁명을 잘해야 하는것입니다. 우리의 이 결심은 확고부동합니다. 국제당이 내놓은 1국1당제원칙만 알고 우리의 이 결심을 리해 못하는것은 터놓고 말하면 대국주의적이며 좌경기회주의적인 사고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당이나 어느 다른 나라 당이 우리 혁명을 대신해줄수 없는것은 자명한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조선혁명은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책임지고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이 신념과 감정은 어느 누구도 꺾을수 없습니다!》
《저도 조선사람입니다. 조국에 대한 향수는 이국의 하늘밑에서 살아온 이십여년간 한시도 제 가슴을 괴롭히지 않은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조선공산주의자들의 그 숭고한 감정을 어찌 외면할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쏘베트를 비판하게 된 근거에 대하여, 토지개혁에 대하여, 혁명군의 국내진출의 목적과 의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하여주실수 없겠습니까?》
《국제파시즘의 대두를 반대하는 투쟁과 여기 근거지의 현실은 하나의 고리로 련관된 문제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내 설명을 듣는것보다 동지가 직접 인민대중속에 들어가서 근거지의 실태를 료해해보는것이 어떻습니까? 이곳 생활을 체험도 해보면서 말입니다.》
반성위의 눈에 기쁨이 번쩍이였다.
《아니,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만약 동지가 원한다면 우리는 혁명조직들에 지시를 내려 동지의 사업조건과 생활상편의를 적극 도모해주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며 찔러보고 따져봐도 좋습니다.》
《
《아, 아, 알만합니다. 좌우간 그렇게 하기로 합시다.》
이때 김중권이 들어왔다.
김중권은 무뚝뚝한 얼굴로 그와 인사를 나누고는 책상옆에 자리를 잡고앉아 온성형편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반성위는 자기가 들어서는 안될 이야기라고 생각한듯 움쭉 일어서려고 하였다.
《앉아계십시오. 함께 들읍시다. 들을 필요가 있을겁니다.》
국경의 봄바람에 얼굴이 검스레하게 탄 김중권에게서는 조국의 봄기운이 확확 풍겨오는듯 하였다.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보고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지금 조국인민들은 들끓고있습니다.
여기 유격근거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하루이틀사이면 두만강을 건너가 인민들속에 쫙 퍼집니다.》
《그렇게 빨리?》
《전장원동무의 활약이 큽니다. 그 동무는 활기를 되찾고 본때있게 일하고있습니다. 장원동무는 서숙학생들과 야학생들에게 글공부를 배워주는 틈틈에
근거지소식을 이야기해줍니다. 그러면 그들의 입을 통하여 그 말이 이튿날이면 온 읍에 쫙 퍼지는 판입니다. 이제 격문도 써서 장마당, 역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 뿌릴 계획이랍니다. 어찌나 열정에 북받쳐 일하는지 로출될가봐 우려됩니다. 제가 떠나올 때 헤여지기 몹시 섭섭해했습니다.
《그 동무가 상처도 하고 생활이 매우 어려울텐데…》
《지금은 윤보금녀성의 어머니가 도와주고있습니다.》
《그럼 좀 괜찮겠지만… 어쨌든 남이 끓여주는 밥인데 안해가 끓여주는것보다야 살에 가겠소.…》
김중권의 보고에 의하면 온성의 혁명조직들은 활발하게 움직이고있다.
농민협회는 전장원을 도와 진명서숙교사까지 이전 불타버린 자리에 새로 지었다. 남자들뿐아니라 많은 녀성들도 야학에 나와 공부를 하고있다. 전장원은 근거지에서 찍어내보낸 《농민독본》으로 그들에게 반일교양을 꾸준히 하는 한편 조직을 확대해나가고있다. 한편 왜놈들은 근거지와 내통하고있는 《통비분자》들을 색출한다고 피눈이 되여 날치고있다. 얼마전에는 도경무부장이란자가 온성에 내려와서 살기를 풍기며 돌아쳤다.
그놈은 수많은 애국자들을 체포학살한 인간백정이다. 독을 내뿜는 그놈의 매눈앞에 서면 누구나 가슴속에 성에가 불리고 개들은 십리밖에서도 꼬리를 사리며 도망친다고 하였다.
경무부장놈은 관리들을 모아놓고
《그런데 참 공교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하고 김중권은 말하였다. 《그놈이 관리들을 보고 리념상으로 공명되여 용공을 할수도 있고 공산무장대의 위협에 투항하여 <통비분자>로 될수도 있고 또 친척관계로 말려들수도 있다고 가정하면서 우연히 전수원면장을 쏘아보았는데 그 바람에 다른 몇명의 관리들도 그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러자 면장이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면서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답니다. 아마 사촌동생인 전장원동무때문에 속이 켕겼던것 같습니다.》
《전장원동무때문에?》 하고
《예, 무슨 기미를 느끼고있는 모양입니다. 그후 전면장은 며칠 병원에 들어가 누워있다가 나왔는데 요새는 아주 너절하게 놉니다. 경찰놈들을 집에 끌어들여 술대접을 하는가 하면 순사들을 끌고 진명서숙을 비롯한 면내의 학교들과 야학들에 달려들어 교재내용과 공책들을 검열하고 면에서 생기는 소소한 일까지 죄다 경찰에 고해바친답니다. 풍인동주재소놈들이 제일 악착하게 놉니다. 하야시와 최순사에 대한 인민들의 원한은 극도에 달하고있습니다. 전장원동무는 놈들에게 잘 보이려고 아부하고있는 사촌형때문에 몹시 불안해하고있습니다.》
《그렇소?》
《예… 제 보기에도 전면장은 장원동무한테서 무슨 기미를 느낀게 분명합니다. 그가 입을 잘못 놀리는 날에는 온성조직은 엄중한 위험에 빠질수 있습니다. 온성조직은 여기서 무장대를 파견하여 하야시와 최순사 그리고 전면장까지 처단해줄것을 요구합니다.
저놈들을 눌러놔야 전장원동무한테도 유리한 활동조건이 보장될것같습니다.》
방안공기는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반성위는 엄청난 현실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이윽고
《그놈들한테 여기서 온성까지 하루걸음이란걸 깨우쳐줘야겠소. 된매를 안겨야 정신이 들겠는 모양이요.》
그러시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시였다.
《전면장은 좀 두고봅시다.》
《이제는 더 기대할게 없을것 같습니다.》
《왜놈들은 그 사람을 믿소?》
《장원동무 보고에 의하면 늘 감시하면서 밤에 집주변에 밀정들까지 매복시킨답니다.》
《면장
《장원동무가 일깨워줬는데 반신반의하더랍니다. 자기를 왜놈들한테서 떼내기 위한 하나의 선동이 아닌가 해서…》
《선동이? 허… 그럼 왜놈들한테 무슨 신의라도 있다고 여기는겐가? 청맹과니가 다 됐군.… 좌우간 전면장에 대해서 좀더 심중히 생각해봅시다.》
반성위는
저녁녘에
시크무레한 풀향기와 시원한 물비린내가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식혀주었다. 풀벌레들의 야릇한 울음소리가 내가에 가득 찼다.
《낮에 이야기된 그 면장은 어떻게 처리됩니까?》
《예?… 면장이요? 그 문제는 좀더 생각하고 토론해봐야 되겠습니다.》
《예.…》
《그 사람은 지금은 면장이지만 한때는 독립운동자들을 도운 일도 있고 애국적인 지조와 민족적량심도 있던 사람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를 중립만 시켜놓아도 온성에 있는 혁명조직에는 아주 유리한 형세가 조성됩니다. 더 나가서 그를 포섭하는데 성공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일제의 말단통치기관을 틀어쥐고 마음대로 역리용할수 있을것입니다. 그 사람문제는 더 깊이 생각해봐야 되겠습니다.》
《그 면장은 여기서 자기 운명이 론의되고있다는걸 전혀 모르겠지요?》
《허허… 물론 그렇겠지요.》
《여기서 온성까지 60리라는게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아, 조국이 지척이군요. 저는 조국을 떠난지 15년이 더 됩니다.》
《그렇습니까!》
저 멀리 조국의 하늘가에서는 별들이 하나둘 떠오르며 어서 오라 부르는듯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