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5 장

토왜구국의 기치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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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름달빛이 서리내린 나무잎새며 풀잎들을 희미하게 비치는 밤이다.

양총멜끈을 어깨에 걸멘 두명의 파수군이 감영무기고앞을 어슬렁어슬렁 거닐고있었다. 그들이 풀숲에 몸을 숨긴 농민군들이 지금 자기들을 지켜보고있는줄이야 어떻게 알겠는가.

태봉이가 잠시 사위를 살피고나서 농민군들에게 나직이 일렀다.

《저놈들은 내가 제낄테니 인차 달려나와야 하오.》

《알겠네.》

고부의 강주사집에서 종살이를 하던 쇠불이가 낮으나 힘있는 소리로 대척했다.

한손에 도끼자루를 잡은 태봉은 밑에 홑고의만 걸치고 웃동은 벗었는데 검스레하고 번들거리는 살갗은 흙빛이였고 무기고를 향해 재빨리 기여가는 동작은 어찌 민첩한지 마치도 풀숲을 기여가는 도롱룡이 같았다. 무기고에 가까이 접근한 그는 파수군들의 말소리는 물론 모색도 가려볼수 있었다. 키가 좀 큰 파수군이 하품을 하며 혼자소리 하듯 두덜거렸다.

《제길, 밤두 길다. 춥긴 또 왜 이리 추워.》

그러자 다른 파수군이 중얼거렸다.

《뜨뜻한 구들에서 녀편네를 끼고 자는 자식들은 좋겠다.》

키 큰 파수가 또 게두덜거렸다.

《우린 무슨 팔자에 이 고생이누? 게다가 한쪽다리는 늘 저승길에 들여놓고있으니.》

《참, 듣자니까 우리 호남에서만두 동학군의 습격으로 무기고를 탈취당한 고을원들과 각 진의 대장들이 29명이나 된다고 하네.》

《그렇게 많이?… 이거 오늘 밤 우리 명두 황천길로 가는게 아니야!》

《정신을 차려야겠네. 무기고도 무기고지만 우선 우리 명을 보존해야 할게 아닌가?》

놈들과 열댓걸음사이로 기여간 태봉이가 몸을 일으켜 얼른 나무줄기뒤에 숨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비수를 뽑아 량손에 갈마쥐였다. 그의 손이 언뜻하자 비수 하나가 어둠을 가르고 날아가 키 큰 파수군의 목에 가 박히였다.

《억!》 키 큰 파수군이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어푸러지자 곁에서 함께 걷던 파수군이 《엉?!》하며 놀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도 태봉이의 비수에 가슴을 찔리여 그자리에 털썩 꺼꾸러졌다.

무기고를 향해 비호처럼 달려나간 태봉이가 도끼로 커다란 자물쇠를 까부셨다. 달려온 농민군들이 열어제낀 무기고안으로 들어가 총이며 창이며 칼들을 한아름씩 안고나왔다.

태봉이가 쇠불이한테서 받은 자기 적삼소매에 팔을 꿰면서 그들을 독촉했다.

《놈들이 눈치채기전에 자, 빨리 산으로 오릅시다.》

가팔진 산속길을 얼마나 걸었는지 어느덧 사위가 푸름푸름 밝아오는 어뜩새벽이 되였다.

병쟁기를 한아름씩 등에 지거나 어깨에 멘 농민군들의 얼굴이 땀기로 번들거렸다. 하지만 그들의 걸음은 활기있었고 얼굴에선 웃음발이 날렸다.

《이제 삼례에 이르면 전대장이 무척 기뻐하겠지?》

누군가 이렇게 말을 떼자 쇠불이가 제꺽 응수했다.

《이를 말인가. 하여튼 태봉이가 재주군은 재주군이야!》

태봉이가 열적은듯 씩 웃으며 대척했다.

《광대노릇 10년에 배운 재주가 그게 다요.》

《10년이 아니라 100년을 배워두 난 익혀낼것 같지 않네.》

쇠불이가 이렇게 말하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골짜기의 펑퍼짐한 너럭바위우에서 태봉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예서 좀 쉬여갑시다.》

농민군들이 너럭바위우에 무기들을 내려놓으며 털썩털썩 주저앉았다.

태봉이가 또 입을 열었다.

《지고 온 병쟁기들을 세여보고 말들 하시우.》

그는 자기가 직접 농민군들사이를 다니며 무기들을 세여보고 종이에 그 수자를 적어넣군 하였다. 병쟁기들을 다 확인한 태봉은 만족스럽게 말했다.

《이만하면 괜찮아요, 양총두 스무자루나 되지.》

그런데 누군가 두덜거렸다.

《난 별루 쓸모두 없는 창대만 욕심스럽게 안고 나오다보니 괜히 밤길에 땀깨나 흘렸군그래.》

그를 보며 태봉이가 즐겁게 웃었다.

《왜 쓸모가 없다고 그러시우. 많이 가지고 나온건 더 좋은 일이고…》

다시 길을 떠난 그들은 새벽갓밝이에 전주북쪽 완주의 삼례에 당도하였다. 호남농민군의 집결처인 삼례에서는 지금 아침밥짓기가 한창이였다. 내물을 사이에 두고 평지의 여기저기 걸어놓은 돌가마에서 연기들이 피여오르는데 농민군들이 부르는 군가소리가 절절하게 울려퍼졌다.

 

어화 내 나라의 농부들아

권세있는 량반놈들 안락을 찾고

바다건너 왜놈무리 휩쓸어든다

배달겨레 그 운명 누가 지키랴

축멸왜적 토왜구국 우리가 할 일이니

우리가 안하면 그 누가 하여주랴

 

누군가 웨쳐대는 소리가 새벽의 청신한 대기속에 울려퍼졌다.

《태봉이네들이 온다!》

등과 어깨에 병쟁기들을 한짐씩 골박아진 농민군들이 싱글벙글거리며 마을로 들어섰다.

이들을 둘러싸고 삼례의 농민군들이 환성을 질렀다.

《야, 굉장하구나!》

《이거, 번쩍거리는 양총까지 다 있구!》

누군가 태봉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정하게 일렀다.

《어서 전대장님을 만나게, 자네를 기다리고계실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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