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제 5 장
토왜구국의 기치를 들고
2
서울주둔 일본군사령부정문으로 호화로운 마차 한대가 들어섰다. 마차에는 이노우에 공사와 공사관무관 구스세중좌가 타고있었다. 애숭이보초병이 얼른 영접들어총 경례를 하며 숭엄한 눈길로 마차를 바라보았다.
마차안의 이노우에는 자못 만족한 기색으로 한손을 가볍게 들었다내리였다.
현관앞에 멎은 마차에서 내린 이노우에와 구스세는 곧장
대기하고있던 장교들이 일제히 일어나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이노우에는 기분이 흡족하여 그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중키에 머리칼이 희슥희슥한 로장이 손을 이마전에 붙이며 걸걸한 소리로 보고했다.
《보병 제24련대 련대장 대좌 시마무라입니다.》
《언제 인천에 상륙했소?》
웃음을 띠운 이노우에의 물음에 시마무라는 걸걸한 소리로 어제 오후 4시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벌써?… 음, 수고했소.》
이노우에는 만족하여 마주잡은 시마무라의 손을 흔들었다. 이어 이노우에는 옆으로 한발 옮겨 다음장교의 앞에 마주섰다. 머리칼을 상고머리로 짧게 깎은 젊고 패기있어보이는 그 장교는 장화뒤축을 딱 소리나게 붙이며 기운차게 보고했다.
《대본영직속 후비보병 제19대대 대대장 소좌 미나미입니다.》
이 녀석은 일을 제낄것 같군. 어딘가 잔인해보이는 미나미를 잠시 응시하며 이런 생각을 한 이노우에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시느라 수고했소.》
후비보병 제18대대장을 비롯하여 나머지 장교들과도 인사를 마친 이노우에는 가운데 마련된 자기 자리에 가앉았다.
《자, 다들 앉읍시다.》
자리에 앉은 장교들은 모두 경건하고 엄숙한 기색들이였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선 이노우에가 좌중을 일별하고나서 말을 뗐다.
《제군들, 상인들이나 기업가들은 시간을 돈이라고 하지만 우리 군사가들은 시간은 곧 승리라고 하오. 승리를 가져올 시간이 너무도 부족하기에 간단히 말하겠소. 제군들도 알고있는바와 같이 지금 우리 일본군은 로대국이라고 하는 청국과의 전쟁에서 련전련승하고있소. 북양함대를 전멸시킨 우리 해군은 그들의 해군기지인 청도와 위해위를 장악하고 완전한 제해권을 행사하고있소. 륙군 또한 불락의 요새라고 자랑하던 려순을 함락한데 이어 료동을 장악하고 산동으로 진출하고있소. 일청전쟁에서 우리 무적황군의 승리는 명약관화한 일로 되고있소. 그런데…》
이노우에는 문득 말을 끊고 장교들을 다시금 하나하나 일별하였다. 장교들의 낯색이 더욱 긴장해졌다.
이노우에는 위엄있게 천천히 그리고 틀지게 말하였다.
《그런데 조선이 문제란말이요. 우리가 왜서 청국과 힘겨운 전쟁을 벌리고있는가. 그것은 조선에서 청나라세력을 구축하고 조선을 우리의 독점적지배지로 만들기 위해서라는것은 제군들도 다 잘 알것이요. 한데 조선에서 특히 남도지대에서 반일적인 농민군이 궐기하여 서울을 향해 북상할 계획이요. 그들의 슬러건(구호)은 토왜구국 즉 일본을 치고 자기 나라를 구원하겠다는것이요. 만약 그들의 목적이 실현된다면 그토록 막대한 인력과 재력을 쏟아부은 일청전쟁의 승리도 수포로 돌아가게 될것이요.
그러니 지금 우리의 최대의 적수는 동학군이라 불리우는 조선농민군이요. 이들과의 전투에 아니, 전쟁에 제국은 바로 당신들, 황군의 최정예부대들인 대본영직속 후비보병대대들을 투하한것이요. 지금 비도들은 충청도의 론산에 집결하고있소. 그리고는 곧바로 서울로 쳐올라올 계획이요. 그러니 그들의 공격을 공주계선에서 좌절시킬뿐만아니라 금년중으로 완전히 괴멸시켜야 하오. 작전계획은 공사관무관인 구스세륙군중좌가 발표할것이요.》
간단히 말하겠다던 이노우에는 한참이나 떠벌이고나서 자리에 앉았다. 그가 앉자 구스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커다란 조선지도앞으로 가더니 지시봉을 잡았다. 일본군장교들도 그의 지시봉에 따라 조선지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인답게 걸때가 큰 몸집에 낯색이 검누른 구스세는 좀 뚝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공사각하께서도 방금 말씀이 계셨지만 우리 작전의 총적인 목적은 조선비도들의 서울진격을 공주계선에서 좌절시키고 그들을 전라도의 남해안으로 압축하여 완전소멸하는것입니다.》
이렇게 서두에서 이노우에의 말을 반복강조한 구스세는 작전계획에 대해 지시봉으로 지도를 짚어가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일본군 《토벌》대는 세개 부대로 나뉘여 세개의 방향에서 작전을 진행하게 된다고 언급한 후 우선 제1대는 서울을 출발, 동쪽을 취하여 강원도를 경유, 충청도의 중앙을 통과하여 전라도로 내려가게 되며 다음 1대는 서울을 출발, 중앙을 차지하고 충청도를 거쳐 전라도 남단에 이르게 되며 나머지 1대는 인천을 출발, 해로로 충청도의 서해안을 우회하여 전라도의 서남해안에 이르게 된다고 언급했다.
두손으로 지시봉을 짚고 서서 잠시 숨을 들이쉰 구스세는 다시 말을 꺼냈다.
《에, 명심해야 할것은 단 한명의 비도도 우리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한성수비대의 1대를 진출시켜 비도들이 강원도나 함경도지방으로 빠지지 못하게 할것이며 전라도 남단에 몰리게 될 비도들이 바다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군함 <찌꾸바>로 하여금 전라도연안을 초계하도록 할것입니다.》
일본군장교들은 물샐틈없는 작전계획에 고개를 끄덕이였다.
지시봉을 제자리에 세운 구스세는 여담처럼 말을 덧붙였다.
《에, 일본군의 토벌작전에는 조선정부군인 교도중대, 통위영, 경리영, 순무영, 장위영의 장졸들도 동원되지만 그들의 수는 도합 3000명에 불과하며 전적으로 우리 일본군의 지휘를 받게 됩니다.》
구스세가 장화발소리를 뚜벅거리며 자기 의자에 가앉자 다시 자리에서 일어선 이노우에가 엄숙한 표정으로 좌중을 훑어보았다. 장교들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차렷자세를 취했다.
《제군들, 정한은 다시말해 조선정복은 300년전에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20만의 대군으로도 실현하지 못한 야마도족의 숙원이요. 이 야마도족의 숙원 아니, 천황페하의 어지를 나는 당신들이 반드시 달성하리라고 믿고싶소. 내 말뜻을 알겠소?》
일본군장교들은 고개를 젖히고 힘껏 대답했다.
《하!》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린 이노우에는 다시금 장교들을 일별하였다.
그의 눈은 살기로 번뜩이고 낯색이, 더우기 상처자욱이 뻘겋게 상기되였다.
《강조할것은 조선의 폭도들과 그들의 활동지역을 철저히 초토화해야 한다는것이요.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는 그 어떤 반일적소요도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하오.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태워버리시오!》
잠시 말을 끊은 이노우에는 살기찬 어조로 계속했다.
《대본영참모총장의 훈령에도 있는바와 같이 인량어적, 다시말해 고대 병가의 격언에는 군량은 적으로부터 빼앗아 해결한다고 했소. 따라서 물자는 현지에서 해결하는것을 법으로 삼고 일본내지로부터 추가수송을 요청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것이요.》
군량을 비롯한 기타 물자를 조선현지에서 략탈하여 충당하라는 이노우에의 명령에 장교들은 목례로써 긍정을 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