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 회)

제 5 장

토왜구국의 기치를 들고

3 

 

밝은 해볕이 따사롭게 비치는 가을철의 한낮때였다.

나무가지우에서 꼬리를 초싹거리는 까치의 울음소리를 기분좋게 들으며 마냥 온몸이 빨려들어갈듯싶은 가없이 푸르른 대공을 쳐다보던 태봉은 다시 싸리비를 들고 상쾌한 마음으로 삼례창의소뜨락을 쓸었다.

방문이 열리더니 전봉준이 밖을 내다보았다.

《태봉이, 이리 좀 들어오게.》

《예.》

태봉은 비자루를 토방에 기대세우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무릎을 끓고 앉자 전봉준은 그의 무릎앞에 수십개의 봉투를 내놓았다.

《이제 며칠후이면 싸움터로 떠나야 할텐데 이건 각 고을 집강소들에 보내는 통문일세. 여기에 각 고을로 떠나갈 사람들의 이름도 적어놓았으니 이 일을 조처해주게.》

《알겠습니다.》

태봉은 통문봉투를 간종그려 손에 들었다.

《그리구…》

전봉준이 다시 말을 떼자 태봉은 그의 다음분부를 기다렸다.

《고부에는 자네가 가도록 하게.》

《제가요?》

태봉은 의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자네가 살던 백정촌에 들려 하루밤 쉬고 래일 떠나도록 하게.》

《그건?》

태봉은 의혹에 찬 눈길을 전봉준이한테서 떼지 못했다.

《허허…》

전봉준은 의미있게 그리고 너그럽게 웃었다.

그제야 비로소 까닭을 알아차린 태봉은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였다.

《옥절이란 처녀가 자넬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겠나? 작별인사라두 하고 와야지, 허허…》

《대장님이 그건 어떻게?》

《그래서 대장이 아닌가, 허허허.…》

가슴이 뭉클해진 태봉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전봉준의 부드러운 음성이 다시 그의 귀에 마쳐왔다.

《빈손으로야 어떻게 가겠나? 내 마련해놓은것이 있으니 옷감이라도 한벌 가져다주고 오게.》

《대장님, 흑…》

태봉은 끝내 어깨를 들먹였다. 자기가 언제 이런 사랑을 받은적이 있었던가. 광대라고, 천민이라고 업심과 구박만을 받지 않았던가. 그는 자기를 사람값에 쳐주고 내세워주는 전봉준대장이 더없이 돋보였고 그에게 흠탄하고 경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 어서 떠나게.》

전봉준이 그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올려놓았다.

전봉준과 헤여진 태봉은 자기의 애마 백호를 짓쳐몰았다.

백호도 기쁨에 들뜬 태봉이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기운차게 내달렸다.

황혼이 깃든 고부의 백정촌은 사람사는 부락같지 않게 고요하고 한산하였다.

하지만 기울어진 통나무굴뚝들에서 모락모락 보리저녁연기가 피여오르는것으로 보아 사람이 있긴 있는 모양이였다.

옥절이네 집뜨락에서 백호가 콩단을 맛나게 먹고있고 토방에 두컬레의 짚신이 가지런히 놓인 방안에는 태봉이와 옥절이가 마주 앉아있었다.

지금 눈물이 글썽한 옥절이가 태봉이가 가져온 옷감을 손으로 쓸어보고 또 쓸어보군 하였다. 저고리감인 갈매빛의 진록색비단천, 치마감인 딸기빛에 가까운 빨간 비단천, 언제 이런 비단천을 입어보기나 했으며 상상이나 했던가! 그는 이런 귀한 옷감을 자기에게 보내준 전봉준선생님이 고맙고 고마왔다.

《옥절아, 나 오늘 밤 여기서 자고 가련다.》

태봉이의 덜퉁스런 소리에 옥절이가 당황한 기색으로 대척했다.

《아이참, 할아버지도 안계시는데…》

《그럼 한데서 자라니? 내가 살던 모가비네 집은 이사를 가고 없으니 말이다.》

옥절은 답변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는 옥절이를 건너다보며 태봉이가 또 데퉁스럽게 말했다.

《난 할아버지의 웃방에서 자면 될게 아니가.》

《그래두 남들이…》

《잔치하기전에는 네 머리칼 한오리 다치지 않을테니 걱정말어.》

《태봉아!》

태봉이를 정차게 바라보는 옥절이의 눈에 또 눈물이 어렸다. 태봉이가 짐짓 마뜩잖은 기색으로 눈을 흘겼다.

《그런데 언제까지 아이적처럼 태봉아, 태봉아 할테냐?》

《그럼 어떻게?》

《글쎄다.》

《도련님이라 할가?》

《량반두 아닌데?》

《그럼 태봉씨?》

《멋적게 태봉씨는 또 뭐야?》

《그럼 태봉님?》

《에에, 본래대루 불러라.》

태봉이가 신푸녕스럽게 말하며 손을 홱 내저었다. 옥절이가 불현듯 문쪽을 바라보더니 깜짝 놀랐다.

《밖이 어두웠는데 저녁 지을 생각두 안하고…》

옥절은 황황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내려갔다.

어느덧 덩두렷한 둥근달이 환히 비치는 고요한 밤이 되였다. 어디선가 처량하고 애달피 우는 두견새의 소리가 들렸다. 소쩍, 소쩍… 방안에도 달빛이 밝게 흘러들고있었다.

옥절이가 조심스럽게 사이방문을 닫았다.

《닫지 말어.》

태봉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건 왜?》

《문을 열어놓으면 한방이나 같으니까.》

웃방에 번듯이 누운 태봉이도, 아래방에 꼬부리고 누운 옥절이도 잠들지 못하고있었다. 동안이 뜬 침묵이 흘렀다. 이윽하여 옥절이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저 태봉…》 옥절은 태봉이를 어떻게 부를지 몰라 낯을 붉혔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거야 나두 모르지. 싸움길이니…》

《혹 돌아오지 못하면 난 어찌하니?》

《랑군을 맞으렴.》

덜퉁스럽게 시까스르는 태봉이의 소리에 뒤이어 숨죽여 흐느끼는 옥절이의 간간한 울음소리가 울렸다. 마음이 산란해진 태봉은 그만 이불을 와락 뒤집어썼다.

얼마뒤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난 옥절은 소리없이 겨릅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하늘에 걸린 둥그런 금황색달, 푸르스름한 달빛이 흐르는 삼라만상은 신비경이였다. 백호가 옥절이를 보고 앞다리를 들었다놓으며 반기였다. 짚신을 꿰고 뜨락에 내려선 옥절은 집뒤에서 콩단을 한아름 안고나와 백호에게 주었다. 백호는 콩단에 대가리를 틀어박았다. 사랑에 겨워 백호의 갈기를 쓸어주던 옥절은 백호의 이마에 볼을 비볐다.

옥절의 눈굽에 맺힌 눈물이 달빛에 부서졌다.

그의 애끓는 마음의 소리가 애절하게 울렸다.

《백호야, 부디 태봉이 저이를 잘 보살펴주어. 내 마음처럼 말이다. 알겠지, 백호야.…》

다시 방으로 들어온 옥절은 잠시 웃방에 귀를 기울였다. 태봉이의 코고는 소리가 드높았다. 옥절은 안심하고 겨릅등에 불을 달았다.

불빛에 대고 바늘에 실을 꿰는 옥절이의 모습은 참으로 사랑스럽고도 정성스러웠다.

옥절이의 방문에는 온밤 빨간 불빛이 어려있었다.

맑고 청신한 이튿날 아침, 옥절은 뜨락에서 태봉의 등에 바랑을 지워주었다.

태봉이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여게 뭐가 들어있어?》

《전대장님께 드릴 버선하구 거기서 신을 버선두…》

옥절이는 사글사글한 눈으로 태봉이를 바라보았다.

《아니, 밤새 그걸 다 지었단말이야?》

태봉은 사뭇 놀란 기색이다.

《내가 돌아을 때까지 기다려!》하고 말한 태봉은 백호한테로 기운차게 걸어갔다. 그의 등뒤에 대고 옥절이가 울음섞인 소리로 나직이 뇌였다.

《검은 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기다릴테니 꼭 돌아와!》

말등자에 한발을 꿰던 태봉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옥절이한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별안간 옥절이를 꽉 그러안고 빙그르 돌아갔다.

《에그머니, 이게 무슨짓이야?》

당혹하여 이렇게 나무람하면서도 옥절이의 눈은 행복으로 웃고있었다.

《쩌!》하는 소리와 함께 백호의 등에 탄 태봉은 사립을 빠져나갔다.

옥절은 사립가에 서서 점도록 태봉이를 바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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