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 회)

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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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이는 마촌 시집으로 인차 돌아가려 했으나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는데다가 왜놈들의 국경경비가 너무 심해져서 망설이기만하고 선뜻 길을 떠나지 못하다나니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얼마후에 찬거리를 들고 전장원선생댁에 갔다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얼굴이 흐려서 돌아왔다.

보금이는 어머니가 이모저모로 캐여물어봐도 대답을 안하고 몸살이나서 그런다고 하며 안방에 들어가 누웠다.

저녁녘에 윤치석이 타막골 숯구이터에서 돌아왔다.

윤치석은 얼굴이 시꺼매져서 로친을 눈짓으로 굴뚝쪽으로 불러내였다.

언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안해를 굴뚝께로 불러내는데 습관이 된 그였다.

조씨는 가슴이 한줌만 해졌다.

《저 애가 왜 누워있소?》

《전선생집에 갔다오더니 저런다오.》

《무슨 소리 없습데?》

《아무리 물어봐야 대답을 하우?… 혼자 사는 녀자마음이 장마철 하늘같다더니… 에그, 박달몽둥이같애두 그저 제 랑군곁에 있어야지 에미인들 속이 썩어서 시중을 들겠소.…》

그러자 령감의 얼굴이 갑자기 험해지며 부르쥔 주먹을 쳐들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어디다가 옮겼다간 내 주먹밑에서 없어질줄 알아…》

조씨는 한걸음 물러서서 두손을 가슴우에 모아쥐며 눈이 올롱해져서 령감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고싶으나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고 올롱해진 눈에 눈물만 가랑거렸다.

머리가 파파 세여가는 이날까지도 자기를 업수이여겨 무슨 일이 생기면 으름장부터 놓는 령감의 처사가 억울하고 분해서였다.

《여보…》

《깨끗한 솜하구 깨끗한 천같은게 몇자 없겠소?》

《예? 어디다 쓸려구?》

《아, 글쎄 없는가 말이야?》

조씨는 목구멍에 눈물이 끓어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어제 빨아서 풀해놓은 이불안이 있는데… 솜은 농짝에 좀 있겠는지?》

《내오우… 여기로 내오란 말이요!》

《여보, 무슨 일이요. 나는 알면 못쓰우?》

《간밤에 저 사람이 왔댔어.》

《누구요?》

조씨는 눈이 커지며 가슴부터 활랑거렸다.

《창억이 말이요. 순사들을 친 담에 큰 접전이 있었는데… 다쳤어… 피를 너무 쏟아 가망이 있겠는지 모르겠소. 잘 싸매라도 보내야겠는데 빨리 내오오.》

《아-니, 이게 무슨 벼락이요!》

로친의 소리가 높아지자 윤치석은 다시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불끈 틀어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거 그저!》

《여보!…》 조씨는 령감의 주먹을 잡고 그에게 매달렸다.

《차근차근 말해주오, 내 사위가… 이게 무슨 변이요!》

그러자 윤치석은 얼굴빛이 캄캄하게 죽으며 휘파람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모가지를 비틀어치우겠다! 왜 소리를 내? 안방애가 듣겠는데…》

조씨는 숨도 못 쉬고 화들화들 떨다가 집안으로 달려들어가 의농문을 열고 옷가지들을 걷어내며 솜을 찾았다.

그러나 눈앞이 캄캄해져 어느것이 어느것인지 분간할수 없었다. 그는 누데기같은 옷가지들을 앞에 활활 꺼내놓고 이것저것 뒤지다가 겨우 솜을 찾아내였다. 령감이 들어섰다. 령감의 눈은 비감에 흐려있었다.

그 눈을 보자 조씨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기절초풍을 하여 벌떡 일어났다.

이때 안방문이 벌컥 열렸다. 보금이 내려왔다.

《무슨 일이 생겼어요?》

윤치석은 얼굴이 무섭게 근엄해지며 범접 못할 기상을 풍기였다.

《아무것도 아니다!》

보금이는 얼굴빛이 새까맣게 죽은 어머니를 돌아봤다.

《저도 낮에 전선생한테서 그 사람이 왔댔다는 이야긴 들었어요. 그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닌가요?》

그러자 조씨가 울음을 터뜨리며 령감에게 대들었다.

《여보, 말을 하우! 하우! 누구보다 애가 알아야지 제사람인데… 제사람인데!…》

령감이 발을 탕 구르며 닥치라고 소리쳤으나 로친을 도저히 눌러놓을수 없었다. 로친은 령감의 으름장따위에는 아랑곳없이 눈물을 좔좔 흘리며 딸의 두손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이 불쌍한것아, 그 사람이… 창억이… 그 사람이 왔다가 상했다. 물을 건너간다는데… 따라가거라! 이런 때 네가 곁에 있어야 된다. 따라가거라!》

그리고는 안방으로 달려들어가 딸의 옷가지들을 와락와락 벗겨 베보에 꿍져가지고 정신없이 뛰여나와 그것을 딸에게 내밀었다.

《가거라, 다 쓸데없다. 이런 땐 안사람이 곁에 있어 구완을 해야 된다. 가거라, 가거라!》

보금이는 보꾸레미를 턱밑에 꼭 그러안고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기세에 눌려 옴짝 못하고 서있었다. 보금이로서도 난생처음 보는 모습이였다.

바깥빛이 희붐하게 흘러드는 문을 등지고 엉거주춤 서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벼락이 쳐서 거멓게 타버린 고목처럼 처량하게 보였다.

윤치석은 딸에게 따라오라는듯 한숨을 지어보이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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