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5 장

토왜구국의 기치를 들고

5

(1) 

 

엄병무가 침울한 표정으로 모닥불앞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그의 주변 여기저기에 불무지가 피여있고 그 둘레에 정부군이라 불리우는 교도중대원들이 쭈그리고앉거나 꼬부리고 누워있었다.

병무는 사그라져가는 불우에 나무가다귀 몇개를 더 올려놓았다. 화토불이 다시 확 피여올랐다.

문득 곁에 꼬부리고 누워있던 부교표식을 단 하사관이 벌떡 일어나앉으며 두덜거렸다.

《젠장, 이거야 추워서…》

늦가을의 숲속 밤날씨란 여간 춥지 않았다.

하사관 부교가 생각에 옴해있는 병무를 여겨보더니 은근스럽게 물었다.

《참위님(소위님).》

《응?》

병무는 상념에서 깨여나 부교한테 고개를 돌렸다.

《내 한가지 물어도 일없겠습니까?》

《뭔데?》

부교는 사위를 살피더니 나직한 소리로 말을 꺼냈다.

《우리가 뭣때문에 한지에서 이 고생입니까?》

《동학군과 싸우기 위해서지.》

병무는 늘 말하는대로 훌 내뱉았다.

《동학군도 우리와 같은 동족이 아닙니까?》

《실은 나도 지금 그 생각중일세.》

중앙과 지방의 정부군은 비록 일본놈들의 강요에 따라 농민군진압에 동원되기는 하였으나 일부 지휘관들과 병사들은 일제의 횡포한 내정간섭책동에 대하여 민족적의분을 금치 못해하고있었다.

봉건정부안의 반동통치배들과 친일매국노들은 일본이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자 이번에는 왜놈들에게 아부하면서 농민군을 무마하려던 종전의 기만정책을 내던지고 왜적들과 야합하여 농민군을 폭력으로 탄압하는 매국매족의 길에 들어섰다. 그들은 통위영, 교도중대, 경리영, 장위영, 순무영의 군대들을 농민군진압에 동원시켰으나 왜놈들에 의하여 갓 편성되여 충분한 전투훈련을 받지 못한 정부군은 농민군앞에서 무력하였다. 따라서 정부군은 농민군의 투쟁기세에 위압되여 동요하고있었다.

부교는 세운 무릎사이에 머리를 박으며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집에선 부모처자가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있는데 객지에서 무주고혼이 되면 이게 무슨 꼴이람.》

병무는 말없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불현듯 그의 머리속에 아정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그와 작별하던 날의 광경이 삼삼히 떠올랐다.

그날 병무는 아정이를 만나려고 건청궁의 대문밖에서 서성거렸다. 그는 가끔 목을 뽑아들고 대문안을 엿보기도 하였다. 그는 몹시 불안하고 초조한 기색이였다.

허리를 수그리고 또다시 대문안을 기웃거리는 병무의 머리우에서 돌연 아정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병무씨!》

병무는 흠칫 놀라며 머리를 쳐들었다. 옆구리에 여러권의 책을 낀 아정이가 그를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예서 뭘해요?》

《아정이를 기다리던참이요. 난 안에서 나오기만 기다렸는데 밖에서 올줄은…》

경황없는 속에서도 병무는 허거프게 웃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어요?》

아정의 사려깊은 눈길이 병무의 표정을 살폈다.

병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도리여 아정이가 초조해하고 안달이나했다.

《어서 말해요.》

《나 래일 출전하오.》

병무가 고개를 떨구고 이렇게 말하자 까만 속눈섭이 부채살처럼 퍼진 아정의 고운 눈이 둥그래졌다.

《출전이라뇨?》

《동학군과의 싸움에 말이요.》

아정이가 별안간 발끈해서 내쏘았다.

《거긴 왜 나가요?》

《중대에 출동명령이 내렸는데 나 혼자 빠질수가 있소?》

천만락심하여 옆구리에 끼고있던 책들을 떨어뜨린 아정이에게 그것들을 주어주며 병무가 안심시키듯 말하였다.

《너무 걱정마오, 별일 없을테니.》

《총포탄이 오가는 전장이 아닌가요? 그러다 혹…》

아정은 눈을 감으며 몸을 휘청거렸다. 병무가 얼른 그를 부축하였다.

이윽고 눈에 예리한 빛을 띠운 아정이가 낮으나 날카롭게 소리쳤다.

《도망치세요.》

《정신나간 소리. 군률에 목이 날아나려구. 그것도 그렇지만 군영에서 도망쳐 내가 어디로 간단말이요. 군정이 되여 나라를 지키려고 내가 십년세월 산속에서 무예를 닦았다는거야 아정이도 잘 알지 않소. 그리고 군정이 되라는것은 우리 아버님의 곡진한 당부요.》

병무의 절절한 말을 들으며 안타까운듯 두루마기고름을 주물던 아정이가 얼굴을 쳐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동학군을 치러 가지 않나요?》

《…》

병무는 한동안 대답을 못했다. 기실 그도 괴로왔다. 그에게 있어 동학군이란 곧 전봉준이며 태봉이였다. 그들과 싸운다는것은 참으로 언어도단이였다. 하지만 군적에 매인 몸이라 당장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모순된 심리속에 고민하고 동요하고있는 그에게 아정의 말은 가슴을 찌르는 비수와 같았다.

병무를 쏘아보며 아정이가 못을 박듯 또박또박 찍어말했다.

《동학군은 애국자들이예요. 명심하세요. 병무씨가 그들에게 총 한방만 쏘아도 다시는 나를 만나지 못할줄 알라요.》

이렇게 웨친 아정은 씽하니 대문안으로 사라지고말았다.

병무는 그가 사라진 대문짝만 멍청히 쳐다보았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1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