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제 5 장

토왜구국의 기치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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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억에서 깨여난 병무는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였다. 모닥불빛이 고뇌에 싸인 그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였다.

이튿날새벽 교도중대원들이 개울에서 세면을 하고있었다.

세면을 하고난 병무는 평화로운 새울음소리, 벽계수 흐르는 소리로 유정한 산속의 새벽정취에 잠기였다.

이때 그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참위님, 엄참위님!》

부교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병무는 말없이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의 앞에 멎어선 부교가 어깨숨을 쉬였다.

《참위님, 중대부에서 찾습니다.》

《알았네.》

부교가 의혹에 찬 눈길로 병무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한데 왜 찾을가요?》

《글쎄 가보면 알게 되겠지.》

정복차림으로 중대부천막안으로 들어선 엄병무는 중대장 현홍택부령(중좌)에게 거수경례를 하였다.

《중대장님, 찾았습니까?》

《음.》

통나무를 잘라 만든 의자에 앉아있던 중대장 현홍택은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곁에 앉아있던 부중대장 우범선참령(소좌)이 병무를 흠칫 치떠보았다.

현홍택이 띠염띠염 말을 꺼냈다.

《저쪽 비도들한테서 통지가 왔는데 오정(12시)경에 저 앞공지에서 좀 만나자누만. 자기들도 한사람을 내보내겠으니 우리도 한사람을 내보내라는걸세.

그래서 우린 무술에 능한 자네를 내보내기로 했네. 무슨 정황이 생기더라도 자넨 혼자힘으로 대처할수 있을테니까.》

우범선이가 골살을 찌프렸다.

《난 중대장님이 뭣때문에 비도들의 요구에 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현홍택이 벌컥 화를 냈다.

《아직도 그 소리요? 만나자는데 만나주지야 못하겠소?》

《좌우지간 일본교관의 승인을 받고 봅시다.》

이렇게 뇌까린 우범선은 훌쩍 천막밖으로 사라졌다.

《저 사람이…》

현홍택은 우범선이 사라진 천막밖에 대고 눈을 부라렸다. 천막밖으로 고개를 돌린 병무의 눈길도 온곱지 않았다.

현홍택이 병무에게 통나무토막을 가리켰다.

《앉으라구. 저 사람이 일본교관에게 횡설수설하느라면 시간이 걸릴테니까.》

병무는 통나무토막에 걸터앉았다.

《중대장님, 저쪽사람들이 왜 만나자고 하는지 모르십니까?》

《글쎄지. 짐작이 가지 않네.》

우범선은 생각보다는 빨리 돌아왔다.

《만나랍니다. 하지만 전중대가 사격자세를 취하고 담판장소를 겨냥하고있으라는 명령입니다.》

현홍택이 쓰겁게 내뱉았다.

《수고했소.》

오정(12시)에 엄병무는 약속된 숲속공지를 향해 걸어나갔다. 그의 등뒤에서 전중대가 각이한 은페물에 몸을 숨기고 총을 겨냥하고있었다.

저쪽 숲속에서는 한사람이 공지를 향해 걸어오고있었다.

마주 걸어오는 두사람, 서로 총을 겨누고있는 농민군과 정부군, 모든 운동이 정지되여버린듯 숲속은 숨가쁜 긴장과 침묵이 무겁게 드리워있었다.

바람결에 흰꽃송이를 살랑살랑 설레이는 가을국화 구절초, 저벅저벅 무겁게 울리는 발자욱소리, 두사람은 서로 마주 바라보며 긴장하게 걸음을 옮겼다.

병무가 문득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태봉이가?!…》

그렇다. 그는 농민군의 시위대장 천태봉이였다.

태봉이 역시 걸음을 멈추며 놀랐다.

《병무가? 관군이 돼?!…》

병무와 태봉은 다시 발길을 옮겼다. 두세걸음사이를 두고 서로 마주선 병무와 태봉은 너무도 뜻밖의 해후에 말들을 못했다. 태봉이가 병무를 쏘아보는데 병무의 얼굴엔 착잡한 표정이 어렸다.

이윽고 태봉이가 먼저 말을 뗐다.

《우리가 서로 원쑤가 되였니?》

《…》

병무는 대꾸를 못했다.

《얼마전까지 우리를 도와주러 천리길을 달려온 네가 오늘은 왜놈의 개가 되여 우리를 치러 왔니?》

병무를 신랄하게 꾸짖는 태봉의 눈에서 불길이 황황 이는것 같았다.

《…》

고개를 떨군 병무는 의연히 함구무언이였다.

태봉이가 품에서 봉서를 꺼내더니 병무에게 쑥 내밀었다.

《너희 관군들에게 보내는 전봉준대장의 고시문(호소문)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왜적에게 롱락당하여 동족끼리 싸우는 어리석은짓은 그만두자는 우리 대장님의 뜻이니 너도 잘 생각해보아라.》

이렇게 말하고 발길을 돌리려던 태봉이가 다시 병무와 마주섰다.

《후날 너와 다시 이렇게 만나면 그땐 용서치 않겠다.》

말을 마친 태봉이는 몸을 돌려 머리를 쳐들고 걸어갔다.

그때까지 말 한마디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던 병무도 고개를 푹 떨군채 터벌터벌 되돌아왔다.

군막안에 들어선 병무는 긴장한 표정으로 자기를 맞이하는 중대장 현홍택의 앞에 가섰다.

《그래 무슨 일이요?》

긴장한 시선을 병무의 얼굴에서 떼지 않으며 현홍택이 물었다.

《동학군이 아니, 비도들이 우리에게 고시문을 보내왔습니다.》

《고시문?》

현홍택은 병무에게서 봉서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병무를 의심쩍게 쏘아보던 우범선이가 빈정거렸다.

《한데 참위는 그자와 무슨 말을 그리 오래 했소?》

《뭐 별로…》

《그래도 봉서나 넘겨받는바 치고는 꽤 오래 서있던데?…》

《예, 좀 아는 사이입니다.》

《비도와 아는 사이라?…》

우범선이 더욱 수상쩍게 병무를 여겨보며 빈정거렸다. 하더니 이번엔 봉투를 뜯고 속지를 꺼내여 읽는 현홍택에게 눈길을 던졌다.

《무슨 편지입니까?》

《전봉준대장이 우리에게 보낸 고시문이요. 당신도 읽어보시오.》

현홍택은 우범선에게 고시문을 넘겨주었다.

고시문을 시답지 않게 받아 두어줄 읽어보던 우범선은 그것을 휙 집어던졌다.

《개떡같은 수작…》 하고 뇌까린 우범선은 여러장의 고시문중에서 한장을 들고 일어섰다.

《일본교관에게 보고하겠습니다.》

우범선은 중대장의 허락도 받지 않고 천막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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