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 회)

제 5 장

6

 

이튿날 집에 땔나무를 싣고온 윤치석으로부터 보금의 이야기를 들은 전장원은 두만강가의 그 작별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듯 아파났다. 한편 자기를 생각해주고 진명서숙을 지켜주려는 그 마음이 고맙고 대견스럽기 그지없었다.

경찰관출장소가 기습을 당한 다음날부터 마을은 여느때없이 흥성거렸다. 우물터의 아낙네들은 연두빛으로 휘늘어진 수양버들아지밑에서 별치않은 일을 가지고도 깔깔 웃어대고 밭일을 하는 농부들은 들판이 떠나가도록 흥타령을 불러넘겼다. 전해보다 일찌기 날아든 제비들은 풀이 파릇파릇 돋은 길바닥과 처마밑을 스칠듯말듯 하며 더 힘차게 날아다녔다.

대기속에는 싱그러운 봄향기뿐이 아닌 새 기운이 가득차서 설레이는듯 하였다.

며칠후 전장원은 사촌형이 앓아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는 도중에 해비를 만났다. 들판에 섬같은 그림자들을 던지며 하늘에 높이 떠서 날아가는 구름장들로부터 비방울들이 떨어졌다.

대지우에 성글게 드리운 비발은 해빛에 눈부시게 번쩍거렸다. 볼이며 팔을 적시는 해비와 땅에서 풍겨오르는 싱그러운 풀냄새에 날아갈듯이 상쾌해진 그는 활개를 크게 저으며 걸어가면서 이따금 저도모를 코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읍에서 좀 떨어진 둔덕진 곳에 널바자를 두르고 오붓하게 앉아있는 돌기와집이 전면장의 집이였다. 울바자둘레의 화단에는 주인이 원예에 취미를 붙여보려고 심었다가 내버린 화초며 약초가 설피게 자라올랐다.

장원이 방에 들어서니 향긋하고 씁쓸한 초약냄새가 코를 찔렀다.

전수원은 아래목에 편 요우에 누워서 비방울이 휘뿌려진 창유리를 깊은 생각에 잠겨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사촌동생이 들어온것도 느끼지 못하는듯 진중한 낯빛으로 창문만 바라보았다.

방에서 병시중을 들던 얼굴이 해맑은 딸이 아버지쪽에 대고 눈을 귀엽게 흘겨보이고는 물그릇을 들고 정지간으로 내려갔다.

이윽고 전수원은 장원이쪽에 얼굴을 돌리고 별로 반기는 기색도 없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장원은 그의 옆에 다가앉았다.

《형님, 편치 않다더니 좀 어떻습니까?》

전수원은 그 물음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눈을 내리감았다. 눈확과 볼이 꺼져들어간 그의 수척한 얼굴에는 심각한 번민의 흔적이 력연했다.

《네가 내 말을 믿겠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밤… 이제는 황천객이 된 그놈들이 뒤를 따르는걸 나는 정말 모르고있었다.》

《형님, 그 말은 그만합시다.》

전수원은 여전히 눈을 감고있었으나 그의 이마에서는 피줄이 살아오르고 입술이 보일듯말듯 떨리였다.

그는 문득 눈을 뜨며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요새는 앓아누워있으니 별일이 다 있다. 주재소에서 병문안을 오는가 하면 형사들까지 찾아드는구나. 내가 아마 대단한 황국신민이 된 모양이다.… 허, 하긴 그럴만도 하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공산군>의 기습을 통고했으니까. 이를테면 합격이 된셈이다. 쓰거운 일이지. 아까는 서완오놈이 다 찾아왔다 갔다.》

《서완오요? 그놈은 왜?》

《그래서 쓰겁다는게다. 황군을 협력한 내 공훈에 찬사를 아끼지 않다가 한다는 소리가 피차간에 오해를 풀자는거야.》

《오해요?》

장원은 형의 요밑에 손을 넣으며 흥미가 당겨 다가앉았다.

《그놈이 한다는 수작이… 전면장은 내가 면장자리를 탐내는가 해서 늘 신경을 써왔는데 그건 정말 오해요. 이때까지도 그런 속심은 없었거니와 앞으로도 없으리라는걸 오늘 왔던김에 확언해두오.… 이러더구나. 그리고 면에는 나만 한 인격자가 없는데 앞으로 적극 도와줄테니 잡신경을 쓰지 말고 면장일에 전심해달라는게야. 허- 이제는 맘놓고 한평생 면장질을 해먹게 됐다.》

《형님, 축하하오!》

《너두 웬만큼 흉물이구나! 고정하고 미욱한줄로만 알았더니…》

전수원은 쿨렁쿨렁 기침을 깇으며 일어나앉았다.

얼마후 두 형제는 심각한 낯빛으로 마주앉았다.

《그놈의 말이 진실일가요?》 하고 장원이 물었다.

《진실이다. 하야시와 최순사가 저렇게 되자 겁을 먹은게다. 제놈도 소경이나 귀머거리가 아니니 포고문이 나붙은 사실도 알게고 유격대에서 보낸 무슨 협박장같은걸 받았는지도 모르지. 그러니 나더러 죽을 자리에 있고 저는 살구멍을 찾겠다는 수작이지.…》

《그럴수 있겠습니다.》

《장원아…》

그는 이렇게 불러놓고는 한동안 말을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야 모를 일이다.

유격대가 왜 나는 살려두었는지… 왜 한데 몰아 쏴버리지 않구 놔줬는지… 며칠을 앓아누워 끙끙거리며 아무리 생각해봐야 참 모를 일이다.》

《형님! 천행인줄로 아오.》

천행이라는 그 말에 전수원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장원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인차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분노로 눈을 번쩍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협박이냐? 너는 도대체 나두 서완오따위로 보는게냐? 그러루한 놈들처럼 다루자는게냐? 제 형을… 제 혈육을?》

전수원은 한손으로 이마를 싸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난… 네 협박이 없이도 이 며칠을 죽기보다 힘들게 지내왔다. 비루하게 살아온 자신이 혐오스러워 못살겠다… 아, 왜 이 가슴에 납덩이를 박아주지 않았느냐? 제가 구역질이 나서 못살겠다. 너희들은 내가 오래오래 괴로움을 당하다가 말라시들어 뒈지라는게지, 그렇지? 그렇지 않단말이냐?》

장원은 얼굴이 시뻘개져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사촌형을 쏘아봤다.

《형님! 형님도 사람이요? 나는 위협하자는것두 아무것두 아니요. 사실을 말해주자고 왔소. 하야시나 최도만이놈처럼 처단한대두 형님은 할 소리 있소? 형님은… 어느분이 형님을 걱정해주셨는지 알기나 아우? 형님의 목숨을 어느분이 보호해주셨는지 알기나 알면서 아직두 뒤틀려서 이 야단이요? 에익!》

장원은 숨을 험하게 씨근거리며 시커먼 눈을 껌벅거리였다.

그 바람에 전수원은 기가 꺾여 숨도 못 쉬는것 같았다.

장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장군님께서 김일성장군님께서 형님을 살려주셨단 말이요!》

《뭐라구?》

전수원은 놀라움과 공포에 해쓱해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분이… 그분이 어떻게 나를 알고계시냐?》

장군님께서는 여기에 여러번 왔다간 공작원을 통해 형님의 일거일동을 다 료해하고계시였소. 장군님께서는 저 왕재산에 나왔을 때도… 이번에 무장소조를 파견하시면서도 형님을 걱정해주셨소. 형님이 과거에 독립운동자들을 도운 일도 있는것만큼 가슴한구석에 애국심이 꼭 남아있을게라 하시며 옳은 길로 이끌어줘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셨다오.…

그래서 유격대원들이 형님을 놔주었소. 그리고 형님의 금후 신변보호를 위해서 그런 힘에 부친 싸움까지 벌렸댔소. 그 동무들이 행동이 굼떠서 놈들이 달려들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있은줄 아우? 다 형님을 살려주고 보호하라신 장군님의 명령을 철저히 집행하기 위해서였소.》

전수원은 물기가 번들거리는 멍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형님이 그날 밤 나를 찾아왔다가 그런 봉변을 당하고 파출소로 달려왔으니까망정이지… 정말 우연히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망정이지… 저 유격대동무들은 형님을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전투계획을 짜가지고 나왔더랬소. 그날 밤도 한동무는 형님의 통고에 진실성을 더해주려고 놈들이 경찰관출장소 바로 앞에 온 다음에야 문을 차고 달려나가다가 부상까지 당했소. 그 동무는 빈사상태에 빠져 담가에 실려 근거지로 들어갔소. 형님때문에 꽃나이청년이 피를 흘렸단 말이요. 형님은 그런 보호를 받을만 하게 살아왔느냐 말이요? 나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게 부끄럽고 분하단말이요! 그 대원은 나처럼 형님과 혈육간도 아니고 형님한테서 물 한사발 얻어먹어본적도 없는 사람이요. 형님이 량심이 있고 의리가 있는 사람이면 그 대원이 흘린 피를 생각해서라도… 저 사람들앞에 더이상 죄를 짓지 말아야 할게요.… 일본제국주의는 반드시 멸망하오. 세계정세의 움직임으로 보나 사회발전의 법칙으로 보나 왜놈들의 멸망은 법칙적인게요. 망하는 왜놈들을 섬기다가 그놈들과 같이 망하겠소? 형님 혼자 망하는건 그렇다치고 왜놈들의 개로 산 형님때문에 우리 가문이 자자손손 내려가며 치욕을 당하는건 어떻게 하겠소? 저 두만강건너 근거지에서는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밑에 조선사람들이 정사를 다스리고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고 학교를 열어 아이들에게 무료로 공부시키고있소. 저기서는 조국의 미래가 움트고있소. 저 미래와 인연을 맺어야 형님의 장래도 담보되고 자식들에게도 앞길이 열리오! 오직 김일성장군님을 따라야 형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 전체 가문의 앞날에 번영의 길이 열리오. 형님이 두뇌가 암둔하거나 청맹과니가 아니면 이걸 먼저 생각해야 되오!》

고개를 푹 숙이고 듣고만 있던 전수원은 주먹으로 베개를 내리치며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쳐들었다.

《내 이노릇을 그만두겠다! 면장허울을 내던지겠다. 이대로 앓아누워서 아주 물러나겠다!》

장원은 그의 주먹을 뜨겁게 잡으며 진정을 시켰다.

《형님, 그렇게 속단하지 말고 좀더 깊이 생각해봅시다. 형님이… 왜놈의 면장이 아니라 우리 면장이 되면 되지 않겠소?》

《?…》

《여기는 근거지의 영향속에 있는 지역으로… 말하자면 반유격구로 되오. 형님은 면장일을 계속하면서 이따금 요긴한 대목에서 우리를 도와주면 어떻겠소. 이건 내 말이 아니요!》

《그건 누구 의사냐?》

김일성장군님의 당부요!》

장군님께서? 그분이?》

전수원은 휘파람같은 소리로 이렇게 부르짖으며 눈이 휘둥그래져서 몸을 약간 뒤로 젖히기까지 하였다.

《그렇소!》

《한번 만나뵈온 일도 없는데 나를 이렇게 믿어주신단 말이냐?》

《형님한테 조선사람의 량심이 남아있으리라고 믿으시기때문이요… 더 깊이 생각해보오.》

해비에 온 산천이 더 푸르싱싱해진것 같았다. 축축히 젖은 길가의 풀잎들은 해빛을 받아 번들거리며 싱그러운 향기를 풍겨올렸다.

전장원이가 풍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길을 치달아오르는데 웃쪽에서 농립모를 쓴 사람이 마주 걸어내려왔다.

그 사람은 장원을 보자 걸음을 뚝 멈추더니 빤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주먹을 쥐고 달려내려왔다. 주영백이였다.

그는 장원의 대여섯걸음앞에서 멈춰서서 허리에 두손을 올리고는 무섭게 흡떠보았다. 그의 크게 뜬 눈에서 분노가 이글이글 타끓었다.

《자네도 사람인가? 내 친구인가?》 하고 주영백은 앞뒤가 없이 내쏘았다.

장원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주선생, 웬일이요? 어디 갔다오는 길이요?》

《자네를 찾아갔댔어. 저리 좀 갑세!》

주영백은 장원을 끌고 두만강기슭으로 나갔다.

그들은 잡초속에 묻힌 떡판같은 너럭바위에 걸터앉았다.

주영백은 주먹으로 공기를 내리치며 부르짖었다.

《터놓고 말하겠소. 일전에 자네가 나를 찾아왔다간 다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나는 장원이를 주시해왔네. 아무리 생각해봐야 장원인 다른 사람이야. 예전에 보금이란 녀자를 내 마차에 태워 내온 일이 있는데… 그 녀자는 저 근거지와 자네를 련결시키기 위해 파견돼온 공작원이 아닌가? 요전 기습사건도 자네네와 관련된게 아닌가? 만약에 그렇다면 장원은 사람이 아니야. 내가 기업가라 해서 따돌리는가. 자네네 조직에 망라시켜달라는 소리가 아니네. 혁명이 눈앞에 와 번개치는데… 그래도 친구라면 아무렇게나 좀 귀뜀해줘야지. 자네가 무슨… 무슨 친구인가?》

장원은 목이 꽉 메여올라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쥐고는 외면하였다.

물새 한마리가 물결우를 스쳐 살같이 날아갔다.

두만강의 검푸른 물결은 군데군데에서 희끗희끗한 물갈기를 날리며 장쾌하게 설레이면서 저쪽기슭에까지 가득차서 도도하게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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